은시문학회는 1995년 시문학에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동인회로 2003년 부터 해마다 회원들이 마음을 담아 쓴 아름다운 시를 모아 시집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은시동인회는 이선영 시인을 비롯한 9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2년 제 10호로 발간된 「銀詩」에 실린 치자꽃 이선영 시인의 작품 중 몇 점을 올려 봅니다.
천년의 사랑 이선영
바위도 외로우면 틈새기 하나쯤은 내 두나 보다
천년을 살아도 타협 모르던 그 야무진 가슴에
어쩌다 날아든 솔 씨 하나 정자 그늘로 삼고 싶었겠지
차돌도 바람 들면 석돌만 못하다 해도 좋다 품안 내리사랑에 짧았던 하루해
어린 눈 품에 안고 온몸 줄여 자리 내는 어둠 속 불망의 긴 징소리
시린 어깨에 기대선 석벽 위 푸른 솔 그림자를 무구한 천연사랑 보란 듯 안고 섰다
고향 친구에게
안동이 고향 맞니껴? 가슴 환해지는 고향노래에 입 꼬리가 빙긋 올라가디더.
사돈요 장에 왔니껴? 술을 살까요 떡을 살까요 사돈요 술안주로 떡 하면 어떨리껴.
사장 둑 너머 안흥동 버버리네 찰떡 그게 그리워, 요즈음은 택배 해서 먹고있는 나에게 보내온 고향 사투리 노래 듣는다. 내 거기 살 땐 사투리에 익숙해서 몰랐지만 지금은 흑백 사진 보는 것 같은 그리운 말씨, 그리 잘나지도 못나도 않은 사람들끼리 부대끼며 살 때, 타관에 나간 자식들 소식이 자기 집 소식처럼 건너가던 이웃이 있어 좋고 아지매 아재가 있어 좋던 곳, 고향 이름 덕보고 사는 듯 누가 어디 사느냐고 묻길 바랐던 곳, 묻지 않아도 가슴에 자부심을 심어 주던 곳, 내 옷 입은 것 같은 편한 사람들 틈에 꿈을 키웠고 언젠가 금의환향에 기뻐하실 부모님 얼굴 떠올려 보던 곳, 이제는 돌아가도 반겨줄 이 다 떠나고 아지매 아재들의 인정스럽던 목소리 곧 들려올 듯, 내닫기만 좋아하던 어릴 적 고향 강가 두고 온 모래집이 늘 그리운 곳, 사발무지에 걸려든 피라미들 놀란 눈이 불쌍해 다시 놓아 보내던 곳, 어매가 하루 종일 광목 필 삶아 하얗게 말리도록 강변에 즐거움 익히면서 크던 곳, 밤늦은 시간 문밖 출입은 안 되는 걸로 알고 그냥 그렇게 살았고, 해야 할 것 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익히노라고 그저 조심스럽고 두렵기만 하던 어린 시절 걸림돌로 위축되던 것들, 지금 생각하면 모르고 지냈으면 더 명랑한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십 리 길 낙동강 방천 아래 흰 모래 위에 달빛이 고와도 누구네 집 딸 봤다는 소문이 겁나서 걸어본 적 없던 아름다운 미련의 그 길로 그리움이 푸른 강 되어 늘 흐르던 곳, 향기로운 바람과 밝은 햇살이 자글대어 너무 환해서 지금이라도 만나는 이는 낯설어도 그저 웃으며 말을 걸고 싶은 곳.
광석동 신작로 옆 작은 골목 접어들어 둘째 집 새로 지은 반 양옥 양철 지붕이 흰 벽에 꼬불거리는 까만 그림자 드리운 한낮, 콜타르 칠한 나무담장 복판 두 짝 대문 열면, 넓은 마당 서편에 펌프가 장독대 가까이 있고 북쪽 바라지 문 열면 맞바람에 간이 둥둥 뜬다는 대청, 오른편에 안방 왼편에 나와 동생 방 그 뒷방은 여러가지 물건을 두던 곳, 그 방 앞에서 대청까지 이어진 툇마루에 햇살이 바글거려서 동생과 실뜨기도 하고 껌정 치마 뒤집어 쓰고 해를 보면 아롱대는 수천 개의 무지개가 섰던 우리 집, 잠깐 생각만 해도 행복했던 그 곳 그 사람들, 내 아름다운 기억들과 사라져 간 불씨들을 다시 살게 해 준 고향 사투리 노래 잘 들었네. 친구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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