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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보내드립니다.
김소숙 선생님 통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촬영은 2월 둘 째주 6회 촬영에 [아버지 역] 분량은 3회 정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1월 달 프리 프로덕션 스케줄 동봉해 드립니다.
부디 좋은 인연으로 뵈었으면 하는 바람 입니다. 감사합니다.
H.P 011-9098-9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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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제작지원 선정작
쓴 맛!
연출/각본 강한빛
1. 기획의도
<나에게 박카스는 아무 의미도 아니었다.
그가 나의 방문을 두드리기 전까지는...!>
보고 있자니 웃기지만 돌아서면 눈물 나는,
디테일의 궤를 달리하는 진정 하찮은 청춘들의
‘쓴 맛’의 세계로 당신을 안내합니다.
2. 주요 등장인물
캐릭터 소개
차식(26) - 아버지 친구가 임원으로 있는 마사회에 마음에도 없는 지원을 한다.
부친(58) - 재능 없는 아들이 영화를 하겠다고 까부는 것을 늘 못마땅하게 여긴다.
모친(54) - 당뇨를 앓기 시작한 어머니.
그 외 인물 - 담당교수, 필근(상주), 상갓집에서 만난 친구들, 면접관 1,2,3
#.1 INT 교수 방 (낮)
시나리오를 다 읽고 책상에 올려 놓는 교수.
3차 공판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초조한 표정의 차식.
총체적 난국인 듯... 말이 없다가 결국 천천히 한 숨을 쉬는 교수.
차식역시........ 재능이 없는 걸까요?
담당교수(썩소 날리며)
뭐 첫술에 배부를 수 있나? 스필버그도 초고는 문제가 있기 마련인데.
차식(담담하게 그러나 절망적으로)
교수님, 이거 14고 짼데요.
담당교수......
절망적인 표정의 차식이 앞에 있는 박카스를 따서 말없이 들이킨다.
화면 어두워지며
#.TITLE
무미건조한 글씨체로 화면에 타이틀
<쓴 맛!>
이 조용히 떴다가 사라진다.
#.2 INT 차식의 방 (아침)
프린터에서 <영화제 출품신청서> 양식이 출력되어 나오고 있다.
책상에는 <다시는 영화를 찍지 않겠어요!>라는 타이틀의 DVD가 있다.
A4용지에 적어둔, 제출서류목록에서
<출품신청서 양식>이라고 쓴 곳에 X표시를 하는 차식.
갈색 서류봉투에 제출할 것들을 넣고 있는데
첨부해야할 시나리오 3부 중 1부가 보이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찾다가 핸드폰이 울리자 받는 차식.
차식어, 웬일이야. 졸업하고 바쁘게 지내지.. 정말? 갑자기 그랬어?
(난처한 듯...이내 표정 고치고 허세모드)
야 근데 어떡하냐. 나 오전에 영화사 사람들이랑 미팅이 있어서... 오후엔 제작자 몇 사람 만나봐야 되고...응 그러게. 뭐 그냥 작품 몇 개 보더니
한 번 보자고 그러더라고. 그래 있다 저녁에 갈게. 그래.
(어머니 V.O)대통령 밥 먹어.
짜증스럽게 텅 빈 지갑을 열어보더니 밖으로 나가는 차식.
차식젠장.
#.3 화장실 앞 (아침)
부엌 쪽을 향해 소리치는 차식.
차식엄마~! 혹시 내 책상에 뭐 올려놓은 거 못 봤어?!
(어머니 V.O)니 방 들어가지도 않았거든?
차식분리수거 하는 날 버린 거 아냐?
(어머니 V.O)예비군 통지서 말고 안 버렸어!
그 때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신문을 들고 나오시는 아버지.
신문을 냅다 바닥에 패대기치면서
아버지이런 개자식들. 다 박통 때처럼 조사뻐려야...
(차식을 보더니 영 못 마땅한 듯)
밥 묵자.
아버지가 지나가고 패대기 친 신문을 보자... <사회면> 골자에 대충
<대기업 상반기 신규채용 감축 - 취업한파 우려>이런 기사가 나 있고
삽지처럼 신문 사이에 차식의 <다시는 영화를 찍지 않겠어요> 시나리오가
끼워져 있다. 반쯤 읽다 말았는지 중간 페이지 즈음 접힌 자국이 뚜렷하다..
#.4 INT 식탁 (아침)
4인용 식탁. 아버지 따로 앉고
어머니는 정장을 입고 나온 차식과 함께 앉는다.
메인 메뉴로 오삼 불고기가 나왔다.
아들 쪽에 가깝게 대는 어머니와
아버지 눈치를 보면서 살짝 부친 쪽으로 미는 차식의 모습이 번갈아 보이고
심기가 불편한 아버지의 헛기침, 어머니가 살짝 아버지를 노려본다.
침묵 속에 참기 힘든 무거운 분위기의 아침식사.
어머니는 밥은 안 먹고 접시에 왠 도넛 하나를 올려놓았다.
못마땅한 아버지가 한 마디 한다.
아버지니 당뇨환자 맞나? 이 뭐고?
어머니반찬 하다 이것저것 주워 먹어서....
아버지(입술을 지긋이 앙다물며) 칵! 고마!
눈치 보며 식사하던 차식이 사래가 들려 켁켁 거린다.
차식컥!
다시 정적이 가득한 식탁. 나지막이 지나가는 말로 묻는 아버지.
아버지면접 가나?
차식상갓집요.
아버지준비 잘 되나?
차식그냥요.
어머니(화제 돌리려고)
김치 다대기 많으니까 씻어 먹어라.
이 여편네가 어디 말을 끊고.. 하는 표정으로 살짝 째려보는 아버지와
시침 뚝 떼고 김치를 씻어 아들 밥공기에 얹어주는 어머니.
잠시 정적이 감돌고...
어머니돈 필요하니?
차식됐어요. 돈 많아.
아버지니 올해 몇이고?
차식스물 일곱이요.
아버지(비트) 마산 당숙 아들은 장개 가서 아가 돌인데 니는 용돈 타 처 묵나.
어머니왜 또,
아버지칵 고마! 가만 안 있나!
어머니...
아버지(달래듯) 마 애비도 니 맘 때 글 쓴답시고 엉뚱낑뚱한 짓거리 해봤다 아이가.
차식...
아버지그기 무당 내림굿 하듯 재능을 물려받아야 되는 긴데...
아무나 안 되는 기다.
다시 침묵.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 젓가락 움직이는 소리가 참을 수 없이 갑갑하다.
차식(묵묵히 밥을 밀어 넣는)
아버지(은근히) 애비 친구 마사회 임원으로 안 있나. 이번에 사람 뽑는다 카데.
차식(순간 욱 해서) 아버지, 사실 저 정말..
‘이놈이!’ 아버지가 실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볼 때 즈음!
어머니가 한 발 앞서 슬쩍 차식의 발을 밟는다.
다시 고갤 푹 숙인 채 대꾸하지 않는 차식.
아버지으흠!
헛기침을 하더니 노기 띤 표정으로 밥을 먹는 아버지.
정적이 흐르고... 아버지가 고갤 숙여 국을 마시는 틈에
차식다녀오겠습니다.
먼저 일어나 빠져 나오는 차식.
#.5 EXT 아파트 통로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문자가 온다. 어머니가 보낸 문자다.
<니 애비한텐 절대 영화 찍겠다고 하지마라. 취업 준비하는 줄 아는데 난리난다.>
한숨을 푹 쉬는 차식.
경비실 앞에서는 경비와 한 아주머니가 대화 중이다.
마주치기 싫은지 왠지 떨떠름해져 멈칫하는 차식
경비 아저씨701호 아주머니 소포 왔어요.
아주머니뭔데요? 올 데가 없는데?
경비 아저씨[취급주의]라...
포도주라는데... 포항제철에서 보냈네요?
그 말을 듣고는 오두방정을 떨며 달려가는 아주머니.
아주머니아이고! 우리아들 포스코 붙었네! 대한민국 만세!
동네 사람들 우리아들 포스코 붙었다아!
차식은 현관 앞에서 가방 안을 서류봉투를 뒤지더니 뭔가를 놓고 왔는지
다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다.
#.6 INT 현관/차식의 방 (아침)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온 차식.
마루에서 부모님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 목소리)니 지금 뭐라카노?
(어머니 목소리)왜 자꾸 애한데 감 놔라 배 놔라 못살게 구냐구?
흠칫 놀라 멈췄다가 눈치 못 채게 조용히 중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는 차식.
- 차식의 방.
책상위에 지갑이 놓여있고
그 옆에 단편 시나리오 <다시는 영화를 찍지 않겠어요.>가 있다.
(아버지 목소리)니가 계속 감싸고도니 저 모양아이가? 나이가 스물 일곱이나
처 묵으가 아직도 꿈꾸는 소리나 하고 앉았고.
(어머니 목소리)꿈을 꾸는지 재능이 있는지 어떻게 알아?
(아버지 목소리)으뜨케 알긴? 내사 그 잘난 시나리온지 뭔지 읽어 봤다 안카나. 무신 놈의 재능은 재능이야?! 멀쩡한 상과 때리치고 전과하더니 딴따라 하겠다꼬!
(어머니 목소리)(버럭) 왜 또 당숙 아재 아들이랑 비교 하고!
(아버지 목소리)답답 안하나 이 사람아! 앞날이 빤히 보이는데! 글 나부랭이 쓴 거 읽어 보니 내 얼굴이 다 빨게진다 안카나!
차식의 손이 화면 안으로 들어와 소심하게 시나리오를 가방에 챙겨 넣는다.
#.7 INT 교수 방 (낮)
#.1의 장면으로 돌아와서... 울상이 된 차식이
차식역시........ 재능이 없는 걸까요?
한편 자기 책상으로 돌아와 <주택 융자금> 어쩌고 쓴 메모지를 들여보며
건성으로 대답하는 교수.
담당교수뭐 하여간...열심히 살다보면... 이참에 대학원이나 오지 그러냐?
학과장이랑 얘기해서 등록금 싸게 대출받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교수를 바라보는 차식. 무안해진 교수가
담당교수(비트)
흠, 그건 그렇고 차식아
뒤에 있는 책꽂이에서 시나리오를 하나 꺼내 건네는 교수.
담당교수학과 수시모집 전형에서 대상 받은 시나리오인데... 지원받아서
익명으로 영화제에 낼 생각이거든? 모니터링 좀 해봐.
교수가 내미는 시나리오를 받아드는 차식. 저자 이름도 없이
표지에 떨렁 <쓴 맛!>이라고만 씌어 있는 얇은 두께의 시나리오다.
담당교수고3짜리가 쓴 건데 기성작가 뺨치게 반전이 아주 끝내줘.
보통 재능이 아니야.
(은근히) 남들 보여주진 말고.
#.8 INT 장례식장 (밤)
아이고~ 아이고~!
탈진해서 바닥에 주질러 앉아 오열하는 미망인(혹은 큰누나).
영정 앞에 덜 익은 땡감을 대들듯 ‘탁!’ 놓는 손.
상주인 차식의 친구 필근이 서 있다. 취기가 올랐는지 횡설수설하는 필근.
필근아부지! 그렇게~ 감 떨어지기 기다리지 말고! 감을 따러 나가라고 잔소리를 해대더니.... 이게 뭐어유...딸꾹~! 아부지! 그래서 내가 겨울에 말이오, 감나무 앞에 갔더니 나무가 이쑤시개 깎아논매로 앙~사앙! 합디다!
그래서 봄에 다시 갔더니, 감은 없고 잎사귀만 쬐에에끔~ 돋긴 돋았어.
그래 이제나 저제나 여름에 가보니까 잎사귀가 좆털 마냥 무성 합디다! 장마 지나고 다시 갔더니! 이건~ 감인지 뭔지~ 요맨한 게! 열렸는데 그러니까 다 때가 있는 거라!
뒤쪽에 마련된 술자리에서 혀를 차며 잔을 기울이는 친구들.
친구들 사이에 영 떨떠름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차식. 대화가 한창이다.
창연졸업할 때 다 되도록 음악 하겠다고 까불더만..
그 꼴 못 본다고 기어이 쓰려지셨대.
필근(갑자기 기타 피크를 들고 하늘을 가리키며)
나는~ 광대야~!!
큰형이놈! 정신 못 차리고! 차라리 죽어!
상욱저거 언제 사람되냐. 어휴...
참지 못한 필근의 형이 들고 일어나 그런 필근을 짓밟는다.
자기 얘기 듣는 것처럼 떨떠름하게 등지고 앉아 홀짝홀짝 마셔대는 차식과 얻어터지는 필근을 외면한 채 떠드는 친구들.
창연오랜만인데 한 잔씩 더 해.
어이, 회계사 양반. 요새 잘 나간다며?
상욱너도 니네 주식만 맨날 상한가잖아.
창연4분기 어닝 서프라이즈인지 뭔지.. 나도 실감이 안 나네.
상욱결혼이고 취직이고 하여간 제일 빨라.
태중(옆에 시무룩해 있는 차식을 추켜 주며)
야 그래도 대기만성은 역시 우리 정감독 아니냐.
차식 (자리가 불편한 듯)
어 나 잠깐...화장실 좀...
태중(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차식을 붙잡고는 취한 소리로)
야야, 니 얘기 하는데 어디가 임마! 시나리오 썼다는 건 잘 팔았냐?
차식(떳떳치 못한 소리로)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태중(너스레)
니네 얘한테 잘 해. 이제 이쁜 구멍들 맨날 보겠네.
차식아, 나 옛날부터 진짜 궁금했는데 그 감독이랑 신인배우 애들이랑
막 떼씹하고 그런다는 거 그거 진짜냐?
상욱(비웃는다)
감독이 뭔데 대줘? 물주는 투자자랑 제작잔데.
차식저기, 난 선약이 있어서...
상욱(빈정)
좆 까구 있네. 니 까짓 거 누가 만나준다고.
순간 분위기 싸해지고
창연야야, 너 취했냐.
태중(당황) 이 자식 완전 취했네. 어이 차식아!
열없어 일어나 자리를 뜨는 차식.
싸늘하게 비웃는 상욱 목소리.
상욱예술 한답시고 고상 떨 때부터 저 꼴 날지 알아봤다. 밥맛없는 새끼.
#.9 EXT 경마 오락실 앞 (낮)
가게 앞에 놓인 쓰레기통처럼 된 골판지 박스에
[다시는 영화를 찍지 않겠어요] 시나리오가 처박혀 있다.
[3번에 7번마. 7번에 4번마...]
오락실에서 경마 중계방송 소리가 들리고
살짝 취해 토이 크레인으로 시간을 때우는 차식.
잡힐 듯이 잡힐 듯이......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좀처럼 잡히지 않는
토이 크레인 속의 만년필.
결국 차식은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떠나간다.
토이 크레인 옆에 있는 펀칭 머신에서 비웃듯이 기계음으로
(펀칭 머신 소리) 형~ 도망가면 겁쟁이야. 한 방 날리고 가!
소리가 나온다.
#.10 INT 거실 (밤)
아버지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고
차식이 중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TV에서 [사랑하는 자녀에게 피로엔 박카스!] 하는 광고멘트가 흘러나오고.
말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차식이 괘씸했는지 아버지가
아버지인사도 안하나?
차식(무시하고 들어간다)
아버지괘씸한.. ‘다시는 영화를 찍지 말아라’
시나리오 제목을 가지고 이죽거리는 말로 들은 차식이 숨김에 나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대들기 시작한다.
차식뭐라 그랬어요?
앞에 서서 눈을 치켜뜨고 대들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는 아버지.
아버지이놈이 술 처먹고! 칵 고마!
차식(눈을 치켜뜬 채 씩씩거리며 노려본다)
아버지너 임마 이거 밖에 안돼?! 꼴 같지도 않은 글 쓰면서
차식(울컥!) 당신 닮아서 재능이 그거 밖에 안되는 거지! 왜?! 뭐 보태줬어요?!
짜악!
들고 있는 리모컨으로 아들의 뺨을 갈기는 아버지. 홧김에 때리긴 했는데
소리도 크고 충격도 커서 오히려 놀란 것은 아버지 쪽이다.
마침 중문을 열고 장보고 들어오는 어머니.
아버지가 괜히 어머니에게 화풀이 하면서
아버지잘 돌아가는 집안이다! 애새끼 맨날 감싸고도니까...
갑자기 혈당이 올라갔는지 신발장에서 기운 없이 푹 주질러 앉는 어머니.
아버지와 동시에 놀라서
차식엄마!
순간 차식의 의식 속에 상주인 필근과 쓰러지는 미망인의 모습이 스친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어머니의 영정이 보이는 망상을 한다..
#.11 INT 안방 (밤)
거실소파에 앉아 소주를 들이키는 아버지 모습 보인다
<안방>
능숙하게 혈당체크기로 피를 뽑아 당수치를 측정하는 차식.
차식그렇게 머리 아프다면서 도너츠를 또 사 먹냐? 그 설탕 덩어리를?
어머니사는 게 재미가 있어야지.
차식아 쫌! 당뇨 환자용 설탕 있더만. 그거 사 먹어.
어머니돈 아깝게 뭐 하러.
차식아 얼만데? 내가 사줄게.
어머니하이고, 어느 천 년에! 빨리 자리 잡고 장가나 가라. 이놈아.
차식나 장가가면 주사 놔줄 사람은 있고?
어머니니 애비 뒀다 뭐하냐. 만날 산에 아니면 소설책만 읽고 앉았는데.
차식오여사.
어머니왜?
차식진짜 작가 되고 싶어 했어?
어머니누구?
차식누구긴.
어머니(귀찮은 듯)
몰라. 니 애비 경상도 남잔 거 모르냐.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 밖의 어딘가로 가는 어머니.
서랍을 열어 뒤적거리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200자 원고지 뭉치가 하나
툭 하고 바닥에 던져진다.
#.12 INT 차식의 방 (늦은 밤)
(어머니 목소리)너 준다고 만날 뭐 끄적 거리고 있긴 하더라.
아버지의 원고지 첫 장을 보는 차식
<江山無情>이라고 옛스러운 필체로 제목이 힘차게 쓰여 있고
그 아래 <연출 - 정차식 각본 - 정근배> 라고 씌어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조금은 뭉클해진 표정의 차식.
#.13 INT 베란다 (늦은 밤)
빨래걸이에 차식이 내일 면접에 입고 갈 와이셔츠가 걸려있다.
회한 섞인 표정으로 착잡하게 단추실밥이 나온 것을 떼어내는 아버지.
#.12_2 INT 차식의 방 (늦은 밤)
영화서적들을 내다 버릴 샘인지 다 노끈으로 묶어놓은 모습이 보인다.
책상에 앉아 아버지의 원고를 읽고 있는 차식의 표정이 절망적이다.
반 정도 읽고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창문을 열고 담배와 필름캔 재떨이를 꺼내는 차식.
INSERT - 아파트 밖에서 보는 차식의 방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창가에 앉아 있는 차식. 그리고 베란다에서 담배를 태우는 아버지의 모습이 한 화면에 보인다. 총체적 난국에 빠진 부자의 절망적인 모습에서 F.O
#.14 INT 마사회 면접실 (낮)
Insert : 박진감 넘치게 달려가는 경주마들의 모습들.
힘차게 달리는 경주마와 기수의 모습이 묘사된
<이제, 당신의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라는 마사회 광고 포스터에서
트래킹-백 하면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싸늘한 인상의 면접관 둘과
능글능글해 보이는 인상의 면접관 하나
총 3명으로 구성된 심사의원이 차식을 일대일 면접하고 있다.
제출된 서류를 꼼꼼히 살피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문을 여는 까랑까랑한 인상의 면접관 1.
면접관 1어려서부터 말을 사랑했다고 하는데. 이력만 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거든요? 최대한 주어 술어만 사용해서 간결하게 설명을 해봐요.
차식(낯빛 하나 변치 않고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둘러댄다)
5살 때 어린이 대공원에서 조랑말 투어를 한 순간부터
저는...(잠시 생각) 말의 고동소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이건 진짜구나! 척추에 와 닿는 그 말 잔등의 거칠고...!
와일드한 느낌! 제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면접관1(어처구니가 없다)
다섯 살 때 그걸 느꼈단 말입니까?
차식(미친 척하고 빡빡 우기는 차식)
그렇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잘 하겠습니다!
면접관1(못마땅)
여기는 군대가 아니야 이 사람아.
면접관2(부드럽게)
그럼 차라리 기수를 해보지 그래요? 체격조건도 얼추 어울리는데.
차식가급적 제 전공을 살리면서 일하고 싶습니다.
면접관3(서류를 뒤적이며... 비트)
음, 성적도 훌륭하고. 내가 보기엔 기본적으로 성실한 거 같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는 잘 계시나?
차식네?
(아하~!)
아. 예... 건강하십니다!
면접관3허허. 나중에 술이나 한 잔 사달라고 하더라고 전해주세요.
불편한 듯 헛기침을 하는 면접관1. 하지만 능글맞게 면접관3 웃어넘기면서.
면접관3사내방송에 지원했는데 콘솔이나 이런 건 좀 다뤄봤겠지?
차식(급당황)
네? 아... 저.... 저는, 그 중계 아나운서를... 뽑는 줄 알고...
면접관1(짜증)
그럼 준비한 걸 한 번 해봐요.
차식예. 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
긴장한 차식이 음음.. 하고 심호흡을 한 뒤 타이를 약간 느슨하게 하고는
우렁차게!
#.15 INT 면접대기실 (낮)
대기실 풍경.
자기소개 족보를 외고 있는 대기자가 보인다.
갑자기 면접장에서 우렁찬 차식의 목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면접장 쪽을 바라보는 대기자들.
#.14_2 INT 면접실 (낮)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처럼 눈물겹도록 어처구니없게 의자 위에 올라가
열정적으로 중계방송(?)을 하는 차식. 압박을 견디지 못해 거의 제 정신이 아닌 듯하다.
차식을 뽑아주려던 면접관3도 이쯤 되자 수습불능상태.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만 들고 있던 펜을 떨어뜨리고 만다.
차식 (이판사판!)
아아! 3번에 8번마! 8번 2번마 따라붙습니다!
4번 라인 건곤일척. 기수는 류명만. 플라이퀸 3회 연속 우승이 희박해진 가운데 개선장군 치고 나옵니다. 뒤이어 막판 뒷심 내고 있는 멕시칸블루!
고갤 절레절레 흔들며 문 앞에 앉아 있던 안내직원이 명단표에서 정차식 이름에 X표시를 한다. (F.O)
#.16 INT 아파트 현관 앞 (낮)
고갤 푹 숙인 채 집으로 향하는데 경비 아저씨가 차식을 부른다.
경비 아저씨401호지? 소포 왔어.
차식예? 올 때가 없는데?
경비 아저씨[취급주의].
허허~ 사람일은 모르는 거지 이 친구야. 포도주?
#.17 INT 부엌 식탁 / 거실 (낮)
[귀하의 작품은 아쉽게도 근소한 차이로 본선에 오르지 못했음을...]
어쩌고 하는 편지가 동봉된 영화제에서 반송된 DVD다.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포도주스를 마시는 차식.
안방에서 아버지가 등산복 차림을 하고 나오신다.
화들짝 놀라 차식이 DVD를 뒤로 숨긴다.
아버지...
차식...
잠시 어색하게 서 있는 부자.
아버지발표 났나?
차식아뇨. 아직.
아버지(착잡한 표정을 짓더니)
잘 봤나?
차식그냥요.
아버지...
착잡한 한 숨을 쉬더니 뭔가 말하려다가 마는 아버지. 차식을 빤히 쳐다본다.
아버지...
차식...
아버지나간다.
밖으로 나가려다 갑자기 차식을 부르는 아버지.
아버지얘.
차식예.
아버지파이팅.
차식.......
아버지.......
...........................................................잠시 정적이 흐른다.
아버지가 약간 웃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반응이 없자
아버지가 주먹을 더 어색하게 꾸욱 쥐어 보인다.
하지만 너무나 뜬금없는 차식은(사실 좀 놀랐다) 영문을 모른 채 잠시 그냥 멍하게 서 있다가
차식아, 화이...
쿵!
‘팅’ 라고 할 때 즈음 이미 아버지는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CUT TO.
마루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 반품된 DVD를 보고 있는 차식.
요란스런 엔딩 음악과 함께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다.
망연하게 바라보다가 [연출/각본/편집/촬영/조명/미술 정차식]이라
뜨는 부분에서 TV를 꺼버리고는
차식(자조하듯 아버지 흉내를 내며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내 얼굴이 다 빨게진다 안 카나........’
방으로 들어간다.
#.18 INT 차식 방 (낮)
툭~!
차식의 손에서 DVD가 스르르 떨어진다.
책상을 바라보고 있는 차식.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씁쓸함이 담긴 표정이다.
조소인지 연민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책상 앞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책상 위에
[쓴 맛!] 시나리오가 놓여있고
포스트-잇에
[훌륭하다! 파이팅!]
이라고 짧게 써 붙인
박카스가 한 병 시나리오 위에 올라가 있다.
망연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버리려고 노끈으로 묶어 놓았던 <채플린 - 나의 자서전>, <레니 리펜슈탈 - 금지된 열정>등의 책들을 풀어 서랍에 꽂기 시작하는 차식.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을 아랑곳 않는
흥겨운 음악이 흐르며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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