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대 자연의 진리를 얼마나 충실히 취하느냐에 따라 결실 정도가 결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연과 벗한 이는 자연스럽고 그렇지 않는 이는 인간스럽다고 해야할까? 인간이 자연을 무시하려고 하는 한 그 인간은 자연스러울 수가 없지 않겠는가.그렇다면 자연스러움이 없는 인간은 충실하지도 못하다라는 결론이 도출되고.
조상님들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였으나....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자연의 섭리가 인간의 욕망 아래에 존재하는 하잘 것 없는 것 인양 우습게 알고 자연을 소중히 대하려 하지않고 너무나 마구 대하고 있으니 그 행동 그 사고가 오 마이 갓 / 오호 통재라 하지 않을 수가 없으이...... 그 무지몽매의 안타까움이 인간사로 나타나고 있으니 ..이혼,자살,노숙,강간,,살인 등등으로 이렇게 인간사를 괴롭히는 원인을 규명하여 그 상처를 언어라는 추상과 현실로 보듬어 주고 다스리게 하는 방통을 제시하는 것이 종교라 한다면 풍수지리는 선지자들이 천문의 이치를 터득하여 그 진실의 일부를 실 생활에 적용함으로써 재난의 화를 피 할 수 있다는 가설아래 성립된 이론으로 증명되지 못하는 논리로 보면 종교를 믿는 것이나 풍수이론을 따라 실천하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거늘 근대에 들어와 이 풍수이론이 급격히 도외시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리가 개혁,개방이 안되어서라기 보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는데 인간의 사술로 이윤이라는 실체를 진리인양 가장하여 꾸며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아니면 최대의 이윤을 추구" 하는게 절대 善인양 오도되어 있고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익은 절대선이 아닌 것도 맞는 것도 아니다.이윤이라는 용어가 생겨날 당시만 하더라도 이 단어는 善 아니 眞理와 버금가는 매력적인 것이였을 것이나 차츰 ㅅ세월이 흘러감에 그 본성이 추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면 변함없이 은은한 향기를 뿜어 내는 진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가... 아스라 諸我의 모습들은 어떠하신가... 아래의 모습은 진리의 한 장면이 될런지는 알 수 없지만
주택의 향(向)과 대문(大門)의 위치에 따른 길흉론(吉凶論) 1) 건좌태문(乾坐兌門) : 대문이 서쪽에 있으면 재산이 늘어나고 가족이 번창한다. 1) 태좌건문(兌坐乾門) : 대문이 서북쪽에 있으면 복록(福祿)이 속발(速發)한다. 1) 곤좌간문(坤坐艮門) : 대문이 동북쪽이면 가족이 늘어나고 장수하며 부귀(富貴)를 오랫동안 누린다. 1) 이좌진문(離坐震門) : 대문이 동쪽에 있으면 집안이 화목하고, 번창한다.
-진좌태향(震坐兌向), 서향(西向)주택- 예술가의 집으로 적격
-간좌곤향(艮坐坤向), 서남향(西南向)주택 위에서 언급한 팔방위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正北-坎, 正南-離, 正東-震, 正西-兌 방향이고 西北-乾, 西南-坤, 東北-艮, 東南-巽 방향이라 한다. 또한 坐는 위치한 자리를 말하고 向은 좌에서 바라다 본 정면 방향을 말한다.그래서 보통 어르신내들이 방향을 말할 때 좌향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것이다. 묘지 앞에 놓인 평평한 좌판을 일러 혼이 노는 돌이라 하여 魂游石이라 한다. 그 혼유석에는 자식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 곳에는 반드시 좌 또는 좌향이 기록되어 있다. 이유는 혹여 천재로 인하여 묘 봉우리가 없어지더라도 혼유석에 기록되어 있는 좌와 향에 따라 복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출처: 이처럼 좋을 수가 원문보기 글쓴이: 삐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