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고니아님의 오아시스 ㅡ 맛부
왜 맛부에 사람들이 모일까요?
그 까닭은 모두가 외롭기 때문입니다.
신입회원 인사 시,
가입하게된 동기는 정말 다양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동기는 외롭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자문해 보세요.
친구도 많고, 날마다 신나는 일만 있고, 행복한 시간으로 하루가 꽉 짜여진 사람이 있다면 맛부에 가입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겉으로 아닌 척 할지 몰라도 당신은 사람이 그리워 맛부에 왔습니다.
대화에 목말라 맛부에 왔습니다.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 있나요?
그렇습니다, 우린 모두 외로운 것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의 저서 <고독한 군중>에는
"군중속의 고독"이란 말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의 무리 속에 있어도 그 집단에 동화 또는 용해되지 못하고 홀로 격리된 듯한 자신을 느낄 때, 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하고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느낄 때, 자신의 고독감은 그 무리의 사람의 수와 반비례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대하는 시간보다 기계를 대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높아진 소득은 각자 자기 방이라는 자기만의 벽 속에 자신을 가두며 다양해진 직업은 공통의 대화의 소재를 찾기 어렵게 합니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설파했읍니다.
혼자서는 살수 없는게 인간의 본질입니다.
서로 의존해 살수 밖에 없다는 얘기죠.
그러나 사회구조는 물질적 의존( 남이 만든걸 내가 쓰고, 내가 만든 건 타인에게 제공하고)은 확대되어 가나 정신적 의존(감정의 교류)은 오히려 축소되어 갑니다.
인간의 감정의 교류가 단절된 곳에 무엇이 남습니까?
외로움(고독)입니다.
덴마크의 신학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고독에서 탈출하고자 맛부에 오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세상의 온갖 많은 모임 중에서 왜 맛부에 모두들 모이는 것일까요?
제일 큰 원인은 회원 상호간 이해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번뇌는 욕심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이해득실이 있는 곳은 대립과 다툼이 생기고 다툼은 불화를 낳고 결국 평화는 깨어지고 맙니다.
이해관계가 없으니 다툴 일도 없고, 외로운 사람들끼리 만났으니 서로를 잘 이해하고......
우리의 모임의 목적 또한 소박하지요.
인간의 가장 원초적 행위,
먹기 위해 모인 것이죠.
교류하기 위해 모인 것이죠.
두 번 째 원인은 무사공평하고, 룰은 엄격하되 정이 많다는 거죠.
때론 엄격한 룰로 인하여 감정의 엇갈림이 있을 때도 있어나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것.
주위에 아주 많은 사람이 있어도 누구든 조금씩은 외롭게 마련입니다.
특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조락의 계절이 다가 옵니다.
맛부 게시판에는 외로운 이들의 글들이 더욱 많이 올라오겠지요.
받는 이 없는 편지를 하염없이 써 보는 이는 없나요?
외로움을 먹고 그리움은 자랍니다.
자란 그리움에 지쳐 울고 싶을 땐 편지를 쓰세요.
맛부의 벗들은 당신의 그리움을 나눌 님들입니다.
요즘 게시판 활동이 가장 활발한 분 중의 한 분이 베고니아님 (베고니아: 키는 30cm가량, 줄기는 보통 황색, 마디는 홍색, 잎은 녹황색의 난형에 끝이 뽀족하며 가에 톱니가 있음. 7~9월에 담홍색 꽃이 피는 다년생 화초. 꽃말은 짝사랑)입니다.
고향인 부산을 떠나 객지(서울)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 때문인지 올리는 글 속엔 언 듯 언 듯 노스탈지어의 그림자가 묻어납니다.
숨겨둔 자기만의 비밀스러움도 얼핏 얼핏 내 비치는 것 갖기도 하구요.
아마 여가의 대부분을 우리 맛부 글 속에서 고향의 소식도 듣고 멋진 맛부의 벗들과 대화도 하고 자신도 많은 얘기들을 풀어 놓는 것 같습니다.
맛부는 어쩌면 베고니아님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하루의 힘들고 지친 심신을 편히 쉬며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 같은 것.
그러나 이런 기분이 비단 베고니아님 만의 느낌일까요?
아마도 우리 대부분이 똑 같이 느끼는 것일 겁니다.
멀고먼 인생의 사막을 하염없이 가는 길손들,
외로운 이들의 오아시스 같은 맛부에 머물다 가실까요?
행여 제가 주제넘은 예단을 한 것은 아닌지..........
이 글 속에 저의 경솔함이 있다면 부디 용서하세요.
그리고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