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페에 가입한지 좀 되었지만 구경만 하고 다니다
드디어 오늘은 글을 한 번 올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이카페는 주로 골수이식을 하거나 비다자, 다코젠 치료하는 분들이 주로 글을 올리셨는데
예은맘님 글을 읽다보니, 나같이 두 경우 다 선택하지 않고 버티기만한 경험도
회원님들께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21년동안 MDS와 함께한 내인생을 한 번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 폴 싸르트르는 'Life is BCD.'라는 말을 했다.
인생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사이에 C(Choice, 선택)가 있다라는 뜻이다.
인생의 그 수많은 선택들 중에 이카페의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우리 MDS환자들은
우리를 치료해 줄 혈액내과 의사들로부터 과정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없이 두가지 선택을 권유 받는다.
하나는 골수이식이고, 또하나는 백혈병으로의 진전을 늦춘다는 비다자나 다코젠 같은 항암치료이다.
한쪽에서는 동물복제 공장까지 곧 만든다는 엄청난 과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아직 제대로 된 치료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유명한 58년 개띠 아줌마이며 1994년부터 MDS환자로 살아온 나도
1997년 1월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골수이식을 하지 않으면 2년 못넘긴다며 이식을 권유 받았고,
2003년경과 2015년 2월에도 비다자 치료를 권유 받았으나 무지해서인지 용감해서인지
둘 다 선택하지 않은 채로 생고생 해가며 버티기 한 판을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세게 벌이고 있다.
21년 세월의 이야기를 쓰다보니 엄청 길어졌는데 좀 길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1기; 94년~99년
1994년5월, 경북대병원에서 MDS 진단받은 후
2개월동안 응급실을 통해 입퇴원을 3번 하다가 가족들의 권유로
1994년 7월,서울대병원에 슬라이드를 들고가서 몇 번 진료를 받았으나
지방에서 다니기 너무 힘들어 경북대병원으로 다시 돌아가 진료를 받았다.
당시 만34세에 시작 되었고 헤모글로빈 수치는 6~8, 백혈구 500~2000, 혈소판 만~2만정도,
응급실에서 재면 때로는 0으로도 나오더군요. 재는 부위따라 다를 수 있다고 들었다.
젊은 나이라서 생리가 있으면 지혈이 되지 않아 수많은 전혈 수혈과 혈소판 수혈을 받던 시기였다.
자궁근종도 있었는데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에서는 수술해야 한다고, 하고 내과에서는 말리고...
결국 부작용 때문에 6개월이상 쓰지말라고 되어 있는 난소호르몬 억제제인 수프리커라는 약을 10년정도 썼다.
하루에 4번 양쪽 코에 뿌리는 약인데 쓰라는 대로 쓰니 온몸이 말라 타들어가는 듯했다.
3번으로 줄여서 쓰다가 괜찮으면 2번으로 줄여보고 다시 출혈이 시작되면 혈소판과 피수혈 받고
멈추면 4번에서 다시 시작하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띄엄띄엄 조절하며 써서 10년정도 쓴 것 같다.
(조금 지나자 첫주치의 샘은 자기는 모르겠다며 오지마라고 했고, 내과에서는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 받으라고 하고...
3년째 산부인과에 가자 어느해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오지마라고 하는데 온다고
교수님이 하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난리쳐서 울며 나온 적도 있다.
친구 도움으로 만난 두번 째 산부인과 주치의샘은 이렇게 오래 쓴 사람 못봤다고 하시며 기적이라고 했다.)
하루에 2봉지씩 하얀 벽으로 둘러쌓인 주사실에 누워 6~7시간 정도 수혈 받을 때를 생각하면 아득하다.
당시 혈액내과에서는 얼굴에 여드름도 나고, 목소리도 변하며 털도 막 나는(?)
남성호르몬제,다나졸(?), 옥시메쏠론 이란 약도 쓰고 스테로이드 종류도 써보며
비타민C와 폴린산과 피리독신 처방은 꾸준히 받았던 듯하다.
1996년은 치과 문제로 엄청 고생했는데,
혈소판 수치가 낮아 칫솔질을 살살해서인지 잇몸은 붓고 피가 나기 시작했고,
후유증으로 구내염은 심해지고, 식사를 잘못 하니 영양이 부실해져 혈액수치는 더 떨어지고, 악순환이 연속 되었다.
아침에 자고 나면 입안에 피가 가득 고여 들어붙어 있었고 거울을 보면 내모습이 마치 드라큘라 같았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 볼까봐 일어나면 하는 일이 아이들 몰래 베개피부터 빠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딸아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그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는 그때 알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엄마가 죽을까봐 너무 무서워 누워서 자는 척하며 혼자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후부터는 자기 힘으로 안되는 일은 모른척 하는 버릇이 생겼다나 어쨌다며...
경대병원 치과에서는 치주염수술은 해야겠는데, 혈소판 수치가 낮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만 했다.
그해 여름 우연히 치대교수 출신 치과의사선생님을 소개 받았고,
선생님은 백혈병 환자들 치료 경험이 있다시며 수술을 해보자고 하셨고, 혈소판 수혈 후
논문 제출용이라며 열심히 사진 찍어가며 수술을 해주셨다.
하지만 조금 있으니 잇몸은 있는대로 부풀어 올랐고. 결국 실밥 옆부분이 터져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결국 지혈은 되었지만 선생님 가운은 피투성이가 되었고....그래도 아물고 난 다음은 살 것 같았다.
너무나 감사했다. 나중에는 여고동창 중에 치과 의사 친구가 관리해 주었다.
또다시 산부인과에서 수술 이야기가 나오며 1997년 1월,
다시 당시 혈액내과로는 가장 환자가 많이 몰리는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을 찾았다.
요즈음은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최고 명의로 꼽히는 김동욱교수님께
MDS 진단 받았고 골수이식수술을 받지 않으면 2년을 넘기지 못할거라며
지방병원들이 다른 방법도 없으면서 환자를 서울로 보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어
급한 마음에 며칠 뒤 이식수술을 위한 응급실 입원 약속을 하고 나왔다.
주차장에는 때마침 불어온 회오리 바람에 휴지 조각들이 하늘을 날아다녀 스산하기 짝이 없는 내마음 속 같았다.
머리 속은 멍하고, 가슴은 먹먹하고, 초등학생 두 아이들이 눈에 밟혀 기가 찼다.
남편과 대구로 내려오는 기찻간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흐르는 눈물을 닦은 휴지는 얼마나 많았던지...
대구 내려와서 친인척과 지인들 중 의사인 몇 분을 만나 상담을 했으나
모두들 너무 힘든 결정이라며 본인이 잘 판단해서 결정할 문제라고들 했다.
어느 의대 교수님은 의대 교과서를 보여주시며 'Gamble'이라는 단어도 보여주셨다.
당시에도 백혈병 쪽은 골수이식을 많이 했으나 MDS는 국내에서 4번째라고 했으며
가족하고 맞을 경우 이식 성공확률 50%, 타인 골수면 또 40%, 하다가 죽을 확률 20%
하고나서도 또 몇 % 등등... 들으면 겁나는 이야기만...
친정어머니는 내가 이식수술 하겠다면 무조건 도와 주겠지만 결정은 니가 해라고 하시고
동생은 해외지사 갈 수 있다며 미국 가서 하자고 하고...
남편은 당시 집안 사정상 골수이식은 제발 하지말아 달라고 사정사정 해서
내가 잘못되면 폐인 될 것 같은 분위기... 슬픈 영화 한 편 찍었네요.
왜 하필 내 세례명은 '라스트 콘서트'에서 백혈병으로 죽은 여주인공 '스텔라'와 같은지...
당시 아이들도 어리고, 시어머니는 위암 수술 실패로 2달만에 보내드렸고
시어른의 전립선 수술 후유증으로 패혈증 후 실명과 치매로 4년간 고생하시던 중이었고
지인 며느리분이 서울대병원에서 백혈병으로 골수이식 후 바로 죽어서 더...
나는 서울 가서 수술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경북대 병원에서 치료받기 시작했다.
1년뒤 경대병원에 골수이식센타 생긴 후 다시 동생과 맞는지 검사했으나 맞지 않았고
센타에 등록해 타인골수 공여자를 찾았으나 연락은 없었다. 나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았구요...
동생은 새로운 치료약이 나올 때까지 '누나~ 힘내'라며 '버티기 한판승!'을 외쳤다.
제2기; 2000년~2003년
이 시기는 수혈은 좀 덜 받았으나 한 번 받고 나면 후유증으로 시달렸던 시기이다.
그동안 수혈을 너무 많이 받아 부작용도 생기고 심장에 무리가 와서
더이상 수혈을 못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수혈 받은 후에는
온 몸에 미열이 있고 몸살기운 과 함께 복통이 있어 외출도 잘 못해 집에만 주로 있었습니다.
2002년 가을, 교수님께서 Thalidomide라는 임상약을 써보자고 하셔서
3개월정도 쓰고 3개월 쉬고 다시 3개월 복용했다.
부작용은 하루종일 자는 것, 하루에 15시간 이상 잤습니다.
1960년대 유럽에서 임신부들 입덧치료제로 쓰던 약인데
아이들이 태어나서 보니 손가락 6개인 다지증환자가 만여 명이나 태어나 세계가 발칵 뒤집혔던 약.
새로 암치료약으로 개발하여 임상테스트 중이었습니다.
6개월 먹고나니 백혈구나 혈소판은 비슷한데 헤모글로빈 수치가 10~11정도까지 올랐다.
교수님은 그래도 성공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후 비다자 임상 테스트에 참여하겠느냐는 권유를 교수님으로부터 받았으나 내키지 않아 하지 않았다.
제3기; 2004년~2011년
2004년부터는 수혈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2002년 가을부터 먹은 Thalidomide 약 처방 덕분인지 아니면 가톨릭신자인 내가
2003년 가을 체험한 아일린 조지여사의 성령은사 덕분인지 아니면 둘다 덕분인지~?^^
(이야기가 여기로 빠지면 안될 듯한데... 그래도...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치유능력을 가진 아일린조지여사의 성령기도회에 갔다가
강단 왼쪽 2층에 있던 제쪽을 가리키며 백혈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따로...)
또 별다른 치료약이 없다보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약 도움도 받았다.
그동안 가족들의 성화에 못이겨 여기저기서 소개받은 몇 군데 한의원도 찾아 다녔는데
(서울, 전북 장수의 한의원과 KBS에서 '대체의학을 찾아서' 라는 프로에 나온
중국의 장안의 신의라는 분도 만났으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큰소문 난 곳보다 가까운 곳에서 좋은 분 만나
수치가 너무 떨어지면 녹용 넣은 보약으로 기초체력 돋우는 약 먹었다.
백혈구나 혈소판은 오르지 않았지만 헤모글로빈 수치는 확실히 오르는 것을 병원 혈액검사를 통해 확인했다.
(최근에 경희대 한방병원에 조혈내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작 알았으면 가보았을텐데...)
2005년경 혈소판 수치가 너무 낮아 생리를 없애기 위해 쓰던 수프리커가 수입 중단되었고,
신나렐이라는 약으로 바꾸었으나 이마저 수입 중단되어 할 수 없이 산부인과 시술을 하였으나
결과가 예상과 달라 3년 가까이 이루 말 할 수 없는 통증으로 시달렸다.
통증이 시작 되면 차라리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자살을 죄로 여기는 천주교 신자인 것이 원망스러웠다.
마약성분 진통제까지 먹었으나 듣지 않았고 부작용이 많아
이약저약으로 바꾸며 한 달에 12~3일은 진통제로 버티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환자에게 결과를 잘 모르면서 시술을 권하는 의사들의 만용에...
또다른 산부인과에서 두 달에 3번쯤 맞는 주사를 맞으며 조금씩 안정을 찾던 중(1회 주사에 30만원쯤)
다행히 2011년쯤 폐경 되며 한 숨 돌리게 되었다.
얼마나 감사하던지...별게 다 감사하죠...
그래도 이 시기는 제 생애에 가장 감사한 시절이다.
수혈을 안받아도 되게 된데다 우연히 본당 신부님의 권유로 성당 노인성경대학 봉사를 하게 되었고
(2년째부터는 진통제 맞는 3년 포함해서... 5년 정도)
수혈 받으며 항상 헌혈자들을 위한 묵주기도를 했었는데,
그중에 제일 많은 부분이 군인들과 학생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군부대 훈련병들을 위한 교리봉사자 구한다는 이야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했다.
94년부터 10년 세월 수혈 받으며 누워 있던 저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었지만
만약 제가 낫는다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늘 기도 했었는데 들어 주신 듯했다.
그리고 이일 외에도 이것저것 주사 맞아가며 진통제와 약 먹어가며 신앙생활을 했고,
매일 저녁미사에 참여하고 '한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라'며 영성체하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이것저것 공부도 하러 다녔다.
열병을 앓던 베드로 장모가 낫고 나서 예수님 시중들며 봉사했던 것처럼...
12년 동안 하혈하던 여인이 예수님 옷자락 붙들었던 것처럼
저는 혹시나 하며 신부님 수단자락을 몰래 잡았던 적도 있었고
애니콜 벨소리는 1년 열두 달 징글벨이었던 적도 있다. 예수님 빨리 오시라고...
우리같은 중환자들은 그종교가 어떤 것이든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불교든지
자기 인연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은 치유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누군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며 마음 비우는 일!
제가 그랬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불편한 마음이 스트레스가 되고 독이 되어 나를 공격하니
모든 것을 용서하고, 내려놓고, 비우시라고 권해 봅니다.
아파서 생사의 기로에 서보니 그런 것 별 것 아니더군요.
욕심 많아야 살아 남는 세상은 건강하고 힘 남아 돌아가는 당신들끼리 열심히 사시라고 잠시 밀쳐 두었습니다.
친구들은 제게 'Walking Miracle'이라고 합니다.
골수이식 안하면 2년 못넘긴다고 했는데 신앙생활 해가며 20년 넘게 살고 있으니...
제4기;2012년~2015년
2011년 가을, 동생네가 해외지사에 있어 알츠하이머와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에 계시던 어머니는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면서도 매일 전화로 거기서는 도저히 못있겠다고 하시고,
국내에 들어 오게된 며느리 하고는 죽어도 살기 싫다시며, 죽고 싶어도 죽지도 않고,
딸은 아프니 '방법이 없다. 방법이 없다'고만 하소연 하셨다
대구에 내려와 함께 살자고 하면 사위집에 어떻게 있냐고 하시던 중
어느덧 아이들도 자라서 둘째까지 서울에서 직장을 구하게 되니
남편은 어머니 모시고 아이들과 서울생활을 해보라며 권했고
2011년 12월, 서울로 오게 되었다.
골수이식 말린게 못내 미안했던지 그 오랜 세월동안 치료비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당신 왜그렇게 돈 많이 쓰냐'는 군소리 한마디 없이 살아만 있어달라던 남편은
장모님이 불편해 한다며 대구에 남아 혼자 생활하겠다고 했다....
2012년 6월, 한달정도 대상포진이 심하게 걸린 어머니가 나으신 후 무리를 했는지
2012년 7월, 심한 복통과 더불어 40도 넘는 고열로 다시 여의도 성모병원응급실을 찾게되었다.
마침 집도 가깝고 막연히 예전에 갔던 김동욱 교수님께 가야겠다며 찾았는데
BMT센터는 강남으로 옮겨 갔고, 은퇴후 제주도로 가신 한치화 교수님 치료를 받게 되었다.
18년 만에 골수검사를 하자시는데 맨처음 골수검사 후유증이 생각나서 안하겠다고 버티었다.
아무튼 2주간 두 번 입원하며 대장 내시경 후 알아낸 결과는 '베체트병'이었다.
감염내과에서는 조금 약하다고 했지만 구내염처럼 장에 염증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 판정을 받아
희귀난치성 질환 하나에 중증질환 하나 추가해서 국가공인 중환자인증을 받게 되었다.
그것도 투스타!
그후 약 2~3개월 주기로 장에 염증이 생기고 한 번 걸리면 고열과 더불어 복통이 기분 나쁘게 와서
혈액내과와 소화기내과, 구내염으로 이비인후과와 눈에도 올 수 있다고 안과까지 드나들었다.
잘못하면 실명할 수도 있다고 했으며 심하면 다른 장기에도...
백혈구 수치가 낮아 면역력이 낮기도 했거니와 식균작용 해야하는 백혈구가 주인 말을 듣지 않아
외부에서 들어온 병균을 잡아먹어야 하는데 자기세포를 공격하니 자꾸 염증이 곳곳에서 생겨나는 듯했다.
하지만 한치화 교수님은 은퇴하시면서 MDS는 안정기라며 그냥 보존치료만 하며 지내면 되겠다고 하셨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으며 자꾸 아프자,
미안해하던 동생은 어머니 마음에 드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어머님은 2년만에 다시 너싱홈으로 가시게 되었고,
우리는 동생이 아무리 바빠도 매주 1회씩 꼬박꼬박 함께 면회를 다니고 있다.
죄송한 마음을 가진채로...
올해 90이 되신 어머님은 우리가 찾아간 그저께도 '하느님께서 나를 잊으셨나 보다' 하시며
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를 하셨다...
2014년 12월 복통은 또다시 고열과 함께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아마도 감기 든 상태에서 한겨울 이사를 하며
구내염과 입술주변 염증등... 곳곳에 염증이 창궐하며 고열에 시달렸던 것 같다.
입원을 반복하게 되고 열이 내리지 않게 되자 새로 오신 주치의선생님은
병이 나쁜 쪽으로 간 것 같다며 골수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골수검사 해보자는 3번째 말씀에 결국 2015년 2월26일 목욜, 94년 이후 두 번째 골수검사를 받았다.
(이날은 전날 열이 39도까지 였고 검사하던 선생님은 염증수치가 많이 높아서 약을 주겠다고 했는데
교수님은 끝까지 약처방 못주게... 퇴원 후 화요일까지 집에서 끙끙거리며 39도 넘는 고열에 시달렸다.
(아직도 납득이 안되는 점, 20년 가까이 병원 가서 듣는 소리가 열나면 응급실 오라는 말이었는데...)
맨처음 94년에는 MDS-RA였으나 다행히 백혈병으로 넘어가지는 않고 MDS-U이지만
점수가 좋지않아 나중에는 그마저도 기회가 없을 수 있으니 항암치료인 비다자 치료를 해보자며
가족과 의논해 보라고 했다. 나는 그런 치료들이 왜그렇게도 하기 싫은지...
아픈 것도 몸서리 나고 새로운 항암 치료도 싫고 후유증도 싫고...
이제 죽는다 해도 아이들 다 키우고 나니 크게 아쉬운 것도 없고...
그냥 보존 치료만 해주시면 좋겠는데 갈 때마다 자꾸 비다자 이야기를 하셔서...
집도 가까워 계속 다니고 싶었으나 비다자 치료 하기 싫은 마음도 있고 고열에 대한 처방도...
마침 메르스 여파로 1달 넘게 두문불출 하며 이카페를 드나들며 고민하다가
나와는 궁합이 맞지 않나보다 하며 고민 끝에 7월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겼다.
김유진교수님은 첫날 혈액검사는 좋다시며 비다자는 당장은 권하고 싶지 않다며 좀 두고 보자고 하셨다.
하지만 그후에 호중구 수치가 계속 떨어져 골수검사를 권하셨고,
11월25일 피검사와 세번 째 골수검사를 새로 했는데
혈액검사 결과는 백혈구 2,330, 호중구 580, 혈색소 11,7, 혈소판 39,000으로
비교적 평소보다 수치가 호중구 빼고 좋게 나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예약일인 12월24일, 염색체 결과가 어떨지...
첫댓글 아마 지나온 투병시간을 분류하신듯하네요~짧은글안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인고의 시간이 느껴지네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27 11:15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29 20:45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28 13:46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28 16:40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29 00:46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03 18:59
스텔라님의 글을 읽다 보니 21년간 오지에서 아군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사투를 벌린 험난한 과정이, 저의 경험담은 아니지만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네요. 지금이야 의료기술 발달로 완치의 길이 많이 열려있다지만 제 기억으로 그 당시만 해도 이 병이 불치 중에 불치의 병이 아니었을까 그려지네요.
저도 진단 받았을 때, 이 병에 걸리면 얼마 못 살다 죽어야되는 구나 하는 절망의 암흑에 맞닥뜨렸을 때 머릿속이 하애지고, 서울에서 집으로 오는 4시간 내내 어둑어둑한 고속버스 창 밖을 보는 초점없는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어요.
인터넷을 찾아봤을 때 이 MDS의 예후, 절망감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었어요.
아직 글을 up 다 하신 것 같지는 않은데 앞으로 진료 받으실 분들이나 이식하지 않으신 분, 이식 할 수 없는 분들에게는 한 줄기 희망과도 같을 것 같습니다. 21년간의 구비구비 험난했던 투병생활을 글로 다 표현하시기는 힘들겠지만 이렇게 올려 주시니 이 글을 읽는 저로서는 스텔라님의 위대한 인간승리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참 무력한 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적을 만드는 위대한 존재이기도 한 것 같아요. 스텔라님께서는 이 병을 님의 의지만으로(단순히 인간의 힘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힘을 포함) 이기신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나약한 한 인간이 mds와 맞짱뜬 격이네요.
네~ 동생은 늘 '버티기 한판' 해보자고 했습니다. 새로운 치료약이 나올 때까지...
그동안 저만 보면 기도 해주겠다는 수많은 분들과 이식이나 항암치료는 안했지만
그동안 신경 써준 의료진 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의지만으로 버티기는 힘들었겠지요. 감사드립니다!
환자가 된다는 것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병원 복도에서 마스크 낀 환자를 보며 그들을 위해 묵주알을 굴리는 저를 보며
제가 아프지 않았다면 저 잘난 줄 알고 살았을텐데... 영성적으로 성장은 한 것 같습니다.
감사할 줄도 알고 ...^^ 여기 모든 회원님들을 위해 저도 기도 보태겠습니다.
엄마님도 강건하게 버티기 한판승 하시길 기원합니다!!
이식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형선고를 받으시고도 죽음과 싸워 이기신 스텔라님의 인생역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제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여쭙고자 합니다.
저도 진단받고 나서 건강관리하고 해서 그런지 혈액상의 수치가 여기에서 투병하시는 환우들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좋은것 같습니다. 암세포도 많지 않고요. 그런데 염색체변이가 3개라 하여 이식이라는 결정을 병원에서 내려준것 같아요.
님께서는 염색체 변이 없이 단지 혈액에만 이상이 있는건지 궁금합니다. 염색체 변이 없이 혈액에만 문제가 생겨 지금까지 투병하셨다만 이식받을 수 없는 많은 어르신들에게 정말 희망적인 글일 것 같습니다. 저야 이식할 수 있는 나이이지만
이 병이 노인성 질환이라고 하는데 이식하고 싶어도 연세가 있으셔서 이식하실 수 없는 분들에게
'8번염색체 이상'있다고 들었습니다. 94년부터요...
저도 8번인데^^;;
천수를 누릴 수 있는 내용이지 않을까 합니다. 혹 염색체 변이가 있으신데도 이식하지 않으시고 계신다면 이 또한 놀랄만한 일이 아닐까요?
저도 요즘은 가끔 이 상태로라면 이식안하고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남편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말합니다만 저의 변이된 염색체가 발병하게되면(암세포가 퍼지게 되면의 의미) 겉잡을 수 없이 빨리 백혈병으로 전이되는 케이스인 것 같아요.
정말 궁금하네요. 저 말고도 여기 까페에서보면 투병하시는 어르신들의 자제분께서 까페활동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정말 그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식할 수 없는 분들이 항암치료하면서 유지할 수 있는 방법(?)들 좀 상세히 설명해주신다면...
저는 항암치료도 안하고 있어서 제가 답해 드릴 부분이 별로 없어요.
다만 별다른 치료제가 없어 비타민C와 고기와 균형잡힌 식사를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고
너무 기운 떨어지면 1년에 두 재정도, 한의원 도움 받는 편입니다.
감이나 귤등 비타민C 많은 과일과 안토시아닌이 많이 든 검정색, 보라색 식품들도 챙기고
변비 안걸리게 섬유질 식품도, 건조하면 아토피 시작하니 물도 많이 마시려고 노력하고
어머니 간식으로 챙기는 견과류도 한봉지씩 먹기도 하고 장에 유산균이 좋다고 해서 사먹기도 합니다.
한꺼번에 다 먹지는 못하지만 의식은 하고 있습니다.
TV 건강프로그램도 챙겨봅니다. 오래 살고 싶다기보다는 지혜롭게 살고 싶어서..
스텔라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저도 님처럼 성당에 다니고 있습니다만 그런 상황에서 님처럼 할 수 있었을까? 어려운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으시고 믿음생활, 봉사 열심히 하시면서 이 병과 싸우시고 계시다니, 이 글을 읽는 모든 환우들에게는 아즈 큰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대부분 진단받으면 좌절부터하게 되는 mds, 그러나 님의 글을 보고 어둠에서 빨리 빠져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관리 잘 하셔서 모든 mds환자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세요.
날이 무척 추워졌네요. 감기 걸리시지 않게 조심하시고 님의 가정에 평화가 있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환자들에게 겨울은 참 힘들어요, 혈소판 수치 낮으니 눈길에 넘어져도 안되고 백혈구 수치들이 낮으니 추위에 감기 걸려도 안되고... 모두모두 건강 챙기시고 투병 중에도 기쁨과 평화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문득. 이런생각이 드네요~다신,,만약이라도. .이런일 없어야겠지만~예전으로 돌아가서 이식과 버티기,,둘중 선택은 어떨지 궁금하네요~물론 현대의학수준이란,,기준에,,^^::너무 고생하신듯해서요~
무균실 입실후 주치의가 약.치료등. 이것저것 설명할때,,처음으로 들은얘기,,여기센터는 7~80% 완치된다고하더군요,,,8개월을 다녀도,, 단 한번도 비슷한말 한적두 없었는데,,^^ 아마 딱. 집어넣어놓고~용기도 주는차원,,그리고,제 상태도 고려해서 ~기분좋게 받아들였어요~~
운명인 모양이지요~^^ 그당시 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집안 사정도 있었고, 돈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문제도, 나만 생각할 수 없는...
누군가 희생해야 한다면, 또 내가 짊어져야 한다면 져야겠지요. 피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이식 고민할 때, 의대교과서 보여주며 'Gamble'이란 단어 보여 주신 의사샘도 있었어요~^^
의사들도 참, 미리 가르쳐 주고 선택하게 해주지, 그래도 다행이네요.
파이팅해서 보란듯이 성공하시길 기원합니다. 기도 중에 기억하겠습니다, 평안한 마음~!!^^
감사합니다^^ 그당시는 정말 겜블이었겠네요~사실,,,지금도 크게 달라진건없지만요,,^^;;
스텔라 님을 위해 기도중에 생각할께요~아픈와중에도 봉사하심이~존경합니다~저희 아들도 기적의 기도 후 신기하게도 그주엔 수혈을 받지 않았어요...본당 수녀님도 우리 율리오 이름을 책상앞에 붙여놓고 매일기도를 해주셨어요~문득 작년생각이 나서 주저리주저리~~힘내시고 곁에 있는 가족들도 응원할께요~♡
감사합니다~^^ 율리오님과 가족들에게도 기쁨과 평화 가득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엄마는 강해야 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28 09:4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7.08 18:00
스텔라님과 저랑비슷하군요 저는올해로 6년째접어들었습니다. 저는 너무수혈이 힘들어자궁적출 했고요. 그때는 사는게너무힘들엇는데 수혈안하는건만으로 위로를 삼았고. 올구월 두번째골수검사 8번이3개에서5개변이. 수치는비교적잘유지하구 잇다고 이대로만 유지하면 상관없다고하시여 걱정안하구 살려구합니다. 살아가면서 힘든날도있지만 살살 달래가며 이식안하구 살길저도기도 해봅니다 스텔라님글이 저에게 용기가되엇습니다. 저도 실험용으로 골수검사시 동의서작성했는데 그것도저랑같군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수치도저랑비슷하군요 저도20년 파이팅해봅니다
고생이 많으셨군요...안당해보면 모르는 일이죠...자궁적출이라도 가능했으니 다행입니다, 저는 그부분때문에 고생 엄청했습니다. 병하고 친구되어 함께 걸어가 봅시다. 길 가다보면 소도 보고, 말도 보고, 꽃도 보는데 우리라고 다 안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살며, 사랑하며, 기도해 가며... 까뮈님~~ 파이팅!!
정말 20년동안 맘고생 많이하셨네요~그래도 기적임에 틀림없고 지혜롭게 소신있게 잘 대처하신것같아요~봉사하고 기도하며 사시는 모습 본받고 싶네요~^^
전 10월에 진단받았는데 (백혈구5200,적혈구13,혈소판142000)
혈액수치는 정상인데 염색체 11,20번 이상이라
당장할껀없고 경과관찰만 해보자고하는 상태거든요
저도 관리하면서 골수이식안하고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데 스텔라님 글보니 희망이보이네요~^^
글 도움많이 됐는데 종종 부탁드릴게요
감기조심하셔요~^^
네~ 감사합니다! 수치는 좋으신데요~^^
우리나라 사람들 죽을 때 껄~껄~껄~ 하며 죽는다던군요.
그때 좀더 이해해 줄껄~, 그때 좀더 사랑할껄~ 그때 좀더 베풀껄~
할 수 있을 때 봉사도 좀 하고, 존재의 의미도 찾아가며,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젠 그마저도 힘드네요... 마음은 가득한데 몸이 말을 안들어...
피할 수 없는 고난은 지혜와 바꿔 열심히 기도하며 살아보자구요~
떨지 마시고, 화이팅!^^
진단 받으시고 현재는 계속 회사(사회)생활 하시고 계신가여?
그리고 혈액 수치 변화는 없는지여?
어떻게 이병을 알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ex 우연히 종합검사를 진행하다가 발견 하신것인지.....)
@ko-ancer 아직도 제 글 읽는 분이 계셨군요~^^
이 게시판 8번 읽어 보시면...
저는 21년만에 MDS에서 재생불량성빈혈로 병명이 바뀌었습니다.
최근 수치는 11.3에 혈소판3만, 백혈구2300, 호중구가 680.
호중구 낮다고 다음 한 번 더 보고 골수검사 하자시네요...
처음에는 기침감기가 2달...낫지않아 동네내과에 갔더니 큰병원가라고 했으나
시어른 입원으로 미루다가 생리때 하혈이 심해 멈추지 않아 응급실행...
헤모그로빈이 4.3이더라구요, 그래서 입원하고 골수검사...
전 나이도 있고... 대부분 집에서 생활해요,
병원, 성당 다니고 성경공부 다니고 성서모임 봉사하고
다음카페 운영자 하는 곳 몇 군데 있어요. 외부출입 적은 봉사 찾다보니~^^
@stella 아..저는 지금 글 읽었습니다..저는 2006.1 골수이형성증후군 진단받고 헤모글로빈11정도 혈소판6만5만 백혈구 3800정도 유지하며 살다 2년전부터 떨어져 9월엔 헤모글로빈9.5 혈소판29,000 백혈구는 좀올랐다는데 검사시 제가 편도에 염증이 생겨서...문제는 요즘 어지럼증이 일고 너무 거의 아슬아슬 하게 걸려있는 수치가 걱정이예요..저는 이제 아이들이8살5살이라 너무너무 마음이 무겁네요...아이들이라도 컸으면...현재 삼성의료원다니는데 저희샘도 골수검사 말씀하셨는데 저도 안하고 있어요...저희샘도 현재 재생불량성빈혈 아닌가? 하시던데..참^^; 너무 심란한 가운데 님 글을 읽었어요~~~ 제가 지금 기도도 안되고 멍~한 상태라.
@soon j '버티기' 한 판 하세요~ 요즈음 제 수치도 그 비슷합니다. 헤모글로빈은 좀 높지만 혈소판은 낮아요. 낙담 마시고 아이들 때문이라도 좋은 생각하고 좋은 사람들 만나고 낙엽지는 가을날도 즐기세요~~^^ 우울하면 병도 알아보고 얕본답니다. 시간 맞춰 억지로라도 웃고 박수도 치며 견디시길 바랍니다. 우리 뇌도 속는다고 하더군요~^^
기도 중에 만나요!
스텔라님 글 읽고 저도 용기를 얻어
가네요 mds진단 받은지 2년 지났어요 지금 내가 있는 자리를 지키며 힘주시는이 안에서 마음 네려
놓고 살고 있답니다 이선택이 맞는지
조금은 갈등했는데 ...
글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고맙습니다~^^ 모두들 아프다니 왜이리도 짜안한지...
모두 힘내어 희망을 가지고 버티다 보면 좋은 날도 있겠지요...
흐르는 물처럼 그분께 맡기고 가보세요, 도와 주시지 않을까요?
함께 기도하며 열심히 살아봅시다!
오랜시간 고생많으셨네요 홧 ㅡ팅 하십시다요
네~ 감사합니다! 함께 이겨나가요. 좋은 결과 있으시길... 화이팅!!
아, 잠시 시간내어 정독해봤습니다. 존경스럽고 한편으로 이식후에 대처하고 있는 제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네요.
아, 네~^^ 그래도 천만다행 입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무사무탈 하시길!
스텔라님,
""버티기 작전""글에 살며시 웃음지어 봅니다.
저 또한 그러한 다짐으로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니까요.
화이팅 하구요.
21년의 시간들,버팀으로 견뎌내셨지만.남모르는 고통과 눈물의 순간들이 수없으셨으리라 봅니다.
저도 병원의 어떠한 특명이 내려진다 해도 버티기 작전으로 견뎌보려 맘 다지고 있는 중이랍니다.
2011년9월에 골수검사에서 골수이형성증이란 결과가 나왔으나 치료제 한번 쓰지않고 너무도 건강히 5년을 잘 지내왔으나 올 8월 두번째 골수검사에서 MDS. V193. D46.9 에 혈소판 1만4천,헤모글로빈 6.7에,백혈구,과립구 수치들이 정상치에 못미치는 결과가 나왔답니다.
중증환자로 등록도 되었구요.
5년전 골수검사에서는 다섯개의 염색체 이상이 있다고 했었고 골수가 비었었다고 했으나,
이번 검사에선 골수가 망가져 버렸다고 하네요.
이번 검사결과를 놓고 담당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답니다.어떠한 급박한 상황이 제게 닥친다해도 이식이라든지 수혈 항암치료제 같은약물치료는 하지 않겠다구요.그에대한 사연과 설명은 지금은 다 말할수 없으나, 버티기~스텔라님 말씀처럼, 기적이 내게 한번의 더 기회를 주길 간절히 바라볼 뿐입니다. 지난 5년을 고통없이 살아왔던것도 간절한 눈물의 기도속에 일어났던 기적이 있었답니다
.다시 한번 버티기,함께 해요
담당주치의 선생님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번에 처방해 주신 옥시메톨론약을 일주일만 먹어보자고 하셔서 지금 먹고 있답니다
일주일 후 검사결과에 따라 계속 복용을 할지 끊게 될지는 21일날이 기다려지네요
약이 졸리고 어지럼도 있고~멍 하답니다.
어떤 성분인지,그에따른 부작용이 어떤지도 모르고 복용하려니 영 내키지 않지만 먹고있답니다. 두서없는 글이 돼버렸네요.
늘 바람앞에 등잔불 같은 삶이라 여겨지지만
모쪼록 스텔라님을 비롯해
모든 환우님들~화이팅요~사는 날 까지...
옥시메톨론은 저도 오래전에 먹은 적 있는 남성호르몬제입니다. 목소리가 굵어지고 털도 나고 여드름도 나서 힘들었어요. 호르몬제는 끊으면 금방 원위치 되기는 합니다. 오래 먹으면 간독성이 높아 오래 먹으면 안된다고 어느 교수님이 말씀하셔서 저는 좀 먹다가 안 먹었어요~ 간은 회생이 잘 안된다고... 그래도 악성빈혈에 도움 되는 경우도 있어 모두들 써 보기는 하는데... 약이 궁금하시면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시면 대부분 나옵니다~^^
@stella 궁굼하던 차에 정보 너무 감사합니다
아~정말 어느 장기에도 무리없이 온전이 치료가될수 있는 약이없네요.
간에까지 영향이 간다면 견뎌내기 힘들겠지요.
받아온 일주일치만 먹는거로 끝내야 할듯요
스텔라님이나 카르마님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직도 두분다 버티기 작전으로 생활
하신다면 근황을 듣고 싶습니다. 어려운 부탁 일지
모르겠습니만 집사람도 똑같은 판정받고 4년째투병중이라
염치없게 부탁을 드렸네요. 두분다 건강하십시요...^^
두리님~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그래도 환자에게는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큰 도움이 된답니다. 그 어떤 좋은 약보다도... 전 MDS에서 재생불량성 빈혈로 바뀌었고(혹시 다시 기회 있으면 골수검사 후 한 번 더 올리겠습니다,) 장베체트병(이것도 희귀난치병)으로 고생 좀 했습니다. 지난 11월초 장염이 장천공이 되어 성모병원서 거의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체중도 거의 10킬로정도 빠지고 머리카락도 반이상 빠지고... 그래도 지금은 좀 회복되어 몸무게도 좀 늘고 걱정했던 머리카락도 새로 나고 있습니다. 사는 게 만만찮네요~^^ 두리님도 건강 유의하시고, 부인 잘 토닥여 관리 잘 하시고 두 분 다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스텔라님, 저두 아버지로 인하여 알아보기 위해 가입한 회원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저 질문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녹용으로 기초체력을 키웠다고 하셨고, 적혈구가 오르는 걸 확인했다고 하셨는데, MDS에 녹용이 어느정도 도움이 되는지요?
도움이 되는글 잘 읽었습니다,
지금도 잘지내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