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암2:10]
주: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로 차지하게 하였고 - 본절에 이르러서는 인칭의 변화가 있다. 즉, 아모스는 그의 민족들에게 직접 말하고 있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R.Martin-Achard). '이끌어 내어'의 히브리어 '헤엘레이티'(*)는 '이끌어 올린다'(bring up)는 의미로 출애굽 기사에 언급된 용어 그대로이다(출 32:7;33:1;신 6:12). 아모스는 이처럼 이스라엘의 역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시작되었고,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성 경: [암2:11]
본절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관심이 가나안 정착으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주: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시르 사람을 일으켰나니 - 아모스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하게 부각된 선지자로 모세(호 12:10,13)와 엘리야(왕상 17장)와 미가야(왕상 22장)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R.Martin-Achard). '나시르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지림'(*)은 문자적으로 '구별되거나 성별된 사람'(seperated or consecrated ones)을 의미한다. 그들은 특별한 서원을 하였고(민 6:1-12), 사무엘처럼 평생을 나실인으로 보낸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삼상 1:28), 얼마 동안만 나실의 서약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민 6:5-8). 그들은 포도나무의 소산과 발효시켜서 만든 독주는 일체 마시지 않았고,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머리도 깎지 않았고,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삿 13:3-14). 이처럼 나시르 사람들은 철저하게 거룩성을 유지하며 하나님께 바쳐진 삶을 살았다.
주: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앞서 아모스는 출애굽 역사에 이어 선지자와 나실인을 언급함으로써 이스라엘 전역사를 축약하여 개괄하였다. 이로써 타락의 일로를 걷고 있는 회중들에게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고, 앞으로 경고할 내용에 대해 수긍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본절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움 아도나이'(*)는 히브리어 본문에서 대개 문장 끝에 나온다(16절;3:10,15;4:3,6,8-11;6:8,14;9:7,8,12,13). 이 표현은 사실상 '아마르 아도나이'(*)와 동의어이긴 하지만, '네움'은 '신음하다'(groan), '탄식하다'(sigh)라는 의미를 내포한 '나암'(*)에서 온 것으로(BDB), '아마르'보다 깊이있는 표현이다. 즉, 깊은 묵상을 통해 잔잔하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 등을 가리킨다(S.R.Driver). 이 단어는 간혹 선지자가 계시의 말씀을 전달할 때 주어가 되기도 하지만(민 24:3,15;삼하 23:1), 보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언급하는 데 사용되었다(T.J.Finley). 그만큼 이 단어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예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특별하고 직접적인 계시라는 사실을 지지한다.
주: 그러나 너희가...포도주를 마시게 하며...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 같은 행위는 단순히 나시르 사람이나 선지자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 즉,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행위를 비웃는 일이었다.
성 경: [암2:12]
주: 그러나 너희가...포도주를 마시게 하며...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 같은 행위는 단순히 나시르 사람이나 선지자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 즉,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행위를 비웃는 일이었다.
성 경: [암2:13]
주: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 - 히브리어 본문에는 '보라'(behold)의 의미를 가진 '히네'(*)가 본절 처음에 나와서 청중들로 하여금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리고 곧바로 '내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노키'(*)가 있어서 이스라엘을 행한 심판 내용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한편, '누르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본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해석하기가 난해한데, 능동형과 수동형의 번역이 모두 가능하다(J.Calvin). 그래서 어떤 번역본들(개역 성경, RSV, JB, NIV)은 능동형으로 간주하여 '내가 너희를 누르리니'라고 했고, 어떤 번역본들(KJV, NASB)은 이를 수동형으로 간주하여 '내가 너희 아래 눌리리니'라고 번역하였다. 이 가운데 전자의 번역이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본절은 줄곧 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아마도 땅을 가르시겠다는 즉, 지진에 대한 예언으로 여겨진다(Wolff, T.J.Finley, R.Martin-Achard, T.E.McComiskey). 아모스는 다른 부분에서도 지진에 대한 모습을 묘사하였다(1:1;8:8;9:1,5).
성 경: [암2:14]
주: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으며 - '도망할 수 없으며'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아바드'(*)는 문자적으로 '멸망하리라'(shall perish)는 의미로 심판이 급속하게 이루어질 것을 보여준다.
주: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용사도 피할 수 없으며 - 히브리어 본문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피할 수 없으며'(*, 로 예말레트)는 '탈출하다'(escape), '구출하다'(deliver)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강한 의미를 나타내는 피엘(Piel)형 동사이다.
성 경: [암2:15]
주: 활을 가진 자도 설 수 없으며 - 아무리 활을 잘 쏘고 자기 방어에 뛰어난 사람이라도 더이상 제자리를 지킬 수 없고 달아날 수밖에 없으리라는 말이다.
주: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 말 타는 자도 피할 수 없고 - 아무리 민첩한 사람이라도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한다.
성 경: [암2:16]
주: 용사 중에 굳센 자는 그 날에 벌거벗고야 도망하리라 - '그 날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욤 하후'(*)는 아모스가 장래의 날에 관심이 있음을 나타낸다. 이 용어가 종말의 날을 가리키기도 하지만(사 24:21), 구태여 종말론적인 의미만을 부여할 필요는 없고, 임박한 포로 시대를 의미하기도 한다(J.Niehaus).
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는 11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암3:1]
주: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 '이 말씀을 들으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쉼우 에트-하다바르 하제'(*)가 문장 초두에 나와 강조되어 있으며, 이런 표현은 새로운 주제로 전환하기 위해 사용되곤 하였다(4:1;5:1;8:4). '이 말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다바르 하제'(*)의 '하제'는 지시 대명사로 앞으로 계속 설파할 내용을 지시한다.
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이르시기를 -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이 권고가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유다의 백성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암3:2]
주: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 '너희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크에트켐'(*)은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본문장의 맨 앞에 나와 있어서 강조되어 있다. 그만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여 말씀하신다는 사실이 부각된다. '알았나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는 지극히 절친한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특별하게 선택하였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창 18:19).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서(출 19:5;말 3:17) 제사장 나라(출 19:6), 여호와의 백성(삿 5:11;삼하 14:13), 거룩한 백성(신 7:6;14:2,21)으로 여겨졌다.
주: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 이스라엘이 징계받는 원인이 제시된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특별하게 여기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서 범죄하였기 때문에 징계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이 돌아오길 기대하는 것이므로(6,8-11절) 하나님의 징계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히 12:5-8).
성 경: [암3:3]
주: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 2절에서 예고된 심판이 잠시 중단되고, 아모스의 예언적 권위를 확증하려는 듯한 일련의 질문들이 제기된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질문은 두 사람의 의견 일치가 없이는 동행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아모스가 언급하는 두 사람이 누구를 암시하느냐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1)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으로 보는 견해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동행하길 원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하고 말았다는 것이다(Pusey, Harper). 이 견해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범죄와 그에 따른 징계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2)하나님과 아모스로 보는 견해로 아모스 자신의 예언이 하나님의 뜻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는 아모스의 선포가 다른 선지자들의 선포와도 일치되는 것으로 아모스가 선지자적인 권위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3)기본적으로 (2)의 견해와 동일한 관점이지만, 아모스는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 표명이라는 견해다(Calvin, Keil). 이 가운데 (2), (3)의 견해가 무난하다.
성 경: [암3:4]
주: 사자가 움킨 것이 없고야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 사자가 부르짖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사자의 울음 소리같다는 사실을 연상시킨다(1:2). 아울러 사자의 부르짖음이 사자가 움킨 것에 근거하는 것처럼, 아모스의 선포도 명백한 근거와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선포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선포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성 경: [암3:5]
주: 창애를 땅에 베풀지 아니하고야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아무 잡힌 것이 없고야 창애가 어찌 땅에서 뛰겠느냐 - 개역 성경에서는 두 번에 걸쳐 '창애'라고 번역되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각각 '파흐'(*)와 '모케쉬'(*)로 되어 있다. '파흐'는 땅에 있는 덫(ground snare)을 의미하는 것으로 새를 잡기위해 땅에 고정시켜 놓은 덫을 가리킨다. '모케쉬'는 원래 미끼(bait)라는 뜻이었다가 나중에는 함정(trap)을 의미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BDB). 그러므로 이 두 문장은 새가 잡히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기보다는 원인-결과의 관계(cause and effect)를 보여주는 비유로서 서로 독립된 두개의 구절로 보는 것이 낫다.
성 경: [암3:6]
주: 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고야...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 앞에서 전개된 비유의 본래 의도대로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시키기 위해 원인과 결과를 나타내는 수사학적 질문을 던진다. '나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파르'(*)는 전쟁 때 공격하기 위한 신호(삿 7:18,19), 군사 행동을 정지시키기 위한 신호(삼하 2:28), 적군이 쳐들어 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신호(렘 6:1;호 5:8) 등으로 불렸다. 본절에서는 어떤 성읍의 거민들에게 경고로 부는 나팔을 의미한다. 또한 '재앙'은 하나님의 주권하에 시행되는 것이 기정 사실임을 전제하고 있다(사 45:7).
성 경: [암3:7]
주: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 본절이 앞절과 연관성이 있는지 여부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앞 부분과 논리적인 연결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T.E.McComiskey). 그래서 어떤 학자는 본절의 첫머리에 나오는 히브리어 '키'(*)를 '그러나'(but)로 번역하고(Harper), 어떤 역본들은 '확실히'(surely)로 번역하였다(KJV, JB). 그렇지만 8절에 나오는 '사자'와 '두려움'의 개념이 4절의 '사자'와 6절의 '두려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을 보면, 7절만을 따로 생각할 수도 없다. 한편 '비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소드'(*)는 '은밀한 협의'(SECRET COUNSEL)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밀접한 관계에 기초한 적극적인 의논(잠 15:22)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깊은 관계성을 통해 미리 알려주는 계획(plan)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나님과 이런 관계에 있으므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렘 23:18,22). 한편, 하나님의 심판에는 그에 앞서 항상 경고가 있다.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도 그러했고(창 6:13-21),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도 미리 경고되었다(창 18:17-21;19:12,13).
성 경: [암3:8]
주: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 본문은 하나님 심판 선포의 엄위로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4절;1:2;렘 25:30;호 11:10), 임박한 전쟁이나 멸망을 상징할 때도 사용되었다(사 5:29;렘 2:15). 이 구절은 4절의 사자의 부르짖음과 6절의 백성의 두려워하는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다(J.Niehaus).
주: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 본 구절은 아모스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을 털어놓고 있다. 누구라도 여호와의 말씀을 깨닫는다면 이를 거역할 수 없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자기에게 핍박이 주어진다고 해도 이런 사역은 포기할 수 없다(7:10-17;행 4:20).
성 경: [암3:9]
주: 아스돗의 궁들과 애굽 땅 궁들에 광포하여 이르기를 - 70인역에는 히브리어 원문에 나온 '아스돗'(*, 아쉐도드)이 '앗수르'(*, 아수리오스)로 되어 있다. 아마 다른 선지자들이 애굽을 앗수르와 병행되게 제시하기 때문인 것 같다(사 7:18;19:23-25;렘 2:18,36;호 7:11;미 7:12). 그러나, 70인역의 이러한 번역은 별로 지지를 받지 못한다. 아모스는 앗수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다음 구절에 사마리아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거기서 가까운 아스돗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 이방인을 향해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저지른 범죄는 이방인들의 관점으로도 여실히 드러날 만큼 심각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성 경: [암3:10]
주: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르느니라 -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포학'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마스'(*)는 잘못(wrong), 격렬함(violence)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불의(unrighteousness), 무법(lawlessness)등을 의미한다(창 6:11). '겁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드'(*)도 파괴, 살상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잔인무도한 죄악상을 묘사한다. 이런 점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죄악의 심각성이 다른 이방 민족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과는 달리 자기네 성 안에서 이런 일을 자행했다는 점이다.
성 경: [암3:11]
주: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네 힘을 쇠하게 하며 네 궁궐을 약탈하리라 - '그러므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켄'(*, therefore)은 앞에서 언급된 멸망의 원인과 본절에 나오는 결과를 연결시켜준다. 또한, 2절에서 중단되었다가 본절에서 시작되는 심판을 논리적으로 연결시켜준다(T.E.McComiskey). 여기서는 '대적'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앗수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B.C. 733년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3세가 길르앗과 갈릴리를 침략하고, B.C. 722년 살만에셀 5세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킴으로써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
성 경: [암3:12]
아모스의 예언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회복의 여지를 남겨둔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 이 비유는 모세의 율법을 반영하는데, 율법에 의하면 목자가 치던 양이 죽으면, 목자는 자신이 훔치지 않았다는 증거로 죽은 시체의 일부를 제시해야 했다(출 22:13).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파멸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아울러 다른 이방 민족이 완전히 진멸되는 것과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은 회복의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주: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퉁이에나 걸상에 비단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이 건져냄을 입으리라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에 처할 비참한 상황이 묘사되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따라 철저히 파괴를 당하겠지만, 그들 가운데 일부는 남게 된다는 사상이 깔려있다(사 11:11). '비단 방석'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데메쉐크'(*)는 '다메섹'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LXX, Targum, Peshitta, Vulgate, KJV, NIV). 본 구절은 이스라엘이 비록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이웃 나라에서 비천한 삶을 살게 될 것이나 완전히 진멸되지는 않고 그 명맥을 유지할 것을 보여준다.
성 경: [암3:13]
주: 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거하라 - 본절은 9절의 명령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수사학적 표현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간접적으로나마 이스라엘을 경고하기 위해 임의로 증인들(아스돗과 애굽)을 세워 명하셨다. 본절의 '너희'는 9절과 연관지어 아스돗(블레셋)과 애굽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이방인들이 증거할 정도로 심각하고도 부끄러운 것이었다.
성 경: [암3:14]
주: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단들을 벌하여 그 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고 - 여로보암 1세는 벧엘과 단(Dan)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 애굽에서 인도하여낸 하나님이라 칭하며 그것을 섬기도록 하였다. 또한, 하나님이 율법으로 세운 제사 제도를 파기했다(왕상 12:26-33). 그러므로 벧엘의 단은 이스라엘의 배도를 대표하는 것이었다. '단의 뿔'은 제단의 핵심 부분으로 속죄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권위와 영광을 상징하였고(신 33:17;삼상 2:1,10;시 89:17,24), 그것을 통해 죽음을 면할 수도 있었다(왕상 1:50). 그러므로 그 단의 뿔들을 꺾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 단을 유명 무실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성 경: [암3:15]
주: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궁들이 파멸되며 큰 궁들이 결단나리라 - 본절은 상류층이 누리는 부귀 영화가 여호와의 심판 앞에서는 무익한 것임을 보여준다. 가난한 자들은 겨울이든 여름이든 한 처소에서 살지만, 상류층의 부유한 자들은 계절마다 집을 바꾸는 호화판 생활을 하였다(J.Calvin). 그러나 이러한 호의 호식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힘없이 사라질 것이다. '결단나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푸'(*)는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에 대하여는 2:1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암4:1]
주: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 바산은 요단 강 동편의 헬몬 산과 길르앗 산지 사이에 위치한 기름진 땅으로 목축을 하기에 매우 좋았으며, 그곳의 초장은 아름답고 살진 소와 양이 생산되는 곳으로 대표되었다(신 32:14;겔 39:18). '바산의 암소'는 비유적인 표현임에 분명하다. 혹자는 이에 대해 사치와 방종을 일삼은 유한(有閑) 부인을 가리키는 비유로 본다(BDB). 그러나 '들으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쉬므우'(*)는 남성형으로 되어 있어서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여성형으로 보고,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낫다(J.Calvin, Henderson). 특별히 암소를 선택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단과 벧엘에 세운 금송아지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T.J.Finley).
주: 너희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 2:6,7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가 대구를 이루고 있다.
주: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 '가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도네이헴'(*)은 3인칭 남성 복수형 어미를 가지고 있어서 어떤 영역 성경(RSV)은 그들의 남편들(their husbands)이라고 번역하였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사치와 방종을 일삼는 형태를 아주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성 경: [암4:2]
주: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 '거룩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데쇼'(*)는 세속적이거나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된 것을 의미한다(출 29:21,37;30:29;민 16:38).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맹세하셨다는 것은 거짓말하지 않으신다는 보증이다(시 89:35). 하나님은 인간의 불완전함에 제약받지 않으시며 당신의 말씀에 신실하시고, 죄를 용납하거나 심판을 포기하지 않으신다(T.E.McComiskey). 하나님은 맹세하실 때, 힘을 상징하는 오른손이나 능력의 팔로 하시거나(사 62:8), 당신의 크신 이름으로 하셨다(렘 44:26).
주: 때가 너희에게 임할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하리라 - '갈고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치노트'(*)와 '낚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시로트'(*) 모두 '가시'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두 단어는 대개 남성형으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만 여성형을 취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처참하게 끌려가는 모습을 묘사한다(왕하 19:28;대하 33:11). 앗수르인들은 실제로 이런 식으로 포로들을 끌고 갔다고 한다(D.Guthrie).
성 경: [암4:3]
주: 너희가 성 무너진 데로 말미암아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지우리라 - 문맥상 '하르몬'은 장차 이스라엘이 잡혀갈 곳을 가리키는데, 정확한 지명은 알려진 바 없다. 다만, 70인역에서는 이것을 '로마의 산'(*, 토 오로스 토 렘만)이라고 번역했다. 혹자는 이 곳이 북쪽 아라랏의 동남쪽 방향에 위치한 '민니'라고 하기도 하고(렘 51:27), '헐몬 산'이라고 하기도 한다(Luther, JB). 이외에도 많은 견해들이 있는데, 공통적인 결론은 그곳이 고유한 지명이고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에 대해서는 2:1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암4:4]
주: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 '벧엘'은 야곱이 돌기둥을 세웠던 곳이며(창 28:18,19), 세겜을 떠난 뒤에 단을 쌓고 회개했던 곳이기도 하다(창 35:1-7). 그 후에 이곳은 거룩한 예배 장소로 지정되었다(삼상 10:3). 또한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에 입성한 첫 지점으로(수 4:19,20) 그곳에 도착한 온 백성이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켰다(수 5:2-12). 그러나 아모스 당시에는 벧엘과 길갈이 모두 타락한 여호와 종교의 본산지가 되어, 우상 숭배의 중심지로 바뀌고 말았다(5:5;호 4:15;10:5,8,15).
주: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 일 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 이스라엘 백성이 기울였던 그릇된 종교적 열심을 엿볼 수 있다. '아침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보케르'(*)는 '끊이지 않고 계속적으로'라는 의미를 가진다(시 73:14;101:8;사 33:2,BDB). 또한 '너희의 희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지브헤이켐'(*)은 모세 율법에서 말하는 상번제가 아니다. 매일 두 번씩 드리도록 되어 있던 '상번제'(*, 올라)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브헤이켐'은 원래 유월절 희생을 의미하는 '지브히'(*)에서 온 말로(출 34:25), 후에 일 년에 한 번 성소를 찾아가 드리는 매년제를 가리키게 되었다(삼상 1:3,7,21). 그러므로 아침마다 희생(지브헤이켐)을 드린다는 것은 그들의 그릇된 예배 의식을 비아냥거리는 표현이다(사 1:11). 십일조는 모세 율법에 의하면 매 3년마다 드리도록 하였다(신 14:28;26:12).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 희생 제물을 드리고 삼 일 마다 십일조를 드리는 열심을 보였다.
성 경: [암4:5]
주: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온제로 드리며...이것이 너희의 기뻐하는 바니라 - 본절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지만, 문맥상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기쁨을 위해 드리는 그릇된 예배 형태임을 지적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식적인 제사만 되풀이할 뿐, 그에 합당한 삶의 태도는 갖추고 있지 않았다. '수은제'(감사제)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토다'(*)와 '낙헌제'라고 번역된 '네다바'(*)는 모두 일종의 화목 제물이다. 누룩넣은 떡이 낙헌제에 드려지기도 했고(레 7:12,13), 불로 태운 소제가 음식물로 된 제물 위에 드려지기도 했다(레 2:1,2,8).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따라 제사를 잘 드렸더라도 그들의 행위는 종교적인 위선 행위였다. 하나님은 통회하는 심령과 겸손하고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시며 그의 중심을 보시므로(삼상 15:22;16:7;시 51:16,17;사 1:11-17;약 4:6;벧전 5:5,6)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위는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이요 크게 책망받을 일이었다.
성 경: [암4:6]
주: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한가하게 하며 너희 각처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 '너희 이를 한가하게 하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타티 라켐 니케욘 쉬나임'(*)은 '내가 너희에게 깨끗한 이빨들을 주었다'는 뜻으로 양식이 없어 굶주린 끝에 이빨에 끼일 음식조차 없어지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범죄로 인한 흉년이 간혹 있었다(왕상 8:37;왕하 4:38). 이런 징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우상 종교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방편으로 주어진 것이 분명하다.
주: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 '돌아온다'의 히브리어 '슈브'(*)는 당시의 선지자였던 호세아도 많이 사용했다(호 3:5;6:1;7:10,16; 11:5;14:1,7). 70인역에서는 '슈브'가 '회심하다'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에페스트레파테'(*)로 번역되었다. 즉, 본 구절에서 돌아온다는 표현은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완전히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으로 전환하고(눅 15:17-20;살전 1:9), 나아가서 이제까지의 삶의 방식을 청산하고, 전면적인 수정을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호 3:5;7:10,16;14:1,7). 본서에서는 이런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8-11절) 이스라엘 백성이 매우 완강하게 버티며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성 경: [암4:7]
주: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어...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리는 비는 12월에서 2월 사이에 내리는 비로 늦은 비(봄 비)에 해당한다. 이 비는 추수를 앞두고 내리므로 알곡을 숙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이 비가 내리지 않으면 수확에 큰 지장을 초래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적으로 지역에 따라 비가 내리는 기이한 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구체적인 간섭이 있는 특별한 현상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성 경: [암4:8]
주: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히 마시지 못하였으나 - 앞 구절에 이어 가뭄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특히 '두 세 성읍 사람'이라는 표현은 공동체적인 표현으로 신분에 관계없이 이스라엘 전체가 고통을 당하는 것을 나타내며, 이 징계가 민족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J.Niehaus).
주: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 이에 대해서는 6절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암4:9]
주: 내가 풍재와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 '풍재'(風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쉬다폰'(*)은 이삭을 까맣게 만드는 흑수병(黑穗病, smut)이다. 이 단어가 70인역에서는 '바싹 말려서'(*, 엔 퓌로세이. with parching)라고 번역되었다. 또한 '깜부기'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예라콘'(*)도 식물을 말리는 병으로 붉은 색으로 변하게 한다. 이런 재앙은 신명기의 언약적 재앙으로 언급되기도 하였고(신 28:22), 솔로몬의 기도(왕상 8:37)와 학개 선지서에서도 언급되었다(학 2:17).
주: 팟종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 '팟종이'의 히브리어는 '가잠'(*)으로 '자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땅의 소산들에 심각한 타격을 안겨다 준다는 점을 표현한다(욜 1:4;2:25). 또한 '먹게 하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요칼'(*)이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어서 메뚜기 떼에 의한 피해를 아주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성 경: [암4:10]
주: 내가 너희 중에 염병이 임하게 하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당시에 애굽에게 내려졌던 재앙에 버금가는 재앙이 이스라엘에도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을 언급한다(출 5:3;신 28:27,60). 당시 이스라엘 사회처럼 비위생적인 환경에서는 역병이 순식간에 번지기 십상이었고, 실제로 급속하게 퍼졌던 전염병이 있었다(삼상 5장). 따라서 당시의 사람들은 이런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주: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 '칼'은 전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수리아(아람)와 치른 오랜 기간의 전쟁을 회상하게 한다(왕하 13:3). '너희 청년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후레이켐'(*)은 '선택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바하르'(*)에서 온 말로 일반적으로 청년들이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음을 시사한다(잠 20:29). 이러한 청년들이 많이 죽었던 역사적인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의 희망을 끊어버리는 것과도 같았다.
성 경: [암4:11]
주: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같이 되었으나 - '무너뜨렸다'의 히브리어 '하파크'(*)는 '뒤집다'는 의미로 매우 큰 재난을 의미한다. 어떤 학자는 본절의 현상이 아모스가 예언한 지 2년 후에 있었던 지진(1:1)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E.B.Pusey). 이는 아모스가 예언을 행한 시기와 이 예언을 집약하여 문서화한 시기를 따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지자들은 소돔과 고모라를 단순히 멸망의 본보기로만 언급하곤 한다(사 1:9;13:19;렘 50:40;습 2:9). 여기서도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지진에 의한 현상으로 보기보다는 일반적인 멸망의 본보기로 보고, 수리아의 침입으로 이스라엘의 성읍들이 초토화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둔 것(왕하 13:1-9)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T.E. McComisk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