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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 사두개인, 에세네파, 헤롯 당원, 열심 당원, 성전, 회당 이해_마태복음 맥잡기 03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말씀
[마태복음 맥잡기 3 요약]
마태복음은 역사서, 예수님 당시의 시대적 상황 이해 중요, BC 606년부터 이방인들의 때 시작,
바빌론, 메대/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제국, 예수님 당시 로마 제국 이교도들의 통치 기간 중 특히 그리스 시대에 헬레니즘 영향이 심함,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피폐해짐
BC 170년경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빛을 발한다 뜻) 의 혹독한 헬레니즘 강요, 마카비 반란, 이후 해스모니안 왕국,
여전히 이방인 체제 속에 신음함
예수님의 예루살렘 사역의 중심 장소는 성전, 또 이 당시에는 회당들이 확립됨 동시에 BC 200년부터 구약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던 여러 분파가 생겨남. 이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음
I. 성전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거룩히 구별된 곳으로 그분께만 경배 드리는 건물(탬플) 이곳은 말 그대로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곳인데 우상이 있는 이교도들의 신전과는 달리 하나님은 예루살 렘의 지성소에서 그룹들 사이에 거하신다
- (삼상4:4) - 이에 백성이 사람을 실로에 보내었으니 이것은 그들이 그룹들 사이에 거하시는 만군의 {주}의 언약 궤를 거기서 가져오고자 함이더라.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언약 궤와 함께 거기 있더라.
솔로몬의 성전 다윗은 자신이 주님을 위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을 것을 요청하였으나 하나님은 나단 대언자를 통해 그가 아니라 그의 아들 솔로몬이 그것을 지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이에 다윗은 자기 아들 솔로몬을 위해 많은 물자를 예비하였다.
성전을 세울 장소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모리아 산이었다
- (창22:2, 14 - 2 그분께서 이르시되, 이제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유일한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일러 줄 산들 중의 하나에서 그를 번제 헌물로 드리라, 하시니라. 14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이 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주}의 산에서 그것을 보리라, 하느니라
- 대하3:1- 그때에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 {주}의 집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곳은 전에 {주}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족속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예비한 곳이더라.
여부스족속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돈을 주고 예비한 곳).
성막(뜰, 성소, 지성소), 왕정이 시작되었기에 움직일 필요가 없다.
성전은 성막과 거의 비슷하며 외형만 커졌고 그 안의 기구들도 거의 비슷하다. 처음 성전을 짓는 데 7년 6개월이 걸렸으며 봉헌식을 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
- (대하5:1-14 -1 이와 같이 솔로몬이 {주}의 집을 위해 만든 것들의 모든 작업을 마치매 솔로몬이 자기 아버지 다윗이 봉헌한 모든 것 즉 은과 금과 모든 기구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집의 보고 가운데 두었더라.
2 그때에 솔로몬이 {주}의 언약 궤를 다윗의 도시 곧 시온에서 가지고 올라오려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지파들의 모든 우두머리들 즉 이스라엘 자손의 아버지들의 우두머리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으니
3 그러므로 일곱째 달의 명절에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왕에게 모이고
4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오매 레위 사람들이 궤를 들어 올리니라.
5 그들이 궤와 회중의 성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를 가지고 올라가되 곧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것들을 가지고 올라갔더라.
6 또한 솔로몬 왕과 그에게 모인 이스라엘 온 회중이 궤 앞에서 양과 소로 희생물을 드렸는데 그 수가 많아 말할 수도 없었고 셀 수도 없었더라.
7 제사장들이 {주}의 언약 궤를 궤의 처소로 들여오되 곧 그 집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으로, 지성소로 즉 그룹들의 날개들 밑으로 들여오니라.
8 그룹들이 궤의 처소 위에서 자기 날개들을 펴서 궤와 그것의 막대들을 위에서 덮었더라.
대9 또 그들이 궤의 막대들을 빼내었으므로 이 막대들의 끝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 앞의 궤에서는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였더라. 그 궤가 이 날까지 거기에 있느니라.
10 궤 안에는 두 개의 판 외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것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나온 뒤에 {주}께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11 그 뒤에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나왔으니 (이는 거기에 있던 모든 제사장들이 거룩히 구별되었으며 그때에는 계열대로 섬기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12 또 노래하는 자들인 레위 사람들 곧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에게 속한 모든 자들과 또 흰 아마 옷으로 차려입고 심벌즈와 비파와 하프를 가진 채 제단의 동쪽 끝에 서 있던 그들의 아들들과 형제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며 나팔로 소리를 내는 제사장 백이십 명도 그리하였더라.)
13 나팔 부는 자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한 사람처럼 한 소리를 내어 들리게 하고 {주}를 찬송하며 감사를 드리고 또 그들이 나팔과 심벌즈와 악기를 가지고 소리를 높여 {주}를 찬양하여 이르되, 그분은 선하시며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 하매 그때에 그 집 곧 {주}의 집이 구름으로 가득하였으므로
14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의 영광이 [하나님]의 집에 가득하였기 때문이더라
6:1-42; 7:1-22). 참조 - 성전안에서 망치질 하지 않음
성전 자체는 주랑과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되어 그리 크지 않았으며 주변의 뜰과 방이 있는 지역이 넓었다.
성경에서 성전이라는 말은 지성소가 있는 건물만을 뜻하지 않고 종종 뜰을 포함한 전체 성전 구역을 의미한다 .
솔로몬의 성전은 처음 33년 동안만 아름다움을 유지하였고
이집트의 시삭 왕이 이곳을 약탈한 뒤부터
- (왕상14:25-26 - 25 르호보암 왕의 제오년에 이집트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26 {주}의 집의 보물과 왕의 집의 보물을 빼앗되 다 빼앗고 또 전에 솔로몬이 만든 모든 금 방패들을 빼앗았으므로
대하12:9 - 이에 이집트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 {주}의 집의 보물과 왕의 집의 보물을 빼앗아 가니라. 그가 모든 것을 취하고 또 전에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들도 가져갔으므로 ) 하사엘, 디글랏빌레셀, 산헤립 등이 이곳을 더럽혔고
(왕하12:1-21. 16:1-20 , 18:1-37 - 참조 )
마침내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완전히 파괴시켰다(BC586).
그래서 첫 성전은 약 424년 만에 땅에서 사라졌고 그 뒤 50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다.
스룹바벨 성전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은혜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스룹바벨과 유대인들은 두 번째 성전의 기초를 놓았고(스1:1-4; 2:1; 3:8-10)
그 뒤 이방인들의 많은 방해를 받으면서 성전 공사가 진행되어 21년이 지난 뒤 완공되었다(스6:15-18).
이 성전의 크기는 이전 성전과 같았으나 겉모습은 이전 성전보다 떨어져서 처음 성전을 본 사람들은 초라한 모습의 새 성전을 보고 슬퍼하였다(학2:3).
하지만 주님은 이 집의 영광이 처음 것보다 크리라고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학2:9).
이 성전에는 언약궤, 긍휼의 자리, 눈에 보이는 영광, 제단의 거룩한 불, 우림과 둠밈, 대언의 영 등이 없었다.
마카비 시대 주전 168년경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대제는 매일 드리는 성전 희생 제사를 금하고 제단에 돼지 피를 드림으로써 이 성전을 더럽혔고 근 3년 동안 주님을 경배하지 못하게 하였으나
유다 마카비는 주전 165년에 다시 경배를 부활시키고 성전을 새롭게 봉헌하였다.
헤롯 성전 헤롯 대왕은 자신의 통치 제1년인 주전 37년에 두 명만 빼고 산헤드린의 모든 회원(70명)을 죽였으며 이것을 속죄하기 위해 성전을 재건하고 미화하기로 하였다.
그는 2년 동안 자재를 모은 뒤 스룹바벨 의 성전을 허물고 46년에 걸쳐 다시 지었다(요2:20).
이렇게 완공된 성전에 주님이 들어가셨으므로 학2:9;-"나중에 지은 집의 영광이 이전 집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 말3:1- "보라, 내가 내 사자를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주가 갑자기 자신의 성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가 가뻐하는 언약의 사자라" 의 예언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헤롯의 성전은 대리석으로 건축되어 빼어난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자랑하였다(막13:1; 눅21:5).
# < 돌위의 돌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성경 뜻) -아떻게 통곡의 벽이 남아 있느냐? 로마 군인들이 주둔하던 요새가 아닌가?!! >
그러나 그 당시 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 6 건물로 여겨지던 성전은 우리 주님의 예언대로 주후 70년에 로마 사람들에 의해 완전히 사라져버렸 다(막13:2). 천년 왕국의 에스겔 성전(겔40-48장-잠시잠깐 있었던 성전) 한편
* 신약시대의 성전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신자의 몸이며(고전3:16-17; 6:19; 고후6:16) 신약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장소는 결코 성전이 아니다.
교회가 의식화되어 천주교처럼 변하면서 목사가 제사장(사제)처럼 행세하고 예배당이 성전이 되는 구약 체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우리 주님이 미워하시는 일이다.
J. 회당 (시나고그)
이 말은 원래 집회를 뜻하지만 교회와 비슷하게 후에는 유대인들이 주님께 경배하기 위해 집회를 갖는 장소를 뜻하게 되었다.
회당: 단수 43회 + 복수 24회 총 67회, 시편 74:8의 ‘하나님의 모든 회당’(구약에서는 단 1회)은 신약시대의 회당과는 거리가 있음,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은 이것이 바빌론 포로 이후에 생긴 것으로 추정한다.
이전에 유대인들은 야외에서 혹은 대언자들의 집에서 집회를 가졌다.
나이가 들고 경건하며 학식이 있는 사람 열 명이 있으면 회당을 세울 수 있었고 큰 마을에는 여러 개의 회당이 있었으며 그래서 우리 주님 당시에는 회당이 매우 많았다.
포로 생활 이후에 유대인들은 흩어져 살았으므로 회당이 마치 지역 교회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회당을 세우는 일은 매우 경건한 행위로 간주되기도 하였고(눅7:5) 천국의 열쇠로 생각되기도 하였으므로 필요 이상으로 많은 회당이 건립되었다.
그래서 한때 예루살렘에만 460-480개의 회당이 있었다. 회당은 대개 높은 곳에 지었으며 건물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서 서쪽은 율법서가 담긴 궤가 있으므로 신전이라 불렸고 동쪽은 사람이 모이므로 회당의 몸이라 불렸다.
사람들은 성전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앉았고 장로들은 사람들을 마주 보고 반대편에 앉았다.
장로들이 앉는 곳은 좀 더 귀한 곳으로 생각되어 ‘회당의 높은 자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마23:6). 여인들은 격자창 등으로 구분된 발코니에 앉았다. 회당에는 열 명의 직무 수행자가 있었고 그 중에서 회당의 치리자는 모든 것을 주관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회당의 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회중의 사역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기도와 말씀 선포 등을 담당하였다.
그래서 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목사들은 이런 연유로 천사로 불린 듯하다(계2:3 ). 사람들이 앉으면 회당의 천사가 강단에 올라가 공중 기도를 하고 이때에 사람들은 다 같이 일어나서 헌신하였다(마6:5; 막11:25; 눅18:11, 13).
유대인들의 회당은 경배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재판 장소이기도 하였으며 그래서 종종 회당에서 매를 맞는 모습이 나온다(마10:17; 막13:9; 행22:19; 26:11; 고후11:24).
회당에서 내쫓기는 출회는 유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형벌이었다(요9:22; 12:42; 16:2).
AD 70년 디아스포라, 가는 곳마다 회당을 세우고 회당 주변에 모여 삶.
금요일 저녁부터 안식일, 자동차 No, 불, 스토브 등 모두 No! 미국의 경우 좋은 학교들
K. 유대인들의 분파
바빌로 포로 생활 이후 유대인들 사이에는 실행과 의견 등으로 인해 다섯 부류의 분파가 있었다.
말3:16-17, 하시딤, 여러 분파로 나뉨: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헤롯 당원, 열심 당원 등.
● 바리새인: 마카비 전쟁 이후에 형성됨(BC 160년경). ‘바리새’라는 이름은 ‘분리하다’를 뜻하는 히브리말 에서 나왔으며 이것은 그들이 지혜와 성별에서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음을 뜻하였다.
회당 중심, 제사장과 성전 배격 그들은 구약성경의 기록된 말씀이 유대교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금식, 기도, 구제, 이방인과 세리들과 접촉하는 것 등의 외적 의식에 관한 한 여러 가지 구전 전통과 규례를 첨가하였고(마6:5; 9:11; 23:5; 막7:4; 눅18:12)
그래서 미신과 자기 의를 세우려는 형식의 틀에서 천주교와 비슷하다.
구전 율법 중시. 그들은 모세의 율법 조문을 중시하였지만 자기들의 전통과 철학으로 그 안의 영적 진리를 무시하였다(마 5:31, 43; 12:2; 19:3; 23:23). 그들은 겉으로 경건하게 드러났고 거룩하게 보였으므로 보통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다. 그들은 혼의 불멸과 몸의 부활을 믿었다(행23:8).
그리스도께서는 여러 차례 그들의 위선과 교만과 탐욕을 책망하셨으며(마6:2, 5; 23:1-39; 눅 16:14; 18:9; 요7:48-49; 8:9.) 이로 인해 그들은 처음부터 그분을 미워하고(마12:14) 그분 을 죽일 방도를 구했으며 그 결과 그분의 피가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돌아갔다. 한편 그들 중에는 아리마대 요셉(마27:57)과 니고데모(요3:1)와 시므온(눅2:25) 처럼 진실로 경건한 사람들도 있었 다. 다소의 사울 역시 엄격한 바리새인이었다(행26:5; 갈1:14).
● 사두개인: 마카비 반란 전인 주전 200년경에 형성됨. 제사장과 성전 중심
이들은 종종 바리새인들과 충돌하였으나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일에서는 하나가 되었다(마16:1-12; 눅20:27). ‘
사두개’라는 말이 공정함을 뜻하는 히브리말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고 예수님이 오시기 300년 전에 살면서 이 파를 창설한 사독 혹은 사두커스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이 귀중하게 여기던 전통과 기록되지 않은 법규를 다 무시하였으며 오직 기록된 성경 말씀만 유대교의 근원이고 규칙이라고 주장하였다(구전 율법 배격).
그러면서도 그들은 천사나 영의 존재를 부인하며 몸이 죽을 때 혼도 죽고 따라서 부활이나 보상 등에 대해서도 믿지 않았다(마22:23).
바리새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운명이나 섭리 같은 것에 의해 지배된다고 믿었으나 사두개인들은 개개인의 의지에 따라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유대 백성들은 사두개인들보다는 바리새인들의 주장을 더 많이 수용하였으나 고위층 사람들은 그 반대였 다.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 중 다수가 사두개인이었고(행23:6-9)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도 그들의 편이었다(행4:1; 5:17).
● 에세네파: 마카비 전쟁 당시 형성됨.
에세네파는 쿰란 공동체라 불리는 공동체 생활을 하던 유대교의 한 조류이다.
에세네파가 쿰란 공동체라 고 불리는 이유는 이들이 금욕생활을 하던 정착지가 쿰란(Qumran) 동굴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경건 생활 강조, 이들은 앞으로 도래할 종말에 대한 기대와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와 격리되려는 경향이 강하였다.
두 메시아(정치적, 종교적), 몸의 부활 부인, 결혼 금지
● 헤롯 당원: 헤롯 대왕과 헤롯 안디바의 추종 세력(마22:16; 막3:6). 헤롯은 로마 정권에 의존했으며 그래서 카이사르에게 세금 내는 것을 당연히 여겼으나 바리새인들은 이를 부인했다(마22:16). 헬레니즘
● 열심당(熱心黨): 젤롯당(Zealot당) 혹은 혁명당
로마제국의 식민 통치에 폭력 항쟁으로 맞설 것을 주장한 유대의 종교적 민족주의 정치 운동이다. 열심당원들은 이스라엘은 다윗 왕의 자손으로 기름부음 받은 유대인(메시아)만이 다스릴 수 있다고 주장하며 로마 제국에 계속해서 대항하였다.
그들은 66년에서 70년에 일어난 대대적 유대인 반란인 제1차 유대-로마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66년 예루살렘을 장악하여 4년간 버텼으나 70년에 로마 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파괴하는 것으로 전쟁이 끝났다. 시몬 셀롯(눅6:15), 바라바(막15:7) 침묵의 400년 동안 하나님이 하신 일(갈4:4의 충만한 때)
1. 로마의 역할(정부): 팍스 로마나, 모든 곳에 화평이 있었다.자유 무역, 자유 여행 길(80,000 킬로미터의 큰 길들):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시작함
2. 그리스의 역할(문화): 언어, 코이네 그리스어
3. 유다의 역할(유산): 산헤드린 공회, 회당, 종교 교육 이 모든 것이 기독교의 확산에 큰 역할을 하였고이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정동수 목사님 프로필
- 학 력 -
인하대학교 기계공학 학사(1982)
캐나다 뉴브런스윅 주립대 기계공학 석사(1984)
미국 매리랜드 주립대 기계공학 박사(1988)
미국 펜사콜라 신학대학원 석사(2001)
목사 안수(2001)
- 경 력 -
현,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1992-현재)현, 사랑침례교회 담임목사
http://www.cbck.org/html/ 사랑침례교회
http://www.keepbible.com/ 킵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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