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용서하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의 가장 두드러지는 외적인 정체성은 용서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복음의 핵심이자 생명이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십자가가 없으면 복음이 성립될 수 없고 십자가가 빠지면 교회는 교회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인간세상에서 가장 보배로운 모든 가치들을 한 곳에 다 모아놓는다면 그것들은 십자가 속에서 전부 용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용서를 잘 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은 없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결과이다.
십자가에서의 하나님의 용서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기준은 세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준다. 비록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지 않아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자신이 비판받지 않기 위해 남을 비판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용서라는 차원에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않는 것이다. 용서라는 개념은 우리가 먼저 사람들을 용서해야 하나님도 우리 잘못과 죄를 용서하신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용서는 감정적인 용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그 용서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죄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죄를 위해서도 죽으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산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도 그와 같이 용서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라는 사실까지는 생각을 거의 못한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만을 위해서 오셨다면 공개적으로 공생애를 사실 필요도 십자가에 공개적으로 매달리실 필요도 없으셨을 것이다. 각자에게 성령께서 강력하게 임하시기만 해도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➊ 십자가와 용서
십자가를 보면 용서하지 않을 수 없다.
십자가와 용서는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이며 신인류 창조의 통로이다. 하나님의 사랑도 이웃사랑도 용서가 생명이다.
십자가의 용서는 세상의 모든 허물과 죄를 사라지게 만들고, 인간의 모든 보편가치들을 하나님의 용서로 승화시키는 용광로이다. 십자가의 용서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1. 십자가의 용서가 인류의 모든 보편가치들을 흡수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인류를 향하신 용서가 모든 가치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곧 용서를 통하여 모든 가치들이 실현되는 것이다. 용서는 인간에게 가장 큰 복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용서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용서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2.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지혜로 신인류 창조를 계획하신 것은 하나님의 어떤 상태를 전제로 하는 것인가? (롬 6:6~7)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
하나님이 우리의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의 못 박음으로 죄의 몸이 죽은 상태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고통과 조롱당하시고 죽으심으로써 인간의 죄를 담당하신 상태이다.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죄의 노예로 살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미 죄에 대해서 죽은 자요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이다.
3.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십자가의 피가 필요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골 1:20)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를 소멸하심으로써 화평케 하시기 위함이다.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이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면 인간과의 관계도 회복된다. 이것이 축복이다.
4.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도 새로운 피조물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인식되는가? (고전 1:18)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멸망하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인다. 자유와 평안을 얻게 된다. 진짜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서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 사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주셨고 용서받고 용서할 수 있게 하셨다.
➋ 용서의 상관관계
하나님의 용서만이 상처를 깨끗이 지운다.
그리스도인의 용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로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하지 못함은 상처의 노예가 되었음을 뜻한다. 용서가 우리의 상처를 지운다. 미움과 분노속에 살지 말고, 용서하고 예수님 닮기 위해 살아갈 때 얼굴이 변하고, 표정이 변하고, 삶이 변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온전히 흘러가게 된다.
구약에 원수 갚음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이 있다. 용서의 조건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용서는 십자가의 용서를 통하여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1. 구약의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는 구절의 본래 의미는 무엇인가? (신 19:19~21)
19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20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리라
21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
꼭 당한 것만큼만 갚고 더 이상의 원수 갚는 일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더 이상 원수 삼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용서하라는 것이다. 인간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의 배려요 차선책이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우리의 할 일은 용서하는 것이다.
2. 원수 갚음이 하나님께 있다고 할 때 하나님의 원수 갚음은 인간들에게 어떤 식으로 성취되었는가? (히 13:12)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심으로써 죄 없으신 예수님께 인간의 모든 진노를 담당시키셨다.
인간 사이에서는 용서로 표출되어야 한다. 용서가 열매이다.
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대신 진노하신 당사자들을 대할 때 우리는 누구의 마음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엡 4:32)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죄인을 용서하시고 모든 사람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용서는 구약 제사에서의 피로 대신하는 원리가 들어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이 마음 = 불쌍히 여기는 마음
4. 더구나 교회 안에서 같은 성도들을 용서할 때에는 누구를 먼저 떠올려야 하겠는가? (골 3:13)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주께서 우리 자신을 용서하신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타인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아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의 감정에 의존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피, 십자가의 은혜를 의존하라!
➌ 용서의 순서
당신의 회개는 당신의 용서 없이 불가능하다.
내가 먼저 용서해야 회개가 가능하며 조건 없이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우리의 용서가 그리스도의 용서인 까닭이다.
용서에도 순서가 있을까? 사람들 사이에 누가 먼저 용서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야 하나님께서도 나의 잘못을 용서하신다는 말씀이다.
1.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에는 우리가 용서받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이 필요하다고 하는가? (눅 11:4)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
우리가 다른 사람을 먼저 용서해야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자격이 주어진다.
2. 그렇다면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보다도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마 6:14~15)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
다른 사람을 먼저 용서해야 우리의 회개가 성립된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에는 그 사람에게 용서받아야 한다.
용서 받음 ⇀ 예수님의 용서에 기댐 ⇀ 하나님의 용서 ⇀ 죄 사함
회개보다 먼저 용서해야 한다.
3. 주님께서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근원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마 18:21~22)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
➀ 무한용서를 말하는 것이며 ➁ 완전한 용서라야 하며 ➂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4. 상대방이 우리에게 먼저 용서나 화해를 청하지 않는데도 우리가 먼저 용서해야 하는가? (눅 23:34)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주님께서 먼저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조건 없이 용서해야 한다. 상대방의 반응과 상관 없이 용서해야 한다.
실제 용서는 상대방이 회개했을 때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용서 ⇀ 예수님의 희생 ⇀ 우리의 용서 ⇀ 하나님의 사랑 ⇀ 이웃의 구원)
예수님께서 자신을 못 박는 무리들을 용서하셨어도 그 중에서 회개하는 사람만 죄를 용서받는다.
우리의 용서도 그렇다. 상대방의 회개와 상관없이 우리의 용서가 전제되는 것이다.
➍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정말 십자가를 안다면 모두 용서할 수 있다.
죽음으로 용서하신 십자가로 돌아가지 못하면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
나의 작은 상처를 예수님의 고통 (십자가의 은혜)에 기대야 한다. 상처를 묵상하지 말고 십자가를 묵상하라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찐하게 만나라!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용서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1. 용서에는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하셨는가?(마 26:27~28)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값으로 우리를 용서하셨다. (세상에서는 한 잔 하면서 서로 용서하고 용납한다. 용서하기 위해 예수님의 보혈에 의존해야 하는데 예수님의 희생이 맥주 한 컵, 막걸리 한 잔만 못하다는 말인가?)
2. 우리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갈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를 용서하신 예수님께로 들어와야 한다. 곧 십자가상의 예수님과 연합해야 한다. 십자가에서 나를 용서하신 것을 믿으라. 용서하는 것이 어렵다. 실패했다면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라! 또 실패하면 또 돌아가라 그러면 된다!
3.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결국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중에서 무엇을 행하라는 말인가? (눅 6:37)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정죄하지 않고 용서할 때 우리도 비판이나 정죄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4. 죄 용서가 잘 안 될 때 십자가로 돌아가야 하지만 십자가의 어떤 모습을 기억해야 하겠는가? (막 15:25, 34)
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
십자가에서 6시간 동안 고통을 견디신 것은 인간의 모든 종류의 허물과 고통을 감당하고 용서하시기 위함이었다.
십자가에 매달린 6시간은 바로 우리의 모든 상처를 치유해 주시는 시간이었다.
인간의 용서에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로 돌아오면 치유가 가능하다. 십자가 앞에 내 상처를 다 내어드리라! 예수님의 훨씬 더 큰 상처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주신다.
➎ 용서의 능력
큰 능력을 구하지 말고 용서의 힘을 구하라
성도의 용서는 회개와 치유와 의와 회복을 일으키는 능력이고 힘이다. 용서가 아니면 주님의 일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심령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 진정한 의인으로 인정받아 죄 사함의 권능을 부어주시고 병 고침의 능력을 주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비추는 거울이 되게 하신다.
1.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 누가 상을 주시는가? (고후 2:10)
10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우리 용서는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하늘의 상을 주신다. 놀라운 일이다.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용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 상을 주신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증인이 되어 주신다.
2. 용서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에서 어떤 권세가 주어지게 되는가? (요 20:23)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죄 사함을 선포할 때 누구의 죄든지 사해지는 권세의 능력이 나타난다. 용서가 능력이다.
3. 의인이란 용서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용서해야 우리의 죄도 용서받아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그 의인에게는 어떤 역사가 부어지는가? (약 5:15~16)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병 고침의 능력이 주어진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용서가 성취되었듯이 우리의 용서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신다. 그래서 용서는 힘이요 능력인 것이다. 치유의 역사가 나타난다.
4. 세상에는 용서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파되었다. 우리가 용서하면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눅 3:4~6)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영혼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잘 닦여질 것이다. 우리도 세례요한처럼 주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길을 준비하는 자들이 된다. 그 용서의 길을 따라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게 되는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용서야말로 내가 먼저 사는 길이고 복음이 만민에게 전파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나눔 및 적용
용서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새로운 인류의 특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용서를 깨닫고 받아들여 거듭난 사람이라면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만약에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다면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이다. 십자가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용서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용서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서로 고백해보고 용서하기 위해 다시 십자가 밑으로 돌아가 보자.
1. 아직 용서하지 못한 부분이나 과거에 가장 용서하기 힘들었던 부분을 이야기해보자.
2. 이상으로 용서에 대해 살펴본 결과 당신의 마음에 어떤 도전과 변화가 있었는지 이야기해 보자.
결어 : 상처받지 않는 사람들
‘상처받았다! 시험들었다!’라는 말을 얼마나 자주 듣는가?
그리스도인은 이미 용서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우리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내게 잘못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이미 용서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먼저 용서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떤 말도 행동도 우리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 십자가에 함께 못 박혔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 상처받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영성이 참 영성이다. 영적 어른의 모습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용서가 우리에게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신앙의식의 수준이 높아지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영적전쟁의 승리의 비결은 내가 성장하는 것이다. 영적 어른이 되어갈 때 사탄이 두려워한다.
먼저 용서하고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영적 어른이요 참 영성을 가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