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난순원고 소쩍새사연 올립니다

[윤난순]

소쩍새 사연

윤 난순

산책길 나무숲에 새들의 지저귐이 요란한데 오늘따라 유난히 신경 쓰이는 소리가 있다. ‘짹짹, 촉촉, 휘리리, 휘리리’하는 경쾌한 소리와 달리, 느린 저음으로 ‘솥이- 없어서, 솥이- 없어서’한다. 아니, 내 귀에 그렇게 들리는 것 같다. 그것도 박자와 음절을 맞춘 것처럼 일정하다. 솥이 적은 것도 아니고 솥이 없다니.......

“소쩍새가 돌연변종된 것이 아닐까?” 하자 친구는 싱거운 소리 말라면서도 맞장구칠 준비를 한다. 옛, 어느 며느리의 한 맺힌 넋두리 “소쩍, 소쩍!” 소쩍새 우는 시늉과 함께.

솥은 이제껏 우리생활과 분리되어 본적이 없었다. 1969년대만 해도 시골일수록 웬만한 집들은 거의 가마솥 밥을 했다. 부엌일은 당연히 며느리가 도맡았는데 “그 집 새댁이 쌀뜨물을 그냥 버렸네, 어쩌네.”하며 밥 짓는 솜씨까지 마을아낙네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했다. 대문을 열어놓고 지내던 당시는 뉘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히 꿰고있었기에 흉보기는, 별 취미가 없던 여인들 수다 속 양념이었다. 그 무렵 내가 시집와, 대가족살이란 굴레에 갇혀 하던 일들은 노동이나 다름없었다. 새벽녘 부엌바닥에 발을 디디면 어둡도록 헤어나지 못했다. 우물물을 길어, 쌀을 씻어 솥에 안치고 불을 땠다. 뚜껑 테두리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뽀얀 밥물과 함께 자작자작 뜸이 들면 주발을 꺼내 부뚜막에 올려놓았다. 칼로 깎아 살점 묻어난 감자 때문에 일 못하는 며느리로 소문은 났지만 밥솥이 컸던 덕분인지 배고팠던 일은 없었다. 차츰 땔감이 나무에서 연탄으로 바뀌고 가벼운 양은솥이 집집마다 들어앉자 밥맛이 전 같지 않다며 어른들이 불만스러워 했다. 그렇지만 나는 보리쌀이 반이 넘게 섞인 밥 힘으로 자식들을 자연분만 하지 않았나 싶다.

생업으로 상점 일까지 하면서 정신없이 바빠질 무렵, 급변하는 문명을 따라 생활가전제품이 나왔다. 부엌  한편에 상수도를 설치했을 때는 꿈만 같았다. 거기다가 버튼만 누르면 밥이 되는 전기밥솥, 어깨 휘어져라 비벼대던 빨래를 해결해줄 세탁기는 금상첨화였다. 지금까지도 손수 음식을 만들며 문명의 혜택을 고마워하고 있다. 가끔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면 나이를 가늠하지 못하고 달려들어 후다닥 해치우고는 몸살을 앓기도 하지만.

우리사회가 며느리를 혹사시키던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화 된지 오래다. 바빠질수록 간편해지는 살림 속에서 부엌일을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도 맛과 영양을 중요시 여겨 점심때가 되면 누군가의 아내이자 며느리들이 명품으로 치장하고 유명 셰프가 있는 식당에 인산인해를 이룬다. 맛 집을 찾아 차를 타고 달리며 먼지바람을 일으키는 광경도 흔히 본다. 라면을 먹고 멋진 카페를 찾아 비싼 커피를 마시며 휴식하는 문화가 일찌감치 정착되어 그리 낯설지는 않다.

TV에서는 먹는 방송이 대세를 이루는데 개발한 음식을 선보이는 연예인들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자랑스럽게 먹어치우는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그들의 위장이 버텨낼까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음식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공동쓰레기통에서 마주치는 봉투 안에는 썩어가는 과일과  음식재료들이 통째로 내비칠 때도 있다. 유통기간이 하루만 지나도 마트나 편의점등에서 버려지는 먹거리가 넘쳐난다. 쓰레기 대란이 멀지않았다는 뉴스를 보며 소쩍새 사연을 떠올린다. 고의성은 있었지만 워낙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아니던가. 며느리를 굶어 죽게 한 전설 속 시어머니는 물질만능 시대를 달려오면서, 반찬을 수위실에 맡겨놓고 며느리 눈치를 살피는 착한 여인으로 바뀐 지 오래다. 전화 한통이면 이 삼 십분 만에 도착하는 배달음식 또한 지천이다. 문밖에 쌓여가는 플라스틱용기를 보며 환경오염과 함께 공해에 길들여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아궁이에서 솥부터 떼어내던 사람들이 있었다. 시커먼 그을음이 뚝뚝 떨어지는 가마솥을 목 빠지게 이고 걸었던 그분들이 있어 지금 이렇게 풍요롭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의 소용돌이 속, 가슴 아픈 민족의 비극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이제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마을회관에 가면, 생생히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중 깜순할매의 피난길 실화가 리얼했다. 폭탄이 비 오듯 쏟아지던 논두렁길을 뛰어 가다 보니 어머니 등 뒤, 아기를 업은 포대기에서 검붉은 피가 배어나왔단다. 자식을 길섶에 버리고 가면서 울지도 못한 깜순이 어머니의 머리 위에, 붙인 듯 놓여있던 가마솥은 남은 식솔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무거운 삶의 무게였을 것이다. 평생, 슬픈 악몽을 안고 살아온 깜순할매는 요즘 건강이 안 좋다. 그래도 가마솥 밥 파는 식당에 간다고 하면 부득 따라나선다. 깜순할매를 부축하던 회관의 막내, 이쁜이할매가 한마디 거든다. “피난민이 오가던 길목에 큰 가마솥을 걸고 밥을 해서 나누어주던 이가 있었지......” 그때, 이쁜이는 식구 수만큼의 배급 밥을 받아다 감추어 놓고 안 받은 척 다시 깡통을 내밀었단다. 새싹 같은 양심을 누른 채 더 얻은 밥 한 그릇이 노독으로 시달리던 가족의 허기를 적실 수 있었다한다. 분명 알고 있었을 텐데 모른 척하고 수북하게 퍼주었던 밥주걱과 아주머니의 인상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음은, 어린 눈에 비추었던 그 시절의 절박함을 말해준다.

그렇게 배고팠던 시절이 지난 지 불과 백년도 안 된다. 눈부신 과학의 발전으로 민간인들이 우주여행을 다녀오고 우주정거장에 호텔을 세우려하는 요즈음이다. 인공지능 A I 의 도움을 받아가며 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가까운 역사조차 들쳐보지 못하는 일부 현대인들이 안타깝다. 가풍의 때가 묻어있는 솥뚜껑의 정겨움과 솥바닥에 눌어붙는, 철분을 보유한 구수한 누룽지 맛 도 모르고 있을 것 같아서다.

세월이 흘러 지금이 옛날이 되면 자신이 먹은 음식그릇조차 닦지 않는 편리함을 보태 운동부족이 된 몸매는 부풀어지고, 환경호르몬 때문에 염증이 기승을 부릴 수도 있으리라. 시대의 아이러니한 반열에 끼어 흘러가는 전설 속으로 소쩍새울음이 사라지고 인스턴트 과식으로 숨진 며느리 넋이 밤새 우짖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야기의 끝을 맺자 친구가 또 거든다. “배가 - 불러서, 배가 - 불러서 하면서 말이지”.

[김언홍]

소쩍새는 솥 적다~. 솥 적다~. 하면서 우는 거래요.ㅎ
풍년이 들어서 솥에 다 담아내지 못할 만큼 많다는....

배가 불러서~ 배가 불러서~ㅎㅎㅎ 시대에 맞는 발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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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난순]

김언홍샘 -오랜만이예요. 이번 장마에 피해는 없으신지요... 이번에는 석축이 있는 개인주택에 사시는 분들이 피해를 보셨더라구요. 저처럼 작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걱정을 덜 했어요.ㅎㅎ

[윤기정]

수상 축하하구요. 모든 게 먹는 것으로 귀결되던 시절, 오십 년 전만 해도 그랬지요. 이제는 또 다른 걱정이---. 걱정이 있는 한 삶은 계속되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