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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해석학의 전망
1. 성서 읽기는 매우 중요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의 증언이요, 정경이기 때문이다. 필수 과목인 구약개론, 이스라엘역사, 구약신학 그리고 구약주석 방법론(해석학 입문)은 내용마다 구구절절이 괄호에 성구를 참조하고 있다. 성서 신학의 내용과 사상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구를 일일이 찾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성서를 많이 읽고 강해하는 설교를 하는 교회일수록 필라델피아 교회처럼 좋은 교회가 된다.
2. 신학교육은 특수언어인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가 필수이다. 구약신학을 함에 있어 히브 리어는 필수이다. 서구의 기독교가 문화의 요람이요, 학문의 왕관인 신학을 형성하는 것은 성서의 언어연구를 필수적으로 한 덕분이다. 영어 일변도, 영성목회 일변도라는 현대판 중세적 암흑기에서 탈출해야 한다. 인간 경험과 지혜에 의존한 주제설교나 도덕적인 교훈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히브리어 본문에서 자신을 알려주는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할 때이다. 즉, 히브리어 문자적, 역사적, 신학적 해석이 요청된다.
3. 교의 신학의 주장도 있고, 유대인 문학의 철학적 해석같은 사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 조들이 있다고 해서 성서 신학을 그것과 동일한 차원에서 다룬다면 오산이다. 꼭 해석학(주 석)연습을 해야한다. 성서 구절과 히브리어의 문법, 어휘를 숙지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일단 거치면 본문 속의 내용들과 핵심 정점을 파악하기가 용이해진다. 이런 연습은 기본적인 안내서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책에는 G. 포오러의 <성서해석학 입문, 방석종 교수의 <구약 해석 입문서, 히브리어 본문비펑을 위한 E. 뷔르트바인의 <성서본문 비평입문이 있다. 성서본문과 히브리어와 얼마나 씨름하느냐에 성서 신학의 생명이 달려있다.
4. 성서해석사를 훑어보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이러한 안내서로 H. J 크라우스의 <구약의 역사 비평적 탐구의 역사(번역 안됨)가 있다. 성서 해석사를 살펴보는 것은 자기의 생가이나 입 장이 이미 과거 성서 신학자들에게 있었고, 문제로 다루어졌기 때문에 채 정리되지 못한 입장과 오해들이 교정되고 풀리게 된다.
제1단계 : W.아히로트는 계약신학으로 보았다. 즉, 율법이란 매개체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맺고 흘러간다고 보았다. 폰라트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구속사로 보았다. 또한 라이트, 포오러는 하나님의 통치와 교제로 보았고, 짐멀리는 하나님의 현존을 구약신학 사상으로 보았다. 위의 학자들은 이런 주제를 끄집어내는 수단으로 성서 해석학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즉, 어의분석, 양식 유형분석과 전승사적인 비평적 방법을 사용했다.
제2단계 : 위의 단계를 보면서 구약신학은 어느 하나의 주제를 잡아둘 수 없다고 보며, 마르 텐스는 구약 신학지평의 다채로움을 종합했다.
제3단계 : 1, 2단계의 구약신학이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전개한 것이어서 혼란스러움이 생겼 다고 보고, 성경은 거룩한 책, 정경으로서 구약을 보았다. 즉, 계시의 책으로써 구약을 보았 다. 이 3단계는 교의적인 방향으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는데 차일즈, 헨슨, 샌더스 같은 이 들이 이 그룹의 학자이다.
제4단계 : 1, 2단계는 역사 비평방법을 전제로 해서 연구했고, 3단계는 정경으로서 구약을 연구했는데 모두다 틀렸다는 양비론을 주장했는데 콜린스, 핸슨, 휘브레이가 있다. 이들은 구약신학은 하나의 허구, 신화적인 이야기라고 주장하며 성서의 무용론까지 내세운다.
제5단계 : 5단계는 콜린스에 대해 반대하는 학자들이 나왔다. 대표적인 사람이 린드베크인데 구약은 역사가 아니라 사건을 해석학 신학이라 주장했고, 공동체 형성을 강조하면서 역사와 신학을 결합했다. 린드베크를 보충한 사람이 레벤톨로인데 그는 구약성서 신학은 역사적 비 평과 동시에 기독교 신앙을 위한 성서의 의미를 묻는 이중적인 과제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서구적 전통에서 유대교 신학자들이 나왔으며 이들도 정통, 우파, 좌파로 나뉘 어진다. 정통파로는 모세 고센 곳트쉬타인으로 구약신학이라 하지 말고 유대성서신학, 타아낙 신학이라 말한다. 우파로는 레벤손으로 구약신학이란 반셈족적 산물로서 보편적이지 못하다고 보며, 좌파로인 체베트는 신학개념을 거부하고 문학이라고 본다. 문학의 철학적 이해로 본다. 즉 구약성서의 철학이다. 이들은 역사비평방법도 서구의 교의적 해석도 따르지 않는다. 구약은 유대인의 성격, 기질, 인간성을 문학화 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유대인의 생활을 심층적으로 해석한 책이라는 것이다.
제6단계는 1-5단계를 종합 정리한다. 어떤 신학자도 역사비평 방법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다.
올덴부르거가 본 5가지 전망
1. 전승사적 구약성서해석(전승비평방법)
2. 사회과학적인 해석
3. 유대인의 영성신학
4. 여성신학
5. 다양한 신앙증언을 체계화시키는 것이다.
*구약신학의 흐름과 전망
1. 가블러(Johann Philipp Gabler)에서 아이스펠트(Otto Eissfeldt)까지
가블러 이전에는 성서신학은 교회의 교리에 증빙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에만 머물렀다. 그러나 가블러가 1787년 알트도르프대학 신학부교수로 취임하면서 행한 강연에서 성서신학과 교의신학은 구별되어야 하고 각각은 서로 고유한 신학적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가블러 이 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종교사학파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는데 벨하우 젠(J. Wellhausen)과 궁켈(H. Gunkel)이 대표적이다. 궁켈의 작업은 신학은 종교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신학은 구약성서 저자의 내적인 삶까지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다. 그후 1930년대에 벌어진 아히로트와 아이스펠트의 논쟁에서 아이스펠트는 이스라엘 종교사와 구약신학은 서로 다른 것으로 구분코자 하였다. 종교사는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특정 가르침의 타당성이나 진리 됨에 대해서는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신학은 역사적 탐구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구약신학의 관심사는 기독교 신앙의 틀 안에서 무엇이 영원한 진리인지를 파악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히로트는 구약신학을 역사적 탐구의 영역에서 제외시키지 않았다. 교의학의 영역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2. 20세기 구약신학의 두 기둥-아히로트(W. Eichrot)와 폰라트(G. Von Rad)
이들은 종교사학파의 테두리에서 행해지던 구약신학의 작업을 역사비평적 성서해석의 틀에서 구체화시켰다. 아히로트는 신학은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백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신학은 규범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묘사나 역사적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신학은 구약성서 전체의 단면을 그리는 작업이다. 이런 전제하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계약 관계), 하나님과 세계(하나님의 현현, 창조세계의 유지), 하나님과 인간(관계, 즉 경건과 용서)이라는 세 권의 책을 저술하였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을 계약으로 단정했다. 이 계약사상은 출애굽 공동체가 신앙공동체로 존재케 되는 근거인 시내산 계약에 둥지를 틀고 있다. 그러나 아히로트는 구약성서의 중심단면 하나를 추적한 나머지 여러 다양한 이념, 사상 등을 놓치고 있다.
폰라트의 신학은 아히로트와 크게 다르다. 내용과 방법론이 모두 다르다. 그는 계약사상은 이스라엘 초기 신앙고백이라고 여겨지는 본문에는 생략되고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결국 구약성서의 출애굽-가나안 땅 전승은 신학적으로 약속과 성취라는 구도 속에 있다고 보았다. 폰라트가 구약신학의 출발점을 육경-창세기에서 여호수아-으로 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구약신학은 구속사라는 것이다. 폰라트의 단계는 첫째 지나치게 역사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둘째 그의 구약신학은 말씀보다는 사건을 우위에 두는 것이어서 말씀 속에 계시되는 하나님 보다는 사건 속에 계시되는 하나님을 증언하는 쪽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것이다. 셋째, 전승사적 방법론에 충실한 나머지 구약성서의 복합적인 신앙증언들 사이에 간장관계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3. 아히로트와 폰라트 이후의 구약신학 운동
아히로트의 구약사상을 대치해 보려는 시도들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하나님과의 교제(Vriezen), 하나님의 통치(G. E. Wright), 하나님의 영(E. Jacob), 예배와 제사 (J. L. Mckenzie), 하나님의 지배와 교제(G. Fohrer), 하나님 앞에서의 삶(W. Zimmerli), 율법과 약속(R. E. Clements), 하나님의 현존의 애매모호함(S. L. Terrien), 하나님의 백성/신앙 공동체 (B. S. Childs, P. Hanson) 등이다. 이런 후에 엘마 마르텐스(Elmer A. Martens)의 구약신학의 지평이 다채로움으로 나타났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서는 구약신학의 콘텍스트에 관심을 집중한다. 차일즈, 핸슨, 샌더슨 등은 신앙공동체로 파악해보려는 사람들이다. 나이트는 (George A. F. Knight)는 이스라엘의 삶을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탄생(출애굽) - 호흡(시 내산) - 죽음(587년 이후의 포로기) - 회복(겔. 37장) - 종말론적 패망. 이것은 신약과 연결 해서 예수탄생 - 새 토라의 전수 - 죽음 - 부활 - 하늘로 들려 올라가심으로 보면서 정경이라는 인식의 틀 안에서 작업한다.
4. 도전 받는 구약신학 - 타낙의 신학 또는 히브리어 성서의 신학
다양한 주장에 대한 포기와 역사비평적, 성서 해석이 남겨놓은 성서 본문의 해체로 회의와 갈등으로 신학하기를 거절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구약신학이란 "존재하지 않은 짐승"(Whybray), 성서 신학의 역할 축소를 단언하기도 한다.(J. Barr) 유대교 학자들은 성서 신학의 용어 자체를 불평한다. 그들은 "유대교의 성서신학", "타낙의 신학"으로 불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21C를 향한 구약신학의 모델
1. 하르투무트 게제(Hartmut Gese)의 전승사신학
게제의 구약신학은 전승사적 성서해석을 구약신학 방법론으로 삼는 작업이다. 구약성서의 역사적 전개과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학자이다. 구약성서의 사상체계에서 어떤 중심점을 찾아낼 수 있다(폰라트)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약성서는 결코 어느 한 두 사상으로 요약하여 정리할 수 있을 만큼 통일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신학 방법론은 전승사이다. 성서는 계시된 진리를 결코 교리적인 형태로 가르치지 않는다. 신앙증언을 전승사적으로 설명해 가는 형태야말로 구약성서를 가장 신학적으로 설명할 형태라는 것이다. 폰라트와 다른 점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가 하나로 연결되는 신학이다. 한계는 구약성서 안에 흐르는 전승형성의 과정을 너무 획일적으로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2. 발터 부르거만(Walter Bruggermann)의 신학적 상상력
부르거만은 구약성서 해석의 지평을 사회학적, 사회사적 영역으로 넓혀간 학자이다. 그는 아 히로트와 폰라트의 구약신학 방법론을 모두 더 이상 적절치 않다고 본다. 그의 구약신학은 구약성서 신학이 우리의 삶과 역사에 대해 전지는 (신학적 - 해석학적 논평)으로 전개된다. 구약신학은 성서가 내뻗는 주장의 가치나 의미 속에 신학자의 본질적인 자기 고백을 내포해야만 한다. 일종의 상상력을 동반한 성서 해석이다. 부르거만에 따르면 구약신학은 우리에게 신앙공동체가 경험하고 성서에 대해서 증언한 것을 역동적으로 들려주는데 그 과제가 있다. 구약신학의 과제는 해석학적 고백을 동반해야 하는 것이다. 그의 공헌은 구약성서 안에 흐르는 서로 다른 두 정신사조를 부각시키는데 있다. 구약성서 안에는 두 개의 상호 대립적인 축이 존재하고 있다고 본다. 하나는 모세의 정신을 전승의 기반으로 삼는 사조인데, 이스라엘의 해방, 하나님의 자유, 그리고 이스라엘 사회의 변혁을 강조하는 정신이다. 약자, 가난한 자, 비천한 자를 떠받치고 있는 신앙 기둥이다. (약자를 위한 신앙) 또 다른 하나는 왕조의 성립과 왕조의 유지를 전승의 기반으로 삼는 사조이다. 여기서는 언약이 강조되고 있으며 기존질서의 위치에 관심한다. 이 두 유형 사이에는 긴장과 갈등이 존재하는데 여기에 구약 신학의 과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부르거만이 간파하는 구약신학의 핵심은 바로 약자의 "고통 껴안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신학의 할 일은 두 사조 사이의 긴장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추적하고 나아가 야훼 하나님이 이스라엘 약자의 아픔을 어떻게 감싸 안으시는지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오늘이라는 사회학적 상황 속에서 구약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것이다.)
3. 존 레벤슨(Jon D.Levenson)의 유대교적 영성과 구약신학
구약성서는 기독교인의 책이기 이전에 유대인의 책이며 구약성서라고 불려지기 전에 "타낙"(Tanakh)으로 일컬어진 책이다. 구약신학의 연구에서 유대인의 아픔과 유대인의 영성이 소중하게 취급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대인의 시각으로 구약성서를 신학적으로 토론해가는 학자가 레벤슨이다. 그는 구약성서라는 용어 자체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히브리어 성서가 더 합당하다고 보는 것이다. 진정한 구약신학은 유대적 성서의 신학이라는 것과 성서는 유대인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이야기 상대를 맡은 유대인은 하나님의 세상 다스리심을 익히고 야훼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왜 악과 고통이 있는지를 배운다. 히브리어 성서는 바로 유대인들의 세상살이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레벤슨이 취하는 히브리어 성서의 연구는 히브리어 본문의 문학적인 맥락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일로써 시작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황 안에서 히브리어 본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추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때 유대인에게 대두되는 중요한 주제가 "계약과 창조"이다. 바로 시내산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목소리이다. 야훼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기며 살기로 다짐하고 걸어가는 유대인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시내산은 우리에게 토라를 심각하게 다룰 것을 요구한다. 성서의 구속사는 이스라엘을 향해 펼치시는 야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다.
4. 필리스 트리블(Phyllis Trible)과 여성신학적 구약성서 해석
여성의 관점에서 성서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다. 케더린 자켄펠트(Katharine D. Sakenfeld) 가 보는 여성들의 성서연구가 끼친 충격은 대략 네 가지이다.
첫째, 옛 이스라엘 문화에서 여성의 지위나 역할에 대한 조직적 연구를 시도한 것이다. 둘째, 성서 안에서 잊혀진 전승들을 재발견하고 또 여태까지 왜곡된 전승들을 재해석하는 것을 중요 과제로 삼은 것이다. 셋째, 여성의 입장에서 성서의 유명한 본문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다. 넷째, 하나님의 이미지에 새로운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트리블의 작업은 방법론상 문학비평적이다. 정확히는 수사학적 비평이다. 본문의 정독을 중 요하게 취급한다. 트리블은 아히로트식의 언약모델이나 폰라트식의 전승사적 구속사신학을 모두 다 거부한다. 구약신학의 초점은 신앙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것을 밝히기 위해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성의 문제이다.
5. 롤프 크니림(Rolf P. Knierim)과 구약신학
크니림은 위의 모든 모델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신학을 주석으로 축소시키는 경향의 게제와 트리블과 해석학으로 곧장 확장시키는 레벤슨과 부르거만의 경우는 모두 주석과 신학, 주석과 해석학, 신학과 해석학의 과제와 내용을 혼돈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니림은 방법론적으로는 구약주석과 구약신학을 학문의 내용으로는 오경과 그 법전을 가르쳐왔다. 폰라트의 좌파이다. 그러나 크니림은 가블러의 성서신학은 20세기말의 상황에 보다 적극적으로 주석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가블러가 주장한 성서신학의 두 가지인 첫째, 성서본문을 역사적으로 검증해야 하고, 둘째, 그것을 성서 속에 담긴 다른 여러 주장들과 비교 검토함으로 그 성서 해석의 요청되는 이성(논리)적 작업이다. 크니림은 폰라트의 제자이지만 전승사적 탐구(정당성 자체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를 반대한다. 구약신학의 과제는 역사와 창조에 관한 전승들을 추적해 내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되다는 것이다. 크니림의 구약신학은 방법론상 조직적이고 논리적인 토론을 중요시한다. 성서의 증언을 그 자체로 묘사하는데만 열중해서도 안되고 해석학적 고백으로 곧장 전진해도 안 된다. 구약신학은 그 증언이 구약성서가 담지하고 있는 여러 증언들 사이에 어떤 자리를 점하고 있는지를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구약신학의 최종적인 비평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야훼 하나님의 세상 다스리심이다. 정의와 공평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야말로 구약신학이 논해야 할 최종, 최고의 과제이다. 이것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구약신학의 실제라는 것이다. 크니림의 구약신학은 성서주석과 조직신학 사이에 놓여져 있는 중개자라 할 수 있다.
참 조
1. 하르트무트 게제 : 폰라트의 제자로 그의 우파로 알려져 있다. 1958년 이래 현재 이르기 까지 독일 튀빙겐의 에버하르트 - 칼스대학의 루터신학부 교수로 구약학교수이다.
2. 발터 부르거만 : 미국 조지아주 콜럼비아 신학교의 구약교수이다.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 서 신학박사학위. 세인트 루이스대학에서 교육학박사학위 받음.
3. 존 레벤슨 : 1975년 미국 하바드대학에서 고대중동지방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 받음. 현재 하바드에서 유대인의 문학, 철학,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4. 필리스 트리블 : 뉴욕 유니온 신학교 구약학교수이다. 그의 스승은 뮬렌버거이다.
5. 롤프 크니림 : 독일 하이델베르그대학에서 1962년 박사학위 받음. 폰라트의 제자로 좌파 로 일컫는다. 미국으로 건너와서 캘리포니아의 클레아모트 신학교와 대학원 종교학부 교수 이다
[출처] 성서해석학의 전망(방석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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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목사님 바쁘시고 편찮으신데 이렇게 좋은 학습자료 '성서해석학의 전망'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뒤돌아서면 자꾸 잊어버리지만요 틈나는대로 읽고 있습니다~. 강건하시길 두손모아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