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방바닥에서 뒹굴뒹굴 굴러다닌다.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놀아줘~"
심심하다고 중얼거리며 굴러다니는 여자의 앞에 비단뱀 하나가 툭 떨어진다.
여자는 베시시 웃는다.
"아침식사 배달왔네."
하면서. 여자가 뱀을 입에 집어넣으려는 순간!
"안돼!!!!!!!!!!"
하고 소리치며 깨어난 그녀. 꿈속의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 쌍둥이거나, 아니면 그 자신이거나.
어쨌든, 이마에 조금 맺힌 식은땀의 느낌이 싫었는지 닦아내며 한숨을 쉰다.
"후우... 꿈이었구나....."
그녀의 이름은 윤지원이다. 날씬하다기보다는 통통하다는느낌이 드는 대학교 2학년생.
지원은 집안을 둘러본다. 무언가 끔찍한(?) 꿈을 꾸고나서는 집안을 둘러보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고등학교 3년동안 패스트푸드점에서 뼈빠지게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산 방두개에 거실겸 주방과 욕실하나, 그저 그게 다인 30평짜리 빌라.
3년동안 열심히 돈을 모았다고 해봐야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해 모은 돈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강남에다 번듯한 집을 마련해 독립해 나가겠다는 그녀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결국 땅값이 제일 싸다는 가산동에다가 집을 얻어놨지만, 어쨌든
20살, 생일부터 줄곧 살아온 집이기에 이집은 그녀의 보물 1호이다.
집을 한번 둘러보곤 해가 반의 반정도 떴기에 환함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서려오는
공포감을 견딜 수 없어 침대속에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그때 갑자기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그녀는 '꺄악'하고 비명을 질러버린다.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르르릉-'
그녀가 어제 일어나기 싫어 잠결에 침대 밑으로 숨겨버린 자명종소리였지만 말이다.
지원은 한참후에야 그걸 깨닫곤 이불속에서 살금살금 나왔다.
자신의 방에서 나와 욕실로 향해 대충대충 씻고나서도, 옷을 입고나서도,
가방을 챙기고 현관을 나서 문을 잠그고 나서도, 그 공포감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이상하면서도 꺼림칙한 기분에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버스를 잡는다.
이 기분이, 공포감인지, 아니면 무언가 지금부터 일어날 일(한동안은 그녀에게
커다란 혼란을 주었던 일이므로)을 예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채.
# 1
"그래서, 그 킹카랑은 어떻게 됬는데?"
토스트를 한입 베어물며 나는 유진이에게 물었다.
학교 앞 조그만 가게에서 하는 이 토스트는 여덟가지 과일을 갈아만든 소스와
햄, 치즈, 계란을 넣은 것뿐인데도 맛이 독특한게 꽤 괜찮다.
유진이는 게걸스럽게 토스트를 씹어먹는 내 모습을 보곤(아마도 내 모습을 보고
그랬으리라 짐작한다, 그녀는 먹는 모습이 우아한 사람을 교양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깝지만 뭐, 어쩌겠어. 나 말고 다른 여자랑 바람피우는 모습을 봤고,
부정도 안했으니 나한테 미련 없는거라 여기고 깨졌지, 뭐."
"으응.. 그렇구나..."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내 앞으로 지나간 사람을 넋놓고 바라보았다.
키 180에 탄탄한 근육질로 맺어진 살이 반팔 셔츠 밖으로 보이고,
청바지만 입었는데도 멋들어진, 잘생긴 왕자님♡...
내가 그 왕자님이 내 앞을 스쳐지나가 저 멀리 바라볼동안, 유진인
아마도 특유의 한심하단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으리라.
항상 입버릇처럼 '남자는 외모 필요없어, 뒷배경이 좋고봐야지'하던
그녀였기에 그건 안봐도 비디오다.
"넌 어쩜 그렇게 눈이 났니? 저 사람이 멋있는 거 같애?"
"으응.. 안멋있어? 멋있잖아. 키크고 근육질의 몸매에다
잘생기기까지 하구."
내가 감탄한 듯한 목소리로 그사람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자
유진인 또 한숨을 쉰다.
"에휴... 하여튼 윤지원 남자 밝히는 건 알아줘야돼.
아니, 밝히려면 눈이나 좀 높던가, 이 언니 작업에 도움되게.
눈은 대따 낮아가지고 맨날 밝히구."
그래, 니 잘났다, 이뇬아.
나는 속으로 중학교때부터 단짝이던 유진이를 씹어주었다.
그녀는 엄청난 바람둥이었다. 원래는 터프한 성격의 소유자이나
남자들 앞에만 가면 180도 바뀐다. 내숭 100단에 작업수법도
엄청 뛰어나서, 찍은 남자 못 가진 적이 없다(딱 한사람, 내 오랜 소꿉친구
충재라고 있다. 그는 여자에 관심이 없다).
그녀의 눈은 아주 높다. 앞서 말했듯 '남자는 외모가 필요없다,
뒷배경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으면서도 그녀의 한달에 한번꼴로
바뀌는 남자친구들은 하나같이 모델처럼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
그리고 입이 떡 벌어질 만한 뒷빽과 집안, 성적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빌자면 '초특A급킹카'래나.
어쩄든 그녀는 항상 어디선가 '최상품'을 물어와 원하는 건 다 얻고나선,
한달쯤이 지나거나 또다른 '최상품'을 다시 만나면 깨뜨려버린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욕하는 사람은 없다.
돈싫다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말이다.
유진인 남자 꼬시기에 적합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검고 긴 생머리, 쭉쭉빵빵한 몸매, 남자들이 가장 이상적이라 말하는,
소위 '아담한키'와 예쁘장한 외모까지. 그녀의 뒷배경도 나쁘진 않으며
그녀는 항상 수석이었다. 공부도 정말 잘한다. 노래도 잘부른다.
아무리 단짝이라지만 나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럼 나를 소개해볼까? 나는 아주아주 평범한 대학교 2학년생이다.
유진이와 같은 대학에 들어오려 기를 쓰고 공부해서 겨우 명문대에
들어오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평범한 몸매와 평범한 키와 평범한 생김새와
평범한 성적을 가지고 있다. 20살이 되던 해의 내 생일에 독립해
지금까지 영수증에 이리저리 치여 살고 있다(독립을 했으면 부모에게
손벌리면 안된다는 엄한 아빠의 말씀에).
여태까지 제대로 된 고백 한번 못받아봤고, 제대로 된 연애한 번 못해봤으며,
나조차도 제대로 좋아한 사람이 없다.
'이상적인 왕자님'을 꿈꾸고 있는 것까지 평범한 나는 국문과다.
유진이는 법과다. 중학교때부터 밴드부 활동을 줄곧 해왔던 나는(그것만은
유일하게 특별했다) 음대를 들어가려 했으나 부모님들의 극심한 반대로
국문과를 택하게 되었다. 유진이야 뭐, 중학교때부터 변호사가 꿈이었으니.
나는 유진이와 유진이의 '전 남자친구' 얘기를 하며 학교 안의 예쁜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 학교는 캠퍼스가 예쁘다고 소문이 났다. 뭐, 씨씨들이야 살판
난거겠지만, 나같은 솔로는 죽을 맛이다. 하물며 도서관을 가도 닭살떠는
커플들이 수두룩하니. 이 공원은 예쁘다고 소문났지만 들어올 때마다
입장료를 내야 해서 별로 사람은 없다. 누구나 구두쇠 근성이 있기에 마련이다.
그냥 들어가도 되는 예쁜 캠퍼스도 있는데, 조금더 예쁘다고 돈주고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부자를 빼곤 흔치 않기 떄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유진이가 이곳을 즐겨 찾는 이유는 따로 있다.
유진이의 말로는, 이런 곳에 자주 오는 사람이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겠느냐, 이거다.
우리는 돈을 내지 않고 이 공원에 입장한다. 관리알바를 하는 사람이 유진이와
전에 사귀었던 사람이란다(귀티나보여 사귀었지만 실로 돈은 없었다 하여 금방 깨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진이가 좋다고 죽자살자 쫓아다니는 3학년 선배다).
"에효, 이제 다른 사람들을 몰색해봐야지, 뭐."
유진이는 한숨섞인 농담을 내뱉는다. 아니,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심각한
진담인가? 어쨌든 그녀는 좀 깊숙이 들어가 나무 밑 벤치에 앉았고, 나도 그 옆에
앉았다.
"아 참. 나 아르바이트 자리 구해놨는데. 너 전부터 알바알바 노래를 불렀잖아."
"그래? 아, 고마워, 유진아~ 역시 나한텐 너밖에 없다."
"그렇지, 뭐. 니가 우리학교에서 친구라곤 나랑 충재밖에 없잖니.
다 어쩔수없이 착한 이 김유진 성격 탓이지뭐(유진이는 조금만 칭찬해주면
고대로 비행기를 타버린다). 근데, 충재는 정말 내가 싫대?"
또 시작이다-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르겠어. 충재야 워낙 여자 만나는 걸 싫어하고, 누굴 좋아해 본적도
없으니까. 내가 슬쩍 떠보긴 할게."
내 말에 환하게 웃는 유진이다. 충재는 유진이보다 더 오래된 내 소꿉친구다.
우리학교 남자들중 손에 꼽히는 킹카목록에 속해있으며, 뒷배경도 좋고
성격도 좋아서 유진이가 몇해전부터 탐내했었다. 뭐, 비록 자신은 유진이 싫다고
거부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유진이와 충재는 잘어울리는 것 같다. 선남선녀라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나.
"근데, 이번엔 무슨 알바야?"
"제일 무난한 게 편의점인데, 너 전에 편의점 알바갔다 큰일날 뻔 했잖아.
새벽에 도둑들어서. 그래서 편의점은 제쳐놓고, 패스트푸드점은 3년동안 질리게
했을테니까 그것도 제쳤어. 근데 너 노래 안부를래?"
유진이가 내 눈치를 슬쩍 보는걸로 봐선, 노래 부르는 덴가보다. 노래방알반가-_-?
"응, 그러려구, 가급적이면. 난 노래 잘 부르지도 못하고, 확신도 안서구.
그냥 편하게 악기만지는게 좋아, 음악하는건."
유진인 실망한 눈치다. 고개를 푸욱 숙이고 있다. 갑자기 숙였던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미안한듯 입을연다.
"사실은, 라이브카페 알바야. 나 아는 오빠가 알바생이 너무 필요하다 그래서,
노래 잘부르는 애라고 너 추천해줬거든. 사진 보여주니까 오케이 하든데.
오늘 네시까지 종로에 있는 sky란 데로 가봐. 교보문고 옆에 새로 생긴 데 있잖어.
전에 한 번 가봤었지? 거기에서 다섯시부터 일곱시까지 노래부르면 돼.
일곱시부터는 한시간동안은 서빙하구. 내가 겨우겨우 졸라서 한달에 삼백만원 받게
된 거다, 너? 학비야 너희 부모님이 대주시지만 생활비는 니가 벌어야 되잖아.
어때, 많지? 응?"
알수없는 유진이에 대한 미안함에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고마워, 유진아, 매번."
"아냐, 잘생각했다. 정말 재밌는 알바일거야>_<
나 강의 있어서 먼저 가볼게. 토스트 먹구 가?"
유진이는 신이 난듯 싱긋 웃더니 손을 흔들며 공원을 뛰어나간다.
하아- 하고 한숨이 나온다. 봄인데도 아직은 꽤 쌀쌀하다.
아까 그 근육질의 잘생긴 남자는, 어떻게 벌써부터 반팔입을 생각을
다 했지? 여자 꼬실라고 그러는건가?
문득 딴생각에 빠져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앞다리가 쏘옥 뒷다리 쏘옥'
"여보세요."
- "야, 윤지원!! 너 지금 어디야!!!!"
"어우, 박충재! 귀청떨어질 뻔 했잖아! 호수공원인데. 왜?"
- "너 내가 아까 김교수님이 찾는다고 했어, 안했어!!!"
"아, 맞다... 유진이랑 밥먹느라 깜박했어, 미안.. 교수님 많이 화나셨니?"
- "화 뿐만이 아니야. 나한테 히스테리 부린다구... 아, 아니예요, 교수님..."
"피식.. 알았어, 교수실로 가면 되지?"
- "그래, 빨리와. 아무것도 아니라니깐요, 교수님!!"
플립을 닫고 천천히 일어선다. 토스트는 벌써 없어진 상태다.
한번 화가 나면 정말 히스테리적인 말과 행동을 하시는 김교수님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며 동쪽 후관으로 향한다.
동쪽 후관은 호수공원보다 약간 더 따뜻했다.
돌계단을 올라가 빨간 벽돌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대리석으로 만든
번지르르한, 제일 좋은 건물이 동쪽 후관, 바로 '수정관'이다.
교수실들과 행정실들이 늘어져 있는 곳으로 이곳은 항상 엘리베이터가
북적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은 김교수님의 사무실은 맨 꼭대기층인
21층에 있다는 것.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야지, 안그러면 나는 제대로 된
연애질 한번 못해보고 처녀귀신이 되어버릴 거다.
오늘도 북적거릴 엘리베이터 안을 생각하며 한숨을 짓는데, 어라?
엘리베이터앞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 점심시간이라 그런가?
나는 행운을 잡았다 생각하며 막 닫히려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레포트가 가득 담긴 포트폴리오를 던졌다. 엘리베이터 문은 다시 열렸고,
나는 포트폴리오를 집어들고 '감사합니다'하고 외치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허걱, 그런데 이게 왠떡인가! 간밤의 뱀꿈이 싱숭생숭하다 싶었는데,
그게 반대였나보다. 엘리베이터 안엔 나와, 아까 그 근육질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잘생긴 사람밖에 없었다. 베이지색, 면으로 되어있는 힙합바지, 초록색 박스티에
청자켓. 간단한 차림이었는데도 귀티와 카리스마가 좔좔 흐르는 당신은 누구인가요♡
(아까 유진이가 말했듯이 결국 얼굴 보고 감탄하기만 할거면서 나는 남자를 되게나
밝혔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곤 21층 버튼을 눌렀다.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있고,
검은색 구찌가방을 매고있었다. 아앗>_<나랑 똑같은가방이잖아~ 하면서 감탄하는데,
잘생긴 그녀석의 흥얼거리던 노랫소리가 멈추고, 빨간 입술이 열린다♡
(지금 현재, 유진이는 내가 민우의 빨간 입술을 보고 침을 꼴깍꼴깍 삼킬때마다
아줌마티를 낸다고 한다. 변태같대나 뭐래나)
오오, 그래요, 왕자님, 어서 나에게 고백을 하세요>_<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고여있던 침이 바싹 말라가는 순간-,
그녀석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아앗, 왕자님, 아무리 내가 맘에 든대도 이건 너무 빠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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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흘-_- 떳다신화(http://cafe.daum.net/shzzing)에서 연재하고 있는
노래하는 신데렐라라는 소설이랍니다.
읽든지, 말든지. 단, 태클은 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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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시간
[소설]○ 노래하는 신데렐라♬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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