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과 사무엘 시대의 개막
삼상 3:1-21
Ⅰ 사무엘 시대의 개막은 야훼의 개혁 의지
사무엘상 1-2장에서 타락한 엘리의 가문과 경건한 엘가나의 가정을 대조하는데, 이는 분명한 목표를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무엘 출현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무엘상 3장은 사무엘상 1-3장이 이야기하고 있는 사무엘 이야기의 목표를 달성하는 장으로 규정할 수 있다. 즉 사무엘상 3장은 타락한 엘리 가문의 몰락이 기정사실화 되고, 엘리의 가문을 대신한 엘가나 가문의 사무엘이 야훼의 대리자로 출현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야훼는 불변의 존재이다(시 102:27; 말 3:6; 히 13:8; 약 1:17). 야훼의 성품은 창조 이전부터 마지막 날까지 그리고 영원까지 변함이 없다. 그 분의 창조 목적도 불변이고, 구속의 의지도 역시 불변이다. 반면,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구속의 은혜를 속히 잊고, 야훼를 떠나는 존재이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변함없는 구속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이미 변해버린 자들을 대신할 새로운 사역자들을 항상 준비하신다.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작업 이것이 하나님의 '개혁'(reform)이다. 엘리의 가문이 변형됨으로서 본래의 모습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무엘을 등장시켰고, 중세교회가 본래의 모습에서 변형됨으로서 개혁주의 교회를 등장시키셨다. 변함이 없는 구속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항상 본래의 모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도는 항상 성경을 통해 자신의 현재를 바라보고,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많이 있지만, 개혁의 방안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모두 자기중심적인 이야기들뿐이다. 그러나 방안은 하나님이 정하시고, 하나님이 실행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어떤 방법으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실지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다. 변화의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Ⅱ 제사장을 대신하는 사무엘 (삼상 3:1-9)
하나님의 개혁을 필요로 하는 시대의 특징이 사무엘상 3:1-3에 잘 나타나있다. 사무엘상 3:1은 이 시대의 특징을 "야훼의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사무엘상 3:2은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잘 보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이는 야훼의 말씀과 이상이 흔하지 않은 이유가 야훼의 직무태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엘리 가문의 직무태만으로 인한 것임을 의미다. 거듭 말하거니와, 야훼는 불변의 존재이시다. 자기 백성이 타락하였다고 해서, 그 백성을 향한 자신의 역할을 중단하시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백성이 타락한 시대일수록 더욱 최선을 다하시는 성품의 소유자이시다(마 9:13; 막 2:17; 눅 5:32; 딤전 1:15 등을 참조하라.). 문제는 야훼의 대리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사역자의 본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심한 변형을 일으켜 영적 기형아가 되어 야훼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와, 야훼의 이상을 볼 수 있는 눈의 기능이 크게 훼손되었다는 점이다. 바로 그 점이 야훼의 말씀과 이상을 드물게 만든 것이다.
한편, 사무엘상 3:1을 신학적 관점으로 볼 때, 매우 미묘한 직제의 변화가 보인다. '야훼의 말씀'과 '이상'이란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주로 야훼께서 선지자들에게 계시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전문 용어이다(삼하 7:4; 렘 1:2; 겔 1:3; 호 1:1; 시 89:19; 겔 22:28). 선지자들은 독특한 청력과 시력으로 야훼의 뜻을 앎으로서 일반백성들보다 영적으로 우월한 위치에서 야훼의 사역을 수행한다. 반면, 제사장은 주로 백성들을 대표한 제의의식을 통해 야훼께 나아가며, 그 곳에서 야훼의 말씀을 들어 백성들을 가르친다. 제사장의 사역과 선지자의 사역은 목적은 동일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서로 독특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무엘상 3:1에서 '야훼의 말씀'과 '이상'이 언급되고 있다는 것은 야훼의 대리자 역할이 제사장 중심에서 선지자 중심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사무엘상 3:2-3절에 주목해야 한다. 제사장 엘리는 눈이 어두워 자신의 처소에 누웠고, 그와 아들들을 대신하여 사무엘이 법궤가 모셔진 야훼의 성소에 누웠다. 사무엘은 선지자(삼상 3:20), 그리고 '쇼트팀'(삼상 7:15-17)으로 사역하였지만 제사장 가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성소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그가 엘리로부터 제사장 수업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그가 무너진 제사장 가문을 대신하여 제사장의 사역도 병행할 것임을 예고한다. 사무엘상 7:9은 사무엘이 제의의식을 주관하였고, 야훼께서는 그런 사무엘에게 응답하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야훼께서는 선지자 사무엘이 무너진 제사장 가문을 대신하여 제사장의 사역도 병행토록 사명을 주셨음이 분명하다. 후에 사울이 스스로 제사장이 되어 번제를 드렸을 때, 호되게 책망을 받은 일은(삼상 13:1-15) 제사장의 역할이 누구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닌 야훼께서 선택하신 특별한 사람(사무엘)이 한시적으로 주어진 사역임을 말하고 있다. 다윗 시대에 이르러 제사장직과 선지자직이 명확하게 분리된 점을 감안한다면, 선지자의 제사장직 겸임은 특수한 상황에서의 예외적인 직제였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사무엘에게는 엘리의 도움이 필요했다. 어린 사무엘은 야훼께서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가 야훼의 음성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3번씩이나 엘리에게 찾아 "부르셨습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엘리는 경험을 통해 사무엘을 부르는 음성이 야훼의 음성임을 직감하고 사무엘에게 야훼와 대화하는 법을 가르친다(삼상 3:4-9).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두 가지의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 하나님의 신탁을 듣는 것과 사람의 말을 듣는 것과 매우 유사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신탁을 듣는 것과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면, 사무엘이 엘리가 부르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무엘은 3번씩이나 반복해서 엘리에게 가서 "부르셨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그가 철저하게 순종적인 인물임을 알게 한다. 아마 야훼께서는 자기에게 철저하게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셨고, 사무엘은 그에 합당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Ⅲ 사무엘에게 임한 야훼의 신탁 (삼상 3:10-18)
엘리의 가르침으로 야훼와의 대화 방법을 알고 돌아온 사무엘은 다시 잠에 든다. 이 때 야훼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신다(삼상 3:10). 여기서 야훼께서 사무엘을 만나시는 장면은 눈여겨 볼만하다. "야훼께서 임하여 서서 부르셨다"라고 하는데, 이는 매우 친근한 접근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계시의 현실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무엘은 매우 생생하게 야훼를 체험한 것이다. 야훼께서는 사람이 부르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그리고 옆에 누군가가 서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친근하고도 현실성 있게 사무엘에게 다가오셨다.
사무엘에게 임하신 야훼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 가문의 파멸을 예고하였던 그 신탁을(삼상 2:27-34) 다시 확인하면서 그것은 엘리 가문이 자청한 파멸이었다는 말씀을 덧붙인다(삼상 3:13).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그 직무에 충실하지 않고, 또한 그 타락을 제어할 장치가 없는 것은 결국 스스로 파멸을 부르는 일임을 상기시킨다. 사람은 누구나 타락의 위험에 노출된 존재이므로 제어장치 즉 좋은 인도자가 필요하다.
사무엘상 2:27-34의 신탁과, 사무엘상 3:10-18의 신탁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보인다. 즉, 사무엘상 2:27-34의 신탁이 엘리 당대가 아닌 가까운 미래에 당할 재난을 말하고 있다면, 사무엘상 3:10-18의 신탁은 엘리 당대에 당할 재난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엘리 당대에 당한 재난은 4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바, 이 재난은 그의 가문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재난이기도 하다.
사무엘은 이 신탁을 엘리에게 알리기를 꺼렸다. 스승의 가문이 파멸을 맞이할 것이란 신탁을 입으로 옮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는 사무엘에게 진실을 요구한다. 진실을 숨기면 천벌을 받을 것이란 위협으로 진실을 말할 것을 간원한다(삼상 3:17). 그리고 사무엘이 진실을 말하자 야훼의 선포를 매우 품위 있게 받아들여 야훼의 뜻에 순응하면서 자신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다(삼상 3:18). 그는 아들들의 신앙교육에는 실패하였지만, 야훼의 뜻에 순종해야할 자임을 알고 있었고, 야훼의 뜻을 거스를 수도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의 잘못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7)
자식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은 자식을 버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자식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하는 것이 자식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자식의 입장에 맞추려는 태도는 자식을 더 사랑하는 태도로서 자식의 재난을 예약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식을 하나님의 입장에 맞추려는 태도는 자식의 일생이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은혜로 채워질 것이다. 엘리는 그런 면에서 실패한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야훼의 뜻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Ⅳ 선지자로 인정받는 사무엘 (삼상 3:19-21)
엘리 가문이 파멸의 길을 가고 있는 순간에도 사무엘은 야훼와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그의 말은 진실했고,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삼상 3:19). 이에 모든 이스라엘은(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그가 야훼께서 선지자로 세운 사람임을 인정했다. 야훼의 신탁은 진실이기에 야훼의 신탁을 전하는 사람의 말은 진실되고, 그 진실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인정받게 한다.
우리는 여기서 사무엘 사가의 의도를 볼 수 있다. 사무엘 사가는 사무엘상 3:1에서 "야훼의 말씀과 이상이 흔하지 않았다"는 말로 시작했다. 그런데 사무엘 이야기를 마치는 사무엘상 3:21에서 "야훼께서 실로에서 야훼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고 말함으로써 야훼의 말씀의 회복되고 있음을 나타내었다. 즉 야훼와 동행하는 자에게는 야훼의 말씀이 왕성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복습하기 (3)
1. 사무엘상 1-3장의 '사무엘 이야기'에서 3장의 위치를 말해보라.
2. "야훼의 말씀과 이상이 희귀하였다"는 표현과 "엘리의 눈이 어두워졌다"는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삼상 3:1-2)
3. 사무엘상 3:1의 "야훼의 말씀과 이상"이란 표현은 제사장과 선지자 중 어떤 사역자들에게 해당하는 용어인가? (삼하 7:4; 렘 1:2; 겔 1:3; 호 1:1; 시 89:19; 겔 22:28)
4. 사무엘이 성소에서 잠을 잔다는 기사와(삼상 3:3), 사무엘이 제사할 때 야훼께서 응답하셨다는(삼상 7:9)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당시 신앙공동체의 제사장직에 대하여 간단히 말하라.
5. 사무엘이 3번씩이나 야훼의 부름을 받았으나, 엘리의 부름으로 착각한 기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 두 가지를 말하라(삼상 3:4-9). 그리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라.
6. 사무엘에게 임하신 야훼께서 "서서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부르셨다 표현이 의미하는 바를 말하라. (삼상 3:10)
7. 사무엘상 2:27-34의 신탁과, 사무엘상 3:10-18의 신탁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8. 자신의 가문에 재난이 임할 것이란 신탁을 들은 엘리는 매우 품위있게 받아들인다. 그는 자식교육에는 실패하였으나, 야훼의 뜻은 꺾을 수 없으며, 다만 순응해야 함을 보인다. 이와 같은 엘리의 불행을 통해 자식에 대한 성도의 올바른 태도를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삼상 3:18; 마 10:37을 참고하여)
9. 사무엘상 3:1과 사무엘상 3:21을 비교하여, 저자의 의도를 말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