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합과 자연수
19세기 후반 독일의 칸토어(Cantor, G.; 1845-1918)가 창안한 집합은 현대 수학에서 기초가 되는 개념으로 논리적 사고 방법을 표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스 철학에 뿌리를 둔 논리학은 19세기에 들어 영국의 불(Bool, G.; 1815-1864)과 드 모르간 등에 의하여 수리논리학으로 발전되었다.
수학은 사고의 논리적 체계라고 할 수 있는데 집합과 논리를 사용하면 복잡한 개념을 정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하고 추론할 수 있다.
<대표적인 내용>
혈액형
혈액형은 적혈구형, 백혈구형, 혈청형, 효소형 등 4가지 분류방식으로 나뉘어진다.
여기서는 적혈구형 중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ABO식과 Rh식에 대하여 알아보고, 이를 벤 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내어 보자.
첫째, ABO식은 1901년 란트슈타이너가 사람의 수혈 과정 중에 발견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4가지 혈액형 분류이다.
(A형)={x|x는 응집원 A만 가진 피}
(AB형)={x|x는 응집원 A와 B를 가진 피}
(O형)={x|x는 응집원이 없는 피}
둘째, Rh식은 1940년 란트슈타이너와 위너가 발견한 것으로 원숭이의 혈구로 토끼를 면역시켜 얻는 항체에 사람의 적혈구가 응집되는 것을 Rh+형, 응집되지 않는 것을 Rh-형이라고 한다.
수혈을 할 경우에는 ABO식과 Rh식이 함께 고려된다.
따라서, 이상의 관계를 종합하면 위의 오른쪽 그림과 같이 벤 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낼 수 있다. 여기서, A+형은 Rh+A형을, A-형은 Rh-A형을 뜻한다.
우리는 가끔 혈액을 급히 필요로 한다는 방송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이와 같은 상식을 알고 있으면 자신의 피를 헌혈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2. 수와 식
수에 대한 연구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무리수의 발견으로 시작되었고, 수의 개념은 19세기에 이르러 실수까지 확장되었다.
한편, 16세기에 이탈리아의 카르다노(Cardano, G.; 1501-1576)가 발견한 허수는 18세기에 독일의 가우스(Gauss, K.F.; 1777-1855)가 복소수를 좌표평면에 나타냄으로써 수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현재 쓰이고 있는 허수 단위 i는 스위스의 오일러(Euler, L.; 1707-1783)가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수와 식의 문자나 기호의 사용은 '대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비에트의 공이 크다.
<대표적인 내용>
바코드(bar code)
우리는 상품, 책 등에서 바코드를 많이 보게 된다. 상품이나, 책 등에 바코드를 붙이는 이유는 팔린 물건의 종류와 수량들을 컴퓨터에 의하여 바르고 쉽게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바코드는 각 숫자에 따라 선의 굵기와 개수가 다른 줄무늬의 배열이다.
바코드에는 13자리 숫자(30개의 줄무늬)로 된 표준형과 8자리 숫자(22개의 줄무늬)로 된 단축형이 있다. 다음은 표준형에 대한 설명이다.
바코드는 흰색 바와 검은색 바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양쪽 끝에 두 줄의 바가 바로 시작과 끝을 나타낸다.
중앙의 두 줄의 바는 생산국가, 제조업체 등의 정보가 들어있는 영역을 구분해 준다. 바코드는 일반적으로 국가 식별코드 3자리, 제조업체 코드 4자리, 상품코드 5자리, 검사 숫자 1자리 등 전체 13자리로 구성된다.
바코드를 읽는 기계는 줄무늬와 함께 13자리의 숫자도 읽어서 옳게 읽었는지 판단한다. 13개의 숫자 중 가장 오른쪽의 검사 숫자의 판단 방법은 다음과 같다.
검사 숫자를 제외한 12개의 숫자에 대하여
10-[{(홀수 번째 숫자의 합)+(짝수 번째 숫자의 합)×3}의 일의 자리의 수]=(검사 숫자)가 성립하면 옳게 읽은 것이다.
예를 들어, 바코드에 880 1234 56789 3가 표시되었다면
10-[{(8+0+2+4+6+8)+(8+1+3+5+7+9)×3}의 일의 자리의 수]=3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바코드는 유통 업체뿐만 아니라 병원의 환자 관리카드, 서점의 서적 관리, 우체국의 우편물 관리, 목장의 가축 관리를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이용이 확대되고 있다.
3. 방정식과 부등식
방정식은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시대로부터 다루어져 왔으며, 중국에서는 3세기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수학책 중의 하나인 「구장산술」에는 이차방정식에 관한 문제가 많이 다루어져 있으며, 방정식이라는 말은 이 책에서 유래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세기에 구장산술을 풀이한 책인 「구장술해」가 남병길에 의하여 쓰여졌다.
삼차방정식의 풀이는 16세기에 이탈리아의 타르탈리아(Tartaglia, N.; 1500?-1557)와 카르다노(Cardano, G.; 1501-1576)에 의하여 알려졌으며 사차방정식의 풀이는 이탈리아의 페라리(Ferrari, L.; 1522-1565)가 발견하였다. 또, 독일의 수학자 가우스는 1799년에 복소수의 범위에서 'n차 방정식은 n개의 해를 갖는다(대수학의 기본 정리)'는 것을 증명하였고, 1826년 노르웨이의 아벨(Abel, N.H.; 1802-1829)은 오차 이상의 방정식은 대수적인 풀이가 불가능함을 증명하였으며, 같은 시기에 프랑스의 갈루아(Galois, E.; 1811-1832)는 현대대수학의 중요 개념인 '군'을 이용하여 오차방정식이 대수적으로 풀리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구하였다.
연분수
분수 3/5은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이러한 번분수를 연분수(continued fraction)라고 한다.
위와 같이, 유리수는 유한연분수로 나타내어지고, 그 역도 성립한다.
그러나 오른쪽과 같은 무한연분수는 무리수이고, 또 무리수는 무한연분수로 나타내어진다.
이제, 오른쪽 식의 값이 얼마인지 알아보자.
주어진 식을 x라고 하면 오른쪽에서 검게 칠한 부분은 x와 같으므로 x=x+1/x
x2-x-1=0에서 x=(1±√5)/2, 그런데 x>0이므로 x=(1+√5)/2
한편, 무리수 √2는 과 같이 나타내어진다.
4. 도형의 방정식
평면기하는 B.C. 300년 경 유클리드(Euclid; 330?-275? B.C.)에 의하여 통합, 정리되었고, 그의 「원본」은 19세기까지 인류의 수학 교과서였다.
17세기에 이르러 프랑스의 데카르트와 페르마(Fermat, P.; 1601-1665)가 직교좌표 축의 기하와는 다른 해석기하를 차안하였다. 그리고 약 200년 후 독일의 가우스(Gauss, K.F.; 1777-1855)와 러시아의 로바체프스키(Lobachevskii, N.I.; 1793-1856), 헝가리의 볼리아이(Bolyai, J.; 1802-1860), 독일의 리만(Riemann, G.F. B.; 1826-1866) 등에 의하여 현대 기하는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내용>
선분 AB의 내분점을 P라고 할 때 이면, 를 황금비라고 하며 이렇게 내분하는 것을 황금분할이라고 한다. 아래 그림에서 라고 하면 1:x=x:(1-x). 이것을 풀면 x= (-1± 5)/2. 그런데 x>0이므로 x= (-1+ 5)/2 =0.61803…이다.
이것이 황금비의 값이고, 황금비는 근사적으로 5:8이다.
황금비의 균형과 조화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여 고대로부터 신성 비례로 여기며 중요시하였던 것이다.
황금비는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 조형 예술의 분야에서 통일의 원리로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엽맥, 종자의 형상, 조개껍질의 소용돌이 등 조화가 잡힌 자연물이나 음악의 영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면, 개선문, 파르테논 신전 등에도 황금비가 적용되었다.
5. 함수
함수는 여러 가지 현상을 나타내는 수단이며, 수학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개념이다. 함수란 용어는 독일의 라이프니츠(Leibniz, G.W.; 1646-1716)가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함수의 기호 f(x)는 스위스의 오일러(Euler, L.; 1707-1783)가 처음 사용하였다.
또, 프랑스의 코시(Cauchy, A.L.; 1789-1857)는 두 변수 사이의 관계를 함수라고 정의하였으며, 프랑스의 디리클레는 두 집합 사이의 관계로서 함수의 정의를 명백히 하였다.
<대표적인 내용>
함수의 유사어
가. [그림1]은 두 집합 A,B의 원소들 사이의 하나의 대응(correspondence)을 보여주고 있다. 이 대응은 두 집합과 하나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나. [그림2]는 하나의 관계(relation)를 나타낸 것이다. 이 관계를 R1이라고 하면 R1(x,y): 'x y'로 나타낼 수 있다. 집합 {(6,3), (6,5), (3,3), (10,3), (10,5), (10,7)}을 관계 R1의 그래프라고 한다. 관계의 그래프는 두 집합의 곱집합의 부분집합이다.
다. [그림3]과 같은 R2는 R2(x,y): 'x의 약수는 y이다.'라고 하면 하나의 x에 하나의 y가 대응된다. 이런 관계를 사상(mapping)이라고 한다.
라. 정의역과 공역이 모두 수의 집합인 경우의 사상을 특히 함수(function)라고 한다.
마. 정의역과 공역의 구조가 같은 사상을 변환(transformation)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좌표평면 위의 점(x,y)를 점(x+y,xy)에 대응시키는 사상은 변환이다.
바. A×A→A인 사상을 특히 이항연산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실수의 덧셈은 하나의 연산이다. 연산 기호 +를 사상기호로 보면 a+b=c는 +(a,b)=c로 나타낼 수 있다. 실수 전체의 집합을 R이라고 하면 +는 +: R×R→R인 사상이다.
6. 지수, 로그
근대의 지수론이나 지수기호 방면에 관한 최초의 발견자는 시몬 스테빈(1548-1620)이었다. 그의 지수기호는 소수기호와 관련하여 설계한 것으로 미지수를 나타내는데 ○를 사용하고 그 동그라미 속에 지수를 기입했다. 즉 ①, ②, ③은 각각 x, x2, x3을 나타냈다.
그는 이 기호를 분수지수에까지 확장했다. 예컨대, 등은 각각 x1/2, x1/3, x2/3을 의미한다. 그의 기법에 따르면 3①Msec①Mter②는 3xyz2이다. 여기서 M은 곱하는 거을 뜻하고 sec는 제2의 미지수, ter는 제3의 미지수를 나타내고 있다. 그는 모든 수는 어떤 길이 또는 같은 근이 있는 거듭제곱에 의해서 동등하게, 적당히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또 '제곱의 제곱', '3제곱의 제곱' 등과 같은 합성된 표시법을 배척하고 '4제곱', '6제곱'과 같은 지수로써 그것을 나타냈다. 미지수를 나타내는 스테빈의 기호는 버려지고 말았으나 그의 지수 기호의 원리는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것이다.
미지수를 나타내는 현대의 형식은 데카르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1637년의 저서 '기하학(Geometric)'에서 알파벳의 끝쪽 글자 (x,y,z)로 미지량(未知量)을 나타냈다.
우리의 지수기호 a4과 같은 것은 데카르트에게서 찾아볼 수 있으나 an과 같은 일반지수 또는 음의 지수 및 분수지수도 그에게는 채용되지 않았다. 이 마지막 점에서 데카르트는 스테빈의 사상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제곱근 구하기의 경우, 데카르트는 지수에 의해서 근을 나타내지 않았다.
예를 들면, 3제곱근을 나타내는데 데카르트는 글자 C를 사용했다. 그래서 를 뜻한다. 이와 같이 해서 제곱근 구하기의 초기의 기호 2개가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한편, 로그의 기원을 살펴보면, 케플러(Kepler, J,; 1571-1630) 이후 근세의 천문학자들은 대단히 큰 수의 계산을 하는 데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큰 수의 계산을 빠르게 계산하는 방법을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의 수학자인 네이피어(Napier, J.; 1550-1617)는 빠른 계산방법을 연구하던 끝에 두 수의 곱이나 몫의 근사값을 작은 수의 합이나 차로 바꾸어 계산하여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1614년 '로그에 관한 놀랄만한 법칙에 대한 기술'이라는 작은 책자로 발표하였다. 그의 로그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로그함수의 개념이 아니고, 정의를 기하학적으로 내리고 있다.
네이피어의 로그공식은 log1≠0이기 때문에 실제로 이용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후에 옥스퍼드대학의 교수가 된 브리그스는 네이피어가 로그를 발표한 이듬 해에 그를 방문하여 경의를 표하였고 이 자리에서 로그 1의 값을 0, 로그 10의 값을 적당한 10의 거듭제곱으로 하는 것이 더욱 편리할 것이라는 데에 합의를 보았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상용로그의 시작이고 브리그스의 로그라고도 한다.
브리그스는 그 후 로그의 연구에 전념하였고, 1924년에 발표한 '로그의 산술'에는 1에서 2만까지와 9만에서 14만까지의 14자리 상용로그표가 들어있다. 그리고 2만에서 9만까지는 그 후에 보충되었다.
이후 로그는 전 유럽에 퍼졌고, 그 유명한 독일의 수학자 라플라스도 "계산하는 시간을 아끼게 되어, 천문학자의 수명을 배로 늘려 주었다."라고 까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로그함수는 원래 지수의 개념과 관계없이 탄생하였으나 '지수함수의 역함수'로서의 로그는 18세기에 탄생하였다. 지수함수의 개념은 로그함수의 개념보다 늦은 17세기말 라이프니츠(Leibniz, G.W.; 1646-1716)에 의하여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스테빈에 의한 조직적인 지수기호가 개발된 후이다.
요약하면, 17세기 초반 케플러의 법칙이 발표된 후, 천문학자들은 큰 수의 계산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러한 불편을 해결한 사람은 영국의 네이피어였으며, 그는 큰 수의 곱셈과 나눗셈을 덧셈과 뺄셈을 이용하여 구하는 로그를 발견하였다.
한편, 영국의 브리그스(Briggs, H.; 1556?-1631)는 네이피어의 로그 공식을 사용하기 쉽도록 개선한 상용로그를 발견하였다. 로그는 천문학, 항해술, 공학, 상업계산 등의 분야에 널리 응용되고 있다.
14C에 의한 연대 측정
방사성 물질은 자연적으로 입자를 방사하여 붕괴된다. 이 때, 남아있는 방사성 물질의 질량은 붕괴하기 시작한 이후 경과하는 시간에 따라 지속적으로 감소하는데, 원래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반감기라고 한다.
14C는 태양으로부터의 방사능이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로 있는 보통의 탄소에 충격을 가할 때 형성된다.
그러므로 탄소동화작용을 하는 식물들은 소량의 14C를 반드시 포함한다. 14C는 흡수된 후 반감기되는 비율로 정상 탄소로 서서히 환원한다. 이 때, 남은 14C의 양은 그 식물이 14C를 흡수한 이후 경과한 해의 수에 따라 지속적으로 감소한다. 식물 안에 남아있는 14C는 5750년이 지나면 반으로 줄어들고, 또 5750년이 지나면 다시 반으로 줄어든다.
t년이 경과한 후 식물에 남아 있는 14C의 양을 p%라고 할 때, 이 관계를 식으로 나타내면 p=102×2- t/5750이다.
[연구문제]
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나무는 캘리포니아 화이트 마운틴에 있는 강추목으로 나이테가 4,000여 개나 된다고 한다. 이 때, 가장 오래된 나이테에는 원래의 14C가 얼마의 비율로 남아 있겠는가?
나. 반감기가 25년인 방사성 원소 스트론튬 90Sr이 있다. 이 물질의 현재의 질량이 100g이라고 할 때, 이 물질의 100년 전의 질량은 몇 g이었겠는가?
7. 삼각함수와 복소수
기원전 150년경 그리스의 히파르코스(Hipparchos; 190?-125? B.C.)에 의하여 창시된 삼각비는 이미 고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에서 측량, 천체 관측, 항해술 등 실용적인 목적에서 널리 응용되어 왔다.
삼각비의 연구를 삼각법이라 하며, 이것은 15세기에 이르러 독일의 레기오몬타누스(Regiomontanus; 1436-1476)에 의하여 체계화됨으로써 수학의 한 분야가 되었고, 17세기에 들어 일반각의 삼각함수로 확장되었다.
한편, sin, cos과 같은 기호는 직각삼각형에서 한 예각에 대한 변들 사이의 비였다.
삼각함수는 독일의 뮐러(Müller; 1436-1476)가 수학의 한 분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삼각함수에서 일반각이 인식된 것은 영국의 뉴턴(Newton, I.; 1642-1727)과 스위스의 천재 오일러(Euler, L.; 1707-1783)에 의하여 삼각함수의 급수 전개가 행해진 이후이다.
한편, 16세기 초에 이탈리아의 카르다노(Cardano, G.; 1501-1576)가 처음으로 을 사용했고, 프랑스의 지라르(Girard, A.; 1595-1632)가 최초로 허수를 방정식의 근으로 인정하였다. 오일러는 을 i로 기호화하여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독일의 가우스(Gauss, K.F.; 1777-1855)는 복소수를 좌표평면에 도입하였다.
그리고 드 무아브르는 그의 저서 「급수와 구적의 해석학(1730)」에서 드 무아브르의 정리를 서술하였다.
<대표적인 내용>
가. 바이오리듬(biorhythm)
사인곡선과 코사인곡선을 통틀어 사인파라고 한다.
현실 세계의 다양한 현상 중에는 두 변수의 관계를 그래프로 그리면 사인파로 나타내는 것이 많다.
바이오리듬이란 단어는 그리스어의 「바이오스=생명」과 「리스오스=정규적 운동」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바이오리듬 이론은 인간의 생물학적 기능이 출생 때부터 시작되는 내부의 세 가지-신체(physical), 감정(sensitivity), 지성(intellectual)-의 리듬으로 조절된다는 주장으로 PSI 학설, 인간주기율, 생물시계, 체내시계 등으로 불리운다.
이 이론은 1906년 독일의 W. 프리츠가 환자의 기록 카드를 조사하여 발견한 것으로, 개인의 생물학적 기능이 출생 때부터 시작되어 각각의 내부의 신체 리듬, 감정 리듬, 지성 리듬으로 조절된다는 학설이다. 주기별로 반복되는 각 리듬은 다음 그림과 같은 주기를 가지며 +쪽은 적극기, -쪽은 소극기, 0은 불안정 상태를 나타낸다.
바이오리듬의 곡선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개인별로 출생 후부터 그 날까지의 날 수를 계산하여 리듬의 상태를 예측하기 위한 것으로, 스포츠, 의학은 물론 직장 등에서 능률 유지, 안전 관리 등에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연구문제] 위의 각 리듬의 주기를 말하고, 1980년 7월 1일에 태어난 사람이 1996년 크리스마스날에 수학 공부, 탁구 시합, 음악감상 중 어느 것이 가장 효과가 있을지 예상하여 보아라.
좌표평면에서 점 P의 위치를 x,y좌표를 써서 P(x,y)로 나타낸 것을 직교좌표라 하고, P의 위치에 대응하는 복소수 x+yi의 극형식을 r(cosθ+isinθ)라고 할 때, P의 위치를 P(r,θ)로 나타낸 것을 극좌표라고 한다. 두 좌표계는 다음 관계식으로 서로 변환할 수 있다.
x=rcosθ, y=rsinθ, , cosθ= x/r , sinθ= y/r
예) P(3, 120°)이면 x=3cos120°= -3/2 , y=3sin120°= 3√3/2이므로 직교좌표는 (-3/2,3√3/2)
원 는 r=2 또는 r=2, 0≤θ<2π로 나타내어진다. 이것을 이 원의 극방정식이라고 한다.
극방정식 θ=π/6는 y=(tan π/6)x= 1/√3 (x≥0)인 반직선이다.
8. 행렬
행렬과 행렬식(Determinant)의 기원은 기원전 2세기부터 4세기경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17세기말까지 이 개념은 재현되거나 발전되지 않고 표류되었다. 행렬과 행렬식의 기원은 연립 일차방정식의 체계의 연구를 통해서이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연립방정식을 연구했으며 이들의 일부는 남아있는 점토 서판에 보존되었다. 예를 들면, 약 기원전 300년의 날짜가 기입된 서판은 다음의 내용을 담고 있다.
총 면적이 1800제곱 야드인 두 땅이 있다. 한 농민은 1제곱 야드당 2/3 부셸(bushel: 衡量, 약 35리터, 8갤런)의 비율로 곡물을 수확했으나 다른 농민은 1제곱 야드당 1/2 부셸의 비율로 곡물을 수확했다. 전체가 1100부셸이었다면 각 땅의 크기는 얼마이냐?
기원전 200-300년 사이에 중국인들은 바빌로니아인들보다 행렬에 더욱더 근접했다. 사실 한 왕조 때 쓰여진 'Nine Chapters of the Mathematical Art'란 책자가 행렬에 관한 처음의 예로 알려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처음 것의 세 묶음, 둘째 것의 둘, 셋째 것의 한 묶음들이 39의 양이 되는 세 종류의 옥수수가 있다. 처음 것의 둘, 둘째 것의 셋, 셋째 것의 하나인 이들은 34라는 양이 된다. 그리고 처음의 하나, 둘째 것의 둘, 셋째 것의 셋 이들은 26이란 양을 만든다. 각 형태의 한 묶음에 포함된 옥수수의 양은 얼마인가?
입안자는 때때로 아주 주목할 만하다. 그는 계산대 위의 표로서 세 미지수를 갖는 세 일차방정식의 체계의 계수를 만들었다.
근래 20세기 방법은 비록 그 방법이 동일하다고 할지라도 일차방정식을 열(column)을 사용하기보다는 행(row)을 사용하여 표기한다.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입안자가 기원전 200년에 독자에게 3을 중간 열을 곱한 후 오른쪽 열을 가능한 만큼 몇 배하여 빼며 같은 방법으로 열도 정리하면 위의 중간과 같다.
다음으로 왼쪽 열에 5를 곱한 후 중간 열을 4배하여 뺀 후 정리하면 위의 오른쪽과 같다.
이 해로부터 옥수수의 세 번째 형태는 발견될 수 있으며, 두 번째 형태와 첫 번째 형태는 역으로 대입함에 따라 구해질 수 있다. 가우스 소거법으로 알려진 이 방법은 19세기초에 이르기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Ars Magma(1545)에서 Cardan은 두 일차방정식의 체계에 대한 해를 구하는 규칙을 주었는데 그는 이를 규칙들의 모체에 전이시키는 regula de modo라고 불렀다. 이 규칙의 모체는 비록 Cardan은 마지막 단계를 만들지 못했지만 Cramer의 법칙이 필수적이다. 그러기에 Cardan은 행렬식의 정의에 이르지 못했으나 뒷 궁리의 이점과 함께 우리는 그의 정의에 이르게 하는 그의 방법을 알 수 있다.
기본적인 행렬이론의 많은 표준적인 결과들은 처음 행렬이 수학적 조사대상이 되기 오래 전에 처음 나타났다. 예를 들면, de Witt는 1660년에 Descartes' G?m?rie의 라틴어판 논평의 일부로서 출판한 'Elements of curves'에서 어떻게 축들의 변환이 원추곡선에 대한 주어진 방정식을 canonical form으로 간단하게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대칭행렬로 대각화하게 하나 de Witt는 결코 이런 용어들에서 생각할 수 없었다.
행렬식에 대한 생각은 일본의 Seki는 확실히 처음 출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유럽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1683년 Seki는 확실히 앞에서 진술된 중국의 방법에서의 표로 쓰여진 행렬의 방법을 포함하는 숨겨진 문제의 풀이법을 썼다. 행렬식에 대응되는 어떤 말도 없이 Seki는 여전히 행렬식을 소개했고 예제들에 근거한 그들을 계산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얻었다. 그의 행렬식을 이용하면 Seki는 2행 2열, 3행 3열, 4행 4열 및 5행 5열의 행렬식을 찾을 수 없었으며 일차방정식의 체계가 아닌 방정식을 푸는데 그들을 이용하였다.
같은 해 1683년에 유럽에서 행렬식의 첫 출현이 주목할만하다. 그해에 라이프니츠는 de l'H?ital를 썼다. 그는 다음 방정식의 체계가 해를 갖는데 이유는
10·21·32+11·22·30+12·20·31=10·22·31+11·20·32+12·21·30으로 설명하고 이것은 계수 행렬이 행렬식 값으로 0을 가진다는 조건이다.
여기서 라이프니츠는 수의 계수들을 이용하지 않고 두 문자를 이용했으며, 처음 표기는 그것이 일어나는 방정식의 것이고 두 번째 표기는 그것이 속하는 어느 문자를 나타낸다. 따라서 21은 a21로 쓸 수 있는 어떤 것을 나타낸다. 라이프니츠는 좋은 수학적 표기가 발전할 수 있는 열쇠라는 확신을 갖게되고 그래서 그는 계수 체계들에 대한 다른 표현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의 발표되지 않은 원고에는 1678년에 시작하여 50년의 기간동안 연구했던 계수 체계(coefficient systems) 표기의 50가지 이상의 다른 방법의 표기가 있다. 1700년과 1710년에 출판된 두 개만이 계수 체계에 대한 결과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들은 앞에서 언급된 de l'H?ital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와 같은 표기를 이용하였다.
라이프니츠는 행렬식의 용어의 어떤 조합적인 합들에 대해 'resultant'라는 용어를 이용했다. 그는 기본적인 Cramer의 법칙을 포함하는 결과들에서의 다양한 결과들을 증명했다. 그는 역시 행렬식은 어느 열을 이용함에 의해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지금은 Laplace expansion이라고 함) 그로 하여금 행렬식이라 하게 한 방정식의 계수 체계의 연구뿐만 아니라 라이프니츠는 역시 자연스럽게 행렬이론에 이르게 한 2차 형태의 계수 체계를 연구했다.
1730년에 Maclaurin은 그가 죽고 2년 후인 1748년까지 그것이 비록 출판되지 않았지만 대수의 논문(Theatise of algebra)을 썼다. 그것은 행렬식의 첫 출판 결과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2행 2열과 3행 3열 체계에 대한 Cramer의 법칙과 4행 4열의 경우에 어떻게 작업될 것인가를 나타낸다. Cramer는 'the analysis of algebraic curves(1750)'에 소개된 논문에서 n행 n열 체계들에 대한 일반적인 법칙을 주었다. 그것은 주어진 여러 점들을 지나는 평면 곡선의 방정식을 찾고자 하는 욕구에서 기인되었다. 부록에서 나타난 법칙은 논문에는 있으나 증명은 주어지지 않았다.
n열의 대상들의 순열의 수만큼이나 많은 항을 가지는 공통 분모의 n개의 분수들을 형성함에 의해 각 미지수의 값을 발견할 수 있다.
Cramer는 방정식의 어떤 계수들의 곱으로 이들 항들을 어떻게 계산하는지와 부호를 결정하는지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그는 분수들의 n개의 분모들이 그 체계의 상수항들에 의한 이 계산에서 어떤 계수들을 대치함에 의해 발견될 수 있다고 말했다.
행렬식들에 대한 연구는 정기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764년 Bezout는 1771년 Vandermonde가 했던 것처럼 행렬식들을 계산하는 방법들을 제시했다. 1772년 Laplace는 Cramer와 Bezout에 의해 소개된 방법이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으며, 내부 행성들의 궤도들을 연구한 논문에서 그는 행렬식을 이용함에 의해 실제 그것을 계산하지 않고 일차방정식들의 체계의 해를 토의했다. 그것은 Leibniz의 연구를 전혀 모르는 Laplace가 Leibniz에 의해 이용되었던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Laplace는 그 이후에 지금과 같은 이름인 determinant(행렬식)이라고 부르는 것을 'resultant'란 말을 이용했다. 그것은 Leibniz의 연구를 전혀 모르는 Laplace가 Leibniz에 의해 이용되었던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Laplace는 그 이후에 지금과 같은 이름인 determinant의 확장(전개)을 제시했다.
1773년의 논문에서 Lagrange는 3행 3열 행렬의 편리한 행렬식에 대한 정체를 연구했다. 그러나 이 설명은 Lagrange 자신이 그의 연구와 Laplace나 Vandermonde의 연구 사이에 관련성이 없음을 스스로 알았기 때문에 뒷 궁리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1773년 논문은 우리가 처음 때의 행렬식의 체적 설명(Volume interpretation)으로 생각하는 것을 포함한다. Lagrange는 O(0,0,0)과 세 점 M(x,y,z), M' (x' ,y' ,z' ), M'' (x'' ,y'' ,z'' )에 의해 형성되는 사면체의 체적을 다음과 같다고 보였다.
1/6 [z(x'y''-y'x'')+z'(yx''-xy'')+z''(xy'-yx')]
'determinant'란 용어는 Disquisitiones arthmeticae(1801)에서 Gauss에 의하여 이차 형태를 토의하다가 처음 소개되었다. 그는 이차 형태의 속성을 determinant가 결정하기 때문에 이 용어를 이용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우리의 행렬식(determinant)의 개념과 같지 않다. 같은 연구에서 Gauss가 직사각 배열에서 그의 이차 형태의 계수들을 계획했다. 그는 행렬의 곱셈과(그는 합성으로 생각을 하였고 그래서 그는 아직도 행렬 대수의 개념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차 형태의 계수들의 배열의 특별한 정황에서 행렬의 역을 서술한다.
가우스 소거법은 기원전 200년에 쓰여진 'Nine Chapters of the mathematical Art'에서 처음 나타났으며 소행성 팔라스(Pallas)의 궤도를 연구한 그의 연구에서 가우스에 의해 이용되었다. 1803년과 1809년 사이에 행해진 팔라스의 관찰을 이용하여, 가우스는 6원 1차연립방정식의 체계를 얻었다. 가우스는 계수 행렬에서 정확히 가우스 소거법인 그런 방정식들의 풀이에 대한 체계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1812년에 그것의 현대적 의미에서 'determinant'를 이용한 사람은 Cauchy였다. 그는 초기 결과들을 재증명하였고 부분적인 내용과 유사한 내용에서 그 자신의 새로운 결과를 제시했다. 1812년 논문에서 행렬식에 대한 곱셈정리는 처음으로 증명되었고, 비록 'the Institute de France'의 회합에서였지만, Binet은 곱셈정리의 증명에 포함된 논문을 읽었으나 그것은 Cauchy가 제시한 것보다 덜 만족스러웠다.
1826년 Cauchy는 n개의 변수에서 이차 형태의 정황에서 계수들의 행렬에 대한 'tableau(극적 장명, 회화적 묘사, 예술적 배열)'이란 용어를 이용했다. 그는 eigenvalue(고유치)를 발견했고 제곱들의 합에 대한 형태를 변환하는 상황에서 행렬의 대각화에서의 결과들을 제시했다. Cauchy는 역시 닮음 행렬(similar matrix)의 아이디어를 소개했고(용어가 아닌) 두 행렬이 similar하다면 그들은 같은 특성방정식(characteristic equation)을 가진다는 것을 보였다. 그는 역시 이차식 형태의 상황에서 다시 모든 실수의 대칭행렬(real symmetric matrix)은 대각화 될 수 있다고(diagonalisable) 증명했다.
Jacques Sturm은 보편적 미분방정식(ordinary differential equation)의 체계들을 풀이하는 상황에서 고유치 문제의 일반화를 제시했다. 실제 고유치의 개념은 80여 년도 더 전에 나타났으며 D'Alembert에 의해 다양한 점들에서 그것에 도달하는 질량을 가지는 현의 운동에 대한 연구함에 있어 선형 미분방정식들의 체계에 대한 논문에서 다시 등장하였다.
Cauchy나 Jacques Sturm 중 어느 누구도 그들이 소개했던 아이디어들의 실제적인 일반성을 깨닫도록 강요받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이 연구한 특별한 정황에서만이 그것들을 보았다. 약 1830년부터 Jacobi, 그 다음 1850년과 1860년에 Kronecker와 Weierstrass는 다시 특별한 정황에서 역시 행렬 결과들에 주의를 돌렸으며 이때에 선형변환의 표기를 알게되었다. Jacobi는 1841년에 행렬식에 관한 세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앨고리즘 방법에서 행렬식의 정의가 처음 만들어졌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행렬식에서의 성분들은 특별화되지 않았고 그래서 그의 결과들은 원소들이 수들 또는 그들이 함수들인 부분에 잘 적용되었다. Jacobi의 세 논문들은 널리 알려진 행렬식의 아이디어를 만들게 되었다.
역시 1841년에 쓴 논문에서 Cayley는 행렬식들의 이론에 기여한 첫 영국인으로 알려졌다. 이 논문에서 그는 현대에 표준화된 표기인 행렬식을 나타내기 위해 배열의 양쪽에 두 개의 수직선들을 이용했다.
1844년에 Eisenstein은 한 문자에 의한 선형(일차) 대입(linear substitutions)을 표시했고 곱셈에 대한 교환법칙의 불성립을 제외하고는 일상적인 수들과 같이 그들을 더하거나 곱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Eisenstein은 1844년 그의 논문에서의 인용구에서 보여진 것처럼 대수를 형성할 정도로 선형 대입(linear substitutions)의 생각을 한 최초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계산에 대한 앨고리즘은 이것에 기초될 것이며 그것은 linear system들과 사이의 상징적 방정식(정확한 상징적 방정식들은 항상 얻어진다.)에 대한 곱셈, 나눗셈, 누승법의 연산들에 대한 유용한 규칙들을 적용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일한 고찰점은 인수들의 순서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처음 '행렬(matrix)'이란 용어를 사용한 사람은 1850년 Sylvester였다. Sylvester는 항들(terms)의 직사각형 모양의 배열을 matrix라고 정의했으며 그것이 행렬 안에 포함되는 정사각 배열들로부터 다양한 행렬식들에 이르게 하는 어떤 것으로 보았다. 후에 미국을 떠나 1851년에 영국으로 되돌아온 Sylvester는 변호사가 되었으며 수학에 공통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료 변호사인 Cayley를 만났다. Cayley 행렬 개념의 중요성을 알았고 1853년 Cayley에 의해 처음으로 역행렬(the inverse of matrix)을 구하는 것을 제시한 원고를 출판했다.
1858년 Cayley는 행렬의 첫 추상적 정의를 포함한 것에 주목할 만한 행렬의 이론에 관한 'Memoir(회고록, 전기, 논문집)'를 출판했다. 그는 일찍이 그의 일반적 개념의 특수한 경우였던 일·이차변환에 대한 계수 배열을 연구했음을 보여주었다. Cayley는 덧셈, 곱셈, 상수의 곱, 역원들을 정의하는 행렬 대수를 제시했다. 그는 행렬의 행렬식을 이용한 표현으로 역행렬의 명확한 구성을 제시했다. Cayley는 역시 이차 정사각행렬들의 경우에서 행렬은 자신의 특성방정식을 만족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그의 증명에서 나타냈듯이 3차 정사각행렬에 대한 결과를 확인했다고 진술했다. "나는 어느 차수의 행렬의 일반적인 경우에서 그 정리의 형식적인 증명의 일을 책임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행렬이 자신의 특성방정식을 만족한다고 하는 것을 Cayley-Hamilton 정리라 하며 그래서 그것이 Hamilton과 관계가 있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 사실 그는 역시 4원법적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정리의 특별한 경우인 4차 정사각행렬의 경우를 증명했다.
1870년 Jordan에 의해 'Treatise on substitutions and algebraic equations'에서 Jordan canonical form이 나타났다. 그것은 소수 차의 유한체에 대한 일차대입에 대한 canonical form의 문맥에서 나타났다.
1878년에 Frobenius는 Cayley의 연구를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차 대입과 쌍차 형태(On linear substitutions and bilinear forms)'에서 행렬에 관한 중요한 저술을 했다. 이 논문에서 Frobenius는 형식들의 계수들을 다루었고 matrix란 용어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행렬의 잉여류의 대표자(representatives of equivalence classes)로서 canonical 행렬들에 관한 중요한 결과들을 증명했다. 그는 1874년과 1868년에 각각 그의 결과들이 고려된 특별한 경우들로 Kronecker와 Weierstrass를 언급했다. Frobenius는 역시 행렬이 그의 특성방정식을 만족한다는 일반적인 결과를 증명했다. 1878년 Frobenius의 이 논문은 역시 canonical form들에 관한 그의 연구에서 이용했던 행렬의 차수(rank)의 정의와 orthogonal matrix의 정의를 포함하고 있다.
정사각행렬의 nullity는 1884년 Sylvester에 의해 정의되었다. 그는 A의 nullity인 n(A)를 차수 n-i+1인 A의 모든 단축(minor)이 0인 그런 최대의 i로 정의했다. Sylvester는 행렬의 invariants(불변량)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것은 어떤 변환에 의해 바뀌지 않는 특성이다. Sylvester는 다음을 증명했다.
max{n(A),n(B)}≤n(A∪B)≤n(A)+n(B)
1896년 Frobenius는 1858년의 행렬 이론에 관한 Cayley의 Memoir(회고록)을 알게 되었고 후에 이것이 행렬(matrix)이란 용어의 시초였다. Cayley만이 2차와 3차의 정사각행렬들에 대한 Cayley-Hamilton 정리를 증명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Frobenius는 일반적인 정리를 증명한 최초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Cayley에게 그 결과를 관대하게 귀착시켰다.
행렬식의 자명한 정의는 Weistrass의 강의에서 그에 의해 이용되었고, 그가 죽은 후 'On determinant theory'란 원고에서 1903년 그 정의가 출판되었다. 같은 해 Kronecker의 행렬에 관한 강의도 사후 역시 출판되었다. 이들 두 발행물과 함께 행렬식의 현대적 이론은 여러 곳에서 있었지만 행렬 이론이 완전히 수용된 이론이 되기까지 약간 긴 시간이 걸렸다. 수학에서 적당히 자리잡도록 한 중요한 초기 교재는 1907년에 B?her의 'Introduction to higher algebra'였다. Turnbull과 Aitken은 1930년에 영향력이 있는 책들을 썼고 1955년에 Mirsky의 'An introduction to linear algebra'는 가장 중요한 대학수학의 주제 중의 하나였던 것으로 행렬이론이 그것이 현재의 중요한 역할에 이르게 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행렬(matrix)은 19세기 중엽의 실베스터(Sylvester, J, ; 1814-1897)에 의하여 처음으로 용어화 되었으며, 지금과 같은 행렬의 이론은 1858년 영국의 케일리(Cayley, A.; 1821-1895)의 논문 '행렬론'이 발표된 후, 학문적으로 체계를 갖추게 되었으며 처음으로 수학에 도입되었다.케일리의 이 논문에서 일차변환 를 로 나타내었다.
그러나 행렬을 오늘날과 같이 기호화하여 발전시킨 수학자는 독일의 프로베니우스(Frobenius, G. F. ; 1849-1917)이다.
그가 남긴 수학의 업적은 프로베니우스의 정리를 비롯하여 행렬에 대한 연구를 들 수 있으며, 그에 의하여 발견된 개념, 결과 등은 오늘날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행렬을 다루는 수학의 한 분야를 선형대수학이라고 하는데, 이 선형대수학은 자연과학을 비롯하여 공학, 경제학 등 여러 분야에 널리 응용되며, 그 중요성은 날로 증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내용>
가. 케일리·해밀턴의 정리
여기서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나. 행렬식과 크라머의 공식
다음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것은 각각 2차, 3차 행렬식의 예이며, 세 번째 것은 n차 행렬식의 일반형이다.
정사각행렬 A에 대한 행렬식(determinant)은 기호 |A|로 나타낸다. 행렬식은 행렬(matrix)과 다르며 하나의 값을 가진다. 여기서는 이차 정사각행렬의 행렬식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차 정사각행렬 의 행렬식은 로 정의한다.
따라서, 정사각행렬 A의 역행렬 A-1가 존재할 조건은 |A|≠0이다.
한편, 연립방정식 의 해는 행렬식을 써서
로 나타낼 수 있다.
이 공식은 스위스의 수학자 크라머(Cramer, G.; 1704-1752)가 발견하였다고 하여 크라머의 공식이라고 한다. 이 공식을 이용하면 연립일차방정식의 해를 쉽게 구할 수 있다.
9. 수열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Pythagoras; 572?-492? B.C.)와 그 제자들은 기하학적인 도형을 써서 1+2+3+…+n = 1/2 n(n+1)과 같은 공식을 알아냈다고 한다.
수열이 학문적으로 체계화되고 발전을 하게 된 것은 피보나치(Fibonacci; 1180-1250), 가우스(Gauss, C.F. ;1777-1855), 푸리에(Fourier, J.B.J. ; 1858-1932)에 의하여 그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문제 해결방법인 알고리즘은 아라비아의 알콰리즈미(Alkhwarizmi; 780-850)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폰 노이만에 의하여 발전되어 오늘날과 같은 컴퓨터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여기서 알고리즘이라는 용어는 중세 아라비아의 수학자 앨거리드의 이름에 어원을 갖는다. 중세 아라비아는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선진국이었으며 아라비아 숫자라는 편리한 십진수 표현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앨거리드는 십진수 사칙여산 방법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도록 정형화하였으며, 우리가 초등학교 산수시간에 배워 평생 써먹는 계산방법이 바로 앨거리드가 개발한 계산방법이다.
알고리즘 명령의 명확성: 알고리즘은 같은 입력이라면 누가 수행하더라도 똑같은 실행과정을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고 저렇게 해석될 수도 있는 모호성은 절대 금물이다. 예를 들어, '가장 키가 큰 사람을 고른다'는 명령은 명확성을 갖지만 '가장 예쁜 사람을 고른다'는 명령은 명확성을 갖지 않는다.
알고리즘의 유한성: 유한성을 갖지 않는 예외적인 알고리즘의 예로 운영체제를 들 수 있다. 운영체제는 시스템을 켜면 부팅 과정을 통하여 적재된 후 시스템을 끌 때까지 계속하여 수행되는 특수한 경우이다. 그러나 운영체제를 제외한 알고리즘들은 유한성을 가져야 한다.
알고리즘의 간단성: 알고리즘의 각 명령은 충분히 간단해야 한다. 극단적인 예로 소팅 알고리즘을 기술하라고 했을 때, '데이터를 크기 순서로 재배치한다.'라는 식으로 답한다면 문제 해결방법이 전혀 제시되지 않으므로 알고리즘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간단성의 판단 기준은 상황에 따라서는 달라질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커다란 프로그램 개발을 위하여 알고리즘을 설계 중이고 개발팀 구성원 모두가 소팅 알고리즘 정도야 꿰어차고 있는 상황이라면 '데이터를 크기 순서로 재배치한다.'라는 정도로 알고리즘을 기술한다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한편 알고리즘 개발 시에는 처음부터 모든 스텝을 간단한 명령으로 작성하려 하다보면 알고리즘이 지나치게 자세해져 큰 구도를 보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알고리즘 개발과정에도 이른바 하향식(top-down) 접근방법을 취하여 처음에는 다소 모호하고 덩어리가 큰 명령으로 전체 윤곽을 기술한 후 이를 여러 단계에 걸쳐 보다 상세하게 가다듬는 작업을 수행해나가게 된다.
피보나치 수열(Fibonacci sequence)
이탈리아의 상인이며, 수학자인 피보나치는 피사의 레오나르도라고 불리우며 피보나치라는 말은 보나치의 아들이란 뜻이다. 그는 유럽 인접 국가들인 바빌로니아, 그리스, 아라비아 등을 자주 여행하였으며, 「산반서」(1202), 「실용기하학」(1220) 등을 저술하여 아라비아 산술을 유럽에 소개하였다.
피보나치 수열은 다음과 같이 귀납적으로 정의된다.
a1=1, a2=1, an+1 = an-1+an (n=2,3,4,…). 따라서 a3=1+1=2, a4=1+2=3, a5=2+3=5, … 이다. 이 식의 일반항을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식물의 씨앗들의 나선형 배열에서 시계방향과 반 시계방향의 개수의 비는 해바라기에서는 21:34, 솔방울의 5:8, 파인애플은 8:13으로 되어있는 등 자연계에서도 피보나치 수열이 발견되고 있다. 그의 책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제가 있다.
문1. 1월 1일 현재 갓 태어난 한 쌍의 새끼토끼가 있다고 하면, 금년 12월말까지 토끼는 모두 몇 쌍이 되겠는가?
조건1. 한 쌍의 어미토끼는 매월 말에 한 쌍의 토끼새끼를 낳는다.
조건2. 한 쌍의 새끼토끼는 2개월 말에 한 쌍의 토끼새끼를 낳는다.
조건3. 이 토끼들은 죽지 않는다.
풀이) n달 후의 토끼의 수를 an이라고 하자. an+2=2an+1-(an+1-an), an+2=an+1+an이며 a1=4, a2=6므로 피보나치 수열을 이룬다. 따라서 4, 6, 10, 16, 26, 42, 68, 110, 178, 288, 466, 754, …에서 1년 후에 754마리가 된다.
문2. 몇 개의 성냥개비가 쌓여있다. 갑부터 시작하여 갑, 을이 교대로 성냥개비를 1개 이상, 그리고 앞사람이 가져간 개수의 두 배 이하로 가져가기로 한다. 최후에 가져가는 사람이 이긴다고 할 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괄호안에 알맞은 것을 넣어라.
(단, 갑은 최초에 모두 가져가지 못하며, 누구나 최상의 전략으로 게임을 수행하는 것으로 한다.)
「최초에 쌓인 성냥개비의 개수가 피보나치 수이면 (을)이 이기고, 그렇지 않으면 (갑)이 이긴다.
10. 극한(수열, 함수)
가. 무한대까지의 계산
∞란 기호는 약 2천년이상 존재해 왔다. 로마인들은 그것을 그들에게는 아주 큰 수, 1,000을 뜻하는 것으로 이용했다.
약 1650년에 영국 수학자인 John Wallis는 ∞를 무한에 대한 것으로 하자고 제안했고 또 그것을 고집했다. 무한의 개념은 애가 타도록 긴 세월동안 인류를 고통스럽게 했다. 일찍이 그리스의 사상가인 Elea Zeno(495?-435?)는 무한에 대한 오해에 기인된 운동(운행)의 파라독스를 생각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무한의 신비와 변덕을 그들 자신의 방법에서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1600년대 초에 갈릴레오(Galileo)는 "무한이 유한한 수들과 다른 산술을 준수할 것이다"라고 제안했을 때, 무한에 대한 현대적 양상의 부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19세기말에 와서야 독일 수학자인 Georg Cantor(1845-1918)가 마지막으로 무한을 확고한 논리적 기초에 두었고 수학에 유용한 무한량을 가지는 산술에 대한 방법을 서술하였다. 그의 기본적 정의는 'a collecton is infinite, if some of its parts are as big as the whole(그것의 부분인 어떤 것은 전체만큼이나 크다면, 그 집합(모임)은 무한이다)'로 단순했다. 예를 들면, 우리가 {1,2,3,4,5,…}을 가지고 헤아리는 수들의 전체 목록은 짝수들 {2,4,6,8,…}의 목록의 두 배만큼이나 크다는 견해의 일부분에도 불구하고 두 목록들은 일대일 모양으로 짝 지워질 수 있다. 그래서 두 목록들은 정확히 같은 크기로 무한이다.(이 생각은 David Stacy에 의해 얘기된 'The Hotel Ad Infinitum(무한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호텔)'의 이야기에서 재미있게 애써 만들어진 것이다.)
Cantor는 무한의 다른 크기가 있다고 설명할 수 있었다. 0보다 크지만 1보다는 작은 십진법 수들(decimal numbers)의 무한은 헤아리는 수들(counting numbers; 자연수, 정수)의 무한보다 크다.(Cantor's duagonalzation proof). 직관을 혹사하는 질문이 있다. 무한히 많은 COUNTING NUMBERS(자연수)와 무한히 많은 FRACTION(분수)이 있다. 어느 무한이 더 큰가? 기이한 일이 무한과 함께 일어날 수 있다.
하나 더 설명하며 : 짧은 반원형의 호에서의 점들의 수는 한정될 수 없는 전체 직선 위에 있는 점들과 같을 수가 있다. 화살표는 반원 위의 유일한 점과 직선 위의 모든 점을 어떻게 짝 짓는 지를 보여준다. 큰 원과 작은 원 위의 모든 점들도 같은 크기의 무한을 설명한다.
나. 그리스의 유클리드(Euclid; 333?-275? B.C.)는 원에 내접하는 정2n각형의 넓이가 이루는 수열의 극한값으로 원의 넓이를 계산하려고 하였다. 그 후,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287?-212 B.C.)도 같은 생각으로 원주율 π가 3 10/71<π<3 1/7임을 알게 되었으며, 도형의 넓이와 부피를 구할 때 극한을 이용하였다.
18세기에 이르러 오일러(Euler, L.; 1707-1783), 라그랑주(Lagrange, J.L.; 1736-1813)에 의하여 극한의 개념의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그 개념이 명백하게 정의된 것은 프랑스의 코시에 의해서이다.
Florian Cajori의 '수학 부호의 역사'라는 책에서 무한대(∞ )라는 부호는 무한한 수를 표시하기 위해 1655년 John Wallis라는 사람이 그가 쓴 "De sectionibus conicus"에서 도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전학자였던 그는 1,000을 나타내는 후기 로마의 기호에서 이 부호를 채택하였다고 추측되어진다.
<대표적인 내용>
무한급수 1-1+1-1+1-1+…의 합
체코슬로바키아의 철학자인 볼차노(Bolzano, B.; 1781-1848)는 무한급수 1-1+1-1+1-1+…의 합을 구했던 그 이전의 잘못된 방법을 그의 저서 「무한의 역설」에서 소개하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경우이다.
가. 1-1+1-1+…=(1-1)+(1-1)+(1-1)+…=0+0+0+…=0
나. 1-1+1-1+…=1-(1-1)-(1-1)+…=1-0-0-…=1
다. 구하는 수열의 합을 S라고 하면, S=1-1+1-1+…=1-(1-1+1-1+…)=1-S에서 S= 1/2
그러나 이 무한급수는 진동하므로 극한값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위의 어느 것도 답이 될 수 없고 「극한값은 없다」가 바른 해답이다. 일반적으로, 무한의 계산에서는 다음과 같이 계산할 수 없다.
ⅰ) 임의의 괄호를 묶는다.
ⅱ) 구하는 합을 S로 놓는다.
ⅲ) 항의 순서를 바꾼다.
피사 대학교 수학 교수인 그란디(Gran야, G.; 1671-1742)는 1703년에 ①식에 x=-1을 대입하여 '다'의 결과를 주장하였으며, 스위스의 수학자 오일러(Euler, L.; 1707-1783)는 1730년 경에 ②식에 x=1을 대입하여 '다'의 결과를 주장하였다. 이들의 주장에는 어떤 잘못이 있는가?
11. 미분법
영국의 뉴턴과 독일의 라이프니츠(Leibniz, G.W.; 1646-1716)는 각각 다른 방향에서 미적분법을 생각하고 발견하였다. 뉴턴은 운동 또는 증가를 통하여 도함수의 개념을 도입하였고, 기호로 , 등을 썼다.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곡선 위의 접선의 기울기로써 도함수의 개념을 도입하였고, 기호로 dx/dy를 사용하였다.
그 후 프랑스의 코시(Cauchy, A.L.; 1789-1857)가 극한 개념을 명확히 하여 도함수의 개념이 수학적으로 정의되었으며, 데데킨트(Dedekind, J.W.R.; 1831-1916) 등에 의하여 실수의 이론이 엄밀하게 확립되어 19세기에 와서 그 기초가 확립되었다.
<대표적인 내용>
가. 컴퓨터에서 방정식 f(x)=0의 근을 구하는 방법 중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다음에 설명하는 뉴턴의 방법 또는 뉴턴·랍슨의 방법이다.
주어진 방정식 f(x)=0에서 함수 f(x)가 미분가능하고 구간 (a,b)에서 근을 갖는다면 x0∈(a,b)가 주어질 때, 점화식 xn+1 =xn - f(xn)/f' (xn)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수열 x1, x2, x3, …, xn, …
즉, {xn}의 극한값은 f(x)=0의 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림과 같이 곡선 y=f(x) 위의 점 (x0,f(x0))에서 접선을 그어 x축과의 교점의 x좌표를 x1으로 하고, x1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하여 x2를 잡는다. 계속 같은 방법으로 x3, x4, …, xn, …을 잡으면 이 값들은 점점 근에 가까운 값이 된다. 이 때의 계산은
x1 =x0 - f(x0)/f' (x0) , x2 =x1 - f(x1)/f' (x1) , x3 =x2 - f(x2)/f' (x2) , … 와 같다.
예) 뉴턴의 방법으로 x3-x2-3x+2=0의 실근의 근사값을 구하여 보자.
f(x)=x3-x2-3x+2라고 하면 f(1)=-1<0, f(3)=11>0이므로 구간 (1,3)에서 실근을 갖는다. f (x)=3x2-2x-3이므로 x0=3이라고 하면, x1 =3 - f(3)/f' (3) = 3- 11/18 =43/18 =2.3888…, x2 = 43/18 - f(43/18)/f' (43/18) =2.0935…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계속하면, 구하는 실근의 근사값은 2임을 알 수 있다.
나. 로피탈의 정리
롤의 정리를 이용하면 다음과 같은 코시의 정리를 얻을 수 있다.
[코시의 정리]
두 함수 f(x), g(x)가 폐구간 [a,b]에서 연속이고, 개구간 (a,b)에서 미분가능하며 g′(x)≠0이면
한편, 코시의 정리를 확장하면 다음과 같은 로피탈의 정리를 얻을 수 있다. 로피탈의 정리는 극한값을 구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로피탈의 정리]
두 함수 f(x), g(x)가 x=a를 포함하는 구간에서 미분가능하며 f(a)=0, g(a)=0, g′(a)≠0이고,
가 성립한다. (단, a가 ∞ 또는 -∞인 경우에도 성립한다)
12. 적분
현대 수학의 대단한 발달 중 많은 부분은 2천년 전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이룩한 업적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 적분에 대한 생각도 넓이, 부피, 호의 길이 등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고대 그리스시대의 구적법(球積法)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2천년 이상이나 수학자와 수학 애호가들을 괴롭혀 온 원적 문제(원의 넓이와 똑같은 면적을 가지는 정사각형을 찾아내는 문제)도 곡선으로 둘러싸인 도형과 넓이가 같은 직선 도형을 찾으려는 일반인들의 필요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적분학의 바탕이 되는 이러한 생각을 처음으로 이용한(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람은 아르키메데스(Archomedes; 287?-212 B.C.)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포물선과 직선으로 둘러싸인 영역의 넓이를 구하기 위하여, 그 영역을 점점 넓이가 작아지는 무수히 많은 삼각형으로 채우고 무한등비급수를 이용하여 이들 삼각형의 넓이의 합(구분구적법)을 구하였다.
그 후, 케플러(Kepler, J.; 1571-1630)는 구분구적법을 사용하지 않고 포도주가 담긴 술통의 부피를 구하는 방법을 생각하였는데 이것이 적분법의 시초이다. 갈릴레이의 제자인 Cavalieri(1598-1647)에 의하여 재정립 되었다. 이러한 구분구적법의 기초 위에 미분법의 역의 개념으로 적분법의 체계를 확립한 것은 17세기의 Newton(1642-1727)과 Leibniz(1646-1716)에 의해서이다. 물리학자였던 뉴턴은 운동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속도와 가속도의 개념을 나타내는 수학적 방법으로 유율법(流率法, 미적분법)을 창안하였다. 뉴턴의 유율법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수학 문제는 연속운동에서 운동체가 통과하는 거리를 알고 그 속도를 알아내는 것(미분법)과 속도와 시간을 알고 운동체가 통과하는 거리를 알아내는 것(적분법)이었다. 반면에 라이프니츠는 곡선에 접선을 긋는 문제(미분법)와 직선군이 주어져 있을 때 이들을 접선으로 갖는 곡선을 구하는 문제(적분법)와의 관계를 조사하는 데서 구적법을 발견하였는데 특징은 연산의 형식을 기호화시켰다는 점이다. 철학자이기도 하였던 라이프니츠는 철학에 있어서의 기호적 상징의 중요성을 깊이 생각했던 사람으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dx/dy, ∫xdx와 같은 기호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극한의 개념을 이용하여 오늘날과 같은 미적분을 만든 사람은 프랑스의 코시(Cauchy, A.L.; 1789-1857)이며, 우리가 배우고 있는 적분법은 독일의 리만이 코시의 적분을 유한함수까지 확장한 리만적분이다. 또한, 르베그(Lebesgue, H.L.; 1875-1941)에 의하여 더욱 일반화된 적분법으로 발전되었다.
이상을 요약하면, 적분법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미분법에 대한 의미있는 연구는 17세기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다.
적분법은 뉴턴과 라이프니츠에 의해 각각 독립적으로 체계가 확립되었으나 명확한 정의가 세워진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였다. 즉 코시(Cauchy, A.L.; 1789-1857)에 의해 보다 일반적인 정의가 내려졌다. 그 후 구적의 개념도 추상화되어 그 당시 적분 불가능한 함수도 이제는 적분이 가능하게 되었다. 적분은 함수의 평균값이나 곡선의 길이, 곡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의 넓이, 입체의 부피 등을 구하는데 쓰일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물리량을 정의하고 계산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변수가 하나인 함수로부터 다변수 함수와 복소수 변수인 함수까지 확장시켜서 함수의 성질을 연구하는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대표적인 내용>
우리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면서 어떤 내용을 암기할 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많은 것을 잊게 되고 기억에 남는 것은 조금밖에 되지 않음을 늘 느낀다.
예를 들어, 시험공부를 했어도 답안을 작성할 때에는 잘 생각나지 않음을 경험한다. 이것은 기억과정에서 기억률(분당 기억되는 단어의 수)이 처음에는 증가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즉 최대 기억률에 도달하면 감소하기 때문이다. 어떤 기억 실험에서 기억률 M(t)가
M(t)=-0.009t2 +0.2t로 주어지면, 이 실험의 경우 처음 10분 동안에 기억되는 단어의 수는
∫010(-0.009t2 +0.2t)dt =[-0.003t3+0.1t2]010=-3+10=7
나. 미분도 적분도 가능하지 않은 함수
미분가능하지도 않은 함수의 예는 절대값 함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f(x)=|x|는 x=0에서 미분가능하지 않음을 배웠다. 그런데 정적분이 가능하지 않은 함수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우리가 연속함수의 정적분만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x의 모든 실수값에 대하여 미분도 적분도 가능하지 않은 함수가 있는지 알아보자. 예를 들면, 함수
-①은 어느 곳에서도 불연속이므로 미분도 적분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식이 하나의 식으로 나타내어지지 못한 것이 흠이라면 -②을 생각하여 보자.
ⅰ) x가 유리수일 때
n→∞이면 n!2πx는 2π의 배수이다. 그러므로 cos(n!2πx)→1, 따라서 f(x)→1
ⅱ) x가 무리수일 때
n!2πx는 π의 정수배가 아니므로 |cos(n!2πx)|<1. 그러므로 n→∞일 때, cos(n!2πx)→0. 따라서, f(x)=0. ②를 ①과 같은 함수로 나타내고자 하면 로 된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해 내기 어려운 함수이다.
13. 확률
우리 주변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일은 규칙적인 것이 드물다. 그러나 우연성의 가능도를 측정하여 어떤 성질을 발견하여 실생활에 응용하고자 하는 것이 확률을 공부하는 이유이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인의 무덤에서 오늘날과 같은 주사위가 출토되었고, 기원전 1150년경 중국에서는 동전을 2개 또는 3개 던졌을 때 일어나는 경우의 수를 다루고 있다.
확률이론은 17세기 중엽 Pascal, Fermat 등이 유한개로 이루어진 순열과 조합을 생각해 내어 주사위와 트럼프 문제를 다룬 도박에 관한 의견을 서신으로 교환하면서 수리적으로 다루어졌다.
이처럼 확률의 기원은 매우 오래 되었지만 확률의 개념이 생겨난 것은 17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파스칼(Pascal. B.; 1623-1662)이 직업 도박사로부터 '기량이 비슷한 A,B 두 사람이 상금을 걸고 게임을 5번하여 세 번을 먼저 이기는 사람이 상금을 분배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받고 동료인 페르마와 서신왕래를 하며, 이 문제를 푼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주요 관심사는 '두 명의 도박사가 내기(도박)을 시작했는데, 천재지변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승부가 끝나기 전에 중단되었을 때 도박에 건 돈을 어떻게 분배하면 좋을까'하는 문제였다고 한다. 그 후 Bernoulli, Lagrange, 드 무아브르(De Moivre, A.; 1667-1754) 등에 의하여 발전되었고 19세기에 이르러 Laplace에 의하여 고전 확률론이 집대성 되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는 소련의 수학자 Kolmogorov가 제창한 공리론적인 방법에 의하여 측도의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현대 확률론의 방향을 제시하였고, 우연한 현상 또는 비결정적(nondeterministic) 현상으로 설명되어지는 모든 과학분야에 걸쳐 응용되기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내용>
다음 그림은 로마의 셈으로 불리우는 것이다.
대야에 1의 비율(단위 시간에 1단위의 부피)로 물이 흘러 들어간다. 이 대야의 물은 아래로 있는 대야로 1/2의 비율로 흘러 넘쳐 들어간다. 이들 두 대야의 물은 그 아래에 대칭적으로 배열된 세 대야에 1/4의 비율로 흘러 들어간다. 가운데 대야에 분자들은 1,2,1이다. 이것은 파스칼의 삼각형에서 두 번째 행이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각 대야로 흘러넘쳐 들어가는 물의 양은 파스칼의 삼각형의 각 행에 해당된다.
예) 위의 오른쪽 그림은 골턴의 실험장치이다. 공이 비탈을 굴러 내려오면서 다각형에 부딪혀 좌우로 갈라질 확률은 1/2이다. 하나의 공이 아래의 칸막이에 들어갈 확률은 왼쪽부터 차례로 다음과 같다.
1/64, 6/62, 15/64, 20/64, 15/64, 6/64, 1/64
이들 분수들의 분자들은 파스칼의 삼각형의 여섯 번째 행에 해당된다.
14. 통계
통계학(Statistics)이란 관심의 대상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요약하며, 제한된 자료나 정보를 토대로 불확실한 사실에 대하여 과학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제시하여 주는 학문이다.
실험을 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나 몇 개의 사례로써 그 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사회현상들은 통계적 방법을 사용하여 그 자료에 대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이, 통계란 실제로 관측된 자료로부터 구하여진 사물이나 현상의 특성을 나타내는 요약된 형태의 수이다.
통계학은 확률론과 더불어 17세기 중엽 독일에서 국가발전에 중요한 재정, 군사 등의 요소를 통합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방법의 연구에서 비롯되었으며 처음에는 국상학(Statistic)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통계학(Statistic)의 어원이다.
여론이나 농산물의 작황과 같이, 자료 전체를 조사하기 어려운 경우에 일부분을 조사·관찰하여 전체를 추측하는 추측 통계학은 피셔에 의하여 그 기초가 확립된 후 현대 통계학으로 발전되었다.
<대표적인 내용>
정규분포 N(m, σ2) 모집단에서 임의추출된 n개의 표본들의 표본평균 는 정규분포 N(m, σ2/n )을 이룬다는 것을 배웠다.
평균 m, 분산 σ2인 임의의 모집단으로부터 임의추출된 n개의 표본들의 표본평균을 라고 할 때 표본의 크기 n을 증가시키면(n→∞일 때) i는 N(m, σ2/n )에 가까워진다. 이를 중심극한정리 또는 라플라스의 정리라고 한다. 이 정리는 정규분포가 통계학적 추론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773년 영국의 수학자 드 무아브르(De Moivre, A.;1667-1754)는 n→∞일 때 N(n,p)는 N(np,npq)에 가까워짐을 알았으며, 또 그는 정규분포를 안 최초의 수학자이다.
다음 그림은 중심극한정리의 성립을 보이는 것으로 영국의 탐험가, 기상학자, 인류학자, 유전학자이며 통계학자인 골턴(Galton, F.; 1822-1911)의 실험반이다.
작은 공들이 깔대기를 통하여 수직인 판자 위로 굴러 내려가면서 도중에 못에 걸려 좌·우측으로 갈라지고 다른 공과 충돌하기도 하여 아래쪽 수집함에 쌓인다고 할 때, 공이 쌓인 모양은 정규분포와 유사한 곡선을 그린다.
중심극한정리는 러시아의 수학자 라푸노프(Lyapunov, A.M.; 1857-1918)가 처음으로 증명하였다.
15. 이차곡선
플라톤 학파의 한 사람인 메나이크모스(Menaechmos; 375-325 B.C.)는 직원뿔을 평면으로 자른 단면에 나타나는 곡선으로 원뿔곡선인 원, 포물선, 타원, 쌍곡선을 생각해 내었으며, 그리스의 아폴로니우스(Apollonios; 262?-200? B.C.)는 원뿔곡선의 이름을 타원, 포물선, 쌍곡선으로 명명하였다.
17세기에 케플러(Kepler, J.; 1571-1630)는 행성의 궤도가 타원임을 발견하였다. 또, 데카르트와 페르마(Fermat, P.; 1601-1665)의 좌표 개념과 방법, 월리스(Wallis, J.; 1616-1703)의 「원뿔곡선론」, 로피탈(L'Hospital, F.A.; 1661-1703)의 「원뿔곡선의 해석 이론」 등이 나타나기 시작함으로써 원뿔곡선에 대한 연구가 해석기하학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오일러(Euler, L.; 1707-1783)의 「무한해석 서론」은 아폴로니우스의 기하학적 입장에서 완전히 벗어나, 곡선이나 곡면을 방정식으로 자유롭게 구사하여 해석기하학의 면모를 갖추었다.
<대표적인 내용>
최초의 인공위성은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였고, 최초의 우주 비행사는 1961년 소련의 가가린이었으나, 최초로 달을 밟은 사람은 1969년 미국의 암스트롱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는 1992년 8월에 발사되었으며, 최초의 방송·통신 위성인 무궁화호는 1995년 8월에 발사되었다.
그 이유는 인공위성 역시 지구의 위성인 달처럼 안정된 궤도로 원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력과 원운동의 관계로부터 궤도의 반지름이 r일 때, 대기의 마찰 저항을 무시하면 인공위성의 속도 v는
(단, re는 지구의 반지름, g,g0는 각각 r,re인 곳에서의 중력 가속도)
그러므로 바로 지표면상의 원형 궤도에 대하여는
따라서, 이 속도로 지표에서 수직으로 쏘아 올리면 지구의 위성이 되고, 이보다 빠른 속도(√2v0이상)가 되면 지구를 벗어나게 된다. 실제로 정확한 비율은 √2배이다. 그래서 인공위성의 탈출 속도는 지구의 경우 이다.
현재 3000개 이상의 인공위성이 지구 상공 160-35900km의 궤도에서 돌고 있다. 이 중 200겨 개는 지구의 특정한 지점 상공에 위치하여 지구와 같은 자전 주기로 일정한 궤도를 따라 움직이면서 군사 정보 수집, 국제 전화, TV 방송 등에 이용되고 있다.
16. 공간도형과 공간좌표
고대 그리스의 수학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유클리드(Euclid; 330?-275? B.C.)의 저서 「기하학 원본」 13권 중 마지막 3권은 공간도형의 여러 가지 성질을 다루고 있다.
공간도형의 성질은 건축 또는 기계 등의 설계에 이용된다. 공간도형에 대한 내용은 해석기하학에서 다루어지며, 18세기 프랑스의 몽주(Monge, G.; 1746-1818)가 창안하였다.
일반화는 19세기 이후 수학의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직선(1차원), 평면(2차원), 공간(3차원)의 개념이 일반화됨으로써 n차원 공간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좌표평면에서 좌표공간으로 해석기하학의 범위를 확장하여 공간도형을 대수적으로 다루었다.
독일의 힐베르트는 1899년 그의 저서 「기하학의 기초론」에서 무정의용어, 정의, 공리를 바탕으로 현대 수학의 관점으로 기하학을 엄밀히 구성하였다.
정다면체란 합동인 정다각형으로 둘러싸이고 각 꼭지점에서 만나는 모서리의 수가 같은 볼록다면체이다. 유클리드(Euclid; 330?-275? B.C.)의 「기하학 원본」 제13권에서 이들을 수학적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이들이 플라톤 입체라고 잘못 기록되어 있는데,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십이며체는 피타고라스에 의해, 정팔면체, 정이십면체는 테아이테토스에 의해 불려졌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 피타고라스가 쓴 티마이오스란 책과 동명인 그의 티마이오스에서 정다면체는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오각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과 그 작도법을 말했다. 그리고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질의 4원소인 불, 흙, 공기, 물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에 각각 대응시켰고, 정이십면체는 설명이 곤란하여 이 원소들을 모두 감싸고 있는 우주에 대응시켰다.
정다면체는 이들 5가지 종류뿐임을 1752년 스위스의 수학자 오일러(Euler, L.; 1707-1783)가 증명하였다.
볼록다면체에서 성립하는 오일러의 공식 v-e+f=2 -① (v: 꼭지점의 수, e: 모서리의 수, f: 면의 수)을 이용하여 이를 증명하여 보자.
정다면체의 정의로부터
가. 모든 면은 같은 p(≥3)개의 모서리로 이루어진다.
나. 모든 꼭지점에는 같은 q(≥3)개의 모서리가 만난다.
가 성립하므로 정다면체에서 fp=2e, 즉 f= 2e/p -②, qv=2e, 즉 v=2e/q -③
②,③을 ①에 대입하여 정리하면 1/p + 1/q = 1/2 + 1/e (단, p,q,e는 정수). 이것을 풀면 구하는 해는 다음의 5가지 뿐이다. (p,q)=(3,3), (3,4), (3,5), (4,3), (5,3)으로 차례대로 정4,8,20,6,12면체가 된다.
따라서, 정다면체는 모두 5가지 밖에 없다.
※ 참고: 정4면체(regular tetrahedron), 정6면체(regular hexahedron), 정8면체(regular octahedron), 정12면체(regular dodecahedron), 정20면체(regular icosahedron)
17. 벡터
16세기 네덜란드의 스테빈(Stevin, S.; 1548-1620)은 힘의 삼각형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였고, 영국의 뉴턴(Newton, I.; 1642-1727)은 속도, 힘 등을 유향성분으로 나타내었는데 이것이 벡터의 시초였다. 또, 독일의 가우스(Gauss, K.F.; 1777-1855)는 복소수를 벡터로 나타내었으며, 영국의 해밀턴(Hamilton, W.R.; 1805-1865)은 벡터에 좌표를 결합하여 벡터 공간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한편, 독일의 그라스만(Grassmann, H.G.; 1809-1877)은 벡터의 내적과 외적을 정의하였으며, 프랑스의 라플라스는 벡터의 해석학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또, 영국의 맥스웰(Maxwell, J.C.; 1831-1879)은 벡터를 물리량으로 표현하였고, 미국의 기브스(Gibbs, J.W.; 1839-1903)는 두 벡터의 내적과 외적을 성분으로 표시하였다.
이러한 벡터해석학은 19세기 물리학을 대표하는 전자기학에서 필수적인 수학적 도구가 되었다.
<대표적인 내용>
구의 벡터방정식
원의 방정식을 벡터를 사용하여 나타내어 보자. 다음 그림과 같이, 중심이 C(a,b)이고 반지름의 길이가 r인 원 위의 임의의 점을 P(x,y)라고 하자. 또, 로 놓으면
이것을 원의 벡터방정식이라고 한다.
이제, 구의 방정식을 벡터를 사용하여 나타내어 보자.
오른쪽 그림과 같이, 중심이 C(a,b,c)이고, 반지름의 길이가 r인 구 위의 임의의 점을 P(x,y,z)라고 하자.
또, 로 놓으면
이것을 구의 벡터방정식이라고 한다.
첫댓글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