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구간 산행코스
▼도화리(산행 기점).
백두대간에서 한남금북정맥이 분기되는 속리산 천왕봉을 오르기 위한
최단 코스의 시발점인 도화리(옛 행정지명 : 대목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버스회차 공터에는 대갈 조자용 선생의 추모비인데 우리나라 건축의 대가인데
말년에는 오히려 민화에 심취하여 '도깨비 할아버지'라고도 불린다 하는군요.
도화리에서 속리산 천왕봉까지는 도상거리 2.7km인데, 1.1km 정도는 완경사의
넓직한 임도따라 편안하게 이어지다가 그 이후로는 된비알을 오르며
굵은 땀방울을 한동안 쏟아내어야 천왕봉에 오를 수 있다.
도화리 표지석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 마을길따라 속리산 천왕봉을 오른다.
▼천황사를 지나 계곡을 따라 오르는데 계곡물 소리가 꼭두새벽이라
더욱 크게 들리고, 계곡을 몇 번을 건너면서부터 길도 좁아진다.
이후 작은 나무 구름다리가 나타나고 어둠 속이라 헤드렌턴을 하였지만
돌과 바위가 많은 길이 계속된다.
높낮이가 명확하게 보이지를 않아 조심스럽게 산을 오른다.
바로 앞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너덜길을 오르니 표지목 옆으로 탐방로 안내도가
있는 백두대간 주능선에 안부에 오른다.
▼안내도가 있는 이곳에서 왼쪽으로 천왕봉 방향이고 오른쪽은 형제봉과
갈령으로 가는 백두대간길이다.
고지가 있는 산이라 그런지 여기서 부터는 늦가을 찬바람이 심하게 불어온다.
이곳에서 제법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속리산 천황봉(1,057.7m) 정상이다.
대목리를 출발하여 1시간 40여분이 소요되어 도착한 것이다.
▼정상에 도착하여 주변 조망을 해 본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모자도 벗고
오랜만에 멋진배경을 사진 촬영하면서 혹시나 일출이나 볼 수 있을까 기대 했는데
운무에 일출은 포기하고 정상을 돌라본다.
▼속리산 삼파수(三派水): 속리산 천왕봉에서 3갈래 수로가 분기하니 동으로
낙동강이오 북으로 한강이며 남서로 금강의 물줄기가 이곳 속리산이 분주령이다.
산자분수령 산은 물을 가름이니 골골이 흐르며 촌락을 이루고 그 물줄기에
의존해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음이다.
▼올랐던 길을 되돌아 30m내려오다 출입금지 뒷쪽으로 들어가 좌측으로
암릉 사이를 넘어 바로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가파른 산길을 조심조심 내려선다.
다시금 만나는 커다란 바위를 우회하여 한참을 내려서니 산죽 밭이다.
▼좌측으로 조망처가 있어 도화리 방향과 주변 산줄기를 조망해 본다.
▼정맥길은 선답자띠지가 산행길잡이를 하고있어 갈림길에서 주의만
한다면 알바는 없겠다 그러나 몇군데는 지도와 코스개념을 알아야 한다.
정맥분기점에서 25분쯤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길도 뚜렷하여 혹 그쪽이
우회길이라 생각하고 그방향으로 가면 하산길이다(주의구간)
정맥은 직진 봉우리로 올라 우측으로 급격히 떨어진다 꼭 알바하는 코스같다.
▼급 경사길을 내려왔어 안부에서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바위지대를 올라가면서 좌,우 방향으로 조망해 본다,
▼봉우리에 올라오니 선답자띠지가 주렁주렁 이름있는 봉우리임을 암시한다.
▼667.3봉에 인가? 이곳에는 삼각점(314)이 있으나 주위의 시멘트가
떨어져 나가버렸으나 삼각점 옆을 살펴보니 숫자가 보인다
▼정맥길은 몇 봉우리에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뚜렷한길이 정맥길이라
큰 어려움없이 가다 앞 봉우리가 보이면서 좌측으로 뚜렷한길과
선답자띠지가 보인다 좌측으로 가야한다.
▼좌측으로 가다 이름 없는 묘지를 지나 넓은공터(구 헬기장)을 지나고
돌무덤이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90도 가까이 꺾어 완만하게 오르내리다
제법 한 땀을 흘린 뒤 다시금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봉우리에 오른다.
▼이후 소나무 한그루가 세월앞에 어쩔 수 없이 생명을 다 한 듯..
어찌하랴! 사람이나 자연이나 세월이 지나면 숨을 멈추는 것을...
옆으로 조망처가 있어 산줄기를 조망하고 또다시 오르라 내리락 하는
정맥길을 이어간다.
▼무인감시 시설물
완만한 능선을 내려가면 널찍한 벌장으로 이루어진 묘지를 지나
갈참나무 잎이 바스락거리는 낙엽 길을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오르기 시작되고 한참을 오르니 소나무 몇 그루가 있는
봉우리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간다.
봉우리에서 잠시 내려서다 오르니 무인감시탑이 설치되어있는 봉우리다.
정맥길은 이곳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내려서면 안부다.
이곳 안부에서 왼쪽 계곡 쪽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게 마루금이 이어진다.
오른쪽은 잣나무 조림지역이고 능선에는 키 큰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있다.
조금을 진행하니 계곡이 아님을 느끼게 만들고 돌 모둠이 있는 네거리 안부인
불목이에 닿는다.
▼불목이재
여기는 사유지이므로 푸른 망 옆으로 진행할 수 있게끔 우회로가 만들어져 있다.
좌측으로 망따라 가면 농장주 안내판이 나오고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오름길을 따라 오르면 폐헬기장을 만나게 되고 그 헬기장을 넘어서면
다시 내려가게 되고 내려가면 다시 오름길이 반복되는 정맥길을
나 홀로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산길을 무덤덤 하게 걸어간다.
▼오름길을 비지땀 흘리며 올라가면 봉우리에서 정맥길은 좌측으로
다시 떨어지고 은진송씨 묘소를 지나면서 좌측으로 삼가저수지가
조망되더니 가파르게 경사를 내려가면 갈목재가 나온다.
▼갈목재(葛目, 해발390m)
2차로 포장도로인 갈목재(葛目, 해발390m) 도착한다.
갈목리에서 삼가저수지로 넘어가는 데 있는 고개입니다.
이 이름의 유래가 된 살목리는 전에 마을 주위에 칡덩굴이 많아 갈목이라
하였다고 하는 말이 있으나 길이 갈라지는 목에 위치한 마을이기 때문에
‘갈목리’라 하였음. 보은 8항(팔항)의 하나라고 하는군요
지난번 백두대간 종주시의 형제봉 아래의 갈령(葛嶺)과 이곳의 갈목재는
모두 칡을 뜻하는데, 산에서는 칡넝쿨이 거의 보이지를 않았는데 고개 이름이
모두 칡갈(葛)이 들어가는 것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곳은 속리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비정규 탐방로라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의 글을 내 걸어놓았다.
이곳도 비법정탐방로로 산객들에게 겁을 주는 곳이고 단속도 심하다 한다.
갈목재 팻말 건너편 팬스 끝부분이 말티재로 오르는 길이다.
▼팬스 끝부분에서 말티재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뒤 돌아 본다.
▼산능선 안부에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야한다.
왼쪽방향은 구병산 가는 방향인 듯 하다.
갈림길에는 선답자띠지가 보이지 않아 잠시 머물거리다 소나무 한그루에
어느 산악회띠지가 하나 있지만.. 지도를 다시보고 이 방향이 정맥길이라
계속가다 보면 봉우리 오름길에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정맥은 좌측으로
오름길로 가야한다 봉우리 올라가면 전망이 좋고 선답자띠지가 많이 보인다.
능선 왼쪽으로 깎아 지른 듯한 능선 아래로 황해동이 내려다보인다.
전망봉에서 조금 더 가면 서원봉이 나온다.
▼가야 할 정맥방향을 보면서..
▼완만한 능선을 오르내리다 파묘를 지나 또 다른 묘지를 지나니
네거리 안부인 희엄이재에 도착한다.
갈목리와 서원리를 이어주는 이 곳은 이름이 퐁겨주는 것과 같이 예전에
서원리 사람들이 이 고개를 이용하여 법주사에 불공을 드리러 오가던 곳임을
짐작으로 알 수 있겠다.
▼희엄이재를 뒤로하고 올라가면 봉우리에 올라선다.
이후 몇분가면 또다른 봉우리 올라서고 이후 넚은 공터 내리길 내려가며
전방에 정맥길을 가름해 본다.
▼지나 온 정맥길 방향을 뒤 돌아 보고..
▼우측 조금 떨어져 있는곳에 바위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조망하고 잠시 내려섰다 완만하게 오르면 쉼터가 있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철재 받침의 나무의자가 한개 놓여있고 이정표(↑ 숲속 의집, 정상 →)
도 설치되어있다.
이곳에서 정상 방향을 가리키는 오른쪽으로 꺾어 완만하게 오르내리다
무인 산불감시초소에 도착한다.
▼무인 산불감시초소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또 다른 이정표가 세워져있는 삼거리 봉에 도착한다.
여기서 주변 조망이 확 트인다 산줄기를 조망해 보고 이곳에서 말티재 방향인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완만하게 내려가면 김해김씨묘지도 지나고
완만하게 다시 내려가면 말티재 도착한다.
▼말티재의 유래비와 팔각정까지...
말티재(해발 430m)로 2차로 포장도로로써 돌로 만든 장승과 말티재의
내력을 새겨 놓았고 그 뒤쪽으로 팔각 정자도 세워 놓았다.
예전에 들은 바로는 이 말티재가 시작되는 곳까지가 법주사 땅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여기서 한남금북정맥 1구간을 마무리하고 택시 043-543-6262번
속리산면 조병국씨인데 정맥하는 꾼들이 많이 이용한다.
▼도화리에서 차량회수해 집으로 무사위 귀가 부지런히 씻고
밥먹고 오늘밤 근무라서 회사 출근해야 한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열정이 생기고 이 열정이 70대까지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