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나무를 아시나요?
❏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큰 인물이 태어난다는 나무
회화목(懷花木)은 우리 선조들이 최고의 길상목(吉祥木)으로 손꼽아 온 나무다. 회나무, 홰나무, 괴화나무, 괴목, 괴수 등으로도 부르는 큰키나무이다. 키 45미터, 지름 3미터까지 자라는 나무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은행나무 다음으로 몸집이 크게 자란다. 수형이 웅장하고 단정하여 품위가 있어 정자나무로도 인기가 있다.
예전부터 우리민족의 상징으로 사랑받았던 회화 나무는 한문으로 쓰면 懷(괴나무회) 또는 槐(느티나무괴)라고 하는데, 충청북도 괴산, 경상남도 밀양 괴리(사명대사 출생지), 부산 사하구 괴정동 등 회화나무로 인하여 지명이 생긴 곳이 많이 있다.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는 고을로 새로 부임하는 원님 들은 그 회화나무에 제사를 꼭 지냈다고 하니 아마도 성황당 당 나무에 해당되지 않았나 싶다.
오랜 옛날부터 이 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큰 인물이 태어난다고 하여, 궁궐이나 대감 집에는 반드시 심을 만큼 상서로운 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특별히 공이 많은 학자나 관리에게 임금님이 상으로 내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압구정동과 연신내의 가로수가 바로 회화나무
서울 인사동의 율곡(이이) 선생이 살던 집터에 수령이 약 450년 되는 회화나무가 멋있게 서 있으며, 종로에 있는 조계사 대웅전 앞에도 같은 나이 또래의 회화나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순신 장군이 어머니를 모시고 10년 넘게 살았던 전라남도 여수시의 외곽지역 옛날 집터에도 수령이 400년이 넘는 회화나무가 우뚝 서 있다.
서울 청와대와 국무총리 공관에도 가장 키가 크고 아름다운 나무를 볼 수 있는데 99%가 회화나무임을 발견할 것이다.
창덕궁(비원)은 밖에서 처다만 보아도 대문 좌우에 멋있게 가지를 뻗고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현재 강남구의 압구정동과 연신내의 가로수가 모두 회화나무 이다.
또한 서울 인사동 전체가 회화나무 길이었는데 일제 때 전부 베고 없어진 것을 최근에 새로 심고 가꾸고 있다고 한다.
싱가폴은 가로수 100%가 회화나무로 되어 있으며, 미국의 보스톤시 일부 지역에서는 오래된 플라타너스 나무가 많았었는데 낙엽이 많고 청소부들의 어려움이 많아 가로수 수종을 회화나무로 바꾼 뒤 낙엽문제를 90% 해결하였다고 한다.
중요한 사실은 회화나무의 특수한 향으로 인하여 200m 이내에는 모기와 파리의 유충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영험한 힘을 지닌 신령한 나무
회 화 나 무 는 은나라 (B C 17 6 6~11 2 3) 곽 자 의 의 고사 “남가일몽”에 등장 하 는 나 무 로 서 “곽 자 의에게
어느 도사가 나 타 나 “회 화 나 무 밑 에 서 낮 잠 을 자 라” 는 말을 듣고
실천을 했는데 죽은 노모가 나타나 O월 O일 어느 저자거리에 있거라” 라는 말을 하고는 사라졌다.
꿈을 깬 후 그 대로 한즉 왕을 만나 발탁되어 은나라의 명재상이 되었다는 고사와
관련된 나무이기도 하다.
경상북도 안동 시내에 회화나무 거목이 많은데 이는 명재상으로 이름났던 맹사성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 맹사성이 안동 부사로 부임하여 거리를 순찰하는데 여기저기에서 여인의 슬픈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연유를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안동에는 오래 전부터 젊은 과부가 많이 생겼는데 그 울음소리는 남편을 잃은 과부들의 곡성이라고 하였다. 풍수지리에 밝았던 맹사성이 안동의 지세를 살펴보니 과연 안동은 과부가 많이 날 형국이었다. 이를 막기 위하여 거리 곳곳에 회화나무를 심게 하였더니 그 후로는 과부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 회초리, 어사화 및 괴황지 염색의 주원료 나무
우리나라에서 공부 잘 하라고 때리는데 쓰는 “회초리”가 바로 회화나무의 푸른 가지이며 종아리를 치면 머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고 하는 것은 “기”가 충만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나무의 꽃은 조선시대 과거시험 문무과의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님이 내리는 “어사화” 가
바로 회화나무 꽃이다.
회화나무 꽃을 한지에 염색을 하게 되면 노랑색의 괴황지가 되는데 부적을 쓰는 진짜 종이는 괴황지 뿐이다.
한국민족문화연구원, 한국토종약초연구소자료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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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가지에 꽃피는 7월에 향기 맡으러 내려 가야지...
들판가운데있는 정자각이 대머리 최초에는 회화나무 옆에 지어졌으나 주부들이 지나다니는데 불편하다하여 한쪽으로 옮겨 지은것임
제가 어렸을때는 화화나무 옆이 약간 언덕으로 탱글탱글한 노란 탱자나무가 있었으며 그밑으로는 전부 버드나무와 소나무가 있는 산이었다.
집앞에 영산강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제방을 쌓기 전에는 홍수가 나면 팽나무 밑에까지 흙탕물이 올라와 수재민이 생길때도 있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