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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말>
본문은 초대교회 역사의 시작인 오순절 성령 강림을 다루는 본문인데, 이 본문은 오순절 은사주의자들에 의해 심히 변질되어 잘못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약 교회의 공식적인 시작을 알리는 역사에 대한 기록이지, 이 시대 거듭난 사람이 반드시 체험해야 하는 "성령 체험"의 모형이 아닙니다. 이 시대 거듭난 그리스도인 중 누구도 사도들이 성령을 받듯이 가시적인 형태로 받지 않고, 성령 받으면서 배우지 않은 외국어들을 말하는 일도 없습니다. 오순절에 방언을 한 사도들은 열두 명이고, 120명 제자 전부는 아닙니다. 본문에서 살펴보겠지만 사도들의 방언의 이유는 예루살렘을 찾았던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표적이었습니다. 그 이후 방언은 사도들에게서 계속적으로 반복되지 않았고 어떤 그리스도인도 성령을 받는 것과 방언을 필연적으로 연결짓고 동일시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오순절 은사주의자들은 사도행전 2장이 거듭남의 표준 교리라고 믿고 가르치는데, 그 결과 그들은 성경에 없는 말을 하고 있는데 즉 방언이 성령 세례(침례도 아닌)의 증거라고 거짓말합니다. 우리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번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1-26>
2 갑자기 하늘에서 거친 강풍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우더라.
3 거기에 불 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이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더니
4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발설하게 하신 대로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5 당시 예루살렘에는 신앙심이 깊은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머물고 있었는데
6 그때 이 소문이 퍼지자 무리가 함께 모여 혼란이 생겼으니 이는 각 사람이 자기 나라 말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라.
7 그러자 그들이 모두 놀라고 이상히 여겨 서로 말하기를 “보라,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 각 사람이 우리가 태어난 곳의 고유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단 말인가?
9 파대인과 메데인과 엘람인과, 메소포타미아, 유대와 캅파도키아, 폰토와 아시아,
10 프루기아와 팜필리아, 이집트와 쿠레네에 가까운 리비아의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에서 온 타국인들, 즉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과
11 크레테인과 아라비아인들인 우리가 그들이 우리의 언어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말하는 것을 듣고 있도다.” 하니
12 그들이 모두 놀라고 의아해 하며 서로 말하기를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하더라.
13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며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새 포도주에 취하였다.”고 하더라.
14 그때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서서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유대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사람아, 이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겠으니 내 말에 경청하라.
15 지금은 겨우 낮 세시니 너희가 짐작하는 것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니라.
16 이것은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바니
17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으리라. 그러면 너희 아들들과 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며 너희 노인들은 꿈을 꾸리라.
18 또 그 날들에는 내가 내 남종들과 여종들 위에도 내 영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하리라.
19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이적들과 아래로 땅에서는 표적들을 보이리니 피와 불과 연기라.
20 그 위대하고 찬란한 주의 날이 오기 전에 해가 흑암으로, 달이 피로 변하리라.
21 그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느니라.
22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씀들을 들으라. 너희 자신도 아는 바와 같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너희 가운데서 행하신 기적들과 이적들과 표적들로 너희 중에서 하나님께 확증되신 분이니라.
23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심을 따라 내어주신 그를 너희가 붙잡아 무법자들의 손을 통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
25 이는 다윗이 그에 관하여 말하기를 ‘내가 주를 항상 내 앞에서 미리 뵈었으니 이는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어 나로 요동치 못하게 하심이라.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즐거워하였고 내 혀가 기뻐하였으며 또한 나의 육체도 소망 속에 안식하리니
2 갑자기 하늘에서 거친 강풍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우더라.
3 거기에 불 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이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더니
4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발설하게 하신 대로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본문에서 근거한 두 개의 이단 교리가 있는데 1. "성령 세례"를 받지 않으면 진정으로 구원받지 않은 것이다 2. 성령 세례를 받은 첫번째 증거는 알지 못하는 말로 말하는 것이다.
본문을 그리스도인의 거듭남에 1:1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성경을 믿지 않고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사람입니다.
1절, "그들"은 열두 명일수도 있고, 1장의 "120명"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임에서 여자들은 방언이 금지되어 있으므로(고전 14:34), 마리아가 방언하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순절은 유월절로부터 50일 후에 있는데 레위기 23:15,16에 의하면 오순절은 호렙 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2절의 상황은 오순절 은사주의자들의 집회에서는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은 고린도전서 14장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바람"은 요한복음 3:8에서 주님께서 하신 성령에 대한 말씀과 일치하고 에스겔 37:9-14와도 짝을 이룹니다. 또한 열왕기상 19:11,12에서 주님께서 "미세한 음성"으로 엘리야를 찾아오신 것과도 연결됩니다.
3절, 불 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이라는 표현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는데 은사주의자들은 이것을 가차없이 "불"이라고 해석하고는 성령 세례를 받으라는 말을 불 세례를 받으라고 적용합니다. 불 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는 어떻게 생긴 혀를 말하는가? 뱀의 혀(욥 20:16)는 "갈라진 혀"인데 "double tongue"(이중적 혀, 딤전 3:8)은 뱀과 닮은 것입니다. 주께서는 시편 55:9에서 "혀들"을 가르셨습니다. 사탄이 항상 하나님을 모방하기 때문에 "뱀의 갈라진 혀"는 역시 모방(고후 11:11-14)이 아니겠는가 하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4절, 사도들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성령 침례"와 동시에 "성령 충만"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할 때 또다시 방언을 말하지는 않았다는 게 이후 3장이 더 넘어가면 확인됩니다(사 4:31). 방언은 성경에서 작은 은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방언들이 수반되지 않고도 "성령충만"한 사례는 사도행전에서 여러 번 있었습니다(4:8; 4:31; 6:3,5; 7:55; 9:7; 13:52).
5 당시 예루살렘에는 신앙심이 깊은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머물고 있었는데
6 그때 이 소문이 퍼지자 무리가 함께 모여 혼란이 생겼으니 이는 각 사람이 자기 나라 말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라.
7 그러자 그들이 모두 놀라고 이상히 여겨 서로 말하기를 “보라,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 각 사람이 우리가 태어난 곳의 고유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단 말인가?
9 파대인과 메데인과 엘람인과, 메소포타미아, 유대와 캅파도키아, 폰토와 아시아,
10 프루기아와 팜필리아, 이집트와 쿠레네에 가까운 리비아의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에서 온 타국인들, 즉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과
11 크레테인과 아라비아인들인 우리가 그들이 우리의 언어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말하는 것을 듣고 있도다.” 하니
5절, "천하 각국"(every nation)에서의 "every"는 "구별 없는 모두"(롬 1:8, 엡 6:21)를 말씀하며, "예외 없는 모두"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열두 사도가 14-15개 언어로 말하고 있는데 정확한 수를 알 수 없는 것은 "메데인과 엘림인"과 "유대인"(Jews)(10절)과 "유대"(Judea)(9절)의 언어의 차이에 대해 논란이 있기 때문입니다.
6절, "소문이 퍼지자", 이 소문은 2-4절에 일어난 사건을 전하는 소문인데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렸고 외지에서 온 유대인들이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지역 이름들은 바빌론 포로기 이후부터 유대인들이 퍼져 살았던 지역들입니다(왕하 17장). 그 지역은 동쪽으로부터 시작해서(파데, 메데, 엘람, 메소포타미아) 남서쪽(이집트, 쿠레네, 리비아), 북쪽의 소아시아(캅파도키아, 폰토, 아시아, 프루기아, 팜필리아), 서쪽 로마, 그리고 지중해의 섬과 남동쪽(크레테와 아라비아)에 이르는 지역들입니다.
12 그들이 모두 놀라고 의아해 하며 서로 말하기를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하더라.
13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며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새 포도주에 취하였다.”고 하더라.
"새 포도주에 취하다"라는 말은 일종의 비꼬는 말입니다. "새 포도주"는 포도나무에 달려 있는(창 40:10) 포도의 즙(사 65:8)을 말합니다. 그것은 짜서(40:11) 발효가 일어나기 전에 잔에(마 26:29) 담깁니다. 새 포도주는 "오래 된 술"(눅 5:39)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마시고 취했구나란 말은 비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며"라고 하신 것입니다.
14 그때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서서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유대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사람아, 이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겠으니 내 말에 경청하라.
15 지금은 겨우 낮 세시니 너희가 짐작하는 것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니라.
14절, "너희 유대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사람아", 베드로의 지금 설교 대상은 유대인이고 여기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거하는"이라는 말은 흩어진 유대인들이 잠시 명절 때 올라와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15절의 표현을 악용해서 베드로가 발효된 포도주를 마시고 사도들이 취했다는 것을 인정한 말이라고 하는 해석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을 모르는 데서 나온 무지의 소산입니다(마 22:29). 마태복음 25:26에서는 이와 동일한 식의 답변이 주어지는데 일단 고소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준 뒤에 그것을 근거로 반박하는 것입니다.
16 이것은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바니
17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으리라. 그러면 너희 아들들과 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며 너희 노인들은 꿈을 꾸리라.
18 또 그 날들에는 내가 내 남종들과 여종들 위에도 내 영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하리라.
19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이적들과 아래로 땅에서는 표적들을 보이리니 피와 불과 연기라.
20 그 위대하고 찬란한 주의 날이 오기 전에 해가 흑암으로, 달이 피로 변하리라.
21 그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느니라.
16-21절 말씀은 요엘 2:28-32을 인용한 것인데 요엘서의 그 말씀들 중 사도행전 2장에서는 단 하나도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성령은 사도행전 2장에서 "모든 육체 위에" 부어지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열두 사도(또는 120명의 제자)들 안에 들어가서 충만케 하셨지 그들의 육체 위에 부어지지 않았습니다. 3천명의 개종자들 위에도 부어지지 않았고 그들은 성령을 "선물로" 받았지만 "부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순절 이후로 신약 어디서도 성령께서 "모든 육체" 위에 부어지신 적은 없는데, 거듭난 사람은 영이 거듭났으며 "육신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롬 8:9). 성령께서는 성도를 거듭나게 할 때 그의 육신 위에 관여하시는 게 아니며(골 2:11-14), 몸 안에서 영적 할례를 행하십니다(롬 7:4,5).
사도행전 2장에서는 "연기 기둥도 없었고 해가 어두워지거나 달이 피로 변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엘서에서 예언된 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구해냄이 있지도 않았습니다(대환란 끝의 상황).
16절의 "이것"은 17-20절의 요엘서 인용문을 말씀하는 것이며 앞의 "방언"과는 무관합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것은 오순절의 방언들이 요엘서 성취라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있을 사건들이 "곧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설교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1-6은 마지막 날들을 준비하는 역사인데, 요엘서는 이때 유대인들이 전체 다 회개했다면 성취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연기되었습니다.
요엘서에서 말씀하는 "위대하고 무서운 주의 날이 오기 전에"(20절) 일어날 일을 살펴보면,
1. 구해냄은 골고다(갈보리)가 아니라 시온 산에 있는 도시 안(히 13:13)에서 있게 될 것이다.
2. 이 때의 구원은(행 2:21) 구해냄(욜 2:32)의 형태로 있다.
3. 구원받을 사람들은 "남은 자들"이 될 것인데 그들은 대환란 끝에 남아 있는 유대인들이다(계 12:17, 슼 8:6,12, 슾 3:13, 암 5:15).
4. 요엘 2:23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는 것은 사도행전 2장과는 연결되지 않습니다. 요엘서의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첫째 달"에 내리지만 오순절은 둘째 달 둘째 주가 지나야 있습니다. "이른 비"는 오순절 성령 강림이요 "늦은 비"는 20세기의 "오순절 운동"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요엘 2:23의 "비"는 "시온의 자녀들"(23절)에게 내리며 좋은 수확을 얻게 하기 위해(22,26절) 밀밭과 포도원(24절)에 내립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오순절날 성령의 "부으심"과 연관된다는 말은 없는데 그렇게 믿는다면 그것은 속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시는 때"는 "그후"(욜 2:28)가 될 것입니다. "그후"는 대환란 이후를 말하는 것이며, 불과 피와 구름 기둥들(욜 2:30)은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요엘은 "그 날들에"(욜 3:1,2) 이스라엘이 구속을 받고 회복되리라고(눅 1:68-79) 말합니다.
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것이 베드로가 전파한 "신약적 구원 계획"이거나 "복음"이라고 생각한다면 사실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이 구절을 요엘서에서 인용했으며 베드로는 아직 피의 속죄, 영적 할례(골 2:11,12) 등에 대해 계시가 없어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회개함과 죄사함"(눅 23:47)은 요한의 침례(막 1:4, 행 2:38) 아래서 그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날들(17절)은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날 뻔" 했지만 사도행전 7장의 민족적 거부 이후 교회시대 끝으로 위치가 이동했습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도행전 자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천년이나 후천년 신학자들은 "연기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요엘서는 "영적으로 성취되고 끝났다"고 말합니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의 왕국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연기"된 것인데 이 사실을 믿지 않으면 구약의 2/3를 믿지 못하게 되고 500구절은 완전히 거부하게 됩니다(롬 11:25).
22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씀들을 들으라. 너희 자신도 아는 바와 같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너희 가운데서 행하신 기적들과 이적들과 표적들로 너희 중에서 하나님께 확증되신 분이니라.
23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심을 따라 내어주신 그를 너희가 붙잡아 무법자들의 손을 통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
25 이는 다윗이 그에 관하여 말하기를 ‘내가 주를 항상 내 앞에서 미리 뵈었으니 이는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어 나로 요동치 못하게 하심이라.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즐거워하였고 내 혀가 기뻐하였으며 또한 나의 육체도 소망 속에 안식하리니
이 메시지는 "이방인들"을 위한 메시지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거듭난 크리스챤들을 위한 메시지가 아니며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22절), "너희 유대 사람들", "이스라엘의 온 집"을 위한 메시지입니다. 사도행전 2장은 이방인 크리스챤을 위한 구원 계획의 설명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22절, "나사렛 예수", 이 호칭은 이스라엘에 보내심 받은 "선지자"이신 예수님의 호칭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예수님을 한 번도 "인자"(The Son of Man)으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인자"가 수십 번 나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등장하지 않는데,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 계보를 제시하지 않았고 "시작이 없는" 진짜 계보와 함께 시작합니다(요 1:1-6). 은사주의자들은 그냥 "예수 그리스도"라 하지 않고 꼭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그 돌팔이들은 좀처럼 사도 바울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약적 은혜 복음에 의한 구원계획이 제시되지 전에 오순절날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설교했던 내용을 되풀이합니다. 오순절 은사주의자들은 유대인 사도들이 유대 국가를 위해 펼쳤던 "나사렛인"의 지상 사역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적들과 이적들과 표적들"은 사도들의 사역의 성격을 규정해 주는데 이 단어들은 사도행전에서 반복적으로 나옵니다(2:19; 4:40; 5:12; 7:36; 8:13;14:3; 22:43). 이 구절들을 살펴보면 내려지는 결론은 "사도직의 계승"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만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주어진 이적과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께도 주어졌으며(신 18:15-20), 그 능력은 다시 유대인 사도들에게 넘겨졌습니다(막 16장, 고후 12:12). 사도들이 전부 죽었을 때 더이상 누군가에게 안수할 사도가 없었고 그들의 "이적과 표적"은 그들의 사역이 끝마침과 더불어 사라집니다. "표적"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출 4:30)이므로 사도들의 안수를 통해(막 16:17-19) 직접 전수받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이러한 "표적들"이 주어졌다는 증거는 없으며 디도, 실라, 디모데 등(행 14:14) 누군가에게 사도들의 능력이 전수되었다는 기록 또한 없습니다.
로마 카톨릭이나 은사주의자들, 신사도들이 가르치는 "사도직 계승"은 성경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허구입니다. 사도 베드로로부터 직을 계승했다는 교황들 중 한 명도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과 비슷한 하나의 이적이나 표적도 행한 적이 없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죽은 자를 일으킬 수 있었는데(행 9,20장) 바티칸에 있는 자들은 그들의 권위가 "위조된 거짓"이기에 이런 능력을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시몬 베드로의 계승자가 아니라 "거짓말하는 사기꾼들"(계 2:2)에 불과합니다.
23절, 베드로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됨과 부활에 대한 것이지만 그는 이것을 개개인의 "피의 대속"(고전 15:3-4)으로 아직 적용하지 않습니다. 피의 대속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사도행전 8:31-35에서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할 때 처음 전파됩니다(사 53장).
24절, "사망의 고통"이라는 표현은 "마음의 고통(시 55:4)이나 "죽음이 가까워 올때 느끼는 고통(욥 16:5-18), 두려움과 심한 아픔(시 48:6, 렘 6:24), 상한 곳과 멍든 곳들의 아픔을 느끼는 것(렘 16:18, 계 16:10), 이런 고통들을 말합니다.
베드로가 인용한 부분은 시편 16:8-11인데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한 이 말은 "사망의 고통"을 겪으실 때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스도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의 때에 그리스도의 힘이시며 그의 "오른손"이시라고 시편 16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요 4:34) 자신의 얼굴을 부싯돌같이(사 50:7) 하실 수 있었고 십자가의 죽음을 기쁨으로 여기실 수 있었습니다(히 12:1-3). 그분은 평생 이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으셨고(마 16:21-24) 그가 이 뜻을 기뻐하셨다는 사실(히 10:1-6)은 본문 26절로 분명해 집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아버지께 되돌아갔고(전 3:21, 눅 23:46), 그분의 몸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안치되었으며(눅 24:1-4), 그분의 혼은 곧장 지옥으로 가서 지옥을 통과하면서 지하 낙원에서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반대편으로 나가셨습니다(엡 4:8-10).
<마무리>
사도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준 것을 회개하고 그를 그리스도로 믿으라는 촉구의 설교입니다. 이 설교대로 그날 약 삼천명이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숫자의 유대인들은 마음을 굳게 하고 귀를 막아 듣지 않았으며, 그들이 일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거부했을 때 복음은 이방인에게로 넘어간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은 과도기적인 복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의 효력이 개인의 죄를 제거하고 완전히 거듭나게 한다는 진리를 전파하고 있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이 회개하고 그분을 메시야로 믿으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이런 부분은 전환기를 보여주는 "역사"이기도 한 것입니다. 오순절 은사주의자들은 이런 불안정한 과도기 위에 자신들의 교리를 세우고는 "성령 세례"를 받으라, "불 세례를 받고 방언하라"고 미혹합니다. 거짓 사도를 자처하는 자들에게는 거짓 잡새들(악령들)이 모여들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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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기 죄송하지만, 이건 제 생각입니다 불 같은 모양의 갈라진 혀로만 보자면 데일리브레드님 말씀처럼 뱀의 머리일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그뒤에 '성령으로 충만하사' 란 구절이 있어서 그 갈라진 혀는
성령님의 은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뱀의 머리가 아니라 뱀의 혀 같은 갈라진 혀를 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뱀의 혀가 나타났단 게 아니라 그런 모양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유도 더 생각해 봐야 하겠는데, "갈라진 혀"에 대한 성경적 추론을 더 해봐야 합니다. 지금은 그것이 마귀의 상징이지만 원래 타락하기 전 그룹도 그런 혀를 가졌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