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대승론 상권
1. 의지승상(依止勝相)
1.2. 상품(相品)
1) 식의 상을 세우다
또한 이 식의 상을 세우니,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이 상은 간략하게 설하여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상을 세우는 것이고,
둘째는 인(因)의 상(相)을 세우는 것이고,
셋째는 과(果)의 상(相)을 세우는 것이다.
자상을 세운다는 것은 모든 부정품법의 습기(習氣)에 의하여 그것이 생할 수 있게 되며, 종자를 섭지하여 그릇[器]을 만드는 것을 자상이라고 한다.
인(因)의 상을 세운다는 것은, 이 일체종자식이 부정품법을 생하기 위하여 항상 일어나서 인이 된다. 이것을 인(因)의 상이라고 한다.
과(果)의 상을 세운다는 것은 이 식이 갖가지 부정품법의 시작함이 없는 습기로 인하여 마침내 생할 수 있다는 것이 과(果)의 상이라고 한다.
[습기의 뜻]
무슨 법을 습기라고 하는가?
이 습기라는 이름은 무슨 정의를 드러내고자 하는가?
이 법은 그것과 서로 응하여 함께 생하고 함께 멸하며, 나중에 변하여 그것이 생하는 인(因)이 된다.
이것은 드러내어지는 것의 정의이다.
비유하건대 마(麻)가 꽃으로 훈습하는 것과 같이, 마는 꽃과 동시에 생하고 멸한다.
그것이 거듭거듭 생하여 마의 향(香)이 생하는 인이 된다.
만약 사람에게 탐욕 등의 행이 있다면 탐욕 등의 습기가 있다. 이 마음은 탐욕 등과 더불어 같이 생하고 같이 멸한다.
그것이 거듭거듭 생하여 마음의 변이를 생하는 인이 된다.
만약 문혜(聞慧)가 많은 사람[多聞人]에게 많은 습기가 있다면, 거듭 들은 것을 사유하여 마음과 함께 생하고 멸한다.
그것이 거듭거듭 생하여 마음을 명료하게 생하는 인이 된다.
이러한 훈습으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머무는 것을 얻기 때문에 이 사람은 법(法)을 지닐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아리야식에서 이와 같은 도리를 알아야 한다.
2) 더러움에 물든 종자와 아리야식의 관계
이 더러움에 물든 종자는 아리야식과 같은가, 다른가?
다른 물체로 말미암기 때문에 다른 것이 아니고, 이와 같이 화합하여 비록 분별하기 어렵지만 다르지 않지 않다.
아리야식은 이와 같이 생한다.
훈습이 생할 때에는 승묘하고 경이로운 공능이 있으니 설하여 일체종자라고 한다.
어찌하여 아리야식은 오염된 법과 더불어 일시에 번갈아 서로 간에 인(因)이 되는가?
비유하건대 등불이 심지와 함께 생하고 태우는 것과 같이 일시에 번갈아 서로 인이 된다.
또한 갈대 묶음이 일시에 서로 의지하며 도우므로 서 있을 수 있는 것과 같이, 본식은 훈습의 주체와 더불어 번갈아 서로 인이 된다는 그 정의도 이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식은 오염된 법의 인이 되고, 오염된 법은 식의 인이 된다. 왜냐 하면 이 두 법을 떠나서 다른 인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훈습은 다르지도 않고 여러 종류도 아니면서, 다름이 있고 여러 종류인 모든 법을 지어 생하는 인이 되는가?
비유하건대 많은 실로 묶은 옷이 여러 가지 색이 없었는데, 염색하는 그릇에 넣은 후에는 옷 위에 갖가지 모양이 마침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리야식은 여러 가지의 모든 법에 의해 훈습된다.
훈습할 때는 한 가지 성품으로 여러 종류가 없으나, 만약 과(果)를 생하고 물들이는 그릇이 나타나면 헤아릴 수 없는 상모(相貌)가 아리야식에 현현한다.
3) 연생법
대승에 있어서 이 연생(緣生)은 가장 미세하고 깊고 깊다.
간략히 설한다면 두 가지 연생이 있다.
첫째는 분별의 자성인 연생이고,
둘째는 애(愛)와 비애(非愛)를 분별하는 것이다.
아리야식에 의지하여 모든 법(法)이 생하여 일어나는 것을 자성을 분별하는 연생이라 한다. 여러 가지 법의 인과 연의 자성을 분별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다시 12연생이 있으니 애와 비애를 분별한다고 일컫는다. 선도와 악도에서 애와 비애를 분별하여 여러 가지의 다른 인을 생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아리야식에서 첫 번째의 연생에 미혹하다면,
혹은 자성이 생사의 인이라고 집착하고, 혹은 숙작(宿作)을 집착하며, 혹은 자재하는 변화를 집착하고, 혹은 여덟 가지의 자재아(自在我)를 집착하며, 혹은 인이 없음을 집착한다.
만약 두 번째의 연생에 미혹하다면,
아(我)를 짓는 것[作者]이 받는 것[受者]이라고 집착한다.
마치 여러 타고난 맹인이 일찍이 코끼리를 본 적이 없는 것과 같아서,
어떤 사람이 그것을 내보이고 그들에게 만져보고서 깨닫게 하면,
이 맹인들은 혹은 그 코를 만지고, 혹은 그 치아를 만지고, 혹은 그 귀를 만지고, 혹은 그 다리를 만지고, 혹은 그 꼬리를 만지며, 혹은 그 등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코끼리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물으면 맹인은 답하여, 코끼리는 마치 쟁기자루 같다고 할 것이며, 혹은 절구공이 같다고 설명할 것이고, 혹은 키 같다고 설명할 것이고, 혹은 절구통 같다고 할 것이고, 혹은 빗자루 같다고 할 것이고, 혹은 바위덩이 같다고 설명할 것이다.
만약 두 가지의 연생과 무명을 요달하지 못하면,
무명으로 타고난 맹인은, 자성을 인이라고 말하고, 혹은 숙작(宿作)이라고 말하고, 혹은 자재변화라고 말하고, 혹은 8자재아(自在我)라고 말하고, 혹은 인이 없다고 말하고, 혹은 짓는 것이 받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리야식의 체상(體相)과 인과상(因果相)을 요달하지 못한다면,
마치 저 눈먼 사람이 코끼리의 체상을 알지 못하고 갖가지 다른 설명을 하는 것과 같다.
간략하게 아리야식의 체상을 설하면 과보식이며, 일체종자식이다. 이 식이 모든 삼계의 신(身)과 모든 6도(道)의 4생(生)을 포섭하여 모두 다한다.
이러한 뜻을 드러내기 위해서 게송으로 읊어 말씀하셨다.
외종자[外]와 내종자[內]는
두 가지에 있어서 밝게 요달하지 못한다.
단지 가명(仮名)과 진실(眞實)일 따름이니,
일체 종자에는 여섯 종류가 있다.
생각생각에 멸하는 것, 모두 갖추어 있음[俱有],
다스릴 때까지 좇아 따르는 것,
결정(決定)하는 것, 인연을 관함,
스스로의 과를 이끌어 드러내는 것이다.
견고하고 무기(無記)이며 훈습할 수 있어서
훈습의 주체와 더불어 상응한다.
만약 이와 다르다면 훈습할 수 없다.
이것이 훈습의 체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6식(識)과는 상응하지 않으니,
세 가지 차별로 서로 어긋난다.
두 생각[二念]은 함께 있지 않으니,
그 밖에 생하는 경우[生起識]에도 이러하여야 한다.
이 외종자와 내종자는
생하는 인과 이끄는 인이 될 수 있다.
메말라 죽어도 여전히 상속(相續)하여
차후에 바야흐로 멸하여 다한다.
비유하건대 외종자와 같이 내종자는 그러하지 않다.
이 의미를 두 구의 게송으로 드러낸다.
외종자에는 훈습이 없으나,
내종자는 그렇지 않다.
문(聞) 등의 훈습 없이
과를 생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이미 지음과 짓지 않음,
실(失)과 득(得)이 모두 서로 어긋난다.
내(內)와 외(外)가 성립할 수 있으므로,
내종자는 훈습이 있다.
4) 생기식
나머지 식은 아리야식과 달라서 생기식이라고 일컬으며, 일체의 생하는 처(處)와 도는 수용식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변론(中邊論)』의 게송이 설하는 것과 같다.
첫째는 설하여 연식(緣識)이라 하고,
둘째는 설하여 수식(受識)이라 한다.
요별하여 받아들이므로 분별이라 하고
행을 일으키는 것 등의 심법(心法)이다.
이 두 가지 식은 번갈아서 인이 된다.
대승아비달마의 게송에서 설하였다.
모든 법은 식에 숨어 간직되고
식은 법(法)에서 역시 그러하다.
이 둘은 서로 인이 되고
역시 항상 사로 과가 된다.
만약 첫 번째의 연생 가운데에서 모든 법이 식과 더불어 번갈아 인연이 된다면,
두 번째의 연생 가운데에서 제법은 무슨 연(緣)인가?
증상연(增上緣)이다.
다시 몇 가지 연이 6식을 생할 수 있는가?
세 가지 연이 있으니, 즉 증상연(增上緣)ㆍ연연(緣緣)ㆍ차제연(次第緣)이다.
이와 같이 세 가지 연생, 즉 첫째의 궁생사연생(窮生死緣生)과 둘째의 애증도연생(愛憎道緣生) 그리고 셋째의 수용연생(受用緣生)은 네 가지 연을 빠짐없이 갖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