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
캐나다 뮤즈 한국 청소년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수필가 박혜정
회원들끼리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밴쿠버 문인협회에서 야유회를 간다고 했다. 야유회 전 날 눈이 조금 내렸다. 다음 날도 일기예보는 눈이었다.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하다. 왜냐하면 올해는 눈이 많이 온다고 해서 스노우타이어로 바꾸었는데 막상 겨울이 지나도록 눈다운 눈이 오지 않으니까 눈이 기다려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눈이 많이 오면 꼼짝 못할 것을 생각하니 걱정도 되는 이 두 마음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눈이 오면 무조건 좋았었는데.
일기예보를 보고 걱정을 하다 잠이 들어서인지 밤 새 눈 위에서 차가 미끄러지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니 “어쩜, 이렇게 날씨가 좋을 수가!” “Beautiful Day!" 커피를 한 잔 뽑아 들고 심 수필가를 태우러 길을 나섰다. 그 집에 도착해서 밥통과 야채들을 실었다. 내 차에 타자마자 “아 ! 커피 향이 너무 좋다”라고 하셨다. 평상시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그 말로 하여금 나 또한 커피 향을 한 번 더 음미하게 되면서 화창한 날씨와 어우러져 어릴 적 소풍을 가듯 내 마음을 들뜨게 해 주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몇 분이 먼저 와 계셨다. 우리 모임의 어른이신 반 목사님이 중심을 지키시고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셨고, 몇 몇 남자 분들이 솔선수범해서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고기를 썰고, 불을 지피고 있었다. 그런 정겨운 모습을 보니 한국에서도 이제는 많이 달라지고 있겠지만 이곳이 캐나다니까 더욱 몸에 밴 듯 어울려 보인다. 대학 선배인 김 수필가는 야채를 씻고 다른 분은 쌀을 씻고 있었다.
점심이 준비되는 동안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김 시인은 암 투병 중인데도 부회장의 책무를 다 하기위해 열심히 참가했다. 그리고 지금 병상일기도 쓰는 중이라면서 내가 암에 대한 질문을 해도 전혀 거리낌 없이 상세히 이야기 해 주었다. 머리가 빠지는 이야기부터 약을 투여해서 받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까지. 어떤 멋진 가발이 어울릴지 인터넷을 찾아보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지금은 머리가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신나고 재미있다고 했다. 암 선고를 받고 부터 새로운 세계를 경험 해 본다는 이야기는 모든 일에 힘든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는 세상의 이치를 느끼게도 한다.
요즈음에는 암에 걸렸다고 해도 심각한 감기에 걸린 정도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고 다들 긍정적으로 대처를 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몸살이 나면 “이젠 몸이 힘들다고 조금 쉬어 가라고 하나 보다”라는 생각을 한다. 김 시인도 앞만 바라 보고 왔더니 뒤도 돌아보는 여유를 갖으라는 뜻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막상 암이란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그렇게 편히 말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답게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책을 출판하려는데 예전에 쓴 시의 시제는 어떻게 하지요?” “시는 현재라고 생각하고 작업을 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럼 수필은?” “수필 쓴 시점을 중시해서 몇 년도 봄, 여름 이라고 쓰면 좋을 것 같아요” 등등. 수다를 떠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은 색다른 재미가 있다. 얼마 전 저녁식사 때 교수님과 긴 시간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둘 사이의 공통분모인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대화만으로도 배가 부른 것 같았다.
지휘자 금난새가 쓴 책을 보니, 바이올린니스트인 부인과 중국 연주에서 지휘자와 협연자로 만나서 급속히 가까워진 후 결혼에 성공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음악적 해석이 같으면 정말 말이 잘 통하는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과는 생각이 전혀 다른 것 같아 대화하기도 꺼려질 때가 있다. 내 생각에 아마도 그 당시 금난새와 부인이 된 바이올린니스트는 음악적 해석이 일치해서 더욱 가까워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내가 청소년 교향악단원 이었을 때 지휘자로 금난새, 협연자로 부인이 같이 연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공통분모가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면 색다른 재미가 느껴진다. 예를 들면, 같은 연령의 아이들을 둔 엄마들 모임은 정보 교환에 매우 좋은 것 같다. 나중에는 아이들과 상관없이 학교 친구보다도 오래 만나게 된다. 그렇지만 잘못하면 엄친아를 만들기 쉽다.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은 서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감정이나 몸 상태에 대해 동병상련을 느껴 좋다. 취미가 같은 사람들의 모임은 취미 활동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보낼 수 있어 좋다. 전공이 같은 사람들의 모임은 정보 교환과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 동기 동창모임은 나이가 들었어도 그 시절로 돌아가서 신나게 수다를 떨 수 있어 좋다.
겨울이 지나가고 파릇파릇한 새싹이 나오려고 하는 봄이 오고 있다. 이젠 기지개를 크게 펴고 밴쿠버를 재미없는 천국이라고만 하지 말고, 어떤 것이든 자기에게 맞는 단체의 일원이 되어 자기와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첫댓글 서로 다른 만남에 공유하고 화합의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찬사가 있겠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 하시고 고운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