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가 조식 포함이고 도미토리지만 여자돔이라 그런지 가격이 좀 나갔다. 사실 티라나는 숙소 값이 내려가서 개인방과는 5유로 차이만 났다. 처음엔 볼 거 없는 티라나에서 완전히 쉴 목적으로 개인방을 얻으려 했는데 이 숙소에 대한 한국인 평이 그냥 여기 가세요라서 왔다.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다.
주인 여자인 로라가 조식을 준비해 주는데 혼자서 바빴다. 미리 접시에 공통인 치즈와 토마토는 챙겨놓고 식빵도 토스트기에 알아서 구워 먹으라고 하면 쉬울 텐데 일일이 다 하고 있다. 그려. 여기서는 바쁠 거도 없는데 기다리지. 뭐.
다들 커피는? 하고 물었다. 거실에 커피 가게에서나 있던 기계가 있길래 이상타 했더니 커피는 사 먹어야 한단다. ㅋ 2유로다. 카푸치노를 한잔했다. 다들 사 먹는 눈치다.
오늘 체크아웃을 하고 쉬코드라로 간다는 호주애가 엄청 싹싹해서 여기저기 말을 걸었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프랑스 중년 여인도 쉬코드라로 간단다. 트레킹이 목적이다. 그녀는 우리가 아는 거와는 다른 루트를 말하는데 처음 듣는다. 지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하루에 8시간 걸어야 하는 트래킹을 못 갈 거 같아서 어쩌나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영어를 거의 못해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쉬코드라에 가서 알아봐야겠다.
귀동냥을 하니 알바니아가 산도 많고 바다도 끼고 있어서 좋은 곳이 많다고 한다. 공산국가에서 벗어나 새롭게 변신하는 신생국가라 아직 관광으론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유명해질 거도 같다.
밥을 먹고 뜨거워지기 전에 조금만 보고 오려고 나갔다. 9시가 조금 지났는데 이미 거리는 뜨겁다. 추웠지만 구경하기엔 3,4월도 괜찮은 거 같다. 숙소 값도 싸고 걸어 다니면 그리 춥지는 않았으니까.
시장이 보였다. 큰 시장은 아니고 그냥 골목시장이다. 야채가 반갑고 수국에 눈이 저절로 갔다. 수국철이구나!
올리브는 어케 먹나 궁금하다. 짠가.
시장에는 쌀을 팔지 않았다. 피렌체에서 샀었는데 비행기를 탄다고 민박집에 기증해서 쌀이 없다. 비상식량이라 챙겨놔야 했다.
바로 옆 마트에 있길래 500그램짜리 하나를 샀다. 확실히 이탈리아보다 싸다. 봉지는 사야 해서 그냥 손에 들었다. 그대로 숙소에 들어 가려다가 광장이 보여서 잠깐 구경하러 갔다. 정말 빈약하고 피렌체 광장에서 보던 회전목마가 보였다. 놀이 기구도 어디 있느냐에 따라서 예술로 보일 수도 있고 그냥 놀이 기구가 될 수도 있다.
한쪽에선 연주가 한창이다. 팁 박스가 있으니 거리 연주자인 모양이다. 아는 노래가 나오니 흥겹다.
공항버스를 내린 곳으로 가 보았다. 거기가 버스 터미널인 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시외로 가려면 터미널로 가야 한단다. 바로 앞의 버스를 가리키면서 타란다. 버스 표가 보이길래 한 장 달라고 했더니 버스를 타면 차장이 판단다. 어쩔까 하다가 버스는 걷는 게 아니라서 일단 탔다. 슬리퍼를 신고 쌀봉지를 손에 들고 터미널에 가다니 웃긴다. 차비는 40레카다. 나누기 백을 하면 유로다. 0.4유로.
이 삼십분을 간다고 해서 넋 놓고 있다가 옆의 아줌마한테 '부스 떼르미널' 하니까 다음에 내리란다. 기사가 갑자기 '떼르미널'하면서 큰소리를 하니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냥 계속 넋 놓고 있어도 되었네.ㅋ
무슨 터미널이 포장도 안된 공터에 차를 우르르 세워 놓았다. 심지어 거의 밴이다. 공항버스도 사람이 가득 차니 움직이던데 여기도 그런 거 같다. 이런 재미있는.. 갑자기 전투력이 급상승한다. 저러면 버스 시간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
큰 버스는 어디로 가는 거지. 난 밴 당첨.
그래도 정문은 이쁘네.
길을 건너 다시 버스를 탔다. 40레커를 손에 쥐고 멍하니 있는데 차장이 어려 보이더니 차비를 받으러 안 온다. 자진해서 차비를 주었다. 차비가 싼 거 같아도 한 시간 동안 쓸 수 있다거나 환승 따위는 안되니 그게 그거 같다.
숙소로 오다가 근처에 관광지 한 곳이 생각나서 지도를 보았다. 바로 옆이다. 보고 가야겠다. 성당이 아니라서 슬리퍼도 상관없겠다.
사람들이 있다. 전쟁 때 사용하는 피신처인 벙커란다. 하나는 외곽에 있고 도심에 하나 더 있단다. 입장료가 600레커인데 60세 이상은 400레커다. 식스티 모얼 하니 신분증을 보여 달랜다. 까짓꺼. 여권을 꺼냈다.
이런 종류를 사라예보에서도 보았고 호치민 땅굴도 보았는데 또 보러 왔다. 그 내용이 그 내용이지만 보고 나면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오후에는 계속 숙소에 있었다. 쉬지 않고 이탈리아를 관통해서 조금만 움직여도 목이 붓는다. 두러스도 데이투어하고 싶은데 우짜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