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너
손톱 밑 가시
62. 콩 심는데 콩 나고 팥 심는데 팥 난다
누군가를 위해 크게 희생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남의 뼛골을 야금야금 빼 먹으면서
쓰다 맵다 싱겁다 짜다
주둥이질 한다
끝까지 남을 위해 희생해 줄 줄 모른다
63. 상생법
꽃을 보아라
접 부쳐준 나비와 벌에게 꿀을 답례로 주지 않니?
나비와 벌을 보아라
꿀을 얻어가는 대신 접을 붙여주지 않니?
너와 나도 그리해야 해
그래야 건강한 관계가 되는 거야
64. 산다는 것
꽃을 피우는 것들은 꽃 피우는 것보다
열매를 맺기 위한 징검다리로 꽃을 건너가는 것뿐이야
나도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먹는 거야
피었다가 잘 스러지는 것들은
후손를 남기고 개운하게 떠나기 위한 거야
65. 토사자
누군가의 몸을 칭칭 감고 올라가며
진액을 쭉쭉 빨아 먹고 산다
가까이 있는 것들이 숙주가 되는 아이러니
상종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도 있다
쥐어뜯어 버리고 뿌리까지 캐어 버려도
감고 오른 누군가의 목숨에 감긴 것들은
제 땅인 양 빨대를 꽂아 악착같이 살아남는다
세상의 어딘가는 수두룩하게
남의 목숨에 기생하는 족속들이 있다
안 빨리도록 두 눈 부릅뜰 일이다
가차 없이 뿌리칠 일이다
목숨 걸고 싸울 일이다
66. 공포와 경계의 밥살이
누군가 놓아둔 한 무더기 먹이
비둘기 다가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너무도 깊고 퍼런 공포와 경계심을 드러낸다
저 경계심으로 목숨을 부지하며 살았으리라
눈 뜨고도 코 베가는 사람살이보다
더 열악하고 무서운 시간을
저 작은 몸으로 이겨냈으리라
경계와 공포는 당연하다
약자의 약자일수록
여차하면 목숨을 들고
오십육계 줄행랑만이 살 길임을 나도 안다
67. 맞짱
근심을 즐기자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이 감옥
고통을 즐기자
아무리 몸부림쳐도 탈출할 수 없는 블랙홀
허기를 즐기자
아무리 가난에게 밥을 고봉으로 처먹여도
아귀처럼 허기진 이 지옥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내 비명들
좋다, 인생아
치사하고 더러워서 내 즐기고 만다
68. 연단
저 집은 원래 더러운 집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저 주둥이와 손목댕이
내 땅을 무상으로 쓰면서 배째년
나팔꽃 찔레꽃 미국 자리공
꼭 지 같은 것만 키우면서
깨끗한 척
저 더러운 심보와 주둥이
내 퍼런 독을 키워주는 네 년이
고맙다
니들이 밟으니까 내가 잡초가 되더라
안 밟아줬으면 강해지지 못했을 내 깡
잘 지켜봐라
너는 나에게 한줌거리도 되지 않음
내가 흘린 피 눈물과 모멸감
-심는 대로 딱, 그만큼만 꼭 너 당하길 빈다
69. 박쥐
어처구니를 히딱 뒤집은
너의 변심이
나, 하나도 안 아프다
걱정 안하겠지만
걱정하지 마라
너를 짊어져 주는 일 정말 지옥이었는데
알아서 변절자가 되어 주니 감사하다
나를 하늘이 찐하게 도운 것
70. 불암산 벼랑 끝 소나무
스스로 단단해졌구나
니 팔 니가 흔들며 살고 있구나
하늘과 땅의 경계
바람과 구름의 경계
죽음과 삶의 경계
천 길 낭떠러지가 혀를 날름거리며 손짓해도
벼랑을 붙잡는 이승을 선택했구나
장하다
장하다
71. 경계
사람은 비교하면서 더 불행해진다고
누군가 말했다
맞다
눈의 문
귀의 문
습자지 같은 마음 속 열패감
함부로 열어젖히고 비교하지 말라
더 깊이 들어가면
그 행복에도 비명이 숨어 살더라
72. 죽음터
낭떠러지가 군침을 흘리는 벼랑길
손잡고 가면 다 죽는다
등까지 내밀어 업어주는 내 업장
그 정도만 내 한계점이다
살려 달라고 빨려 달라고
죽도록 우르르 나에게 매달리지 마라
아직 당신들 어깨엔
스스로 밥 전쟁할 힘 있으니
제발 이젠 내 손을 좀 놔 줘라
내가 비정하게 뿌리치기 전에
우리 다 죽기 전에
여기 벼랑길은 총칼 없는 전쟁터다
73. 순리
안되면 안 되는대로
되면 되는 대로
그냥 흘러가 보자
74. 호소문
내가 지금 얼마나 속이 시끄럽고 아픈 줄 아니?
살아갈 일도 죽어버릴 일도 다 지옥
아프지 말자고 서러워 말자고 주문처럼
되풀이해서 최면을 걸며 살아보려도 애써도
한 발자국도 희망에게 가 닿을 수 없는
나의 고달픈 처지
그래도 너에게 도와 달라고 구해 달라고
한 번도 비명 지르며 징징거리지 않잖니?
장하지 않니?
기특하지 않니?
나, 죽자고 참는 중이야
나, 필사적으로 살자고 견디는 중이야
이 묵언 수행의 아궁이 속에선
내 피가 바짝바짝 졸아 붙고 있어
이 뜨거운 지옥에서조차
죽어도 살아도 나는 네 피 빨지 않잖니!
제발!
75. 창문 서시
어느 날부턴가
팔 벌리면 닿을 수 있는 내 창문과 마주 보이는
반 지하 총각이 세 들어 사는 집
창문이 열리지 않는다
벌떡증이 불끈불끈 솟아올라
창문을 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나를 배려하는
마음이 읽힌다
불볕더위에도 열리지 않는 창문
켜져 있는 형광등 불빛이 은은하니 세어 나올 뿐
약자의 피해자와 가해자인 약자의
팔 벌리면 닿을 수 있는
이웃 창문과의 거리
산목숨들의 불편한 아림
빚진 마음이 숨죽여 고맙고 미안하다
울음 덩어리 가만히 묻는 시간
그대, 영영 반지하방이 되지 않기를
나, 영영 가난한 창문으로
이웃에게 빚진 자 되지 않기를
주기도문처럼 외우고 또 외운다
76. 싼 밥도 아닌 밥
울화를 억누르고 먹었더니 체했다
작은 녀석 징병 검사 끝나고
밥 먹으로 들어간 중국집
기름만 둥둥 떠 있는 뻘건 짬뽕 국물을
질질질 흘리며 가져다 준 꼬락서니
이런 기본도 안 된 밥집이 있나
지글거리며 타는 여름만큼이나
내 잡친 기분도 수온이 올라갔다
다른 식당들은 휴가 가서 문 닫았는데
살려고 영업하는 맘 읽혀
성질난 마음을 묻고 돈이 아까워
꾸역꾸역 먹다가 체했다
그러다 생각한다
이런 기본도 안 된 세상을
나는 너무도 많이 참아준다는 것을
나에게 빚진 세상은 그걸 모른다는 것을
77. 화두
고매한 고승들은 잘 죽기 위해서 수련을 통해
스스로 목숨이 다 해갈 때쯤
곡기를 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자신의 세포들을 하나하나 닫아건다는데
그 몸에 사리를 남겨놓고 가신다는데
고령화 시대에
지나치게 빈손으로 길어진 목숨
아등바등 살겠다고
서로의 고통을 밑바닥까지 끌고 내려간다
서로를 비통하게 만들고 잔인하게 하는 화두
서로가 서로에게 이 무슨 죄인가?
업인가?
78. 희생
지긋지긋하다
79. 잡초
여려 보이지만
퍼런 기질로 파랗게 산다
뿌리를 내릴 틈만 있으면
거기가 어디든
제 생을 박고 질기게 살아낸다
80. 내 아들들아
너희의 인생 너희가 이제부터 업고 살거라
너희 인생 너희가 데리고 가거라
너희의 힘든 고갯길 스스로 넘어봐야
너희 인생이 활짝 열리는 것을 알기에
홀로서기 하라 등 떠민다
내 냉정함이 너희도 살고 나도 살고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임을 명심하라
너희도 내 나이되면 그 때 무릎을 치며 알 수 있으리라
지금, 여기에서 너희를 배웅할 때임을 내가 먼저 알린다
내 모든 삭신이 병들어 시들고
너희 청춘은 활짝 피어날 때
홀로서기에 너무도 좋을 이 때
떠나보내기 딱 좋은 때
사랑하는 내 아들들아
세상 종말이 와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결심으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정신으로
이 세상 잘 헤쳐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