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경주법회 법문 10월달에는 행사가 많아 바빳지요? 우리 무심스님은 별도로 충남에 아산에 다녀왔고 11월 28일날 대구동구문화체육회관에서 무심스님?음성공양?행사가 있지요? ? 이제 계절이 가을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낙옆이 지는 초겨울이 다가옵니다. 우리 세 계절중에 모든것이 동면으로 들어가는 시점이다. 봄, 여름의 활동을 하다가 이제 가을부터는 동면에 들어가는 월동준비를 한다. 우리인간만 월동준비를 하는것이 아니고 만물의 생명은 다?월동준비를 합니다.? 사철이 있는 나라는 모두 월동준비를 합니다 오늘은 생명에 대한 주제로 법문을 하겠습니다.
생명의 비중은 크거나 작거나 똑 같다. 이 태생, 란생,습생, 화생이라는 네 종류의 생명이지요 각각 다른 종류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생명에 대한 죽고사는데 치우치고 자기 생명에 대한 애착은 남보다 몇 백배나 더강하다. 자기 생명을 아끼듯이 남의 생명도 아껴야 되는데 남의 생명은 아는 것 조차 모르고 산다. 태란습화 몸의 부피는 차이가 있으나 무게가 각각 다르고 크기가 다르나 생명에 대한 무게는 똑같다.
나의 생명이나 새의 생명이나 저 바닥의 잡초로 자라고 있는 저 생명이나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미물의 습생의 존재나 내생명이나 다 똑같다. 크기의 차이나 무게의 차이나 한 푼의 차이도 안 난다. 그 비중은 똑같은데 자기생명에는 그렇게 애착을 가지면서 남의 생명은 무관심한지 여러분들 그런 생각해본 적이 없지요? 사생의 무게는 똑같다. 내가 고통을 느끼면 그들도 고통을 느낄 것이고 그들이 아파하면 나도 아파한다. 우리는 왜 미혹에 빠져서 사는가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알음알이의 지식이 나를 미혹 속으로 빠트리는 것이다. 다른 곳으로 돌아볼 수없게 만들어버린다. 세상 만물은 형체가 있는 것은 유정이라고 한다.
그 유정은 모두 아파하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슬프하기도하고 사랑하기도 하고 외로워하기도 한다. 우리가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들과의 대화를 직접적으로 하지 못하기에 외면당하고 사는 것이다.
무생물이라는 용어는 지식으로는 답을 찾을 수 가 없는 것이다. 무생물이라는 것은 인자가 없다.
인자가 없는 것을 과학자들은 죽은 것이라고 한다. 인자가 없으면 그것을 무정란이라고 한다. 살아있지 않고 죽은 것이다. 아니에요
말 그대로 습생과 같다. 형체가 하나 만들어져서 계란이라는 한 존재가 낳았다. 그 알이 부화가 되고 안 되고는 인간도 역시 꼭 같이 태어나서 애기를 못놓는 사람이 있듯이. 지식이라는 자체가 얼마나 큰 죄악을 범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그러니 무정란은 먹어도 되고 유정란은 먹으면 안된다. 이런 분별과 구분이 미혹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한다.
미혹이 왜 미혹인가?
하나의 생각을 받아드려 그 생각과 놀다보니 혼돈이 일어났다. 그 혼돈이 일어난 것을 미혹이라 한다. 인간의 알음알이는 편리하게 이끌어가는 것 같아요. 하나의 형체가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실상이다. 형체가 있는 것을 유정이라했다. 무정란 정자가 없다는 그것하나로서 그 형체가 없습니까? 있습니다.
이렇게 알음알이의 지식이 묘한 곳으로 끌고갑니다.
이런 지식과 상식으로 자기를 합리화하고 그것을 아는 것이라고 내세우고 내세운 그것을 박사라고 칭호를 준다.
그 논문 하나만 인정받으면 그 논문을 검토하는 자이나 쓰는 자나 알음알이의 식으로 연계 되어있는 것이니 그 식은 도독 놈이다. 바같 세상에서 배운 그것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이름을 지었나. 너는 무슨 박사 너는 무슨 박사해라.
생명을 놓고 놓지 않고 해서 죽었다 살았다 망언을 해서 안 된다. 그것을 부처님은 미리 정립하여놓았다 유정 무정을 완전히 구분하여 나누어놓았고 형체가 있는 것도 모든 것이 다 존재가 있고 살아있다.
생명에는 무게의 차이가 없다고 했지요?
바위의 생명의 무게이나 잡초의 생명의 무게이나 그 무게는 똑같다. 저 미물의 박테리아의 무게이나 그 생명의 무게는 똑같다. 나의 생명의 무게이나 저 이끼의 생명의 무게이나 똑같다.
그런데 내생명은 소중하고 그들의 생명은 여러분들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이라는 그 존재는 바로 무정입니다. 형체가 없는 자리이다. 형체가 없기 때문에 무게가 똑같은 것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걸으면 마음의 무게는 똑같은데 죄의 비중은 천차만별이다. 여러분들 이것 다시 한번 생각 해 볼 문제이다. 마음이라는 비중은 똑같으나 죄의 비중은 천차만별로 각각 다르다, 저울에 달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업식이라고 한다.
이것을 우리가 나누어놓고 세분화 시켜놓은 것이다. 왜 우리가 죄를 지으면서도 죄짓는지 모르고 죄짓게 되나. 바로 나도 모르게 짓는 죄가 그렇게 무게를 더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실상이 있고 생명이라는 존재는 형체가 크나 작으나 가벼우나 낮으나 그 생명의 실상은 똑같다. 여기에 대해 이해가 잘 안된다거나 혼돈이 되거나 의문이 이는 사람 없습니까? 참 애매하지요 그지요?
그러면 생명은 똑같다고 했는데 업식은 무게가 다르다. 무엇이 업식을 만드나? 죄를 짓는 근본은 무엇입니까?
생각입니다.
정확하게 말한 것이다. 업식을 만들어가는 근본은 각자의 생각입니다 생각이라는 그 자체가 업식의 근본이고 죄의 근본이다. 우리가 너무 모르고 살아왔지요?
그 영리해라 생각하고 생각해라 생각하고 생각해서 실천하라 누구나 여기 앉으신 여러분들은 어릴때부터 그렇게 배워왔다. 그 생각이 많은 자를 영리하다라고 했다. 그 영리 하다라는 그 말을 듣고자 우리는 끝없는 숙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스님을 만나기전에 그 생각하는 것이 아마 말로서 다 헤아릴 수 없겠지요?
밥 안먹고 잠 안자고 그래서 그것이 도가 지나고 도가 트면 불면증하고 오지요? 불면증만 옵니까?
우울증도 오지요 그 다음은 실어증이오지요 그 다음은 공포증이 오지요 그 다음은 자살이 옵니다.
머리 영리한 그자가 도둑놈이 치성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죽음의 자리까지 몰고 간다. 고층빌딩에서 투신 자살하지요 지만 죽으면 될 것인데 남도 덩달아 동무해가지요? 이렇게 세분화시켜 나누어보니 답이 나옵니까? 오늘 여러분들이 집에 돌아가서 생각할렵니까? 이렇게 우리는 죄 업식을 생각이 만들어갑니다. 그러면은 답은 간단하지요? 생각을 끊어면 됩니다.
간단합니다.
이렇게 간단하고 명확한 것을 배울 때 여러분들이 잘 못배운 것이에요 그 생각이 많은 자라라야 영리하다고 들어 그렇게 망념을 쫒아서 비참하게 살아간다.
정작 불쌍한 사람은 박사입니다.
손 톱도 안들어간다. 자기 그물에 걸려서... 여러분들 아직도 그 박사 좋아합니까? 남의 아픈 고통을 치료해주고 육신의 그 고통을 해결해주겠노라고 만들어놓은 것이 누구이지요?
의사입니다. 의사라는 박사가 여러분의 고통을 해결해줍디까? 일시적인 고통은 해결해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부분만 해결해주면 된다. 그 부분도 나누어놓았다. 귀 코 피부보는 사람 뼈 보는 사람 눈 보는 사람 입 보는사람 다 나누어 놓았다. 우리 몸둥아리가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각각 다 나누어보면 완벽할 수 있겠습니까? 코에 이상이 있어서 갔다. 그 코만 고쳐주면 되겠지요? 다른 기관은 망가지던지 말던지. 이 방법이 현재의 의학입니다. 이빨 치료하러가서 죽는 사람도 있고 귀 치료하러가서 죽는사람도 있고... 그런데 그 사람들 합리화 잘되어있지요? 절대 내가본 그 사람의 시술로는 죽음의 길로 몰고 가지 않는다. 재판에서 검사 판사까지도 그렇게 결론을 내린다. 죽은 사람만 억울할 뿐이지요? 우리나라 양의가 들어 오기전의 한의사 유의태(제자 허준) 그분은 경남 밀양에서 머물면서 인간의 모든 생태계를 시험한 장본인이다. 이렇게 한 기관이 이상이 생길 때에는 어딘가의 이상이 있기 때문에 그 곳의 이상이 생기는데 그 원인을 치료하지 않고 그 결과만 가지고 논하는 것이 지금현재의 기준이다. 숨만 쉬고 있으면 살았다고 인정하지요? 그 생명은 생명이 아닙니다.
동물도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지요? 사자도 호랑이도 자기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그 한계가 오면 스스로 도태하지요? 그 무리에서 온다 간다 말없이 자기 스스로 자기 길을 가버립니다. 새 몸받으로 간다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집착은 수 천배입니다. 자기 생명은 그렇게 귀하고 소중하면서 남의 생명은 개떡이라. 이게 바로 지식이 남겨놓은 결과물이요 지식이 만들어놓은 부산물이다. 그 도둑놈을 받아들여서 감정표현만 잘 하면은 박사되기는 식은 죽 먹기이다. 똑같은 바위를 바라보더라도 표현을 잘했다면 그것도 시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아라했지요?
있는 그 이상을 추구하고 그 이상을 상상하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순자가 외국을 많이 다니면서 눈요기를 참 많이 했지? 그런데 그 눈요기를 하고 난 뒤 남은 것이 무엇이 있나? 없습니다.
어떤 좋은 것을 보던 그것이 내 인생에 뒤바꾸어 줄 수 있는 것이 없고 내 삶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어떤 세상에서 어떤 삶으로 어떤 생으로 마무리 하느냐에 따라 부처가될 수 있고 죄인이 될 수 도 있고 그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그것을 우리가 하루빨리 알아야 되고 인정이 되면 실천을 하세요 망념을 쫓는데 전부다 투자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생각이 무엇인지 망념이 무엇인지 몰랐을 때는 그 놈 따라 울고 웃고 하는 그 인생을 살았지만 이제는 여러분들의 생각을 바라볼 수 있는 내 마음의 눈을 얻지 않았습니까? 그 마음의 눈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눈이 갖추어 졌을때 더 밝은 눈으로 키워야 합니다. 미혹은 내 눈이 없을 때 는 미혹이지만 진정한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때는 참 나인 것이다. 그 미혹을 쫓을려고 출가해서 부처님의법을 따르고 계율을 지켜 나도 부처가 되겠노라고 하는 그 무리들도 지금 그 도둑놈하고 논다.
여러분들은 지금 참나 진아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는데 그 무리들은 도둑놈들하고 논다고 도둑놈끼리 싸우고 있어요.
내가 항상 얘기하지만 이세상의 지식은 패망으로 몰고가는 근본입니다. 지식을 갖출 때 내 자식에게나 손자에게나 누구에게나 지식은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가르칠 때 그 지식을 배우는 목적이 세상을 바로 바라보고 우리는 바른 생각을 가져서 바른 행을 할 수 있는 올바른 자세로 가르쳐야 되는데 지금 이 세상에 지식을 가르치는 목적이 출세의 목적이요 잘 살기 위한 목적이다. 이러니 거꿀로 갈 수밖에 없다.
이 스님은 교육을 폐지 시켜라고 부르짓고 싶은데 안철수는 교육을 새로운 방법으로 더 보강시켜야 한다.
식자의 머리는 그렇게 만 돌아갑니다. 글을 배우는 목적이 언어소통입니다. 언어소통의 이상의 지식을 가르치고 있으니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지요?
각자의 마음을 전달하고 각자의 의견을 서로 잘 배합해나가라고 만들어놓은 것이 지식이지 그 지식으로서 지금 필요하지 않는 모든 부산물을 만들어 여러분들을 고통속으로 몰고가라는 것이 아니다.
필요이상의 것을 자기가 찾았다면 너는 없어져 하고 막아야 할 것인데 과학자들이 그것을 개발하고 찾아 낼려고 기를 쓴다. 이것이 바로 다툼이 시작되는 것이요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요 욕심이 시작되는 것이요 악을 장려하는 자리인 것이다. 우리 언어도 소통을 잘하고 대화를 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인데 대화 이상이 것을 추구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필요치 않는 대화가 무슨 소용이 있나? 자기 주장하라고 언어를 가르쳤습니까?
옳다고 주장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고 그것을 중화시켜라고 만들어놓은 것이 언어이다.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저 인디언 말이 무슨 소용이 있고 미국의 말 독일의 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필요한자가 필요한 사람만 그 대화를 하면 되는데 개나 소나 다 알아서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그기에 그것 배운다고 3년4년 5년 투자해서 쓰도 못하고 쳐박혀 있으면 지 인생에 도움이 됩니까?
초등학교 못나오고 해도 지 일생 잘살아 가지요? 그 사람은 평생 일생을 잘 마치고 가는데 태어나서부터 세 살도 안 되어 유아원이래서 죽을 때 까지 30,40,50살까지 공부한다고 앉아 보고 있으면 밥이 나옵니까 떡이 나옵니까? 그놈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몇 년 살지요? 70년 사는데 50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면 그 사람에게 무엇이 남았지요?그것을 누가 그렇게 만들었지요? 부모가 만든 것입니다. 그 아이가 만든 것이 아니고 그아이 부모가 거꾸로 가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듣고 내일 또 학교가라 공부해라 학원가라 또 그 소리하세요 얼마나 망치고 싶어서 안 부끄러워요? 우리 집의 아들이 나이가 40이 다되어가는데 아직도 고시공부 한다고 앉아있습니다. 그것 누가 만든 것입니다.
내가 참회를 해야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 살만 되면 다 배웠다고 했다. 보는 법 먹는 법 자는 법 숨쉬는 법 듣는 법 다 배운 것이다
7세가 되면 남녀7세 부동석이라 했다. 남녀는 한자리에 앉지 마라 사고 친다. 배울 것을 다 배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30이 넘은 자식에게 아직도 못 다해 주어서 뭐 해 줄려고 해요?
그놈을 가르치지 않고 지식을 주지 않았다면 20대 초반에 장가가고 시집갔을 것이다. 그런데 30,40,50이 넘어 노총각 노처입니까? 우리 석불사만해도 많아요 50이 넘은 노처녀가 아이 놓겠어요? 40중반 된 사람도 손자본 사람이 있지요?
인간이 완벽하게 다 갖추어서 다자라는 나이가 25정도이다. 그러면은 25세에서 50세까지 머무는 기간이다. 나에게 제일 좋은 황금의 기간이다. 그 황금의 시간이 끝나는 시점부터 아이고 허리야 발이야 ...부서져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아이고 허리야 니가 허리를 많이쓰서 내 몸 뚱아리 받치고 다닌다고 애썻다 라고 다독거려주어야지. 가르쳐주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허리를 많이 힘들게 한 내 업식을 죄송합니다라고 참회를 해야한다. 우리는 지금 생명의 비중 이것을 매일 바라보세요. 무릇 내 눈에 보이는 형체가 있는 것은 무정이라고 한다. 어떤 생명이던지 무게에는 차이가 없다. 이것만 명심하면 죄는 대폭 줄 일 수 있습니다. 항상 미안한 마음가지고 참회하고 제도하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시시때때로 잊어버린다. 내가 괴롭히면 괴롭힌 만큼 받아야 한다. 오늘 성실하게 잘살았다면 오늘의 결과가 내일 다가온다. 그런데 우리 망념은 지금 이 순간을 성실히 잘 살려하지 않고 내일 잘되기를 바라니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불쌍하지요?
가난하다고 남루하다고 불쌍하다고 했지요? 비록 형색은 남루하나 물질은 부족하나 그 마음은 여러분 몇 백배로 부자인겁니다. 왜 세상은 평등하다고 했겠습니까?
나의 분별로 인해서 가난하고 부자가 있는 것이지 이 세상에는 부자도 없고 가난한자도 없고 잘 난자도 없고 못 난자도 없다. 우리 망념의 생각이 그 분별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세상의 생명은 나의 생명이나 미물의 생명이나 그 생명의 존엄성은 똑같다. 내 몸 벗으면 내가 그 몸 받으로 갈 것이요. 그 몸 벗으면 그가 내 몸 받으로 올 것이다. 그 분별을 끊고 내 도둑놈의 감정을 버린다면 그 원결은 두 번 다시 받지 않는다.
지금까지 스님의 법문에 대해 의혹 있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얘기를 하세요. 이제는 그것이 이해가 된다면 눈 떠는 순간부터 생각과 전쟁을 하세요 망념과 전쟁을하세요
그 망념이 들어서 내 인생도 망치고 내 자식의 인생 내조상의 인생을 망친다면 이제 그 단속을 해야 되겠지요? 내 눈떠는 순간부터 눈감는 그 순간 까지 항상 내 망념을 바라보면서 잡아내야한다. 여러분들의 생활은 하루의 일과가 성곽이요 성벽이요 아성입니다. 그 생활의 성벽을 튼튼히 쌓아놓고 총과 칼을 갈아서 그 외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아라고 했지요? 그 외적이 바로 여러분의 생각입니다.
내가 보초를 서고 그놈의 도적이 내 성에 침범하지 않게끔 철저하게 잡아 내세요 그것을 잡아내는 것은 삼구게 밖에 없습니다. 그 삼구게를 부르면 도둑놈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볼 수 있습니다. 바늘의 틈만 있어도 안 됩니다. 한참 여러분들은 한 생각 들어오면 한 시간이 갔는지 두 시간이 갔는지 모른다. 그러면 다 허물어져버린 것이다. 나만의 영역에서 외적이 나를 다 짓뭉게 버렸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도적이 일분 걸려 들어옵니다
가!
일분도 안 되어서 또 들어온다.
또 가!
내가 그놈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눈짓만 해도 달아난다. 고개만 살랑 흔들어도 그놈이 달아나는 게 보인다. 그만큼 그놈이 예민해진다.
처음 수행한사람은 이 스님의 법문이 무슨 말인지가 이해가 안될 것입니다. 도적인줄모르고 그놈과 널 부러지고 퍼져가지고 어쩌고 저쩌고 투정도하고 원망도 하고 미워하고 했지만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요 못된 것 니 보고 있거던 하면 달아나고 없어 조용해져 내 마음자리가 아주 조용해져 일분 이분 한 시간 두시간 하루 이틀 그놈이 들어오는지를 보고 도둑놈을 쳐내야할 것이다. 눈뜨면 오늘은 한치의 빈틈도 안줄 것이다.
삼구게를 부르다보니 그 이유를 찾아내었잖아 찾아내는 것에 만족하지 마라 완성이 아니라 미완성이다. 굴러가다가 선자리가 언제까지 멈춰져있겠나. 윷가치가 굴러가다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자리가 완성이 된자리 이다. 모로서던 각으로서던 표시가 나지 않게끔 여러분의 마음자리를 고정시켜라 움직이지 않게 그 자리가 바로 중도이다.
시소가 한족으로 기울 면은 시소가 아니다. 무게가 똑같아야 시소이고 저울인 것이다. 그 주사위가 각으로 섰던 모로 썻던 넘어가지 않고 고정되어야 한다. 이게 생각이 사라진 자리 끊어진 자리가 바로 그 주사위가 고정된 자리이다.
모로도 세울 수 있고 바늘 끝은로 세울 수 있다. 바늘 끝에 그 주사위의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끊어진 자리 그 자리가 우리는 죄를 하나도 짓지 않는 자리이다. 내가 성죄와 차죄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성죄는 내 생각이 움직이는 자리이요 차죄는 내 행동이 움직이는 자리이다. 내 생각이 끊어지면 바로 생명의 존엄성의 그 무게를 완전히 느낄 수 가 있다. 이세상엔 하찮은 생명은 없어요.
그 몸이 내 몸이고 내 몸이 그 몸인데 하찮은 게 어디 있어요? 여러분들이 스님에게 법문만 듣다가보니 자기실상을 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너무 의존해서 스님의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해야 될 거 아니에요?
이게 각자의 몫이라 말로서 끝이 난다면 스님이 이 세상에 온 이유도 없고 남겨둘 이유도 없고 여러분들이 그 확인을 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에요. 지금 여러분들이 눈에는 좋다 나쁘다 사랑 한다 미워 한다 이러한 감정이 일어납니까? 많이 올라오지요
좋은 게 없어야 됩니다. 나쁜데 없어야 됩니다.
옳다 그러다가 없어요 그냥 항상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보세요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게 없다면 이쁘 할 이유가 없고 괴로워 할 이유가 없고 아파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법문을 여기까지 마치기로 하고 스님이 석불사 미래석불사를 만들려고 하는데 하천부지 앞에 있던 것을 스님이 매입했습니다.
저기에 살고 있는 처사가 한분 있는데 그 집이 나의 증손자벌이다. 한번 청소를 한 적이 있는데 쓰레기를 하루종이 태웠다. 그런데 아래께 문을 열어보니 집안에는 쓰레기장이었다. 그기에 진짜 쓰레기를 부어야할 것 같다. 그런데 그분이 하는 일이 미장이다. 망치질도 하고 다 할 수 있다. 그 집을 비워서 여러분들 이 오면 여러분들이 주말 농장을 만들어서 여러분들이 기거할 수 있게끔 놀 수 있게 끔 그 집을 비워야한다. 수리를 해서 창고로도 만들어야하고..
상상보다 흙이 많이 들어간다. 25톤 덤프트럭에 1600대 들어가야 한다. 일율적으로 3m30cm을 다 돋아버린다면 물레방아집이 묻혀버린다. 1000대분으로 마무리 할 수 있게 하자. 차당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1일 대여비가 55만원이다. 포크레인도 50만원이다. 25톤 차 대당 3만원이상 주고는 못한다. 55만원 할려면 17대가 들어와야 3만원된다.
그 거리가 가까워야 된다.
가까운데 흙이 나와야 된다. 그래서 장비 까지 토탈 공사비가 4천만원 이상 들어가서는 못한다. 그 이하로 들어가게끔 공사하라. 정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땅 매입할 때만 해도 신고만 하면 형질변경이 되었다. 성토를 할 수 있었는데 4월 31일부로 성토하는 것을 법을 바꾸어버렸다. 50cm이하는 신고사항 이상은 허가사항이다. 그런데 그 허가비가 460만원 등 기타비용이 많이 들어가게 된다. 보증보험 등등 제출해야만 허가를 내어준다. 허가 내어줘도 6개월 안에 그 공사를 다해야한다.
시작을 했으니 마무리를 해야한다. 모든 것을 다해서 4000만원 미만으로 완공할 수 있게 하라 그이상이면 부도낸다. 알았습니다 하고 갔는데 흙이 나오면 나오는데로 협의 합시다. 기름값이 비싸니... 울산의 진여화가 강사를 하면서 자기의 업무를 내가 차단시키고 못하게끔 만들었는데 한달에 600만원이 넘었다. 그 수입을 쫓아다니는 것을 내가 못하게 끊었다. 그것을 끊고 수행에 전염을 해서 지금은 많이 안정이 되었고 욕심이 많이 빠졌는데 이 법을 울산에도 마음나누기를 하자 해서 실천한 것이다. 지난달 31일 처음 했다. 처음 모임을 가져가지고 진여화가 주최가 되고 보덕행이 보조 되어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울산의 불자들이 좋은 마음을 많이 갖추어줘서 이쁘고 그 결과를 보덕행이 한번해주세요
<보덕행보살 법문>
안녕하세요? 지난 31일 날 진여화의 집에서 지장회를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와주셨어요 17명정도 오셨습니다. 저 마음이 희망이 가득차는 것 같았습니다. 경주에 오시지 못하는 분들이 울산에서 하니 많이 오신 것 같고 제 법문을 너무 잘 들어주시는 겁니다. 제가 거기서 법문을 하면서 스님에게 너무 감사한 생각이 드는 겁니다. 집에서 움츠리고 법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그 법문을 통해 제가 너무 많이 배웠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선남보살도 자기 도퇴된 모습을 보아서 다시 정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인각 큰 스님>
이렇게 한 지역 지역 불어나주고 있어서 스님은 참 기쁘고 감사합니다. 서울에도 이제 4회째 들어가는데 자꾸 불어나고 있고 울산시내도 불어나고 있고 천안에 있는 00처사도 어딘가에 법을 설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려고 무척 뛰고 있다. 천안이나 아산이나 우리 입지의 조건이 확산되어 나가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문제는 스님이 이제 매주 움직이는 반경을 또 나누어야 될 그런 상황이 되는 것이다. 스님은 매일 준비는 되어있으니 그런 장소를 만들어 그러한 모임을 만들어준다면 어딘지 가리지 않고 갈 것입니다.
<진여화 보살> 예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31일 저희 집에서 마음나누기를 해보라하였습니다. 처음부터 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친구가 나도 내가 왜 이 공부를 했는지 모르겠다. 아 이것이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 구나 느꼈습니다. 저도 모르게 이야기를 하면 법을 듣게 되더라고요
법문한번 해 봐라고 친구들이 얘기를 하면 마음이 무거워졌는데 저도 모르게 얘기를 하다 보니 저의 얘기를 듣고 싶어서 이를 때는 어떻게 하지 라고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아 내가 이러이러한데 이렇게 하면 되지 라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법문이 되었더라고요 친구가 공부하려고 마음은 먹지 않았지만 ,, 제가 스스로가 나태해질 수 있고 새로운 공부할 수 있는 도반들이 생기니까 감사했습니다. 새로운 분들을 위해 저도 배워나가야 되겠구나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저의 언니 보덕행 보살도 끊임없이 저에게 법문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감사하고요 ?이 자리를 빌어서 참회할게 있습니다. ?무량심보살이(보덕행, 진여화 보살 어머니) 야야 나도 함께 하면 안되겠나?하니 처음오시는 분들이라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올라와 무량심보살님이 빨리 자리를 떠주었으면 다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인데... 저의 친구가 어머니 왜 갈려고 하세요 앉아계세요 어머니가 계셔서 나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모르고 어머니를 쫓아 낼려고 했으니 얼마나 죄송하던지 참회를 했습니다.
교회다니는 친구가 있었는데 하느님 말씀 이렇게 하지만 그 말씀도 묻혀서 가더라고요. 앞으로 더욱 울산 모임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번 씩 오셔서 도와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인각 큰 스님>
진여화 보살이 최근 들어 활동을 참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울산에서 진여화가 권선을해서 회원들이 많이 불어났습니다. 이제 복짓는 자리도 지가 지어야하고 거두는 자리도 지가 지어야 할 것이다. 복 밭을 가꾸어나가는 그 즐거움은 말로서 표현할 수 없다. 우리가 짐이라고 하면 무거워서 자죽을 뛰기 힘들어진다. 그런데 이법은 쓰면 쓸수록 자기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행복이 무엇인지 답을 할 수가 있다. 그런 복 밭을 잘 가꾸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 다시 한번 축복해주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