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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회 달새꽃별 스크랩 청마 유치환 시모음
물소리 추천 0 조회 178 13.12.09 12: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祖國이여 당신은 진정 孤兒일다

 유 치 환


 나의 눈을 뽑아 북악의 상성 위에 높이 걸라
 망국의 이리들이여
 내 반드시 너희의 그 불의의 끝장을 보리라

 쓰라린 쓰라린 조국의 오랜 환난의 밤이 밝기도 전에
 너희 다투어 그를 헐벗기어 아우성 치며
 일찌기 원수 앞에 떳떳이 쓰지 못한 환도(環刀)이어든
 한낱 사조(思潮)를 신봉하여
 골육의 상쟁을 선동하여 불놓기를 서슴지 않고
 보잘것 없는 제 주장을 고집하기에
 감히 나라의 망함은 두러하지 않나니
 매국이 의를 일컫고
 사욕(私慾)의 견구(犬狗)는 저자를 이루고
 오직 소리 소리 패악하는 자만이 도도히 승세하거늘
 나의 눈을 뽑아 북악의 산성 위에 높이 걸라
 일찌기 악한 것이 끝내 영화하고
 불의가 의를 낳음은 보지 못했느니
 오늘에 이르러 너희의 행패가
 드디어 또한번 원수를 이땅에 이끌어
 그 무도한 발길에 무찔러 조국의 산하가 마르고
 사직의 주추에 잡초가 더욱더 우거지고
 망국의 성터 위에 별들이 모여 떠는
 수많은 겨레의 생령이 죽어 가는 알이 다시 없기를
 아아 뉘가 어찌 기약하료
 내 반드시 너희의 이 불의의 끝장을 보리라

 ---그러나 조국이여
 양춘(陽春)이라 봄이 오면
 아지랑이 날으는 이 강산에
 진달래 철 따라 피어 널림이
 아아 서럽지 서럽지 아니한가

 

---  http://www.poemlove.co.kr/bbs/board.php?bo_table=tb01&sca=&sfl=wr_1&stx=유치환

 

아아 나의 피는 나의 조국 !

 유 치 환

 
 오작(烏鵲)떼 우짖는 어느 고독한 골짜기로 쫓길지라도
 나는 나의 의로움에
 끝내 어리석어 짐승으로 죽게 하라

 

------------

北方 10月

 유 치 환


 이곳 시월은 벌서 죽음의 계절의 시초리뇨
 까마귀는 성귀에 모여들 근심하고
 다시 천일(天日)도 볼 수 없는 한 장 납빛 하늘은
 황막한 광야를 철책(鐵柵)인 양 눌러 막아
 아아 북방 이 거대한 울암(鬱暗)의 의지는
 창부인 양 허무를 안고 나누었나니
 내 스스로 여기에다 버리려는 고독한 사유도
 이렇게 적고 찾을 길 없음이여
 호을로 허물어진 성터에 서건대
 삭풍에 남은 고량(高梁)대만
 갈 데 없는 감정인 양 못 견디어 울고
 한 떼 기마의 흙빛 병정 있어
 인력이 아닌 듯
 묵묵히 서쪽 벌 끝으로 향하여 달려가도다

-------------------

哀 歌
 永浦에게---

 유 치 환


 그대 무덤 우엔
 할미꽃 한 떨기 피어 있고
 
 하그리 애통ㅎ던 죽엄이
 솔바람소리 적적히 지내가는
 이 하늘 가까운 등성이에
 이렇듯 고은 안위(安慰)를 얻을 줄 그댄들 알었으료

 그리 진실ㅎ던 청춘의 오뇌도 동경도
 벗이여 버리면 곱게 그만이더뇨

 그대는 죽고 나는 살고
 내 오늘 그대 무덤 옆에 초연히 앉어
 어짠 한번 몸짓에 하늘을 달리한
 이 맑은 비정의 일순의 영겁을 생각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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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문예월간]에  정적(靜寂)>을 발표 등1908 ~ 1967
극작가 유치진의 동생.
경남 통영(충무) 생.
동래고보 수학. 연희전문 중퇴.
단. 1936년 [조선문단]   에 <깃발>발표.
서정주와 함께 생명파 시인
이른바 생명파의 한 사람으로 동인지 [생리]를 간행, 그러나, [시인부락] 동인으로는 활동 하지 않음.
경향 : 허무를 극복하려는 남성적, 의지적인 시.
- 사람의 삶 어디에나 있는 뉘우침, 외로움, 두려움, 번민 등의 일체로부터 벗어난 어떤 절대적인 경지를 갈구했으며, 그 해결의 길은 일체의 생명적인 것에 대한 허무주의적 자각에서 찾았다.


- 곧, 강렬한 허무적 의지는 그 밑바닥에 생명의 뜨거운 꿈틀거림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간직한 것 때문임 1960년대에 부산에 정착, 부산고, 경남여고 등지에서 교사, 교장으로 근무
시집 : [청마시집](1940), [울릉도](1948), [보병과 더불어](1951) 등
유적지- 유치환시비
- 바위시비(부산진역앞 수정가로 공원, 영도남여자상업고등학교)
- 깃발시비(에덴공원)
- 그리움시비(용두산 공원 '시의 거리')

●생명파(生命派) : <시인부락>(1936) 동인과 <생리>(1937)를 발간한 유치환을 중심으로 하여 인간 생명의 의지를 추구한 1930년대 문학인을 통틀어 일컫는 말. '시문학파'의 기교주의와 '주지주의시파'의 문명에 대한 시에 반발하여 생겨났다. 생명파의 대표 작가로는 서정주, 유치환, 김동리 등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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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마가 태어나면서부터 생을 마감할때까지의

    연혁입니다.
    청마를 세세히 아는데 도움이 될듯합니다.


1908. 7. 14 (음력)
경남 통영시 태평동 552번지에서 유생인 진주

류씨 준수(焌秀)와
어머니 밀양 박씨 우수(又守)사이 8남매중

차남으로 태어남.

1918
외가 사숙(私塾)에서 한문 공부를 하다가

10세에 통영보통학교 입학.

1922
통영보통학교4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풍산(豊山)중학교 입학.

1923
가형 동랑 류치진이 주도하는 「토성」지에

고향 문우들과 시를 발표

1926
풍산(豊山)중학교 4학년을 마치고 귀국.
동래고등보통학교 5학년 편입.

1927
동래고등보통학교 5학년 졸업(제4회)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

1928
연희전문학교 문과 중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사진학원에 다님.
10월,경성중앙보육학교 출신 안동 권씨 재순 여사와 결혼.

1929
귀국. 고향에서 가형 동랑과 함께 「소제부」라는

회람지 발간.

1930
「소제부 제일시집」발간.시「5월의 마음」외 25편 발표.

1931
『문예월간』\」제 2호에서 「정적」을 발표, 문단데뷔

1932
평양으로 이주, 사진관을 경영함.
곧 고향으로 돌아와 시작(詩作)에 전념.

1934
부산으로 이주,화신백화점에서 1년간 근무.

1937
통영협성상업고등학교 교사 취임.
7월∼10월,동인지「생리」1,2집 발간.

1939
12월,『청마시초(靑馬詩초)』발간.「깃빨

1940
3월, 통영협성고등학교 교사 사임.
민주 빈강성 연수현으로 이주,농장 관리 및 정미소 경영.

1945
6월말 귀국. 부인이 통영문화유치원을 경영.
통영문화협회를 조직, 초대 회장 역임.

1947
6월, 시집『생명의 서』발간.
시「귀고(歸故)」외 59편 수록.

1948
3월, 통영여자중학교 교사 사임.
4월, 경남 안의중학교 교장으로 취임.
9월, 시집『울릉도』발간, 시「동백꽃」외 34편 수록.

1949
5월, 시집『청령일기』발간. 시「심산(深山)」

외 65편 수록.

1950
6.25동란으로 부산으로 피난, 문인 구국대를 조직,

육군 제3사단에 종군함.
1949년도 서울특별시문화상 수상.

1951
9월, 시집『보병과 더불어』발간. 시 「호천」외 33편 수록.

1953
4월 통영으로 이주, 수상록『예루살렘의 닭』발간.
시『선한 나무』외 57편 수록

1954
4월,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피선.10월,
시집『청마시집』발간.시집『기도가』와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합본,
시「낙화」외 111편 수록.

1955
1월, 경남 안의중학교 교장 사임, 경주고등학교 교장 취임.

1956
3월, 제1회 경북문화상 수상.

1957
3월, 한국시인협회 회장 피선.
4월,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재피선.
12월, 시집『제9시집』발간, 시 「춘조(春朝)」

외 38편 수록.

1958
2월, 1957년도 아세아재단 자유문학상 수상.
9월, 경주고등학교 교장 사임.
12월,『류치환시선』발간.

1959
3월, 한국시인협회 회장 재 피선, 수상록

『동방의 느티』발간.
4월, 경주중학교 교장 겸임.
9월, 경주고등학교 교장 사임.
12월, 자작시 해설 『구름에 그린다』발간



1960
4월,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재피선.
12월, 시집『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발간,

시「봄바람에 안긴 한반도」외 35편 수록.

1961
3월, 경주여자중고등학교 교장 취임.(1961년∼1962년)

1962
3월, 대구여자고등학교 교장 취임.(1962년∼1964년)
7월, 예술원상 수상

1963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경북지부장 피선,

수필집『나는 고독하지 않다. 발간.
7월, 경남여자고등학교 교장취임.(1963년∼1965년)

1964
한국문인협회 부산지부장 역임.
11월, 시집『미루나무와 남풍발간, 시「한 그루 백양나무」외 41편 수록.
12월, 부산시문화상 수상

1965
4월, 부산 남녀자상업고등학교 교장 전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산지부장 역임.
11월, 시선집『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발간

1967
2월13일 하오 9시 30분 부산시 동구 좌천동 앞길에서

교통사고, 부산대학병원으로 후송 도중 사망.
17일 부산직할시 사하구 하단동 승학산 산록에 묻혔으나

경남 양산시 백운공원 묘지로 이장.
현재는 경남 거제시 둔덕면 빙하리 산록에 묘지가 있음.

 

 

 

청마문학상 [ 靑馬文學賞 ]

청마 유치환(柳致環)의 시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문학상.
분야 : 문학(시·시조·문학평론)
주최기관 : 청마문학회
주최시기 : 매년 1월
시작연도 : 2000년
시상내역 : 상금 1000만 원

《청마시초(靑馬詩抄)》 《생명의 서(書)》 《울릉도》 《청령일기》 등의 시집을 통해 허무의 의지와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표출하고, 인간의 존재와 초월의 세계에 대한 순수 서정을 드러냈던〈깃발〉의 시인 유치환의 시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0년에 제정된 문학상이다.

유치환의 제자들과 후학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청마문학회가 기금을 마련해 주관하고, 한국일보사가 후원한다.

시·시조·문학평론 분야에서 5년 이내에 뛰어난 작품을

발표한 등단 20년 이상의 문학인을 대상으로 하며,

시상식은 매년 1월 유치환의 고향인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열린다.

상금은 1000만 원이다.

제1회 때에는 김춘수(金春洙)의 16번째 시집

《의자와 계단》이 선정되었고,

제2회 때에는 김윤성(金潤成)의 시선집

《바다와 나무와 돌》이, 2002년 제3회 때에는
조영서(曺永瑞)의 3번째 시집

《새, 하늘에 날개를 달아주다》가

각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여기는 외금강 온정리 정거장
기적도 끊이고 적군도 몰려가고
마알간 정적만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빈 뜰에
먼저 온 우군들은 낮잠이 더러 들고
코스모스 피어있는 가을볕에 서량이면
눈썹에 다달은 금강의 수려한 본연에
악착한 전쟁도 의미를 잃노니
시방 구천 밖으로 달아나는 적 을 향해
일제히 문을 연 여덟 개 포진은
찌릉찌릉 지각을 찢어 그 모독이
첩첩 영봉을 울림하여 아득히 구천으로 돌아들고
봉우리 언저리엔 일 있는 듯 없는 듯
인과처럼 유연히 감도는 한자락  백운白雲

]

 

구름

 

 


다시 한 번 우러러 구름을 보소

인정의 고움을 가리워 구름은

노래인 양 저렇게 세상을 수놓았나니

그리우면 그리운대로

책장처럼 넘어가는 푸른 조석인데도

그대 곰곰이 마음 지쳤을 때는

나의 꿈꾸고 두고 간 저 구름을

다시 한번 조용히 우러러보소

 


 

거목에게

 

 


몇백 년이나 났을까 삼백년?

-아니 사백년
무모(無謀)한 나무여, 미련하고도 허망스런 나무여,

하늘 끝등성이 저 수수만(數數萬)의

어린 풀들의 그 가냘픈 팔아귀를 내저으며 애닯게도 탄식하며

환호하며 꽃 피우고 씨 맺고 시들고 나고

시드는 그 목숨의 그지없는 애환의 반짝임을 아는가

아아 진실로 목숨의 생겨남과 한가지로 죽음도

또한 거룩한 은총이거니 사백년의 기나긴 각박한

세월을 완(頑)하게도 녹슬고 굳은 몸뚱어리를 하고

하늘의 일색(一色)을 어두이 가리어 선 채

또 하나 마련된 목숨의 지복(至福)을 놓친

아아 이 형벌의 나무여

 


  

그리움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직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에 꽃같이 숨었느뇨

 


 

그리움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그리우면


뉘 오는 이 없는 골에는
하늘이 항시 호수처럼 푸르러
적은 새 가지 옮으는 결에
송화가루 지고
외떨기 찔레
바윗돌 하나
기나긴 하루해 지키기 제우노니
참으로 마음속 그리운 이 있으면
이런 골짝 호올로 숨었기도 즐거워
고운 송화가루 송화가루
손에만 묻다

 


 

그래서 너는 시를 쓴다


서울 上道洞 山番地를 나는 안다
그 근처엔 내 딸년이 사는 곳


들은 대로 상도동행 뻐스를 타고 한강 인도교를 지나
영등포 街道를 곧장 가다가 왼편으로 꺾어지는 데서 세
번째 정류소에 내려 그 정류소 바로 앞골목 언덕빼기 길
을 길바닥에 가마니거적을 깔고 옆에서 우는 갓난아기를
구박하고 앉아 있는 한 중년사나이 곁을 지나 올라가니
막바지 상도동 K 교회당 앞에 낡은 판자로 엉성히 둘러
가리운 뜰 안에 몇 家口가 사는지 그 한편 마루 앞 내
셋째딸년의 되는 대로 걸쳐 입은 뒷모습


-- 이 새끼 또 밥 달라고 성화할 테냐 죽여버린다
-- 엄마 다시는 밥 안 달라께 살려줘


그 상도동 산번지 어디에서 한 굶주린 젊은 어미가 밥
달라고 보채는 어린 것을 독기에 받쳐 목을 졸라 죽였다고


-- 이 새끼 또 밥 달라고 성화할 테냐 죽여버린다
-- 엄마 다시는 밥 안 달라께 살려줘


그러나 그것은 내 딸자식이요 손주가 아니라서 너는
오늘도 아무런 죄스럼이나 노여움 없이 삼시 세끼를 챙
겨 먹고서 양복바지에 줄을 세워 입고는 모자를 얹고 나
설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는 어쩌면 네가 말할 수 없이
값지다고 믿는 예술이나 인생을 골똘히 생각하는 것인가


그러나 이 순간에도 굶주림에 개같이 지쳐 늘어진 무
수한 인간들이 제 새끼를 목졸라 죽일 만큼 독기에 질린
인간들이 그리고도 한마디 항변조차 있을 수 없이 꺼져
가는 한겨레라는 이름의 인간들이 영락없이 무수히 무수
히 있을 텐데도 그 숫자나마 너는 파적거리로라도 염두
에 올려본 적이 있는가


그러나 한편으로 끼니는 끼니대로 얼마나 배불리 먹고
도 연희가 있어야 되고 사교가 있어야 되고 잔치가 있어
야 되고---그래서 진수성찬이 막판으로 남아 돌아가듯
이 국가도 있어야 되고 대통령도 있어야 되고 반공도 있
어야 되고 질서도 있어야 되고 그 우스운 자유 평등도
문화도 있어야만 되는 것


-- 이 새끼 또 밥 달라고 성화할 테냐 죽여버린다
-- 엄마 다시는 밥 안 달라께 살려줘


그러므로 사실은 엄숙하다 어떤 국가도 대통령도 그
무엇도 도시 너희들의 것은 아닌 것
그 국가가 그 대통령이 그 질서가 그 자유 평등 그 문
화 그 밖에 그 무수한 어마스런 권위의 명칭들이 먼 후
일 에덴 동산 같은 꽃밭사회를 이룩해 놓을 그날까지 오
직 너희들은 쓰레기로 자중해야 하느니


그래서 지금도 너의 귓속엔
-- 이 새끼 또 밥 달라고 성화할 테냐 죽여버린다
-- 엄마 다시는 밥 안 달라께 살려줘, 고
저 가엾은 애걸과 발악의 비명들이 소리소리 울려 들
리는데도 거룩하게도 너는 詩랍시고 문학이랍시고 이 따
위를 태연히 앉아 쓴다는 말인가



깃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 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해설 - 이 시의 `깃발'은 이상향에 대한 끝없는 동경과

그곳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좌절과 한계의 마음을 상징한다.
어차피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허무의 세계를 끝없이 갈구하는 인간의 운명과
본질에 대한 연민과 애수가 바로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를 표상한다.
`아우성', `손수건', `순정', `애수', `마음' 등

5개의 보조관념들은 중심 이미지인 깃발을 은유하고 있다.
먼저 `소리없는 아우성'이란, 세찬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의 역동적인 모습을 `아우성'이라는 소리로 청각화하는데

`소리없는'이라는 모순된 표현으로 깃발의 시각적 이미지를 한층 강조한다.

노스탤지어란 영원한 이상향이며 또 그렇기 때문에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에 대한 향수를 가리킨다.

`이념의 푯대'란 깃발이 매어져 있는 깃대 즉,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존재적 한계를 가리키는 말로써 `순정' 어린 인간의

동경과 갈구는 단지 곧은 `이념'일 수밖에 없다는 허무의식이 드러나 있다.

화자의 이러한 허무의식 속에서

깃발은 `애수'와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이 되어

영원히 나부끼게 되는 것이다.

푯대에 속박된 존재의 운명을 `애수'로써 펼칠 수밖에 없는

깃발을 보는 화자는

인간의 운명을 주재하는 초월적 절대자인 `그'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광야에 와서


흥안령(興安嶺) 가까운 북변(北邊)의

이 광막(曠漠)한 벌판 끝에 와서

죽어도 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 위에

오늘은 이레째 암수(暗愁)의 비 내리고

내 망나니의 본받아

화툿장을 뒤치고

담배를 눌러 꺼도

마음은 속으로 끝없이 울리노니

아아 이는 다시 나를 과실(過失)함이러뇨

이미 온갖 것을 저버리고

사람도 나도 접어 주지 않으려는 이 자학(自虐)의 길에

내 열 번 패망(敗亡)의 인생을 버려도 좋으련만

아아 이 회오(悔悟)의 앓음을 어디메 호읍(號泣)할 곳 없어

말없이 자리를 일어나와 문을 열고 서면

나의 탈주(脫走)할 사념(思念)의 하늘도 보이지 않고

정거장(停車場)도 이백 리(二百里) 밖

암담한 진창에 갇힌 철벽(鐵壁) 같은 절망(絶望)의

 

광야(曠野)!

 

 





가을이 접어드니 어디선지

아이들은 꽃씨를 받아 와 모으기를 하였다.

봉숭아 금선화 맨드래미 나팔꽃

밤에 복습도 다 마치고

제각기 잠잘 채비를 하고 자리에 들어가서도

또들 꽃씨를 두고 이야기-

우리집에도 꽃 심을 마당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어느 덧 밤도 깊어

엄마가 이불을 고쳐 덮어 줄 때에는

이 가난한 어린 꽃들은 제각기

고운 꽃밭을 안고 곤히 잠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노송


아득한 기억의 연령을 넘어서 여기

짐승같이 땅을 뚫고 융융히 자랐나니

이미 몸둥이는 용의 비늘을 입고

소소히 허공을 향하여 여울을 부르며

세기의 계절 위에 오히려 정정히 푸르러

전전 반축하는 고독한 지표의 일변에

치어든 이 불사의 원념을 알라.

 

 


 

낙화


뉘가 눈이 소리없이 내린다더뇨


이러게 쟁 쟁 쟁
무수한 종소리 울림하며 내리는 낙화


이 길이었다
손 하나 마주 잡지 못한 채
어짜지 못한 젊음의 안타까운 입김 같은
퍼얼펄 내리는 하아얀 속을
오직 말없이 나란히 걷기만 걷기만 하던
아아 진홍 장미였던가


그리고 너는 가고
무수한 종소리 울림하는 육체 없는 낙화 속을
나만 남아 가노니


뉘가 눈이 소리없이 내린다더뇨

 


 

낮달


쉬이 잊으리라

그러나 잊히지 않으리라

가다오다 돌아보는 어깨 너머로

그날밤 보다 남은 연정의 조각

지워도 지지 않는 마음의 어룽

 


 

들꽃과 같이


악몽이었던 듯
어젯밤 전투가 걷혀가 자리에
쓰러져 남은 적의 젊은 시체 하나
호젓하기 차라리 한떨기 들꽃 같아

외곬으로 외곬으로 짐승처럼 너를 쫓아
드디어 이 문으로 몰아다 넣은 것
그 악착스런 삶의 폭풍이 스쳐 간 이제
이렇게 누운 자리가 얼마나 안식하랴

이제는 귀도 열렸으리
영혼의 귀 열렸기에
묘막히 영원으로 우림하는
동해의 푸른 굽잇물소리도 은은히 들리리


 


 

메아리


산에 산에 산에는 산에 사는 메아리

언제나 찾아가서 외쳐 부르면

반가이 대답하는 산에 사는 메아리

벌거벗은 붉은 산에 살 수 없어 갔다오.


메아리 메아리 메아리가 사는 산

언제나 찾아가서 외쳐 불러도

아무도 대답 없는 벌거숭이 붉은 산

메아리도 못 살고서 가버리고 없다오.

 

 


 

바다


이것뿐이로다
억만 년 가도
종시 내 가슴 이것뿐이로다
온갖을 내던지고
내 여기에 펼치고 나 누웠노니
오라 어서 너 오라
밤낮으로 설레어 스스로도 가눌 길 없는
이 설은 몸부림의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오직 높았다 낮았다 눌러 덮은
태초 생겨날 적 그대로의 한 장 비정(非情)의 하늘 아래
구할 길 없는 절망과 회오와 슬픔과 노염에
찧고 딩굴고 부르짖어 못내 사는 나
때로는 스스로 달래어
무한한 온유(溫柔)의 기름 되어 창망히 잦아 누운 나


아아 내 안엔
낮과 밤이 으르대고 함게 사노라
오묘한 오묘한 사랑도 있노라
삽시에 하늘을 무찌르는 죽음의 포효도 있노라


아아 어느 아슬한 하늘 아랜
만 년을 다물은 채 움찍 않고
그대로 우주 되어 우주를 우러러 선 선악이 있다거니
오라 어서 너 오라
어서 와 그 산악처럼 날 달래어 일깨우라
아아 너 오기 전에
나는 영광한 광란의 불사신
여기 내 가슴 있을 뿐이로다

 






어느날 거리엘 나갔다 비를 만나 지나치던 한 처마 아래 들어

섰으려니 내 곁에도 역시 나와 한 가지로 멀구러미 하늘을 쳐

다보고 비를 긋고 섰는 사나이가 있어, 그의 모습을 보아하니

문득 그 별이 생각났다. 밤마다 뜨락에 내려 우러러 보노라면

만천의 별들 가운데서도 가장 나의 별 가차이 나도 모를, 항

상 그늘 많은 별 하나-. 영원히 건널 수 없는 심연에 나누어져

말없이 서로 바라보고 지낼 수 밖에 없는 먼 먼 그 별, 그리고

나의 별!

 

 


봄소식


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 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메서

작은 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내다가

이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아름다운 그 자리에 여운 남아

뉘도 모를 한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나는 산입니다.
이렇게 커다란 검정 구름더미가
나의 머리 위를 핑핑 지내가는 걸 보니
오늘밤은 비가 오겠습니다.
게다가 동남풍이 불어옵니다.
저 대해(大海) 같은 검푸른 하늘에
오늘밤은 적은 별애기들을 볼 수가 없겠지요.
산새들은 날래 날개를 푸드득거리고
숲 속으로 깃을 찾어 숨으시오
저렇게 청개구리놈들은 골짜구니에서
목청 높이 울어 야단들이 아닙니까.


나는 산입니다.
밤새도록 나는 혼자서
촉촉이 비를 맞고 서 있지요.

 

 


생명의 서(1장)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百日)이 불사신 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아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을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해설- 시인은 삶의 가치에 대한 회의와 번민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한 대결의 공간으로 사막을 설정하고,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한 `열렬한 고독'의 길을 가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음의 세계에 자신을 바치겠노라는 비장한 의지가 담겨 있다. 여기서의 참된 `나'란 세속에 물든 `현실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넘어서서 성취하고자 하는 `근원적 생명과 순수성으로서의 자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선(善)한나무


내 언제고 지나치는 길가에 한 그루 남아 선 老松있어
바람 있음을 조금도 깨달을 수 없는 날씨에도 아무렇게나
뻗어 높이 치어든 그 검은 가지는 湫湫히 탄식하듯 울고 있어,
내 항상 그 아래 한때를 머물러 아득히 생각을 그 소리 따라
天涯에 노닐기를, 즐겨 하였거니, 하룻날 다시 와서 그 나무
이미 무참히도 베어 넘겨졌음을 보았나니.
진실로 현실은 한 그루 나무 그늘을 길가에 세워 바람에
울리느니 보다 빠개어 육신의 더움을 취함에 미치치 못하거늘,
내 애석하여 그가 섰던 자리에 서서 팔을 높이 허공에 올려 보았으나.
그러나 나의 손 바닥에 그幽玄한 솔바람 소리 생길 리 있으랴.
그러나 나의머리 위 저 묘막한 천공에 시방도 오고
가는 神韻이 없음이 아닐지니. 오직 그를 증거할
善한 나무 없음을 안타까울 따름이니라.

 


 

 수(首)



십이월의 북만(北滿) 눈도 안 오고
오직 만물을 가각(苛刻) 하는 흑룡강 말라빠진 바람에
헐벗은
이 적은 가성(街城) 네거리에
비적(匪賊)의 머리 두 개 높이 내걸려 있나니
그 검푸른 얼굴은 말라 소년 같이 작고
반쯤 뜬 눈은
먼 한천(寒天)에 모호(模湖)히 저물은 삭북(朔北)의
산하를 바라고 있도다
너희 죽어 율(律)의 처단의 어떠함을 알았느뇨
이는 사악(四惡)이 아니라
질서를 보전하려면 인명도 계구(鷄狗) 와 같을 수 있도다
혹은 너의 삶은 즉시
나의 죽음의 위협을 의미함이었으리니
힘으로써 힘을 제(除)함은 또한
먼 원시에서 이어 온 피의 법도(法度)로다
내 이 각박한 거리를 가며
다시금 생명의 험렬(險烈)함과 그 결의를 깨닫노니
끝내 다스릴 수 없던 무뢰한 넋이여 명목(暝目)하라!
아아 이 불모한 사변(思辨)의 풍경 위에
하늘이여 은혜하여 눈이라도 함빡 내리고지고

 


 

 

수선화


몇 떨기 수선화―
가난한 내 방 한편에 그윽히 피어
그 청초한 자태는 한없는 정적을 서리우고
숙취의 아침 거칠은 내 심사를 아프게도 어루만지나니
오오 수선화여
어디까지 은근히 은근히 피었으련가
지금 거리에는
하늘은 음산히 흐리고
땅은 돌같이 얼어붙고
한풍은 살을 베고
파리한 사람들은 말없이 웅크리고 오가거늘
이 치웁고 낡은 현실의 어디에서
수선화여 나는
그 맑고도 고요한 너의 탄생을 믿었으료
그러나 확실히 있었으리니
그 순결하고 우아한 기백은
이 울울한 대기 속에 봄안개처럼 엉기어 있었으리니
그 인고하고 엄숙한 뿌리는
지핵의 깊은 동통을 가만히 견디고 호을로 묻히어 있었으리니
수선화여 나는 너 위에 허리 굽혀
사람이 모조리 잊어버린
어린 인자의 철없는 미소와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나니
하여 지금 있는 이 초췌한 인생을 믿지 않나니
또한 이것을 기어코 슬퍼하지도 않나니
오오 수선화여 나는
반드시 돌아올 본연한 인자의 예지와 순진을 너게서
믿노라

수선화여
몇 떨기 가난한 꽃이여
뉘 몰래 쓸쓸한 내 방 한편에 피었으되
그 한없이 청초한 자태의 차거운 영상을
가만히 온 누리에 투영하고
이 엄한의 절후에
멀쟎은 봄 우주의 큰 뜻을 예약하는
너는 고요히 치어든 경건한 경건한 손일레라.



 

석굴암대불


목놓아 떠뜨리고 싶은 통곡을 견디고
내 여기 한 개 돌로 눈 감고 앉았노니
천 년을 차거운 살결 아래 더욱
아련한 핏줄 흐르는 숨결을 보라


목숨이란! 목숨이란-
억만 년을 원(願) 두어도
다시는 못 갖는 것이매
이대로는 못 버릴 것이매


먼 솔바람
부풀으는 동해 연잎
소요로운 까막까치의 우짖음과
뜻없이 지새는 흰 달도 이마에 느끼노니


뉘라 알랴!
하마도 터지려는 통곡을 못내 견디고
내 여기 한 개 돌로
적적히 눈감고 가부좌(跏趺坐) 하였노니

 


 

 솔바람



메에 올라 솔 아래 누우니
천공에 유현히 해조음의 거래함이 있도다.
잠깐 꿈꾸노니
허막한 저 시공의 변죽을

거리에 돌아오니
이미 천년의 우수에 있는 것 모두 초연하도다.


 솔밭에 와서


솔밭에는 솔바람 여울이 울고

솔바람 여울 위에 가치떼 설레고

가치 설레는 위에 하늘만 푸르고

내사 외로워 생각이고 무에고

 


 

시인에게


영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것은 정수리 위에 도사려
내가 목숨을 목숨함에는
솔개에게 모자보다 무연(無緣)한 것.

이 날 짐짓
살아 있으므로 살아야 되는 무가내한 설정에
비바람에 보둠긴 나무.
햇빛에 잎새 같은 열망.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그 짧은 인생의 사무치는 뜨거움에
차라리 나는 가두 경세가(經世家).

마침내 부유의 목숨대로
보라빛 한 모금 다비(茶毘)되어
영원의 희멀건 상판을 기어 사라질 날이
얼마나 시원한 소진(消盡)이랴.

그러기에 시인이여
오늘 아픈 인생과는 아예 무관한 너는
예술과 더불어 곰곰히 영원하라.


 

아기


아기야, 너는 어디서 온 나그네냐?

보는 것, 듣는 것, 만 가지나 신기롭고

이상키만 하여 그같이 연거푸 물음을 쏟뜨리는

 너는, -몇 살이지? - 네 살?

어쩌면 네가 떠나온 그 나라에선

네가 집나간지 나흘째인지 모르겠구나.

 

 


 울릉도


동쪽 먼 심해선(沈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를 갈거나


금수(錦繡)로 구비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어시장에서


신아침 어시장엘 가 보았는가.
바닷물로 씻기운 그 너른 시멘트 바닥 온통
웅성대는 사람떼들의 내려다 보는 발 밑 아래 밤 사이
건져다 쏟아 놓은
갖가지 크고 작은 청신한 어족(魚族)들
그 신월(新月)같은 생명들의 번득이는 은빛 갑옷 붙은
알가미에
칼날 같은 날개로
푸른 무지개를 그리며 퍼드덕거리는 써늘한 열풍


지금 이들은 바야흐로 최후의 단말마에 목숨 잘리

우는
처참한 순간이겠지만
이 정경이 조금도 음기(陰氣)로 메워지지 않고
오히려 파도 같은 의욕과 박력으로 더욱 다가 넘침은
이들의 생명이 끝까지 곧고 청순한 때문.


여기엘 오면 나도 어부가 되고 싶다.
그리하여 저 대해(大海)의 심산유곡으로 헤치고

나아가
억센 그들과 맞싸우며 그들을 모조리 잡아 비끌어

오고
싶다

 

 


 

일월


나의 가는 곳
어디나 白日이 없을쏘냐.


머언 미개(未開)ㅅ적 유풍(遺風)을 그대로
성신(星辰)과 더불어 잠자고


비와 바람을 더불어 근심하고
나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熱愛)하되
삼가 애련(愛憐)에 빠지지 않음은
--- 그는 치욕(恥辱)임일레라


나의 원수와
원수에게 아첨하는 자에겐
가장 옳은 증오(憎惡)를 예비하였나니.


마지막 우러른 태양이
두 동공(瞳孔)이 해바라기처럼 박힌 채로
내 어느 불의(不意)에 즘생처럼 무찔리기로


오오 나의 세상의 거룩한 일월(日月)에
또한 무슨 회한(悔恨)인들 남길쏘냐.

 


 

 저녁놀


굶주리는 마을 위에 놀이 떴다.
화안히 곱기만 한 저녁놀이 떴다.


가신 듯이 집집이 연기도 안 오르고
어린 것들 늙은이는 먼저 풀어져 그대로 밤 자리에 들고.


끼니를 놓으니 할 일이 없어
쉰네도 나와 참 고운 놀을 본다.


원도 사또도 대감도 옛같이 없쟎아 있어
거들어져 있어--


하늘의 선물처럼
소리 없는 백성 위에 저녁놀이 떴다.

 

 


 

 출생기


검정포대기 같은 까마귀 울음소리 고을에 떠나지 않고
밤이면 부엉이 괴괴히 울어
남족 먼 포구의 백성의 순탄한 마음에도
상서롭지 못한 세대의 어둔 바람이 불어오던
융희(隆熙) 2년!


그래도 계절만은 천년을 다채(多彩)하여
지붕에 박넝쿨 남풍에 자라고
푸른 하늘엔 석류꽃 피 뱉은 듯 피어
나를 잉태한 어머니는
짐즛 어진 생각만을 다듬어 지니셨고
젊은 의원인 아버지는
밤마다 사랑에서 저롱저롱 글 읽으셨다


왕고못댁 제삿날밤 열 나흘 새벽 달빛을 밝고
유월이가 이고 온 제삿밥을 먹고 나서
희미한 등잔불 장지 안에
번문욕례(煩文辱禮) 사대주의의 욕된 후예로

세상에
떨어졌나니


신월(新月) 같이 슬픈 제 족속의 태반(胎班)을

보고
내 스스로 고고(呱呱) 의 곡성(哭聲)을 지른 것이
아니련만 명이나 길라 하여 할머니는 돌메라 이름
지었다오

 

 


  

춘신(春信)


?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 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적은 멋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득녘 끝 어디메서

적은 깃을 얽고 다리 오르리고 지내다가

이 보오얀 봄길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칼을 갈라


고열(苦熱)과 자신의 탐욕에
여지없이 건조 풍화한 넝마의 거리
모두가 허기 거린 게사니 같이 붐벼 나는 속을
칼 가시오!
칼 가시오!
한 사나이 있어 칼을 갈라 외치며 간다


그렇다
너희 정녕 칼들을 갈라
시퍼렇게 칼을 갈아 들고들 나서라
그러나 여기
선(善)이 사기(詐欺) 하는 거리에선
윤리가 폭행하는 거리에선
칼은 깍두기를 써는 것밖에는 몰라
칼을 발톱을 깍는 것밖에는 감쪽같이 몰라
환도(還刀)도 비수도
식칼처럼 값없이 버려져 녹슬거니
그 환도를 찾아 갈라


비수를 찾아 갈라
시칼마저 모조리 시퍼렇게 내다 갈라
그리하여 너희를 마침내 이같이
기갈 들여 미치게 한 자를 찾아
가위눌러 뒤집이게 한 자를 찾아
손에 손에 그 시퍼른 날들을 들고 게사니 같이 덤벼
남나의 어느 모가지든 닥치는대로 컥컥 찔러
황홀히 뿜어나는 그 새빨간 선지피를
희광이 같이 희희대고 들이켜라는데
그리하여 그 목마른 기갈들을 축이라는데
가위눌린 허망들을 채우라는데-


그러나 여기 도둑이 도둑맞는 저자에선
대낮에도 더듬는 무리들의 저자에선
이 구원의 복음은 도무지 팔리지가 않아
칼 가시오!
칼 가시오!
사나이는 헛도이 외치고만 간다. 

 

 


 

풍일


바람이 바다소리를 하고 부는 날을

보오얀 사진(沙塵)에 하늘도 산도 안 보이고

슬픈 햇빛은 마음의 한 편만을 비치고

어디를 가도 바다소리만 들리어

나는 창망한 변두리의 한 개 외로운 바다

 

 


 

학(鶴)


나는 학이로다


박모(薄暮)의 수묵색 거리를 가량이면
슬픔은 멍인 양 목줄기에 맺히어
소리도 소리도 낼 수 없누나


저마다 저마다 마음 속 적은 고향을 안고
창창(蒼蒼)한 담채화(淡彩畵) 속으로 흘러가건만
나는 향수할 가나안의 복된 길도 모르고


꿈 푸르는 솔바람 소리만
아득한 풍랑인 양 머리에 설레노니


깃은 남루하여 올빼미처럼 춥고
자랑은 호올로 높으고 슬프기만 하여
내 타고남은 차라리 욕되도다
어둑한 저잣가에 지향없이 서량이면
우러러 밤 서리와 별빛을 이고
나는 한 오래기 갈대인 양

- 마르는 학이로다

 

 



해바라기 밭으로 가려오


해바라기 밭으로 가려오.
해바라기 밭 해바라기들 새에 서서
나도 해바라기가 되려오.


황금사자(黃金獅子) 나루
오만(傲慢)한 왕후(王候)의 몸매로
진중일 짝소리 없이


삼복(三伏)의 염천(炎天)을 노리고 서서
눈부시어 요뇨히 호접(蝴蝶)도 못오는 백서(白書)!
한점 회의(懷疑)도 감상(感傷)도 용납지 않는
그 불령(不逞)스런 의지(意志)의 바다의 한 분신(分身)이 되려오.


해바라기의 밭으로 가려오.
해바라기의 밭으로 가서
해바라기가 되어 섰으려오.

 

 



행복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마침내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무량한 안식을 거느린 저녁의 손길이
집도 새도 나무도 마음도 온갖 것을
소리없이 포근히 껴안으며 껴안기며―


그리하여 그지없이 안온한 상냥스럼 위에
아슬한 조각달이 거리에 내걸리고
등들이 오르고
교회당 종이 고요히 소리를 흩뿌리고


그립고 애달픔에 꾸겨진 혼 하나
이제 어디메어 숨지우고 있어도.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귀를 막고―
그리고 외로운 사랑은
또한 그렇게 죽어 가더니라.

 

 


 

향수


나는 영락한 고독의

가마귀
창랑히 설한의 거리를 가도
심사는 머언 고향의
푸른 하늘 새빨간

동백에 지치었어라
고향 사람들 나의

꿈을 비웃고
내 그를 증오하여

폐리같이 버리었나니
어찌 내 마음 독사

같지 못하여
그 불신한 미소와

인사를 꽃같이

그리는고

오오

나의 고향은

머언 남쪽 바닷가
반짝이는 물결 아득히 수평에 조을고
창파에 씻긴 조약돌 같은 색시의 마음은
갈매기 울음에

수심져 있나니

희망은

떨어진 포켓트로

흘러가고
내 흑노같이

병들어
이향의 치운 가로수 밑에 죽지 않으려나니
오오 저녁 산새처럼 찾아갈 고향길은

어디메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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