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500만원
“엄마. 여기 온 김에 무너진 담장 울타리 보수작업을 해야겠어요. 오후 늦은 시간이라 햇빛도 덜 비치니 이 일 하기에 딱 좋아요.
“재국아. 네가 웬일이랴. 너 그런 일 안해 봤잖혀.”
“서울에서 아르바이트 하며 주말과 주일에 공사판 일도 해봤어요. 저 정도는 거뜬히 해요. 재밌던데요.”
마침 그때, 초등학교 동창 귀철이가 소식 듣고 집에 왔다. 딱 이럴 때 나타나다니. 역시 친구 맞네. 서울에서 가끔 카톡으로만 연락했는데.
“어머님. 괜찮으셔요? 엄청 놀랐당게요. 몸 성하니 눈물이 나려는구만요.”
“오라. 귀철이네. 요즘도 부동산 일 잘 하제. 일 잘한다고 소문났더만.”
귀철이가 엄마에게 공손하게 절했다. 이어 내 목을 꽉 휘어잡았다.
“야 임마. 온다고 말도 없이 왔냐? 야튼 반갑고만. 근데 시방 뭐하냐?”
“어. 저 무너진 담장 울타리 좀 손보려고. 판자 몇 장과 망치 못 톱이 필요한데. 그것 찾고 있어.”
“잘 됐네. 내차, 밴뒤에 망치와 못 톱은 기본으로 있당데. 어디보자. 자 여기.”
“우와! 항상 준비된 채로 다니네. 네가 마치 내 수행 비서같아. 잘했어. 쿨!”
“장난하냐. 지금. 부동산 중개로 먹고 살려면 이런 건 필수랑개. 부동산 물건 소개하다 걸리는 거 있으면. 자르고 치고 박고. 안내 표시판도 설치하고.”
귀철이 차에서 판자쪼가리도 몇장 나왔다. 얼추 보아하니 보수에 충분해 보였다. 귀철이가 웃옷을 벗고 직접 나섰다. 아주 목수 저리가라였다.
두어 시간 둘이 함께 뚝닥거리며 허름한 부분은 걷어내고 교체했다. 엄마가 시원한 감주와 과일을 들고 나오셨다.
“꿀꺽 꿀꺽!”
“와! 속이 확 트이네. 어머님 표 감주 짱인디요.”
귀철이와 담장 보수 작업을 마치고 읍내 목욕탕으로 갔다. 얼마 만인가.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갔던 고향 목욕탕. 이런 게 좋았다. 추억이 있어서.
귀철이와 냉온탕을 연거푸 들락거렸다. 초등학교 때 바다에 나가 물장구치던 깨복장이 친구가 성년이 되어 그때를 즐겼다. 친구란 이런 사이지.
다음 이어진 귀철이와 시간은 4년을 훌쩍 넘어가고 말았다. 끊임없는 이야기로. 늦은 시간까지 저녁에 귀철이와 술도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중이었다.
“귀철아. 네가 고향을 지켜줘서 고맙다. 너 같은 친구가 있어 난 부자지?”
“고맙긴. 재국아. 넌 공부 잘해 서울 유학 갔으니 부디 출세 하그라.”
그때였다. 뭔 인기척이 들렸다. 어두컴컴한 밤기운에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그림자. 장독대 뚜껑 떨어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쨍그렁!”
“뭐야? 저 녀석. 도둑아냐?”
“장독에서 뭘 훔쳐 달아난 가 본데?”
내가 고함을 질렀다.
“야 새끼야! 거기 안 서!”
왼손에 무슨 뭉치를 들고 달아나던 도둑놈을 뒤쫓았다. 도둑이 길모퉁이로 사라졌다. 추격했다. 다른 집으로 도망갔다. 숨었다가.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나도 담벼락을 곧바로 넘었다. 동시에 비호처럼 달려 녀석을 뒤에서 덮쳤다.
그대로 함께 땅바닥에 나둥그러졌다. 녀석이 몸을 더듬었다.
“찰칵!”
날카로운 칼날이 내 눈앞에 번쩍였다. 어느새 품에서 꺼냈는지 녀석이 나이프를 폈다. 맥가이버 칼이었다.
“휙! 휙!”
내 면상을 향해 몇 번 휘둘렀다. 귀철이가 뒤따라 달려오며 경찰에 신고 했다. 수세에 몰린 날 보고 귀철이 당황했다.
그 순간, 귀철이 보는 앞에서 잽싸게 칼을 든 녀석의 손목을 걷어찼다.
“툭!”
칼이 땅에 힘없이 떨어졌다. 녀석도 벼락 맞은 나무처럼 쓰러졌다. 곧바로 녀석의 뒷목에 왼팔로 압박하고 오른 팔로 턱밑을 서서히 조였다.
“으으흐~. 시~발~. 캑! 캑!”
“이 놈. 비열한 양아치아냐? 너 상습범이지? 오늘이 네 제삿날인 줄 알아!”
도둑을 당한 아줌마가 뛰어와 바닥에 떨어진 돈 다발을 주워들었다.
“내 돈. 금싸라기 같은 내 돈. 딸 병원비 할 건데. 이 놈이!”
“삐웅! 삐웅!”
순찰차가 들이닥쳤다. 현장 검거를 한 터라 녀석에게 그대로 수갑을 채웠다.
“재국아. 너. 고등학교때 100m 육상 선수 실력이 녹슬지는 않았는디. 엄청 멋져 부렀어야.”
기분만땅인 듯한 귀철이가 개선장군처럼 나를 치켜세워줬다.
“오라! 너. 영실네 아들아냐? 재국이 맞제? 이렇게나 큰 일해서 어떡한댜?”
한 동네 사는 경숙이 엄마였다. 열 살은 어린 동생뻘되는 경숙이. 소아마비로 걸음이 불편한 아이. 궁금했다. 평소 나를 오빠로 잘 따랐던 아이.
“경숙이 어머니. 병원에 경숙이가 입원해있어요?”
“응. 시상에 그 아이. 병원비하려고 모아둔 계돈인데.”
경숙이 엄마가 내 손을 꼭 쥐었다. 눈에는 이슬이 맺혀있었다.
***
어촌의 소문은 댓바람처럼 빨랐다. 다음날 동네 사람들 입에서 회자되었다.
“서울 유도대학에 장학생으로 간 재국이가 그 도둑놈을 때려 잡았댜!”
“영실이네가 아들은 잘 키웠당게. 비록 남편은 바다에 잃어부렀지만, 아들 하나는 잘 건사했지 뭔가?”
“내 말이. 글쎄? 영실이네가 바람 거센날 물질하다 죽을 뻔 했다잖아. 근디 재국이가 서울에서 전날 꿈에 예몽을 꿨댜.”
“그러게. 엄마가 바다에서 죽을 것 같아. 잠에서 깨어나 바로 이 촌으로 달려왔다잖여.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엄마를 구해내고.”
“시상에 이런 일이 다 있네. 여튼 우리 마을에 재국이는 보물인개. 잘 멕여 보내자고. 내친김에 오늘 우리집에서 고기구워먹제 그려.”
그날 점심은 경숙이네 집에서 먹었다. 엄마와 함께 물질하는 아줌마들도 다 모였다. 오가는 덕담속에 입안에서는 싱싱한 고기와 해물거리가 오물거렸다.
귀철이가 언제 전화했는지, 초등 동창 문오경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야! 이게 누구야? 재국이 아냐! 서울로 유학 간지 반년도 안 됐는디. 많이 서울 티 나네. 고향에 니 여자 친구. 문오경 잊지 않기다. 약속하제!”
평상엔 해녀분들 회식상이 질펀했다. 마당 한쪽엔 셋이 따로 모여 미니 동창회를 했다. 나. 귀철이. 오경이. 경숙이 엄마가 먹거리 한상을 갖다 주었다.
“전선 케이블 공사하고 버려둔 굴림통을 뒤집어 놓으니 그럴듯한 포장마차 좌판같네. 분위기도 살아나고. 통이 방치되다가 오늘 역할을 찾았부렀어야.“
“어! 너. 억순이. 문오경. 왜 내가 널 잊냐? 서울 가시나들, 별루인 애들 많다. 돈만 아는 애, 질색이제. 그려도 우리 초등학교 동창이 순수하고 훨씬 낫제.
내 반장할 때, 넌 부반장. 그때 좋았지. 넌 O형 여장부 타입이잖아. 난 A형인데. 귀철이가 그러던데. 너. 해남 어판장 1등 경매사. 똑순이라고 하던데.
친구 왔다고 소문 듣고 싱싱한 해삼에 전복까지 들고 오고. 내 이 맛에 고향이 좋다. 나 앞으로 돈 많이 벌란다. 서울선 돈 못 벌면 사람취급 안한다.“
이어서 엄마가 왜 바람부는 날, 물질을 하게 됐는지. 어렵게 사는 막내 이모. 다음달에 재혼하려는데. 거기 목돈 좀 보태줄려고 무리했다는 이야기까지.
먹고 마시며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나도 서울서 공부하며 아르바이트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은데 못해줘 안타깝다는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꺼냈다.
“재국아. 그려. 이럴 때는 물질적 도움도 필요하제. 우리 가게 들러야. 내가 500만원 정도는 융통해서 빌려줄게. 네가 벌어서 갚아라. 되는대로. 알았제?”
문오경이 남은 전복을 하나 까먹고는 일어섰다. 곧 배달 나가야 한다고.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재국아. 넌 반장. 난 부반장. 우리 각자 위치에서 돈 많이 벌고. 그 돈 멋지게 쓰자. 귀철이 너는 총무. 너도 부동산으로 돈 많이 모아. 또 만나자.”
“알았다. 오경아. 들를게. 약속한다. 꼭 갑부 될란다. 함께 쓰자. 좋은 정보도 전해줄게. 우리 셋 단톡방 만들게. 남은 인생, 열심히 일하고 즐겁게 살자.”
오경이가 가고 난 뒤, 내말에 귀철이도 맞장구쳤다.
“재국아. 말해라. 나도 지난번 부동산 임야 큰 거 서울사람에게 매매하고 복비 많이 챙겼잖여. 나도 너 돈 필요할 때, 힘 보탤긴데. 계좌번호 알려주그라.
500만원은 보낼게. 돈이라는 게 말이야. 때론 지렛대 작용을 하드라. 지게로 무거운 짐 지고 일어설 때, 누가 뒤에서 살짝만 밀어줘도 엄청 큰 힘 되지.“
“귀철아. 너까지도 날 감동시키냐. 500만원이 남의 집 개 이름이 아닌데. 고맙다. 내 몇배로 갚지. 이번에 여기 내려오길 참 잘했다. 친구들도 찾고.
엄마도 구하고. 이모도 힘 받게 해드리고. 내가 친구 복은 있다. 잘 살자. 초등학교 동창이 각처에서 이렇게 마음을 모으니 우린 큰 부자다.“
귀철이도 일어섰다. 땅보러 온다는 손님과 약속이 잡혀있다고. 나도 일어났다. 유도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람은 모름지기 일이 있어야 활력이 넘친다.
***
“우리 재국이가 많이 커 부렀네. 서울 사람 다 됐고만. 그려 나도 너네 엄마. 네 얘기 소문듣고 궁금했제. 의젓하네. 내 제자가 이리도 자랑스러울 수가.
마침 내게 딱 필요하다 싶은 홍삼단을 사서 들고 오고. 이거 참 좋던데.”
“관장님! 배움을 감사드려요. 그 덕분에 추천해준 서울 유도대학에 입성도 했습니다. 배울 게 많고 일 할 것도 수두룩해요. 더 매진하겠습니다.
그런데 아까보니 관장님 무릎을 절던데요. 어디 다치셨어요? 그렇게도 팔팔하신 관장님이 그런 모습이라 마음이 아팠어요.“
“고마워. 내 걱정까지 해주고. 도 대항 나가는 일반부 선수 지도하다가 내 무릎을 좀 다쳤어. 곧 나아질 거야. 듣자하니 내가 힘 보태줄 거 있나보드라.”
“관장님도. 평소 찾아뵙지도 못하다 이렇게 6개월만에 들렀는데요. 무슨 염치로요. 말씀만도 고맙습니다.”
“말 나온 김에 이모 재혼하는데. 좀 보탤게. 방금, 오경이한테 전화받았지. 네가 돈이 좀 필요할 거라고. 500만원 쯤 보내줄 테니까 계좌번호 알려줘”
“네? 관장님까지도요? 물론 큰 힘이 될 거예요. 우리 이모한테요. 잘 쓰고 바로 갚겠습니다. 제가 너무 감사해서 어떻게 인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재국아. 요즘은 말이다. 힘보다 돈도 필요한 세상이다. 너무 인간적인 것만 추구해도 아니다. 그건. 꼭 필요한 곳에 쓸만큼의 돈은 있어야 해.”
“네. 관장님. 절실히 느낍니다. 특히 서울 생활하다 보니까 돈 없으면 아예 사람 취급을 안 하기도 하더군요. 명심하겠습니다.
악착같이 모아 뜻있게 쓰겠습니다. 잘 살고 배우고 나누며 공헌하고 싶습니다. 영혼을 소중히 여기며 믿음에 굳게 서서 균형 잡힌 삶을 살겠습니다.”
관장님이 내 손을 잡아 주셨다. 투박한 아버지의 손 안에 든 아이 손 같았다. 아버지가 문득 생각났다. 바닷속에 수장되셔서 산소도 없는 분, 아버지!
***
“재국아. 이 돈 500만원 네 통장에 넣었다가, 다음달에 이모 계좌로 보내주그라. 경숙이 엄마가 돈 도둑맞는 걸 보고 많이 생각하게 되드라.
나도 언제 어떤 도둑한테 뺏길 줄 몰라. 걱정 않고 살란다. 그동안 너무 방심하고 살았제.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디? 다 내마음같지 않응개.“
서울로 떠나는 내손에 엄마가 돈 다발을 내놓으셨다. 화장대 서랍 맨뒤에서 꺼낸 돈 뭉치. 500만원. 엄마의 계돈이었다.
지난 생에선 섣불리 코인투자한다고 다 날려먹은 엄마의 숨비 소리. 500만원. 엄마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엄마가 나를 꼭 껴안으셨다.
등을 톡톡 두드려주셨다. 내 눈에 뜨거운 기운이 몰려왔다. 감히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눈물이 폭포수로 터질 것만 같아서였다.
‘정말 이번 생에선 엄마를 잘 모셔야 한다. 소일거리 정도 외에 험한 일 안 하시게. 울타리 담장 보수도 신경 안 쓰게 아담한 집을 지어드려야 한다.’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버스에서 나는 가슴이 촉촉이 젖은 채 망부석이 되었다. 3일전에, 꽁지에 불붙은 강아지마냥 허둥거리며 해남으로 달려갔던 나.
지금은 엄마를 살려놓고 서울로. 500만원씩 믿고 흔쾌히 내 손에 들려준 인연들. 문오경 500만원. 송귀철 500만원. 관장님 500만원. 우리 엄마 500만원.
도합 2,000만원의 시드머니. 다시 사는 인생 2차전. 이번엔 반드시 성공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스마트폰에 뜬 순간 영상을 캡춰했다.
‘Success is not the key to happiness. Happiness is the key to success. If you love what you are doing you will be successful.'*
2화 끝(5,883자)
결말: 유도관장. 부동산. 경매사. 500만원씩 빌려줌. 차용증 각서.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