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선교 역사를 찾아서① 2013. 4. 21
베어드 선교사
사랑하는 극동방송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극동방송 봄철 프로그램 개편에 따라서 <교회사 산책>을 진행하게 된, 주님의 숲 교회 이석배 목사입니다. 저는 참고로 2년 전에 세워진 울산교회사연구소 편집국장직을 맡아서 섬기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저는, 울산에 처음 복음이 전파될 때, 어떤 경로로 되어졌을까 하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선교사님들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초기에 들어온 많은 선교사들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울산과 관계된 선교사님들은 누구일까요? 왜냐하면, 아무래도 복음은 선교사님들을 통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울산지역에도 선교사님들이 와서 복음을 전해주었거나, 아니면 울산에 살고 있는 어느 사람이 타지방에 가서 복음을 듣고 와서 이 지역에 교회를 세웠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 가운데 우리 울산과 가장 먼저 관계를 맺은 선교사, 즉 한번이라도 이 지역에 왔다갔거나 머물렀거나, 또는 여기에 상주하면서 복음을 전했을 사람들을 찾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은 연구가 아직 충분하게 이루어지지는 못해서, 최초로 울산에 들어온 선교사님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교회사에 기록에 보면, 1891년 1일 29일에 우리나라(부산)에 입국한 북장로교 선교회에서 파송한 윌리암 베어드 선교사(배위량) 선교사님(William M. Baird)이 울산지역을 다녀간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기록이 남아 있음). 그는 선교사역 초기 4년 동안 부산에 거주하면서 경상도 일대를 순회전도를 다녔는데, 이 기간 동안에 크게 3번의 순회전도를 다녔다고 합니다.
베어드의 순회전도
첫 번째 순회전도는 1892년 5월 18일에 시작하여 한 달 정도 경상도의 서부 지역을 주로 순회하며 전도하였습니다.(김해, 창원, 마산, 진해, 고성, 통영지방까지 답사형태로 전도)
두번째 순회전도는 1893년 4월 17일부터 5월 20일까지 진행한 순회전도여행으로서 주로 경상도 북부지역을 순회하였습니다. 이때 지나간 지역들이 (순서대로) 부산 동래를 거쳐 양산읍, 물금, 밀양, 청도, 대구 , 칠곡, 성주, 상주, 풍상, 안동, 영천, 의성, 경주, 그리고 울산을 거쳐서 부산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바로 이 2차 순회전도 여행 때 베어드선교사가 울산을 거쳐 갔다는 기록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울산 지역의 최초로 세워진 교회가 병영교회인데, 그 설립연도가 1895년 1월 8일입니다. 그런데 베어드 선교사가 울산을 (비록 하루만 머물다 가셨지만...) 다녀간 때가 1893년 5월 18일이니까, 선교사가 다녀간 지 1년 4개월 만에, 교회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물론 그 사이에 몇몇 선교사님들이 더 이 울산에 찾아왔기 때문에, 최초의 울산지역 교회가 베어드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것은 아니지만, 그의 첫 번째 울산의 발걸음은 우리 울산지역으로 봐서는 매우 의미 있는 발걸음이었다라고 보여 지는 것입니다.
사실, 나중에 최초로 병영교회를 세웠던 이희대씨도 병영교회 90년사에 보면, 자신에게 큰 병이 있었는데, 이런 저런 약으로도 못고치고 있던 차에 서양에서 온 선교사들이 기도해주면 잘 낫는다는 소문을 어디선가 듣고서는, 마침 어느 장날(병영장날)에 서양 선교사들이 우리나라 재래시장 구경나온 서양 선교사들을 마침 만나게 되어 자기 집에 데리고 와서 그들과 만나면서 복음을 영접하게 되었다고 하니...! 이렇게 부지런히 다니고 또 다닌 덕분에 그런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베어드 선교사가 왔다가고, 그 뒤에 아담슨 선교사를 비롯한 호주 선교사들이 왔다 가고, 특히 여선교사들이 자주 방문을 하면서, 그런 소문이 점점 나면서 이런 열매가 나타난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온 선교사들은 매우 부지런히 전도를 하였습니다. 순회전도, 사랑방전도 등이 그들의 주요 선교전략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그러한 생활을 지금도 우리에게 전도는 부지런히 하는 것이라고 하는 큰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열매는 희생에서 나온다.
베어드가 기록에 명확하게 남아있는 최초의 울산지역을 방문한 선교사로 말씀드렸지만, 보다 앞선 선교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그보다 더 먼저 캐나다 출신의 평신도 선교사인 게일 선교사(이 분은 우리나라를 전세계에 많이 소개해준 분으로 유명합니다. 서울의 연동교회 설립자입니다. 많은 우리나라 문학잪품을 영어로 번역해서 서양에 소개해준 참 고마운 분입니다.)가, 우리나라에 입국해서, 부산에 머물면서 경상도 지역을 순회전도했다는 기록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순회전도에는, <울산> 지명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게일 선교사가 울산에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베어드 선교사는 분명히 울산에 왔었다는 사실을 그의 일기에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어드를 최초의 울산지역 방문 선교사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울산에 다녀간 그의 일기의 내용을 그대로 소개해 보면 이렇습니다.
“5월 18일 목요일 울산 / 대구에서 170리, 부산에서 140리 떨어진 곳에 와있다. 경주를 떠나기 직전에 많은 책들을 판매했다. 어제 오전에 경주를 떠나 80리 길을 왔다. 이곳은 아름답고, 사람도 많다.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는 해군기지 좌평영을 통과했다.”
참고로 베어드의 3차 전도여행은 1893년 9월 25일부터 10월 11일까지 부산에서 출발해서 서울까지 가는 전도여행이었습니다. 부산에 머무는 짧은 기간동안, 교통도 발달하지 못한 그당시에 이처럼 세번씩이나 장거리 순회전도여행을 다녔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헌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베어드뿐 아니라 초기에 우리나라에 온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순회전도를 통해서 복음을 전해주었는데, 낯설고 척박한 당시의 우리나라(조선)에 오직 복음 전파의 열정과 사랑하는 마음 한가지로 가지고 와서, 언어도 통하지 않고 풍토병으로 인해 건강의 위험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삼천리 방방곡곡을 필마로 돌고 돌던 선교사님들을 생각하면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리게 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분들의 그 희생이 있었기에, 그 순수한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나라, 우리 울산에도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입니다.
베어드 선교사는 이처럼 부산을 중심으로 4년 정도 사역을 하다가 대구로 지부를 옮겨갑니다. 거기서 자기의 처남인 아담스 선교사를 불러서 대구지역 선교사역을 맡기고는, 평양으로 들어가서 신학교 사역과 교육 사역을 전개합니다. 특히 그가 평양에 세운 숭실학당(지금의 숭실대)는 그의 지도하에 최초의 근대적 의미의 대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는 1931년에 장티푸스에 걸려 소천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땅의 교육 선교에 혼신의 힘을 다 기울였던 선교사였습니다.
베어드의 동역자
베어드의 순회전도를 살펴볼 때, 함께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그의 길안내자로 동행한 우리나라 사람이 있었다는사실입니다. 특히 울산을 방문했던 두 번째 순회 전도 때에 동행했던 한국인(조선인)은 서경조라는 한국교회 초기의 큰 활약을 했던 서상륜의 동생이었습니다. 이 두 형제는 황해도 소래 지방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를 세운 장본인들입니다. 너무도 귀한 형제인데, 그 형인 서상륜도 베어드 선교사의 첫 번째 순회전도여행을 도와주었고, 2차 전도여행 때는 그의 동생인 서경조가 직접 경상도에 내려와서 베어드 선교사와 함께 2차 순회전도여행의 길안내를 해주었던 것입니다. 이 서경조가 쓴 일기 가운데, 이 2차 순회전도 여행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어 표현이 좀 들어가 있습니다만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일천팔백삼년 봄에 고윤하(또다른 한국인 평신도 전도자)의 솔권하야, 가는 륜션을 같이 타고 부산에 내려가서 수삭동안 있다가 전도차로 백목사와 같이 량산으로 대구로 용궁으로 안동으로 전의로 경쥬로 울산으로 동래로 돌아오는데, 대구서는 령때라 책 권이나 주었으나, 젼도는 할 수 없더라. 디명은 미샹하나 부산서 믿기로 작정한 일인(한사람)을 찾으니 성명은 김긔원이라. 종처병이 중한 것을 보고 위로를 하고 섭섭이 떠나니라. 상쥬에서 사오일 류하며 전도하는데, 일일은 향교에 가서 대담하게 전도하고 덕혜입문 한 권을 주고 왔더니 그 이튿날 도로 가지고 와서 잘 보앗노라 하고 도로 주고 가더라. 경주에서도 사오일 유하는데, 전도는 잘 할 수 없고 구경군의 욕설과 관인들의 놀님가음만 되고 도라오니라. 도라온 후로 별안간 집으로 올 맘이 나서 회심할 수 없는지라... ”
이 글에 보면, 정확하게 울산이라는 지명 언급이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베어드 선교사 일행이 울산에 온 것은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로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일기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됩니다. 여러분도 평소에 일기를 잘 써두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초기 선교사들뿐 아니라, 초기에 이들과 동역했던 한국인 안내자들의 수고도 있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선교사들 못지않은 복음의 열정으로 동포들을 진리의 빛 가운데로 인도하기 위해, 멀고 먼 황해도 고향 산천을 떠나 이곳 경남과 울산에까지, 선교사를 데리고 와서, 함께 복음을 전한 서상륜 서경조 같은 사람들... 그들 또한 우리가 기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전도자들의 아름다운 동역! 울산은 그 두 가지가 매우 조화롭게 이루어져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곳이라고 여겨봅니다. 이런 아름다운 동행이 오늘날도 우리 울산의 교회들의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내고, 그 동력을 가지고 온 울산을 더욱더 복음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해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