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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는 종로3가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상권이 빼곡하게 형성되어 있는 데다, 인근의 명동이며 광화문을 오가는 차량으로 늘 북적거리는 곳이다. 상점이 문을 닫고 차가 다니지 않는 종로3가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사람들로만 가득 메워진 도로는 더욱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유사한 경우라면 2002년 월드컵 응원단 정도일까. “명동성당 앞에서는 1만 5,000여 명이 집회를 가졌고, 그 아래쪽에서는 2,000~3,000여 명이 구호와 노래를 불렀으며, 제일백화점 앞에서는 6,000~7,000여 명이 연좌시위를 벌였”던 일이랄지, “북창동과 남산3호터널, 남대문시장, 퇴계로 일대의 학생 3,000여 명이 신세계백화점으로 몰려와 명동 쪽에서 오던 2,000여 명의 학생들과 합류해 삽시간에 5,000며 명이 신세계백화점 앞 도로를 완전히 점거했”(397쪽)던 일은 그해 출생자인 나에게 썩 실감나지 않는다. 아마 내 또래나 그 이하의 세대가 비슷할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은 한국근현대사가 아니라 통합된 한국사 교과서 말미에나 등장한다. 이런 상황이니 누구 하나 ‘민주화’의 뜻을 모른대도 놀랄 것 없다. 지금 같아서는 당연한 결과니까.
1987년, 따지고 보면 조선시대보다 우리 삶과 더 밀접한 시기다. 그해 전후에 태어났기에 나를 비롯한 또래 세대는 6월 항쟁의 영향을 받았다. 그때부터 “남북화해와 평화의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7~8월에 노동자대투쟁이 전개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지만 “부르고 싶은 노래도 부를 수도 있고 보고 싶은 영화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10쪽)을 상기한다면 그것이 뜻하는 바를 보다 체감할 수 있으리라. 마음대로 노래를 부르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갖게 된 자유이기에. 이 마땅한 삶은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당시 시위대는 어쩌다 ‘민주화’를 부르짖게 되었나.
1979년 12·12쿠데타에 이어 1980년 5·17쿠데타로 신군부는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 전두환은 최규하를 밀어내고, 8월 27일 유신헌법에 의한 통대선거로 세 번째 체육관 대통령이 되었다. 전두환·신군부는 유신헌법에 안주하기가 껄끄러웠던지 새 개헌안을 만들었다. 1980년 10월 22일 국민투표로 확정된 이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7년 단임으로 하고, 통대 의장인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선임하던 방법 대신 국회 의석의 3분의 1을 배정한 전국구 의원을 여당이 3분의 2 이상 차지하도록 했다. 이것은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변형된 유신헌법에 지나지 않았다. (142쪽)
이처럼 비민주적으로 들어선 전두환 정권은 1987년 4월 13일에 개헌 없이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하는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임기가 다해가는 시기에 체제 유지 의도가 담긴 결정이었다. 그것은 “전두환 정권과 같은 통치방식은 이제는 바뀔 때가 되었고, 따라서 대통령 선거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반인들에게도 충격”(105쪽)을 주었다. 또한,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인 “박종철이 서울대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 일명 깃발) 사건으로 수배 중인 5년 선배 박종운(사회학과)의 거처를 대라는 대공분실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32쪽)한 일과 그 사건의 은폐조작 폭로는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호헌철폐와 전두환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커지기 시작했다. 6·10국민대회 이후에는 야당이나 민주화운동세력 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시민이 주도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국적으로 열렬하게 벌어졌다. “6월 29일 전두환·신군부체제를 총체적으로 부정한 6·29선언이 나”(668쪽)오기까지.
당시 취재기자로 1987년을 목격하고 기록했으며, 현재는 역사학자로 이 책을 쓴 서중석은 6월 항쟁의 발생 과정과 동력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는 “상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시장 골목 이곳저곳에서 숨바꼭질하며 싸우는 시위대의 모습, 시민들의 박수와 환호, 시민들이 쫓기는 학생이나 잡혀가는 학생을 숨겨주고 구출하는 모습, 택시 등 차량기사들이 울리는 계속되는 경적소리, 부산·광주·서울 등지에서의 택시·버스·트럭 기사들의 시위, 교회와 성당에서 울리는 타종소리, 최루탄을 쏘지 말라며 전경 앞으로 다가가 꽃을 달아주는 어머니들, 물 떠다주고 음료수 나르느라 분주한 상인들, 최루가스와 시위에 익숙해져 기민하게 점포의 셔터를 올리고 내리는 상인들, 수천수만 명이 모인 가운데 노동자도 사무원도 농민도 리어카 끄는 막노동꾼도 한마디씩 하던 시국토론회를 비롯한 대중집회, 그 대중집회에서 마당극을 하며 해방춤을 추는 대학생들, 화형식, 스프레이나 물감, 매직펜으로 버스 차창, 건물 벽, 시멘트 바닥 위에 써놓은 구호들”(671쪽)을 기억한다. 이 기억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종로3가를 달리 볼 수는 없다. 우리 삶의 바탕은 더구나 알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가장 가까운 《6월 항쟁》부터 읽어야 할 때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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