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예루살렘 쉼터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송구영신예배 스크랩 송년설교(1집)
기획실 추천 0 조회 39 14.09.24 15: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출처카페 : 빛교회 최정남목사 / 미라클


새 천년을 향한 새 출발-송구영신예배/겔18:30-32
2001-11-14 10:31:55   read : 505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3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세월이 정말 빠릅니다. 이 시간 우리는 1999년의 마지막 시간에 와 있습니다. 이 시간은 단순히 한해를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천년, 아니 1999년간을 마감하고 새 천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천재일시(千載一時), 천년만에 한번 오는 때,
희귀한 때
천재일우(千載一遇) 천년만에 한번 만나는 기회.
희귀하게 오는 기회라는 뜻입니다.
지난날 3고 시대 - 고소득- 개인소득 11000불 시대, 고학력-전문 대학, 797개, 950,173명 대학, 802개, 2,056,370명, 고성장-세계 10대 교역 국가, 그러나 3고 시대에 걸 맡는 성숙한 정신문화 없이 표류하다가 3불 - 부조리, 부정, 부패-시대를 만들어 하나님을 슬프게 해드렸습니다.
밥 좀 먹고 살게 되었다고 동남아 제3국으로 다니며 허세와 허풍 떨고 흥청망청 살다가 국가 부도 사태를 당하여 IMF의 도움을 받는 세계적인 수치를 당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금 간신히 고난의 어두운 터널을 겨우 빠져 나오면서 자화자찬의 허풍을 또 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행한대로 국문 -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고(30)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31) -

[병든 나무, 병든 사람]
나무 뿌리가 병이 들어서 잎이 떨어지고 열매가 떨어지고 있는데 잎과 열매에 약을 친다고 나무가 살아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람의 뿌리 - 마음과 영이 병들어 3불 시대가 되어 사회 곳곳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법과 제도를 고치고 개혁한다고 국가 사회가 건강해 지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는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라(31,32) 고 하셨습니다.
송구-
우리는 지난날을 잘 보내려고 이 밤에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잘못한 것-나쁜 관행을 철저히 회개하여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는 근본적으로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제아무리 새해를 여러 번 맞는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좋은 일이나 새로운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개혁주의 교인의 신앙생활은 깨끗하게 성경대로 사는 것입니다.

개혁주의의 선봉자 칼빈은 엄격하게 자기를 관리하고 청빈, 절제, 중단 없는 자기개혁을 하면서 제네바 시민들에게 윤리와 도덕을 철저히 지킬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유럽이 황폐화하는 때에도 스위스 제네바 만큼은 신용이 있는 튼튼한 사회가 되어, 굴지의 세계적 은행이 탄생하였고 고객의 비밀을 철저히 지켜주어 그 명성을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개혁자 칼빈과 제네바 교인들의 깨끗한 삶의 영향 때문입니다.
우리는 칼빈의 후예들입니다. 칼빈의 개혁 정신을 이어 받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개혁주의가 무엇인지 몰라 교인들이 부정 부패 부조리의 선봉이 되어 나라를 병들게 했습니다.
겔18:30-32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나라 . 그래야 너희가 망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고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지난날의 부도덕한 생활을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성찬을 대합시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얼굴을 뵈옵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십시다. 그래서 복된 2000년을 맞이합시다.

회개기도--철저히 합시다.
성찬: 위원 -목사, 당회원

1. 분병
세례교인 입교한 분만 받는 것입니다.
2. 분잔
떡 받은 분만 받습니다.

2000년 영상으로
새해 시보 10 9 8 7 6 5 4 3 2 1 0
2000년 희망의 새해- 성공의 새해가 도기를
할렐루야----노래..
희망의 2000년이 되었습니다.

-새해 새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새 천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겠습니다.
-모세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 새해에 저와 함께 해 주세요

248장 시온의 영광

내다보며 / 새 천년을 향한 새 출발
삼상11:14,15

세상 사람들은 2000년의 새 해, 해돋이 보러 간다고 법석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 위해 이 밤 교회에 모였습니다. 사람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소망을 가진 신앙인이고 다른 하나는 소망이 없는 자입니다,. 소망을 가진 신앙인의 '오늘밤에 주님이 오실 지, 내일 오실 지 모르기 때문에 늘 준비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소망 없는 사람은 흥
청망청 죄를 먹고 마시며 그날 그날을 살아갑니다. 돈 좀 벌면 무절제하여 방탕하게 삽니다.
우리는 오늘 새해를 맞아,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결심으로 2000년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데리고 길갈로 올라가서 백성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나라를 새롭게 하는 말씀입니다.

길갈- 지도
여리고 동편 3 킬로, 사해동북 편 6Km 지점,
해발 790미터의 고지,

의 미
길갈 (굴러간다) (gilgal)
길갈은 의미 있는 곳입니다.
(1)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첫번 유월절을 감격스럽게 지킨 곳입니다.

(2)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벌하기 위한 임시 사
령부가 있던 곳입니다.(수4:19; 수5:10; 수9:6)

(3)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즉위식을 한곳 입니다(삼상10:8; 삼상11:14; 삼상3:7-12; 삼상5:12)

(4)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넌 것에 감사하여 열 두 돌을 세우고 단을 쌓고 감사하던 곳입니다.

(5)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이 새로운 마음과 신앙으로 서약하고 할례를 받은 곳입니다.
이스라엘이 신앙을 개혁하고 마음을 새롭게 한 곳입니다.

우리도 2000년에 길갈로 올라가야 합니다. 가서 새 천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마음에 할례를 받아 새롭게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길갈에서 가난안 땅을 정복한 것 같이 우리는 기락ㄹ로 올라가서 사탄을 정복하고 죄악을 이기고 살아야 합니다.
길갈은 오늘날 내게 무엇입니까? 내가 머물 곳이고, 감사할 곳이며, 나를 새롭게 개혁해야 할 곳이고 죄와 사탄과 싸워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릴 곳입니다. 길갈에 사는 우리는 나쁜 관행과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잘못 살아온 과거를 버려야 합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와 민족, 사회와 국가를 새롭게 하는 곳이 길갈 입니다.
2000년- 새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곳이 길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새해에 어떻게 살 거냐? - 우리는 대답해야 합니다.
새 사람이 되어 새로운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세계인이 신뢰하는 문화국민으로 살겠습니다. 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성공은 새 마음 새 결심에서 시작됩니다.
새 천년 -2000년을 새 마음으로 출발합시다.
새로운 용기와 소망을 가지고 출발합시다.
우리모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겠다는 결심을 합시다.
새해 새 결심으로 길갈로 올라갑시다.
우리의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합시다.
그래서 우리 교회, 가정, 직장, 사회, 나라를 새롭게
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




사26:1-6 송구영신예배
2002-02-24 18:04:41   read : 394

김태환목사



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2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5 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6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올해는 어느 해 보다도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뉴스에서 2001년10대 뉴스를 발표했는데 1위가9월 11일에 있었던 뉴욕-워싱턴 연쇄 테러 사건이었고, 2위는 미국이 테러 주범으로 간주한 빈 라덴을 비호(庇護)한 아프가니스탄을 대상으로 테러 보복 전쟁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이유야 어쨌건 간에 뉴욕의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백악관과 국방부를 동시 다발로 폭격함으로써6,000여명의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간 것은 서방 자유세계에 대한 도발로 간주되었습니다. 그것도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춰서 비행기를 납치해서 쌍둥이 빌딩에 자폭하는 광경이 생생하게 텔레비전으로 중계가 됨으로써 그 광경을 지켜 본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하고 공포과 분노로 몰아 넣었습니다.

미국은 자국(自國)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빈라덴을 비호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습니다. 덕분에 세계는 잊혀졌던 나라 아프가니스탄에 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나라가 지독한 이슬람 국가라는 것, 문화적으로 피폐할대로 피폐한 나라라는 것, 그리고 지독하게 가난하다는 것, 미국이 전쟁을 선포한 직후에 그 나라 최고 지도자인 모하메드 오마르가 했던 말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폭격할 것도 없다. 미사일 한대 값이 얼마냐? ” 그리고 그 나라가 여성들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서 작전 명령을 처음에 “무한 정의 작전(Operation Infinite Justice)”이라고 했다가 미국내의 반대 여론에 밀려 “항구적인 자유(Operation Enduring Freedom)”으로 바꾸었습니다. 미국에 이런 양심의 소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습니다. 테러 사건을 계기로 미국인들의 애국심이 크게 고조되었습니다. 9월11일 그 와중에서도 하루에 성조기가 11만 6천개가 팔렸다고 합니다. 보통은 하루 평균 6000개가 팔렸었다고 합니다.

9.11테러 사건은 전 세계의 정치, 사회, 경제 질서를 바꾸어 놓을 정도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미국의 패권주의(覇權主意)를 더욱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사회적으로는 많은 후유증과 상처를 남겼습니다. 뉴욕의 시민들은 지금도 그날의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 테러 사건 이후에 미국 국민들이 “만약에(If….)” 라는 말을 많이 쓴다고 합니다. “만약에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내 아들이 쌍둥이 빌딩에서 근무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우리가 부부 싸움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증상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회피하는 경향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고층빌딩에도 가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물론 비행기를 타는 것도 꺼려서 비행기 회사마다 도산(倒産)과 감원(減員)을 감수해야 했고, 운항 횟수를 줄여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9.11테러 사건은 사람들에게 종교심을 더욱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테러사건 이후에 교회마다 교인들이 늘었습니다. 사람들이 현재와 미래의 삶에 대해서 불안해 하는 나머지 절대자에게로 회귀(回歸)하는 현상을 보인 것입니다. 미국의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던 쌍둥이 빌딩이 자기들의 눈 앞에서 성냥곽처럼 힘없이 내려 앉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삶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게 된 것입니다.

세계 10대 뉴스 중 3위는 인간 지놈 지도를 완성한 것입니다. 인간 지놈프로젝트(HGP)와 민간 기업인 셀레라 제노믹스가 인간 지놈(=유전자)지도를 완성함에 따라 인류 생명과학 역사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습니다.

이번 인간 지놈 지도 완성은 각종 질병의 예방과 치료 등 의학분야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고 그동안 신의 영역으로 간주돼온 생명 현상을 깊이 이해하는 토대가 될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특히 의학분야에 가져올 변화는 20세기에 고치지 못했던 각종 질병 치료에서 수명 연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어서 21세기 전반기는 인간 유전자를 통한 의료혁명의 시기로 기록될 전망이고, 또 지놈 정보를 이용한 제약. 바이오 산업도 급속도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 발표에서 인간의 유전자 수는 10만개 정도일 것이라는 당초 예상보다 크게 적은 2만4000~4만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이미 지놈지도가 완성된 식물인 애기장대(아라비돕시스)의 유전자 수(2만5000개)와 큰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매우 복잡한 유전자 구조를 가질 것으로 추정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보다 크게 단순한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세계 10대 뉴스 제 4위는 중국이 WTO(World Trade Organization)에 가입한 것입니다. 1995년에 우르과이 라운드 협상이 타결되었을 때 우리나라 전국에서 반대 시위가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중국이 WTO에 가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전국이 축제 무드에 싸였다고 합니다. 중국은 그동안 자기 나라 시장을 꼭꼭 닫아놓고 대신 값싼 노동력으로 물건을 만들어 다른 나라에 수출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중국은 그동안 닫아두었던 문을 열고 국제 경제시장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당장 내년부터 WTO 규정에 따라 수입상품에 붙이는 세금인 관세를 내리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자기들의 값싼 상품을 여전히 세계 시장에 아무 제한 없이 팔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국이 WTO 가입 이후에 축제 무드에 싸인 것은 오히려 WTO에 가입한 것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WTO 가입과 함께 머지 않아 거대한 인구와 자원을 가진 중국이 세계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전망입니다.

한편, 세계는 점점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이 당한 테러 사건이 미국만의 피해가 될 수 없다는 연대의식(連帶意識)이 형성되어서 심지어 파키스탄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아랍국가들까지도 마국이 주도하는 반 테러 운동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세계는 경제불황을 함께 겪고 있습니다. 그동안 경제 호황을 누리던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유럽, 그리고 아시아, 남미 등이 경제 불황으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세계는 이제 한 시장(市場)이 되었습니다. 마치 수퍼 마켓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듯이 전 세계는 이제 한 시장 안에 자기들의 물건을 내다팔고 필요한 물건을 사다 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가 한 경제권 안에 들어 온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오늘 우리는 2001년을 마치고 이제 2002년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002년 임오년(壬午年)은 말(馬)의 해입니다. 말은 힘과 도약(跳躍)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새해 동안 우리가 모든 면에서 크게 도약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무엇보다도 먼저 교우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이 크게 도약했으면 좋겠습니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省察)과 함께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한 단계 도약했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 26:1-6절 말씀은 오늘 아침 새벽기도에서 읽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구원의 은총을 입은 백성들의 기쁨과 환희의 노래입니다. 우리도 새해에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성읍이 견고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을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내가 너희들을 지켜 줄 때만이, 내가 너희들의 성이 되어 줄 때만이 너희의 생은 견고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우리의 성을 쌓고 지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7:20 에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이 말씀을 여러분, 얼마나 신뢰하고 있습니까? 이런 믿음을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해서 정말 산을 옮기는 능력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깨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9:23).” 하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정말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문제는 우리에게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쉽게 흔들립니다. 쉽게 시험에 듭니다. 시편 16:8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라고 했고, 또 시 46:5에는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그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이 온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도우시는 새벽이 멀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록 깜깜한 절망 중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지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심지(心志)를 곧게 하십시오(3절). 오늘 말씀 4절에도 같은 말씀이 나오지요.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우리가 영원히 의뢰할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인간 사이에서도 심지가 곧은 사람이 인정을 받습니다. 믿음의 심지가 곧은 사람을 하나님은 “평강에 평강으로 지켜 주십니다(keep in perfect peace).” 이것이 하나님의 평강의 공식(公式)입니다. 그의 삶에 평강이 없는 것은 이 하나님의 공식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4:6-8말씀도 보십시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도 하나님의 평강이 기도와 간구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평강의 원천(源泉)은 하나님을 신뢰하는데에 있습니다.

둘째로, 새해에는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 면에 있어서도 우리는 또 한 차례의 믿음의 도약이 필요합니다. 요한복음 8:12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지난 주 예배에서 렘브란트가 그린 동방박사 그림을 보여 드렸습니다. 예수님과 동방박사에게는 밝은 빛이 비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헤롯왕과 그 주변 사람들은 짙은 어둠 속에 갇혀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생명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지위(地位)와 관계 없이 필연적으로 어둠 속에 싸여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1:1-5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단순히 우리는 생명의 빛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말씀을 믿고 따르면 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말씀했습니다. 양은 멀리 볼 수 없는 근시안(近視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 앞만 볼 뿐입니다. 그래도 양이 푸른 꼴을 먹고, 자기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양은 그 앞에 무엇이 있는 알 수도 없고 또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앞에서 인도하는 목자를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온전히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말씀과 기도입니다. 새해에는 더욱 말씀에 집중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에서 우리는 목자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또 하나는 기도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이 교회에 다시 기도의 불이 붙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소원하셨던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자들의 삶 속에 성령의 불이 붙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누가복음 12:4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여러분을 향한 예수님의 열망(熱望)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이제 2001년은 지났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립보서3:12-14).” 또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누가복음9:62).” 고 하셨고, 고린도후서5:17 말씀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못다한 일도 있고, 아쉬운 일들도 많지요? 그러나 지나간 일들에게 애착을 두지 마십시오. 지난 일들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 이유는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미래의 축복을 상실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간 일들에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에 대하여 열려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구도자의 삶(송구영신예배)/수1:1-9
2003-02-26 14:52:05   read : 304


2002년을 보내며. 내가 살아온 금년 한해는 무엇이었는가 생각해 봅니다.
새해는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목회를 하는 저에게 가장 부담스러울 때가 목사를 완성자로 생각할 때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완성자가 아니라 구도자입니다.
목사는 어떤 존재입니까? 구도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자라 생각을 할 때, 내 안에 자유가 생기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 해를 맞이하면서 제가 한 가지 주님 앞에 소원하고 싶은 사실은 좀더 진지한 구도자로 서고 싶다는 점입니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는 진지한 구도자이고 싶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가 이미 섰다 함도 아니오, 이미 이르렀다 함도 아니지만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 가노라 하신 그 현장에 서고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오는 한 해 동안, 구도의 길을 갈 수 있을까요?

1. 우리 구도자에겐 건너가야 할 땅이 있습니다(선교)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서있는 요단 동편은 만족할 만한 땅이 아닙니다. 비옥한 땅일 수는 있어도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불만족스런 땅입니다.
그곳 요단강 동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마고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는 낯 선 땅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맡겨주신 땅입니다.
우리 서머나 교우들에게 맡겨주신 땅이 어디입니까?
먼저 이곳 토론토입니다. 150여 개의 민족이 모여 사는 이민지 토론토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선교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분들은 우리들로 인하여 복을 받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곳에 선교본부인 서머나 교회를 세우기 원하십니다.
서머나교회를 본부로 해서 원주민들이 사는 곳으로 우리가 건너가야 합니다.
우리 아홉 다락방에게 맡겨주신 선교지로 건너가야 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몇 사람이든지 금년 여름에는 유럽 땅으로 건너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C국에서 선교 중에 있는 J선교사님은 우리 동족들에게 들어가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최선수 장로님께서는 북한 탈북자들을 도우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1월 중순에 들어가십니다.
서머나 교회는 가야할 땅이 있는 선교의 공동체입니다. 가는 분이나 보내는 분이나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땅에 들어가든지 보내든지 구체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 가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건너야할 강이 있었습니다. 그 강 이름은 요단강입니다.
이 땅에 가기 위해서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건너야할 강이 있습니다. 그 강이 무엇일까요?
그 강은 사람에 따라 같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자기 부인의 강을 건너야 합니다.
물질의 강을 건너야 합니다.
시간의 강을 건너야 합니다.
이기주의의 강을 건너야 합니다.

이 때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땅을 얻게 하리라(내가 그 조상에게 주리라 한 땅을)

뼈를 깎는 아픔이 수반되는 도강 속에서 우리는 그 땅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2. 가져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입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하나님께서 이미 허락하신 땅이지만 그곳에는 원주민들이 이스라엘을 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한 대적들이 건너오는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기 위해 창과 칼을 갈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그들과 싸우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가져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곳에 선교본부인 서머나 교회를 세우시는 일에 쓰임을 받기 위하여, 그리고 선교지를 후원하기 위해서는 가져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강하고 담대한 마음입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놀라지 않는 마음입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곳 토론토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생각해보면 위축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저 무지막지한 북한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생각할 때, 갑갑합니다. 너 죽고 나 죽자 하고 전쟁이나 일으키려 하면 어쩌나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놀라지 말라 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하십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9절을 함께 읽어보십시다.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이런 하나님의 백성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 홈페이지에 오늘 황환영 집사님께서 올리신 글을 보니까 이미 추방명령을 받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집사님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간증이었습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이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놀라지 맙시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십시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서 함께 하십니다.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3. 지켜야 할 법이 있습니다.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모세가 명한 율법이 그들에게는 있었습니다.
십계명으로 요약되는 이 법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가 가장 힘써 지켜야 할 법은 무엇입니까? 사랑의 법입니다.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예수님을 닮아 가야 합니다. 우리 중 누구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목표에 도달하지는 못하였지만, 금년 한 해도 노력하였고 내년 한 해도 도달하기 위해 힘을 기울일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 일은 사랑이라 하였습니다. 이 사랑의 법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결단을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약속하신 줄 아십니까?
평탄한 길 형통한 길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요, 네가 형통하리라.



마무리하는 말

2003년이 밝아옵니다.
새 해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주님 앞에 소원하기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진지한 구도자로 서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기 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오는 한 해 동안, 구도의 길을 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기업에 들어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겐 건너가야 할 땅이 있습니다. 지금 서있는 곳은 비옥한 땅일 수는 있어도 사명인으로서의 우리에게는 불만족스런 땅입니다. 약속하신 그땅에 들어가기까지 우리는 안주하면 안됩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깊이 새기고 사랑의 법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사랑의 법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시고 평탄하고 형통함을 주실 것입니다.
복된 새해를 맞아 우리는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시는 한해가 되게 하소서

다함께 외우고 한 해를 시작하십시다.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송구영신예배(은혜로운 출발)/사26:1-7
2004-05-20 12:25:46   read : 186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가 불려지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한 성읍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성벽들과 보루들을 세우시리로다. 2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서 진리를 지키는 의로운 민족이 들어오게 하라. 3 주께서는 마음을 주께 의탁하는 사람을 완전한 화평 속에 지키시리니, 이는 그 사람이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4 너희는 주를 영원히 의뢰하라. 이는 주 여호와 안에 영원한 힘이 있음이라. 5 그는 높은 데 거하는 자들을 끌어내리시며 거만한 성읍을 낮추시어 땅까지 낮추시나니, 곧 흙에까지 끌어내리시는도다. 6 발이 그것을 짓밟으리니, 가난한 자의 발들과 궁핍한 자의 걸음걸이로다. 7 의인의 길이 정직함이여, 지극히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길에 균형을 이루시나이다.”아멘(킹-성경)

2004년 새해 첫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일들 여러분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들, 괴로웠던 것들, 이러저러한 일들로 인하여 아픔과 상처가 있었다면 이젠 다 있어버리세요, 마음을 새해와 더불어 새롭게 시작하십시다. 깨어지고 녹슬고 보기 흉한 놋쇠도 용광로에 들어가면 녹아서 불순물은 다 타버리고 깨끗한 쇠만 남게 되고, 좋은 새 그릇이 됩니다. 우리가 국가나 개인이나 깨어진 것들이 많았을지라도 모양새가 역겨운 것들이 있었을지라도 그와 같은 것들은 다 잊어버리고 깨끗한 정부 깨끗한 그릇으로 새롭게 되기를 기원하며 우리 또한 새마음으로 2004년을 출발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자매가 목사님을 찾아와 하소연했다.“목사님! 저는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기만 합니다.뭔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지만 작심삼일입니다.그래서 새해가 되었어도 새로운 계획 같은 것을 세우기조차 겁이 납니다” 목사님은 그의 말을 듣더니 창고에 가서 먼지가 뽀얗게 서려있는 낡은 소쿠리를 그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다.“자매님! 이유는 묻지 말고 소쿠리에 물을 담아오시기 바랍니다” 그 자매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소쿠리에 물을 담아보려고 했다.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소쿠리에는 물이 담기지 않았다.목사님은 결국 빈 소쿠리를 들고 온 그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비록 소쿠리에 물을 담지는 못했지만 그 안에 있던 먼지는 깨끗이 사라졌지요? 마음먹은 대로는 안 되어도 무언가 새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입니다” 새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새로운 결단으로 새롭게 시작하시되 주님과 함께 가는 출발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어느 어머니의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날 아들의 방을 무심코 들여다보던 어머니가 깜짝 놀랐다.이유는 저질스런 그림들과 사진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을 불러 호통을 치거나 그림들의 출처를 묻지 않았다.그 대신 다음날 벽 한복판에 독일이 낳은 유명한 화가 호프만의 ‘빌라도 궁전의 그리스도’ 성화를 조용히 걸어 두었다.하룻밤이 지난 후 어머니는 아들방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어보았다.그리고 거기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빽빽하게 걸려있던 저질스런 그림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오직 호프만의 성화만이 벽 한복판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성화가 악화를 구축했다는 이야기다.그렇습니다. 우리 시대는 저질시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정치 사회 경제 예술 문화 교육, 심지어는 사람까지도 저질시비의 도마에 오르곤 한다.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지만, 양화나 성화가 제 구실을 해낸다면 악화는 스스로 역사의 현장에서 퇴출당하게 된다. 이렇게 이 한 어머니의 지혜로운 진리의 몸짓은 작고 조용하지만 그 위력은 기필코 역사를 새롭게 할 것임을 보여준 것이다.

오늘 이사야 26:1-6절 말씀에서 새롭게 활력을 불어 주시는 말씀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구원의 은총을 입은 백성들의 기쁨과 환희의 노래가 여기에 있음을 말씀해 줍니다. 우리도 새해 첫 시간을 시간부터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었으면 이 얼마나 은혜가 되겠는가? 1절 말씀에서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수원 사람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북문 남문 수원 성 등 견고하게 지금까지도 성곽은 튼튼하게 서 있습니다. 본문에서 성읍이 견고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을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내가 너희들을 지켜 줄 때만이, 내가 너희들의 성이 되어 줄 때만이 너희의 생은 견고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리가 우리의 성을 쌓고 지키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의 불씨는 언제든지 있는 것입니다. 불행의 불씨가 있는 한 새해를 맞이한 새 아침의 의미는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불행의 불씨가 아닌 성령의 불 축복의 불이 여러분의 심령을 태우는 성스러운 역사로 바꿔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새해에는 믿음생활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가스난로를 처음에 켰을 때 불꽃이 아주 적습니다. 그러다가 불이 확 살아납니다. 문제는 그것입니다. 비록 나는 약하나, 믿음의 불꽃만 있다면 믿음생활의 변화는 시간문제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마 17:20 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좋으신 말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얼마나 신뢰하고 삽니까?

오늘 새해 첫 시간부터 못할 것 없습니다. 겨자씨만큼만 믿음이 있다면 되는 것입니다. 적은 불씨만큼만 있으면 산도 태산도 불태울 수 있는 능력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만 있으면 믿음생활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할렐루야! 다시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하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렇다면 이런 믿음을 가지고 새해를 출발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여러분! 아직도 시골은 나무를 짚여서 개나 돼지가 먹는 밥을 끓여주는 곳이 있습니다. 개밥을 끓여주기 위해는 처음에 작은 불씨로 나무에 불을 붙입니다. 작은 불꽃하나가 커져서 모닥불처럼 불이 커져서 각가지 음식도 끓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제부터 나같은 사람도 작은 불씨가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진다면 우리가 사는 마을도 이 사회도 우리 민족도 구원시킬 수 있는 능력 힘이 있구나.. 하고 믿음을 가지신다면 교회와 여러분의 가정도 자손들도 축복의 역사는 불 같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새해에 우리들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얼마든지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믿음 없다하지 말고 하면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쉽게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쉽게 시험에 들어서도 안됩니다. 시편 16:8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라고 하셨으며, 또 시 46:5에는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그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우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시면 됩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이 온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도우시는 새벽이 멀지 않는 것과 같이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비록 깜깜한 절망 중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지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드리시면 됩니다. 아멘.

이 사실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심지(心志)를 곧게 하면 됩니다(3절). 오늘 말씀 4절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우리가 영원히 의뢰할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인간 사이에서도 심지가 곧은 사람이 인정을 받습니다. 믿음의 심지가 곧은 사람을 하나님은 “평강에 평강으로 지켜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평강의 공식(公式)입니다. 그의 삶에 평강이 없는 것은 이 하나님의 공식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빌 4:6~8 말씀에서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도 하나님의 평강이 기도와 간구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평강의 원천(源泉)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두 번째 새해에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살아야 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생활을 절대 필요합니다. 이 면에 있어서도 우리는 또 한 차례의 믿음의 도약, 믿음의 전진이 필요합니다. 요 8:12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세상의 생명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지위(地位)와 관계없이 필연적으로 어둠 속에 싸여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인생을 죄와 적당하게 타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항상 그 얼굴에 그늘이 져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불씨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금방 태산이라도 불태워버릴 것만 같은 그 사람의 얼굴과 눈을 보면 힘이 있습니다. 소망이 넘쳐납니다. 눈에서 사랑이 넘칩니다. 친절이 넘칩니다. 말을 해도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처럼 자신 있게 말을 합니다.

요 1:1-5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여기서 빛을 받아드리고 빛 가운데 사는 자와 어두움 속에 죄악 속에 빠져 있는 자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고 했다. 빛 가운데 거하는 자들, 이 얼마나 축복인가? 사람이 사름으로 태어나서 깨닫고 산다는 것처럼 행복한 것은 없다. 진리를 깨닫고 사니 빛 가운데 사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믿고 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단순히 생명의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말씀을 믿고 따르면 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말씀했습니다. 양은 멀리 볼 수 없는 근시안(近視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 앞만 볼 뿐입니다. 그래도 양이 푸른 꼴을 먹고, 자기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양은 그 앞에 무엇이 있는 알 수도 없고 또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앞에서 인도하는 목자를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을 내 고집대로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힘들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무엇든지 할여고 드니까 힘든 것입니다. 그대로 믿고 따르시기만 하면 됩니다. 쉽습니다. 쉽게 믿으면서 복은 다 받습니다. 아멘.

여러분과 내가 온전히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도 쉽습니다. 적응을 못하고 있으니까 어렵지 적응만 하면 제일 쉬운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말씀과 기도입니다. 새해에는 더욱 말씀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운 것 같지만 겨자씨만한 믿음의 불씨가 내 안에 있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여러분의 그 작은 불씨가 순식간에 이 지역을 불태우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지역은 물론 이 민족은 살길이 열립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 해골 때와 같은 이 시대에 여러분이 작은 불씨가 되기만 한다면 이 민족을 순식간에 살리는 역사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또 하나는 기도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이 교회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믿음생활이 불이 붙는 역사 다시 기도의 불이 붙이시를 소원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소원하셨던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자들의 삶 속에 성령의 불이 붙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누가복음 12:4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여러분을 향한 예수님의 열망(熱望)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새해 첫 시간은 시작되었습니다. 올 한 해 새해에는 세속에 묻혀 살지 말고 깨어서 빛 가운데 행하시되 열심히 주님만을 따라 가십시다. 바울처럼 따라가십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2-14).” 또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 9:62).” 고 하셨고, 고후5:17 말씀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2004년 한 해를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새롭게 소망을 가지시고 달려가십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일들은 다 잊어버리세요 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잊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간 일들에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에 대하여 열려있는 삶을 살아야 하며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라나타!!!!!!!!!!!!!오직 예수 영광


송구영신예배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출3:1-12

2004-06-28 14:51:39   read : 162


다사다난 했던 2003년이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대망의 2004년도가 이제 우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전 세계가 이 시간을 의미 있게 맞이하고 있습니다. 시간이란 그것을 아름답게 사용하는 자들에게는 복되고 의미 있는 것이지만 무의미하게 보내는 자들에게는 그 시간들이 불행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2004년의 첫 시간을 맞이하면서 이 한 해가 의미 있고 귀한 시간이 되고자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고 이곳에 모였습니다. 이 자리가 2004년도 한 해를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복의 시작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시간들이 불행과 좌절의 시간이 아니라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건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영웅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는 것입니다. 모세의 지금 나이는 80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황혼의 인생입니다. 모세가 누구입니까? 모세는 이집트가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 억제 정책으로 남자아이들을 모두 죽이는 시대에 출생하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몰래 키웠지만 커져가는 울음소리를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서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버렸지만 하나님의 인도로 바로의 공주가 그 갈대상자를 발견하게 되고 모세는 바로의 궁에서 40년간 자라게 됩니다.


그는 궁에 들어가기 전까지 어머니에 의해서 양육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궁전에서 최고의 학문을 이수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는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야 했습니다. 그 때 나이가 40살 이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40년을 보냈습니다. 그에게서의 시간은 무의미했습니다. 지나온 80년의 시간들이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가 이드로의 양을 치고 있는데 호렙산에서 불이 타오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데 그 불은 신비한 불이었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은 붙었는데 나무가 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곳까지 달려가 그 광경을 보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모세는 깜짝 놀랍니다. “내가 여기있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모세를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로 사용하고자 했습니다.


그에게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선 그곳이 거룩한 땅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런 쓸모없이 한 생애를 마감해야 했던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구약 역사상 위대한 일을 감당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호렙산이 거룩한 땅이었듯이 오늘 우리는 2004년이라는 귀한 시간의 출발을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통해 이 자리에 있는 이 시간이 거룩하고, 2004년 한 해가 거룩하게 되고자 원합니다. 이 한 해가 모세가 하나님의 귀한 일을 감당했듯이 우리도 귀한 일을 감당하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1. 우리의 인생이 거룩합니다.

2004년이라는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함을 입은 존재입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구원의 은혜가 있습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구원이 없는 자들과는 비교도 안 될 의미 있고 값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존재임을 인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느 곳에 거하든지 우리는 항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존재라는 사실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한 인생은 곧 거룩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신앙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아름다우려면 우리의 아름다운 신앙이 존재해야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나의 인생은 거룩하게 됩니다. 모세를 부르시고 모세와 함께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부름 받은 모세의 40년이 거룩한 인생이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아 내려왔을 때에 그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이집트의 교만한 바로를 굴복시켰습니다. 홍해를 갈랐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거룩한 인생이었습니다. 2004년 한 해가 거룩한 인생으로 날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우리의 사명이 거룩합니다.

호렙산에서 부름 받은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바로의 궁전에서 있을 때 하려고 했던 이스라엘의 해방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이루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모세에게 맡겼습니다. 똑같은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한 것이지만 모세 스스로가 했을 때에는 그것이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부탁했을 때에는 그것이 곧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구원 받은 백성들의 공통적인 사명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급한 일은 없습니다. 이란이 지진으로 수만명이 매몰되었을 때 이란과 적대관계인 나라에서도 구조대와 구호물자를 보낸 것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해 죽어가는 수많은 우리 이웃에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구조대가 되어야 합니다. 가족과 친척과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영혼 구조대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거룩한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2004년 올 한 해는 직장에서 가정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원합니다.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 부지런히 예배에 참석하시기를 원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사명의 소중성을 인식하게 합니다. 예배는 믿음의 강한 힘을 가지게 합니다. 예배에는 말씀과 기도와 찬송이 있습니다. 올 한 해 말씀과 기도 찬송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을 살리는 복음전파의 사명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송구영신예배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출3:1-12
2004-05-20 12:27:15   read : 95


다사다난 했던 2003년이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대망의 2004년도가 이제 우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전 세계가 이 시간을 의미 있게 맞이하고 있습니다. 시간이란 그것을 아름답게 사용하는 자들에게는 복되고 의미 있는 것이지만 무의미하게 보내는 자들에게는 그 시간들이 불행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2004년의 첫 시간을 맞이하면서 이 한 해가 의미 있고 귀한 시간이 되고자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고 이곳에 모였습니다. 이 자리가 2004년도 한 해를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복의 시작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시간들이 불행과 좌절의 시간이 아니라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건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영웅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는 것입니다. 모세의 지금 나이는 80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황혼의 인생입니다. 모세가 누구입니까? 모세는 이집트가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 억제 정책으로 남자아이들을 모두 죽이는 시대에 출생하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몰래 키웠지만 커져가는 울음소리를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서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버렸지만 하나님의 인도로 바로의 공주가 그 갈대상자를 발견하게 되고 모세는 바로의 궁에서 40년간 자라게 됩니다.


그는 궁에 들어가기 전까지 어머니에 의해서 양육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궁전에서 최고의 학문을 이수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는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야 했습니다. 그 때 나이가 40살 이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40년을 보냈습니다. 그에게서의 시간은 무의미했습니다. 지나온 80년의 시간들이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가 이드로의 양을 치고 있는데 호렙산에서 불이 타오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데 그 불은 신비한 불이었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은 붙었는데 나무가 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곳까지 달려가 그 광경을 보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모세는 깜짝 놀랍니다. “내가 여기있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모세를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로 사용하고자 했습니다.


그에게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선 그곳이 거룩한 땅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런 쓸모없이 한 생애를 마감해야 했던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구약 역사상 위대한 일을 감당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호렙산이 거룩한 땅이었듯이 오늘 우리는 2004년이라는 귀한 시간의 출발을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통해 이 자리에 있는 이 시간이 거룩하고, 2004년 한 해가 거룩하게 되고자 원합니다. 이 한 해가 모세가 하나님의 귀한 일을 감당했듯이 우리도 귀한 일을 감당하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1. 우리의 인생이 거룩합니다.

2004년이라는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함을 입은 존재입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구원의 은혜가 있습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구원이 없는 자들과는 비교도 안 될 의미 있고 값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존재임을 인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느 곳에 거하든지 우리는 항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존재라는 사실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한 인생은 곧 거룩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신앙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아름다우려면 우리의 아름다운 신앙이 존재해야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나의 인생은 거룩하게 됩니다. 모세를 부르시고 모세와 함께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부름 받은 모세의 40년이 거룩한 인생이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아 내려왔을 때에 그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이집트의 교만한 바로를 굴복시켰습니다. 홍해를 갈랐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거룩한 인생이었습니다. 2004년 한 해가 거룩한 인생으로 날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우리의 사명이 거룩합니다.

호렙산에서 부름 받은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바로의 궁전에서 있을 때 하려고 했던 이스라엘의 해방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이루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모세에게 맡겼습니다. 똑같은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한 것이지만 모세 스스로가 했을 때에는 그것이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부탁했을 때에는 그것이 곧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구원 받은 백성들의 공통적인 사명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급한 일은 없습니다. 이란이 지진으로 수만명이 매몰되었을 때 이란과 적대관계인 나라에서도 구조대와 구호물자를 보낸 것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해 죽어가는 수많은 우리 이웃에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구조대가 되어야 합니다. 가족과 친척과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영혼 구조대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거룩한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2004년 올 한 해는 직장에서 가정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원합니다.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 부지런히 예배에 참석하시기를 원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사명의 소중성을 인식하게 합니다. 예배는 믿음의 강한 힘을 가지게 합니다. 예배에는 말씀과 기도와 찬송이 있습니다. 올 한 해 말씀과 기도 찬송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을 살리는 복음전파의 사명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송구영신예배는 우리나라에서만 드리는 건가요?
2004-01-06 16:12:50   read : 51



어디선가 송구영신예배가 한국에서만 드리는거라구 했는데..
정말 인가요?




인정
송구영신예배는 교회력의 절기는 아니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초창기부터 지켜 내려오는 전통적인 예배이다.
1887년 12월 31일 당시 서울에 있던 정동교회(새문안교회)와 베델 교회(정동 감리교회)가 연합하여 드린 것이 최초이다.

본래 송구영신예배는 감리교회의 예배로 웨슬리(John Wesley)에 의해 소개되었고 언약예배(Covenant Worship) 혹은 언약 갱신예배(Covenant Renewal Worship)라고 불려졌다.
후에 야성회(Watch Night Worship)으로 불려지기도 하였는데 지나간 1년을 뒤돌아 보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새로운 해를 위하여 하나님앞에서 언약을 세우는 순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장로교회의 전통에 없었던 이 예배가 1887년 처음 언더우드(Underwood) 선교사와 아펜젤러(Appenzeller)선교사에 의해 드려짐으로서 한국 장로교회에도 이 예배가 전파되어 지금은 한국 장로교회의 자연스런 예배로 자리잡았다. 웨슬리에 의해 소개된 예배순서는 대략--(1)경배 (2)감사 (3)고백 (4)언약 (5)침묵의 기도 (6) 축복--의 순서로 되어 있었는데

본 예배는 이러한 언약예배의 정신을 유지하면서 한국교회의 상황에 맞게 고안되었다.

김경진목사 (그루터기교회, 장신대 겸임교수)

다른 의견을 가지신 목사님도 있군요. 그러나 한국교회의 예배형식임을 인정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전영호
'송구영신'예배(?)

(이 글은 고신대학교 선교언어학과에 재학중인 황우섭 형제의 질문에 대한 이광호 목사님의 답신입니다)

황우섭 형제, 송구영신예배에 관한 질문을 하셨더군요. 오늘이 12월 31일이라 답변을 미룰 수 없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밤 자정에는 여러 교회들, 어쩌면 거의 모든 한국교회들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형제는 송구영신 예배라는 것을 드리는 것이 옳은지 저에게 질문하셨습니다. 결론부터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러한 형태의 예배는 전형적인 한국식의 예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기독교 역사 가운데 이런 식의 송구영신예배를 드린 적이 없으며 지금도 한국이외의 다른 지역의 교회들에서는 이러한 송구영신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사에서도 송구영신예배라는 것이 생긴 것은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게 된 것은 일종의 종교적 충성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더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면 그것이 곧 신앙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송구영신 예배란 한국 무속의 영향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 무속에서는 섣달 그믐날과 그 이튿날인 설날의 의미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지난해의 모든 묵은 것들을 버리고 새해의 새로운 삶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통종교에 얽매인 한국인들은 섣달 그믐이 되면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세우려 하는 것입니다. 섣달 그믐날 잠을 자지 않는 것은 무속신앙과 직결된 한국인의 신앙입니다. 그들은 한 밤중에 제사를 지내거나 옥황상제나 조왕신 등 신령들이 밤 열두시에 집안으로 내려온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집안에서는 연말에 집안을 특별히 깨끗이 청소하기도 하고 섣달 그믐날에는 온 집에 불을 밝혀 놓고 신령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우리의 민간 전통 가운데는 섣달 그믐날 잠을 자게 되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겁을 주며 잠을 못 자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이들은 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잠에 빠져드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그러면 부모들은 아이들 몰래 밀가루를 발라두고 눈썹이 세지 않았느냐고 놀리기도 하지요.

물론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낭만적인 이야기 거리가 되어버렸지만 이는 한국무속종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어린 아이들에게 조차 잠을 자서는 안된다고 강요할 만큼 이야기했던 것은 바로 그날 밤에 신령이 온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불 밝혀진 집안에서 신령을 맞게 되고 그날 소원을 빌면 일년 동안 운수가 좋으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 후략 -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