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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의 신학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설립자)
머리말
개혁주의 교회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Heidelberger Katechismus, Heidelberg Catechism)을 16세기 대표적인 신앙고백서로 인정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1563년 1월 19일 날짜로, 독일의 팔츠(Pfalz, Palatina) 영주(領主) 프이드리히 3세(Friedrich III, 1515-1576)의 주도 아래 작성되었다. 영주인 그가 신앙고백서의 주요 작성자가 되는 것은 아우구스부르크 평화협정(1555) 이후 신성로마제국에서 “통치자의 종교가 그 지역의 종교”(cuis regio, eius religio)라는 관례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요리문답 작성의 중요한 목적이란 무엇보다도 독일 내에서 로마 천주교에 대항하여 일어난 개신교 그룹인 루터교 신앙과 개혁신앙이 공존하는 가운데서 이견(異見) 조정을 위한 철저한 '성경적인 요리문답'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팔츠 주 교회들은 1563년 이 신앙고백서를 채택할 때부터 129개 문답을 52주 분(分)으로 나누어 설교하였다. 이 요리문답은 52주일로 나누어져서, 교회에서 매 주일마다 한 주일분씩 설교되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1563년 1월 19일에 독일 남부도시 하이델베르크에서 개혁주의 교회 총회를 통과하자, 제일 먼저 개혁신앙이 널리 퍼져있던 네델란드 교회가 표준문서로 채택하였다. 베젤 (Wesel, 1568), 엠덴 (Emden, 1571), 도르트 (Dort, 1578), 해이그 (Hague, 1586)지역에서 받아들였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다시 국제적인 개혁주의 모임으로 확대된 도르트 총회 (Dortrechtsynode, 1618-9)에서 벨기에 신앙고백서와 도르트 신경을 포함하여 3대 표준문서로 채택되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오늘날 네덜란드 개혁교회와 유럽의 극소수 개혁교회 그리고 미국 개혁교회, 남아프리카 개혁교회, 한국의 개혁교회에서 고백하고 가르치는 신앙고백서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요리문답과 함께 대표적인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이다. 그리하여 전 세계 개혁교회 신자들이 배우는 개혁교회의 공식 첫 신조요 신앙고백서가 되었다.1)
2013년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독일 남부 팔츠 지역의 개혁신앙의 신앙고백서로 채택된지 450주년을 맞이하는 기념비적인 해다. 오늘날 유럽의 개혁교회들과 미국을 포함하는 북미주 전지역의 개혁교회가 450주년 기념행사를 하면서, 이 문서에 의존하여 설교하고 신앙교육을 하고 있는 이유는 “기독교 교리의 모범교안으로서 가장 뛰어난 문서”2)이기 때문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이러한 개혁주의 신앙의 대표적인 신앙고백서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신학을 조명하고자 하는 데 있다.
1. 아래서 출발하는 실존적 신학적 사고
1) 인간의 비참함에서 출발
제네바 신앙고백(1542)은 위에서 출발하는 것과는 달리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은 아래에서 출발하고 있다. 제네바 신앙고백이 하나님 아는 지식과 하나님 예배와 그에게 영광 돌리는 것에서 출발한다.3) 이에 반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문답은 인간의 위안과 비참함에서 출발하고 있다: “[제1문] 사나 죽으나 유일한 위안이 무엇입니까? [답] 사나 죽으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몸과 영혼이 모두 미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주께서 보배로운 피로 나의 모든 죄값을 치러주셨고 마귀의 권세로부터 나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또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고는 나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듯이 주는 나를 지켜주십니다. 실로,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룹니다. 내가 주의 것이기에 주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시고 나의 온 마음을 다하여 기꺼이 주를 위하여 살게 하십니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위안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1647)에서 "사람의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제시하면서 인간의 본질적인 자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 이에 반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인간의 궁극적인 비참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인간의 전적 타락과 부패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은 아래에서 출발하는 방식이다.
2) 인간 위안의 길을 제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제2문답은 다음과 같다: “[제2문] 이러한 위안 가운데 복되게 죽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알아야 합니까? [답] 세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로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이요, 둘째로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하는 것이요, 셋째로 그 구원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안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그 자체가 무슨 위안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경각심을 주기 때문이다. 첫째. 비참한 처지에 대한 지식이 우리 속에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16세기의 비참함이란 전쟁과 박해와 자연의 재해와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 등 죽음과 관련된 역사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4) 둘째.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 할 수 있다. 우리가 벗어난 처지가 처절하고 악하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구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생길 수 없다. 감사로 행하는 것이라면 인간의 공로를 주장하거나 자랑할 수 없는 것이다. 세째. 우리의 죄악성과 비참함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복음을 들어도 전혀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확고한 위로는 육신적인 안일함으로는 얻을 수 없다.
3) 비참함을 아는 길은 율법을 통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문답은 다음과 같다: “[제3문] 그대의 비참함을 어디에서 압니까? [답] 하나님의 율법에서 압니다.”“ "비참"이라는 용어는 죄책(罪責)과 형벌의 악을 포함하기 때문에 "죄"라는 용어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죄책의 악이란 모든 죄요, 형벌의 악이란 모든 괴로움과 고통과 우리의 이성적 본성의 파괴이며 또한 형벌로서 후에 발생하는 모든 죄를 뜻한다. 사람의 비참함이란 타락 이후의 사람의 처절한 상태로서 두가지 큰 악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인간 본성이 부패하고 죄악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것이며. 둘째, 이 부패성으로 인하여 인류가 영원한 정죄 아래 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거부되어 마땅한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의 비참함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율법에서부터 얻어진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26).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나 영국의 청교도 존 번연의 천로역정 같이 인간이 자신의 비참함을 인식하여 구원의 길을 찾고 하나님을 인식하며 구원을 받게 되는 실제적인 과정을 따라 문답을 엮어가고 있다.
2. 로마 천주교의 제도적 신앙(화체설과 미사), 중세기적 만족설 극복
1) 천주교의 화체설 거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천주교 신부가 제정하는 포도주가 실재로 예수의 몸과 예수의 피로 변한다고 하는 천주교의 화체설(the doctrine of transubstantiation)을 거부하는 점에서 종교개혁 교회의 신앙을 천명하였다([제78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천주교가 주장하는 화체설을 거부한다. 집례 신부가 제정 기도를 올릴 때 성찬의 요소인 떡과 포도주에 형이상학적 변화가 일어나 그 실체가 더 이상 일상의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는 것이다. 실체(substance)가 변화한다는 것이다.5) 신부가 제정할 때 떡이 예수의 몸으로 변하고, 포도주가 예수의 피로 변한다는 천주교의 주장은 중세적 미신의 요소를 반영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물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요 담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6)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주님께서 떡을 주시면서 이것은 “나의 몸”이라고 하시고,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은 “나의 피”라고 말씀하신 신학적 이유를 질문하고 해설한다[제79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찬식에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실제 몸와 피에 참여하는 것의 표가 되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순종이 우리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시간적 거리를 넘어서 현재화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2) 천주교 미사 거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는 로마 천주교의 미사제도를 "우상숭배"라고 선언한 [제80항목]이 초판과 재판과 다르게 제시되고 있음이 큰 특징이다. 즉 초판에서는 빠져 있고, 재판에서는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반면 3판에서는 그 전체 내용이 제시되고 있다. 이것은 1563년 12월 4일 트랜트 종교회의(Council of Trent, 1545년-1563년) 끝난 후에 로마 교회의 "저주문"에 대한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강력한 저항을 표명한 것이다. 바로 이 내용으로 인해서 프레드리히 3세는 더 많은 어려움에 처했다. 이러한 역사적인 상황을 고려하면서 더욱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제80문답]. 첫째, 주의 성찬은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단번에 십자가에서 이루신 유일한 제사로 말미암아 모든 죄가 값없이 사해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증언해 준다(고전11:24-26 히9:26 10:10,12,14). 그러나 천주교 미사는 그리스도께서 사제들에 의해서 날마다 제물로 드려지지 않으면 산 자와 죽은 자가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얻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미사란 인간이 거행하는 희생이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은 거부했다. 둘째, 주의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아버지의 우편에 계시어 우리에게 경배를 받으시는 분이심을 가르친다. 그러나 미사는 떡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예배할 것으로 가르친다. 이런 예배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우상숭배다.8) 떡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예배한다는 것은 예배 시에 우리의 영혼과 정신과 생각과 몸의 움직임과 동작 등 모든 것을 떡 있는 곳에 집중시킨다. 이것은 예수의 몸과 피가 지금 떡과 포도주 안에 있다는 존재론적이고 범신론적 성향을 보여준다.9) 이는 비성경적이며 잘못된 것이다. 요리문답은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천명한다. 그리스도는 말씀의 선포 속에서 떡과 포도주를 통해서 임재하신다. 말씀과 성례의 영적 연결과 통일성이 중요하다.10)
3) 중세교회적 만족설 극복
안셀름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그의 신성에게 만족을 위한 제물을 드린 것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중보직은 오직 그리스도의 인성과만 관계한다고 보았지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리스도의 두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을 모두 언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제 37문답, .제 40문답).
안셀름은 그의 저서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나』(Cur Deus homo?)에서 “저 신인은 자신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드리셨다. 다시 말하면 그의 인간성은 그의 신성에게 드린 제물이다.”11) 스웨덴의 교의학교수 아울렌(Gustaf Aulen)은 그의 고전적인 저서 『승리자 그리스도 』(Christus Victor)에서 다음같이 해석한다.
중세 캔터버리 주교 “안셀름의 기본 가정은 죄를 보상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만족 행위는 사람이 행해야 된다는 것이다...그런데 사람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필요한 만족 행위를 치룰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이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맞은 편의 죄 있는 자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만족 행위는 사람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 유일한 해결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는 것이다. 이것이 ‘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12)
이러한 안셀름의 만족 사상은 중세의 고해(告解, penance)라는 체계를 거쳐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는 “인간 편에서, 아래로부터 하나님께 바친 제물” 사상이다. 인간이 죄를 범해 훼손한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자신을 제물로 드려 하나님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시켰다.13) 안셀름은 비록 만족(die satisfactio, Genugtuung)사상으로 이레네우스 등 교수들이 사상 악마에게 속량의 대가를 지불했다는 이원론 사상을 극복한 것은 큰 공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만족설은 하나님이 구속행위의 주체요 대상이라는 사실을 밝혔음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세적 고해사상, 즉 죄를 속하기 위하여 고행한다는 고해사상이 깔려 있었다. 고해사상에는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어 그의 진노(震怒)를 유화(宥和)시키려는 인간의 공로 사상(the thought of work)이 들어 있다. 이를 완전히 제거한 것이 루터와 칼빈으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자들의 형벌대리설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구원론 유형은 안셀무스(Anselmus)의 만족설에 기초하고 있으면서 이것이 중세 봉건사회의 가톨릭적 만족론 안에 머물지 않고 종교개혁적 신학을 통한 형벌대속론으로 진일보했다14) 요리문답은 안셀름의 만족론보다는 루터와 칼빈의 대속적 형벌론을 분명히 반영한다.15)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기독론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현재적 사역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강조하는 등 포괄적으로 다루었다(제31문답).
3. 개신교 신앙의 정체성 천명: 언약 사상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교황주의의 제도적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앙을 제시하였다. 본 요리문답은 성경적인 구원의 전체 역사와 구조를 밝히 보여주는 언약신학에 기초하고 있다. 언약신학은 이레니우스와 어거스틴이 구조적으로 정립하여 놓은 것을 종교개혁 이후로 개혁신학자들에 의하여 재정립 되었다. 16세기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츠빙글리(Ulrich Zwingli)와 불링거(Heinrich Bullinger)가 재세례파에 반대하면서 언약사상을 발전시켰다.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는 이들에게서 영향을 받아 독일 하이델베르크 신학부에서 가장 탁월한 언약사상의 기틀을 마련했다.
우르시누스가 작성한 『신학총론』(Summa Theologia)에서 우르시누스가 명시적으로 ‘언약’을 언급한 내용을 인용하며 우르시누스의 전 교리체계에는 은혜언약의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 올레비아누스도 은혜언약을 넓은 의미에서 해석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일방적인 화해만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쌍무적인 다짐으로 이해하였다.16) 또한 올레비아누스는 “그리스도 안에서 똑같은 칭의의 은혜가 공통적으로 동일하게 옛 언약과 새 언약에 들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올레비아누스에게 있어서 언약은 단 하나 뿐이며, 영원한 은혜의 언약”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는 성례인 성찬과 세례와 관련하여 “옛 언약”(제74답), “새 언약” 3번(제68문, 제77답, 제79문), “하나님의 언약” 2번(제74문, 제82답), “언약”(제74답) 용어들이 나온다. “거룩한 세례와 성찬”은 새 언약의 표다(제68문답). “옛 언약에서는 할례로 행해졌으며, 새 언약에서는 할례 대신 세례가 제정되었다”(제74문답).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을 의미한다(제77문답) “그리스도께서는 떡을 당신의 몸이라고 하시고 잔을 당신의 피 혹은 새 언약의 피라고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께서는 떡과 포도주가 이 세상 생활에서 우리를 유지시키는 것처럼, 당신의 몸과 흘리신 피가 영생을 위해 주어지는 우리 영혼을 위한 참된 양식과 음료가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원하셨다는 것”이다(제79문답). “신앙 고백과 그들의 생활에서 불신앙과 불경건을 드러내는 자들도 이 성찬에 참여시킬 수” 없는 것은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언약이 더럽혀 지고, 하나님의 진노가 전체 성도에게 불붙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제 82문답).
구약 율법의 언약이 옛 언약이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살과 피를 희생제물로 드림으로 세워진 신약 복음의 언약은 새 언약이다. 예수를 믿고 유아들이나 성인들이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함은 새 언약에 참가하는 인간편의 순종과 의무를 나타내는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은혜 언약으로 일방적으로(unilateral) 선택한 사람들을 위하여 세우신 언약에 쌍무적으로(bilateral) 응답하는 의식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공동저자인 두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신학을 언약신학의 기초 위에서 전개하고 있다. 올레비아누스는 “은혜 언약(foedus gratiae),” “자연 언약(foedus naturale) ,” “창조 언약(foedus creationis),” “행위 언약” 등을, 우르시누스도 “은혜 언약” 등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칼빈이 사용한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unio mystica)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언약의 온전한 실현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76문답에는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거룩한 몸에 더욱 더 연합하게 된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역사적으로 갖는 의미란 “무엇이 옳은가 하는 혼란, 교리에 따라 목숨이 교차하는 혼란 속에서 언약 사상을 이해하게 되면서 구원의 확신과 삶에 대한 사명감, 교회에 대한 이해를 명료하게 한 것이다. 언약 사상은 역사적으로 스코틀랜드의 엄숙 동맹,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청교도, 뉴잉글랜드 등에 영향을 주었다.17) 언약 사상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 더욱 확실히 되었다.18)
4. 루터주의의 율법 폐기론적 경향에 대하여 율법의 복음적 성격을 강조.
1) 루터파의 반대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에게 가장 어려움을 준 자들은 다름 아니라 루터파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개혁신앙의 독특한 역사적인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즉 정통 루터파에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성격이 루터교 신앙과는 다른 츠빙글리적, 또는 칼빈주의적 신앙에 입각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리하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프레드리히 3세의 별세 후 선제후가 된 장남인 "루이 6세"(루터주의자)에 의해서 큰 수난을 당하게 된다. 즉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작성한 자들을 추방하고 또한 요리문답의 배포금지와 불태움을 입는 수난을 맞이하게 되었다. 올리비아누스는 목회직과 신학부에서 해임당하게 되어 배레부르그(Berleburg)로 가게되어 1584년에 헤르보른(Herborn)에서 그의 거처를 마련하게 된다.19) 그리고 미사제도를 우상숭배라고 정죄한 [제 80문] 때문에 로마 천주교로부 터 많은 공격을 받았다.
이런 신조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왜 역사적 개혁교회가 루터주의자들과 함께 할 수 없는지를 알게 된다. 즉 루터주의도 결국에는 개혁신앙과 교리적인 핵심 부분에서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성찬이해에 있어서 개혁파의 영적 임재설은 루터파의 실재임재(real presence)설과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역사적으로 로마 천주교와 정통 루터파에게 이단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개혁파 신앙이 비(非)개혁신앙과 얼마나 다른 신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2) 율법에 대한 복음적 용법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계명의 의미를 복음적으로 잘 해설하고 있다. 루터교가 칭의를 강조하면서 율법 준수에 대하여 강조하지 않아 율법폐기주의로 나간다는 비난을 받은 데 반하여 개혁교회는 율법의 복음적 용법을 강조하고 있다. 요리문답은 [제114항]과 [제115항]에서 십계명은 인간이 온전히 지킬 수 없는 것임을 가르친다. 그러나 율법폐기론을 가르치지 않고 율법의 새로운 용법, 신자의 성화를 위한 용도를 가르친다“[제114문답] .
십계명은 신자로 하여금 죄악된 성품을 더 많이 인식하도록 하여 그리스도의 좌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구하도록 하는 순기능을 한다. 그리고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음을 알고 성령의 은혜를 구하도록 한다. 그리고 날마다 성화를 이루어 이 생이 마칠 때 완전함에 이르도록 한다. 개혁주의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완전주의를 추구하지 않고 날마다 새롭게되는 점진적 성화론을 천명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4계명 해설(문 103)에서 예배일을 지켜 주일에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성례에 참여하고, 공적으로 주님께 기도하고 구제를 베풀 동기를 찾는다. 안식일 계명에서 매일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것은 악한 행실에서 벗어나 내 인생의 모든 날을 즐기고 현생에서 영원한 안식을 시작한다는 현생의 의미를 바르게 제시하고 있다.20)
5. “칼빈주의적 바깥”(Extra Calvinisticum) 사상
1) 루터교의 “그리스도 신성의 낮아지심” 교리에 대하여 “칼빈주의적 바깥”(Extra Calvinisticum): 그리스도 신성의 초월 강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리스도의 신성의 이해에 있어서 개혁주의 전통에 서 있다.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인성으로는 더 이상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성령으로는 잠시도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제47답). ‘칼빈주의적 바깥’(Extra Calvinisticum)은 하나님의 영원한 성자께서 성육신하신 후에도 인간 본성과 연합하여 한 인격을 이루었으나 그의 로고스는 여전히 육체에 제한되지 않았다는 교리를 말한다. 라틴어 식으로 표현하면 그리스도의 신성은 “여전히 육체 밖에”(etiam extra carnem) 계신다. 즉 성육신하신 이후에도 그리스도의 신성은 여전히 육체 안에만 제한적으로 있지 않고 천상에서 성부와 함께 다스리신 분이다.21)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후에도 신성은 신성이고 인성은 인성이다. 신성에 속한 성질과 인성에 속한 성질이 혼합되거나 합하여 제 3의 성질을 구성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은 그의 인성 한계 내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인성 바깥에서도(extra humanum)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22)
“칼빈주의적 바깥(Extra Calvinisticum)”란 용어는 루터주의자들이 이러한 “육 바깥”(extra carnem)을 주장하는 칼빈주의자들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붙인 용어다. 이 용어는 칼빈주의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성자의 존재가 ‘속성의 교류’(communicatio idiomatum) 교리를 주장하는 루터파 신학자들 때문에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들의 기독론의 정체성을 확인한 용어이었다.23) 루터교 신학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낮아지심(Kondeszendenz, Abstieg)에서 출발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칼빈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의 초월(Transzendenz der Göttlichkeit Christi)을 강조하였다.24) “신성은 인성을 무시하지 않고 제한없이 어디에나 임재하기 때문에, 그것이 취한 바 인성과의 관계를 초월하여 있으며, 동시에 언제든지 그 인성에 임재하지 않고, 그 인성에 결합하여 있다.”25) 로고스가 육에 들어와도 로고스는 육의 바깥에 머물고(logos extra carnem), 육은 로고스의 바깥에 머문다(caro extra logon). 육과 거리를 두는 칼빈주의적 정열은 유한은 무한을 포섭할 수 없다( finitum non capapx infiniti)는 공식으로 표현된다.26)
2) 영적 임재설 안에 루터의 편재(ubiquity)설을 수용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루터교 성찬론과는 다른 개혁주의 성찬론을 제시한다. 루터교는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그 속성(인성과 신성)의 교류(communicatio idomatum)를 통하여 한 분 인격 그리스도를 이루심으로써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몸은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영과 함께 편재하신다고 본다. 그리하여 루터교는 그리스도가 성찬에 몸으로 실재 임재하신다고 믿는다. 루터교 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속하는 그의 몸과 피가 신성과 같이 온 세상 어디에나 편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루터의 실재 임재(real presence), 즉 공재설이다. 루터교에서는 실재 임재 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신자들이 믿음으로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먹고 즐긴다는 “입으로 먹음”(manducatio oralis, da Essen mit dem Munde),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이 수찬자의 믿음과는 독립적으로 현존하기 때문에 성찬 비자격자들은 성찬의 떡과 포도주를 소모해버린다는 “비자격자들의 먹음”(manducatio indignosum, das Essen der Unwürdigenen)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었다.27)
이에 대하여 개혁주의 교회는 유한은 무한을 포용할 수 없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몸으로는 하늘에 계시면서 성찬에는 영으로 임재하신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영적 임재(spiritual presence)론이요,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있다는 의미에서 “칼빈주의적 바깥”(extra-calvinisticum)교리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러나 영적 임재설 안에서 루터교 성찬론의 공재설을 수용하고자 하였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기독론은 그리스도 신성의 초월성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이 그의 인성 가운데 신체적으로 현존한다고 주장한 루터교 기독론의 편재설과는 차이를 분명히 했다(제47문답.제48문답)
루터교는 속성의 교류(communicatio idiomatum)를 주장함으써 그리스도 인성의 편재설을 주장하였다. 속성의 교류란 한 쪽의 속성이 다른 쪽의 속성에서도 타당성을 갖는다(quae sunt hominis, recte de Deo et contra, quae Dei sunt, de homine dicantur)는 주장이다. 신성과 인성의 속성은 각각 상호 교류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은 구별되나 분리되지는 않는다. 인성과 신성은 한 인격 안에서 교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인격은 두 인격이 아니라 한 인격이다. 그리스도가 한 장소에 신성과 인성의 인격으로 같이 있을 수 없다면 다른 장소에 인성이 배제된 인격으로 계신다면 그것은 부족한 그리스도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의 인성도 함께 해야한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관하여 형이상학적으로 논하는 통일(Einheit)이 아니라 중보자의 인격과 사역의 통일 안에서 인간을 위하시는 하나님과 아들의 인격적인 통일을 말한다.
그리하여 루터교는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영화된 몸의 실체적 임재가 가능하다고 본다. 루터교의 일치신조(Konkordienzformel)는 인격의 통일, 속성의 교류, 그리고 그리스도의 인성이 편재하는 신적 속성에 참여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신적 본성에 속하는 일부 속성(전지, 전능, 편재)이 그의 인간적 본성에 전달되어서, 그리스도는 그가 임재하시기로 약속하신 거기에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인격으로 임재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으로는 공간에 매이시지만 신성으로는 성부 하나님처럼 공간에 매이지 않는다(제48문).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영적으로 임재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하늘에 계시나 그리스도의 몸은 성령을 통하여 성찬의 떡과 포도주에 임재하신다. 그러므로 인성과 신성은 분리되지 않고 한 인격 안에 통일된다. 이런 면에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루터파의 편재설을 수용하고 있다.
먼저 루터교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예수의 신성의 속성들을 공유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편재, 전능, 전지와 같은 속성들을 가지셨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루터파는 속성의 교류(communicatio idiomatum) 교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편재를 받아들였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그리스도의 신성이 편재(ubiquity, Allgegenwart)하는 방식으로 주어진다는 것이다.28) 그리스도는 인성에 의해서도 성찬 중에 임재한다고 보았다. 루터파에 의하면 유한은 무한을 포섭한다(finitum capax infiniti).29) 그래서 그리스도의 인성이 편재, 전능, 전지의 속성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다.
이에 반하여 칼빈주의자들은 루터파가 속성의 교류 교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라는 두 본성 교리를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이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칼빈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루터파가 주장하는 그리스도 인성의 "편재설"을 수용한다(제48문답).
여기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칼빈주의적 바깥”형식을 취하면서도 그리스도께서 루터파적인 편재설이 주장하는 그의 인성 안에서 계신다고 천명하고 있다.
3) 영적 임재의 영성 루터교의 기독론 이해(편재설)는 성만찬론에 있어서 예수께서 떡에 신체적으로 현존한다는 공재설을 주장하는 근본적인 기초가 되었다. 루터주의자들은 신적 속성은 예수의 인성으로 전달되는 빵과 포도주의 각 요소 "안에, 그것과 함께, 그것 아래"에 그리스도께서 "신체적으로 현존"하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영적 임재설로써 성찬의 의미를 성령의 사역을 통한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표(票)요 대속의 확인으로 해석하였다[제 79문답].
칼빈주의는 이것을 "신비적인 연합"(mysterious union)이라고 칭한다. 개혁신학은 성례란 신적 은혜언약의 날인(捺印)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날인은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공동체에 제공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신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의무실행과 은혜언약으로 들어갈 것을 권면한다.3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영적 임재설을 통하여 칼빈주의의 우리 밖에(extra nos)와 루터교의 우리 안에(in nos), 우리를 향하여(pro novis)를 종합하고 있다.33)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만찬 이해에 있어서 개신교 신자들의 온건한 조화를 위해서 멜랑히턴주의자들, 츠빙글리파, 칼빈주의자들이 “공통으로 인정하는 부분을 개발하여 능숙하게 정리하였다.”34)
6.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과의 차이: 개인적이며, 넓은 연합 정신과 포용성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은 복음의 선포와 성례 안에서 그 기능을 발휘하는 ‘교회의 문서’로 애초부터 작성되었다. 이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는 스콜라적 방법론에 의해서 작성된 체계적이고 순수히 학적이기만 한 문서가 아니라 교회의 신앙고백적인 성격을 가진 하나님의 지식을 담고 있는 문서”35)라는 것을 나타낸다. 당시 로마 천주교의 교황주의 신앙으로부터 개신교 신앙의 일치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각 교파의 특수성보다는 공통성을 고백한 점에서 복음주의적 에큐메니칼 정신을 함유하고 있는 신앙고백서이다. 이 신앙고백서는 개신교 신앙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보다 개신교 신앙의 넓은 연합 정신과 포용성을 보여주고 있다.
1) 포용성과 관용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포용성과 연합정신을 지닌다면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정체성과 편협주의에 갇혀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특징으로 신앙투쟁과 신앙수호적 고백서라기보다는 신앙일치적 고백, 교회일치적 정신이 배어 있는 신앙고백, 공교회성의 정신을 구현한 신앙고백, 종교개혁과 관용의 정신을 보여 주는 신앙고백 등으로 말해질 수 있다. 개혁신앙이라고 하면 투쟁적인 면이 부각되었는데 실은 신앙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도 온화하고 포용적이고 포괄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드러낸다.
이 포용성은 신앙고백의 표현이 시적이고 문학적으로 세련되어 표현한다는 점에도 나타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간결하고 압축해서 표현하는데 장점이 있다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매우 시적이고 아름답고 단어들도 쉽게 서술되어 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교리임에도 불구하고 읽어보시면 교리가 아니라 마치 은혜로운 경건서적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하면 부분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대답은 지극히 대략적이다(제11문답). 이에 반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섭리에 관하여 보다 구체적이고 우리의 삶과 관련시켜 설명해주고 있다(제27문답).
2) 개인적이고 실존주의적 고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또 다른 특성은 개인적이고 신앙고백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요리문답을 통해서 학습자들이 이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고백할 수 있도록 의도하였다(제60문답). 이에 반하여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칭의에 대하여 일반적인 교리를 사실적으로만 설명하는데 그치고 있다(제33문답).
3) 삶의 위안(慰安) 강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우리가 위안받는 것에 대해서 주로 가르치고 있다. 인간측면에서 교리를 서술해 가는 측면이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전체 구조는 ‘비참-구원-감사’의 삼중 구조이다(제1문답, 제52문답). “1문: 생사간의 당신의 유일한 위안은 무엇입니까? 답: 생사간에 나의 유일한 위안은 내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사나 죽으나, 나의 몸도 영혼도 오직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다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인간 실존의 비참을 먼저 언급한 것은 송영으로 시작하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과는 다른 방식이다.36)
이와는 반대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하나님 영광과 하나님을 즐거워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제1문: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답: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 2문 하나님이 주신 규칙(성경), 제3문 성경이 주로 가르치는 것, 제4문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진행한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에 서 출발하여 하나님, 하나님의 작정, 창조, 섭리, 인간의 타락 등에 관하여 하나님 중심적으로 교리를 서술해 간다. 제1장 성경에 대하여, 제2장 하나님과 거룩한 삼위일체에 대하여, 제3장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대하여, 제4장 창조에 대하여, 제5장 섭리에 대하여, 제6장 인간의 타락, 죄, 그리고 그 형벌에 대하여 등에 대하여 서술하고 구원론에 있어서 제17장 성도의 견인에 대하여, 제18장 은혜와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특성에 대해서 프린스턴의 정통신학자 워필드(B. B. Warfield)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 비해 사람 중심적이고 주관적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말하는 인생의 위안이란 그러한 내 마음의 평안이나 만족만을 위하고자 하는 그런 인간적인 위안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성경적인 위안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영적 위안이다. 우리가 심령의 위안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그리고 심령의 위안과 은혜를 통해 우리의 영혼이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 중심적인 면에서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과 거의 다르지 않다.
4) 율법을 감사의 규범으로 이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율법을 감사의 규범으로 제시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칭의론, 구원론을 다룬 후에 십계명을 다룸으로써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쳐준다. 즉 율법을 구원받은 자의 감사의 삶의 규범으로 제시한다(제 86문답).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율법주의 경향성에 대하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신앙의 위로성을 강조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율법을 죄를 깨닫게 하고 정죄 아래 있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측면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이는 삶의 규범으로서의 율법 이해로서 율법주의 경향 (율법의 몽학선생 경향)이 있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5) 연합과 일치 강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은 예정이나 성만찬 이해에 있어서 다양성을 인정하였다. 그리하여 루터교가 이를 받아들였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16세기 개신교 차원의 에큐메니칼 신앙고백이었다고 볼 수 있다. 55년 후에 선언된 17세기 도르트신조(1618)은 예정론을 강조함으로써 복음주의적 알미니안주의까지 정죄해 버리는 종파주의의 한계성에 이르렀다. 당시에는 신앙의 정체성을 위하여 예정론 논쟁이 필요했다고 본다.37) 29년 후 채택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및 대소요리문답(1647)은 제 3장에 예정론 때문에 18세기 영국의 부흥운동의 복음주의자 휫필드와 웨슬리 사이에 논쟁(1739)이 벌어져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결별이 있었다.38) 그러나 기독교 이후시대에 이른 오늘날 예정론 자체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아니다. 우르시누스의 요리문답 해설에서는 예정론이 강하게 나타나 있지만39)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자체에는 예정론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다. 제한 속죄 교리나 유기교리는 논쟁의 불씨가 되기 때문에 넣지 않았다.40) “이것은 당시의 다양한 신학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신앙일치적 정신이 요리문답에 반영된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소요리문답보다 프로테스탄트 진영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는데, 그 이유는 프로테스탄트들 간의 논쟁점(성찬론, 예정론 등)들을 생략하거나 간략하게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만든 프리드리히 3세는 자신의 연방 안에 있는 쯔빙글리파와 칼빈파 필립파(멜랑히톤)가 서로 싸우기를 원치 아니했기 때문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통일된 신앙교리인 요리문답을 만들기를 원했고41), 그래서 일부로 논쟁점이 되는 부분은 간략하게 다루거나 생략하였다. 예정론은 공교회의 소속의 예정으로 축소하였고42), 성찬론도 루터교의 편재(ubiquity)설을 수용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정신은 루터의 친밀성과 멜랑히톤의 자애로움과 칼빈의 열정을 연관시킨 것”43)이라는 최초의 성경적 개신교적 에큐메니칼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44)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그런 면에서 보다 개혁파 신학(칼빈주의)에 기초해서 변증적으로 서술해간다. 그래서 다른 프로테스탄트 종파(성결교와 감리교 등)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예정론이나 성찬론에 있어서 제한적 입장을 강조함으로써 교단의 정체성은 강조되었으나 개신교에 있어서 분파주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 교회의 분파주의가 한국 교회에서도 이어져 극단한 분파주의가 오늘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지니고 있는 장로교의 현실이다.
맺음말 첫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경 진리를 쉽게 일목요연하게 체계적으로 요약한 교리서다. 진리의 빛과 터전으로서 신앙고백서에 대한 바른 연구와 교육이 요청된다. 개혁교회는 2천년 역사를 통해서 숫한 이단 사설들과 투쟁하면서 바른 진리를 지켜왔다. 포스트모던 시대 교회 는 실용주의와 편파주의, 인본주의,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복음의 정신이 약화되고 값싼 축복과 위로가 만연하게 되었다. 현대에 와서 개혁교회의 본질적 기능들이 점점 상실돼가고 있다. 오늘날 번영주의 복음이 자기구원과 행복에 안주하는 번영주의와 개인주의와 행복주의에 사로 잡혀 있는데 반해서 오히려 사이비 이단들이 적극적으로 포교에 앞장서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심히 우려할만한 상황이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는 개혁교회가 역사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신앙의 진리를 지킨 신자들의 정신과 교리를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한국교회가 바른 진리와 교리의 반석 위에 서도록 하기 위하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포스트모던 감성적 시대에서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에게 바른 신앙교육을 제시해준다. 세속적 가치가 오늘날 젊은 세대를 지배한다. 대학생이 된 이들을 영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하여 요란한 형태의 음악과 율동, 소란한 기도와 이른바 극적인 말씀이 그들을 자극하고 주도한다. 오늘날 세속의 풍조에 영합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복음의 설교로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기보다는 인간의 감정이 주도권을 잡도록 유도하는 부흥 운동 특유의 바람이 지배적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젊은이들은 외적으로 요란한 프로그램 위주의 신앙생활이나 또는 신비주의적인 사설(邪說)에 빠질 위험을 안고 있다. 요리문답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가 믿어야할 확실한 진리를 가르쳐준다.
세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바른 지식과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도록 인도 한다. “사나 죽으나 참된 위로”(제1항)를 제시하고 있다. 참된 위로란 “내가 사나 죽으나 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을 천명한다. 요리문답은 참된 믿음과 올바른 신학에 기초하여 많은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의 내용을 주지주의적으로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셨을 뿐 아니라, 자기의 성령님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자기의 형상을 닮게 하신다(제86항). 성령을 통해서 영생을 가진 사실을 알도록 하신다. 참된 믿음은 교리를 암기하여 나열함에 있지 않고, 그 교리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하게 살아가는 데에 있다(제91항). 바른 교리는 실천으로 나아간다. 실천은 바른 교리에 근거를 둔 실천이다. 삶의 진정한 위로는 인간 비참함,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 하나님 은총에 대한 감사를 앎이요 이에 대한 실천이다. 신자는 지식과 삶에서 삼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세계에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네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시대적 제약을 안고 있다. 천주교의 미사와 성찬의 우상숭배와 미신적인 것을 비판하고 그리고 당시 루터교의 그리스도 신성의 편재설과 성찬 시의 공재설에 대항하기 위하여 개혁신앙의 도리를 확증하기 위하여 쓰여졌다. 오늘날 한국적 상황에서 통일교, 천부교, 애천교회,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토론토 블레싱, 신사도운동 등 열광주의적 성령운동과 관련하여 한국교회의 바른 신앙고백이 요청된다. 한국교회의 2/3를 차지하는 장로교회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근거하여 그 신앙의 핵심을 지키면서 오늘날 상황에 맞도록 한국 개혁교회의 신앙을 새롭게 고백하는 것이 요청된다.
다섯째, 한국 장로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협착성과 분파주의 위험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더 많이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선교사적으로 한국교회가 미국 장로교로부터 청교도 신앙을 배웠고, 한국교회의 청교도 이해도 상당히 미국식 근본주의적으로 편향된 성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한국보수교단 협의회와 청교도 훈련원의 청교도 이해는 중도적이고 학구적인 경건한 역사적 청교도를 근본주의적이고 전투적으로 정치적인 소종파적 집단으로 평가절하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 부산 총회에 대하여 “WCC는 적그리스도,” “WCC 참여는 제2의 신사참배” 등의 극단한 표현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장로교가 분열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신앙고백의 전통에서 나왔다고 볼 수도 있다. 유럽(독일, 영국, 화란 등)의 개혁주의는 분리된 것이 없는 것으로 안다. 유럽에서는 싸워도 한 교단 안에서 싸운다. 갈라지는 법이 없다. 이것이 성숙한 자세가 아닌가? 독일의 바이어하우스나 영국의 존 스타트는 복음주의자들이지만 이들은 WCC에 참여하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었다. 독일에서는 진보적 에큐메니칼 운동인 교회의 축제(Kirchentag)와 복음주의자들의 에큐메니칼 운동인 공동체의 축제(Gemeindetag)가 있을뿐 교단이 나누어지지 않았다. 전자에는 에밀 브룬너, 디트리히 리칄, 위르겐 몰트만, 콘라드 라이저, 후자에는 칼 바르트, 발터 큐넷, 디트리히 본훼퍼, 페터 바이어하우스 등이 주도하였다. 이제 지구촌시대에 접어들어 유럽에서 개혁신학을 폭넓게 공부하고 돌아온 많은 신진 학자들이 있는 가운데 한국의 개혁신학은 영미의 개혁신학의 차원을 너머서서 구라파의 개혁신학의 본류와 교감하면서 이들의 관용적이고 폭넓은 전통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1) 정일웅,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 해설』 . 총신대 출판부, 2013. 서문(2-5). 2) Herman J. Selderhuis, “The Heidelberg Catechism: The Secret of Its Success,” in A Faith Worth Teaching: The Heidelberg Catechism’s Enduring Heritage, ed. Jon D. Payne & Sebastian Heck (Grand Rapids: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3), vii; Derry G. Hart, “The Heidelberg Catechism in the United States,” in A Faith Worth Teaching, 16-32. 3) 1542년 칼빈이 만든 제네바교회 요리문답은 제1문에서 “인생의 주된 목적이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제2문 “무슨 이유에서 당신은 그렇게 말합니까? 답 ..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칼빈이 주도한 제네바 교회요리문답은 인간에게 출발하되 하나님 중심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목적과 그 이유에 대해 묻되 하나님 인식과 예배와 그에게 영광 돌리는 것으로 출발한다. 제1문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위로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으며 그에 대한 대답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통하여 구원을 얻고 또한 이제는 그분을 위하여 사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위로임을 지적해 주고 있는 것이다. 4) 김재성, 『개혁신학의 광맥』, 이래서원, 2001, 261 5) Joseph Pohle, The Sacraments: A Dogmatic Treatise, ed. Arthur Preuss( St. Louis: B. Herde, 1942) vol. 2, 103-27; 이승구,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II 』 , 이레서원, 2012. 196. 6) 김영재, 『기독교 신앙고백』, 사도신경에서 로잔협약까지, (서울: 영음사, 2011), 167 7) 이승구,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II 』 , 이레서원, 2012. 200. 8) 그런데 이 [제80문] 항목에 대하여 오늘날 대부분 비(非)개혁파 신학자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개혁파 안에서조차 당시 프레드리히 3세의 입장을 매우 과격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예로 필립 샤프도 "제80문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속에 일관되어 있는 화해 무드를 해치고 악을 악으로 갚음으로써 비개신교적이고 비복음적인 배타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불필요한 지나친 적대감 때문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로마 교회의 규율을 따르던 선제후 챨스 필립이 1719년에 사용 금지령을 내리게 하고 말았다"라고 지적한다. 샤프는 이 제80문의 정신이 매우 과격하고 포용심이 없는 것으로 평가를 내리고 있다.(Phili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With a History and Critical Notes, Revised by David S. Schaff; 3 vols. 6th edition;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0). 9) 권호덕,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에 나타난 신학특징에 대한 연구,” 상동. 10) 김영재, 『기독교 신앙고백』, 사도신경에서 로잔협약까지, 영음사, 2011, 168 11) Anselmus, Cur Deus Homo? II., 18 14) Gustaf Aulen, Christus Victor. A Historical Study of the three Main Types of the Idea of Atonement, S. P.C. K. London, 1945, 전경연 역, 속죄론 연구. 승리자 그리스도, 기독교서회, 1983, 82. 13) Alfred Adam, Lehrebuch der Dogmengesichte Band 2, Mittelalter und Reformationszeit,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haus, 1972), 73 14) 김동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구원론,” 국제신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 450주년 기념대회, 아이스 굿 뉴스, 2013년 06월 12일 15) 김재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의 기독론,” 국제신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 450주년 기념대회, 아이스 굿 뉴스, 2013년 06월 12일 16) 김 재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와 언약신학,” 국제신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 450주년 기념대회, 아이스 굿 뉴스, 2013년 06월 12일 17) 김 재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와 언약신학,” 국제신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 450주년 기념대회, 아이스 굿 뉴스, 2013년 06월 12일 18) 언약 사상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7장에서 최고로 면밀하고도 정확하게 세 가지 언약(구속언약, 행위언약, 은혜언약)으로 정립되었다. 행위언약은 창조언약, 율법언약, 생명언약, 자연언약 등으로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Kevin De Young, The Good News We Almost Forgot: Rediscovering the Gospel in a 16th Century Catechism (Chicago: Moody, 2010)) 19) John M'Clintock, D.D., and James Strong(prepared), “Olevianus, Caspar” 343-344. 20) 조병수,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서 작성의 시대와 내용,” 793 21) H. G. Pöhlmann, Abriss der Dogmatik, vierte, verbesserte Auflage, Gütersloh, 1985, 212 22) 이승구,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II 』 , 이레서원, 2012. 206 23) 조덕영의 창조신학, 기독론의 ‘엑스트라 칼비니스티쿰’ 이단논쟁에 주는 교훈, 입력 : 2012.11.03. 07:51, 크리스쳔 투데이. 24) Werner Brändle, “Extra Calvinisticum,” in: Taschenbuch theologischer Fremdenwörter, Gütersloh, 1982, 50; 이승구,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II 』 , 이레서원, 2012. 205. 25) Heiko A. Oberman, ‘The Extra Dimension in the Theology of Calvin,“ in The Dawn of the Reformation (Edinburgh: T& T Clarkm 1986), 234-258 26) H. G. Pöhlmann, Abriss der Dogmatik, vierte, verbesserte Auflage, Gütersloh, 1985, 209 27) Paul Althaus, Die Christliche Wahrheit, Gütersloh: C. Bertelsmann Verlag, 8. Auflage. 1972. 579 28) H. G. Pöhlmann, Abriss der Dogmatik, vierte, verbesserte Auflage, Gütersloh, 1985, 206 29) H. G. Pöhlmann, Abriss der Dogmatik, vierte, verbesserte Auflage, Gütersloh, 1985, 209 30) Christofer Frey(Hg.), Repetitorium der Dogmatik, 6.. völlig neubearbeitete Auflage, Hartmut Spenner, Waltrop, 1998, 318 31) 김재성, 『개혁신학의 광맥』, 266. 32) Christofer Frey(Hg.), Repetitorium der Dogmatik, 6.. völlig neubearbeitete Auflage, Hartmut Spenner, Waltrop, 1998, 318 33) 권호덕,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에 나타난 신학특징에 대한 연구,” 상게서. 34) Bierma, “Doctrine of the Sacraments,” 33. “After all, the Heidelberg Catechism deftly sidestepped divisive points and emphasized the common ground among the Melanchthonians, late-Zwinglians, and Calvinists in the Palatinate, especially on the explosive issue of the Sacraments.” 35) 김재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의 기독론,” 국제신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 450주년 기념대회, 아이스 굿 뉴스, 2013년 06월 12일 36) 김동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구원론,” 국제신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 450주년 기념대회, 아이스 굿 뉴스, 2013년 06월 12일 37) 김영한,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2012년 5월 협성대 웨슬리연구소 강연 자료집. 38) 김영한, “예정교리에 관한 휫필드와 웨슬리의 논쟁.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신학지남, 2013년 가을호. 통권 제326호, 신학지남사, 39) Zacharius Ursinus, Commentary on the Heidelberg Catechism, 원광연 옮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고양: 크리스쳔다이제스트, 2006), 481-498. 우르시누스는 예정교리에 대하여 8쪽이나 할애하면서 선택과 유기교리를 자세히 논하고 있다. “예정은 확정된 것이요, 따라서 불변하다...선탹과 유기 모두 확정된 것이요, 불변한 것이다.”(493쪽). “미래의 은혜에 대한 견고한 확신이 없는 자는 현재의 은혜에 대해서도 화신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불변하시기 때문이다.”(494쪽). “유기에 대해서는 생명이 다하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나 다른 이에 대해서 무엇을 확실하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아직 회심하지 않은 사람이 죽기 전에 회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495쪽). “그러나 모든 유기된 자들과 외식자들은 결국 교회에서 떠나가며, 갖가지 은사들을 받고서도 그들이 갖고 있던 것 같은 것들까지도 다 잃어버리고 만다”(497쪽). “이 교리의 용도는 첫째로 우리의 구원의 영광을 모두 하나님께 돌리는 데 있다...둘째로, 우리가 확실하고도 분명한 위로를 얻는 데 있다”(498쪽). 이러한 유기의 예정론은 복음주의자들 가운데서도 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그러므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개인의 예정이 아니라 교회의 예정이라는 방향으로 예정론의 일치를 도출하였던 것이다. 40) 권호덕,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에 나타난 신학특징에 대한 연구,” 상게서. 41) 정일웅,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 해설』 . 총신대 출판부, 2013. 서문(2-5). 4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예정에 관하여 다음같이 피력한다: “제 54문. 당신은 거룩한 공 교회에 관하여 무엇을 믿습니까? 답.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전체 인류로부터, 세상의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의 성령과 말씀으로 참된 믿음의 일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선택된 교회를 모으시고 보호하시고 보전해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교회에 속해 있고, 영원히 이 교회의 살아있는 구성원으로 남아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만찬에 대해서도 다음같이 피력한다: “제 48문.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의 인성이 그의 신성이 있는 곳마다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답.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신성은 제한을 받지 않고 어느 곳에서나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신성은 정말로 당신이 취하신 인성을 초월해 있지만, 이 인성 안에 있고, 인격적으로 인성과 연합되어져 있다는 사실이 따라와야만 합니다.” 43) F. L. Cross and E. A. Livingstone, eds.,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2nd edition (Oxford University Press, 1974), 629. 44) 이승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강함과 부드러움.” in;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한국장로교회』, 36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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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화체설은 맞지 않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순종이 우리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논문의 본문 중에 "이것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시간적 거리를 넘어서 현재화된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말이 매우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