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 정지아
아침 안개가 걷히면서 봄빛에 젖은 골짜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습기를 듬뿍 머금은 골짜기로 햇살이 폭탄처럼 퍼붓고 있었다. 시시각각 해는 높아지고 새순을 막 피워낸 초목들이 앞다투어 봄빛을 빨아 들었다. 산중턱에 위치한 그의 집으로도 새순처럼 보들보들한 햇살이 발을 딛기 시작했다. 나무 울타리조차 없는 집 둘레에 어느샌가 새싹들이 뼘 가웃 자라 있었다. 기억조차 흐릿한 아주 오래전 누이들이 심어 놓은 과꽃이며 봉숭아였다. 누가 돌보지 않았건만 꽃은 누이들이 이 집에 떨구고 간 한 조각 마음처럼 해마다 점점 더 무성히 자라났다. 다섯 명의 누이와 세 명의 형들이 아직 이 집에 머물고 있던 시절에는 마을에서 근 십 리나 떨어진 외딴 산집에도 떠들썩한 활기가 넘쳐흘렀다. 누이와 형들이 집을 떠나기 시작했을 때 그는 막내누이의 등을 오줌으로 적시던 어린 아이였다. 그 시절의 기억이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평생 이 집을 떠난 적 없는 그가 한줌의 기억을 이리저리 매만지고 궁굴린 끝에 빚어낸 환상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다 큰누이와 형들이 어는 여름 오후 소낙비 끝의 초목처럼 싱싱한 몸뚱이를 벌거숭이로 드러낸 채 집 바로 옆을 굽이쳐 흐르는 계곡으로 풍덩풍덩 뛰어들던 장면은 사실이라기엔 아무래도 민망했지만 물 속으로 뛰어들 때 출렁이던 큰누이의 사발만한 희디흰 가슴은 환상이라기엔 또 너무나 생생했다. 앵두만 하던 분홍빛 유두며 젖판에 돋아 있던 소름 같은 작은 알갱이까지 눈앞인양 생생한데 그것이 누이의 것이 아니라면 그는 도대체 여자의 알몸을 사진으로라도 본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한 창 때의 그가 밤마다 눈앞에 떠올리며 용두질친 것도 저 젊은날의 누이의 모습이었으며, 사정 끝의 허탈보다 더 무서운 죄책감으로 멍석 깔린 방바닥에 이마를 짓이기다가 끝내는 조금의 욕정도 담겨 있지 않은 누이에 대한 순전한 그리움으로 긴 밤을 지새우곤 했던 것이다. 깊어진 그리움 은 많지도 않은 몇 개의 기억에 끈끈히 달라붙어 기억을 괴물처럼 부풀리고는 기억 그 자체로 화했다. 평생을 하루 같이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때로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순환하는 사계 속에서 기억만이 계절의 순환을 이탈하여 저 홀로 종유석처럼 자라났다. 태고의 정적을 먹고 자라는 깊은 동굴 속 종유석처럼 그 또한 기억을 먹으며 늙어가고 있었다.
겨우내 뒤안에서 바싹 마른 장작은 고작 낙엽송 몇 줌으로 쉽게 불이 붙어 이내 기세 좋게 타올랐다. 활활 타오른 불길이 아궁이 안팎으로 넘실거렸다. 아이, 참말 이상하지야. 아궁지 속을 들에다보고 있으면 세상 근심이 다 없어져야. 옛날 어른들이 눈보라가 사램을 흘린다등만 불도 그런갑서. 아궁지 앞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훨훨 날아간당께. 꼭 멋에 흘린 것맨치로. 어머니는 눈 가득 불길을 담은 채 어린 그에게 속삭이곤 했다. 그럴 때의 어머니는 화전밭에서 돌멩이를 치마폭에 담아 나르거나 형과 누이들을 떠나보내며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던 어머니와는 사뭇 달랐다.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불에 홀린 어머니는 어쩐지 옛날 얘기 속에 나오는 꼬리 아홉 달린 여우 같기도 했고, 아홉 폭 치맛자락 고운 속에 거머쥐고 궁둥이를 실룩실룩, 큰형이 읍내 장터에서 보았다는 화월옥 기생 같기도 했다. 어머니의 겨드랑이 밑에 곧 날개가 돋아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아서 어린 그는 야가 성가시럽게 왜 이란다야, 얼둥 애기맨치로, 다정한 타박을 들으면서도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꼭 붙든 채 아궁이 앞을 떠나지 않았다. 홀린 듯 아궁이 속을 들여다보는 어머니 옆에서 애를 태우던 어린 아이는 여전히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휘어잡은 채 죽은 같은 시간의 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그는 활활 타오르는 장작 두어 개비를 끄집어내고 물을 끼얹었다. 치지직, 솔향기가 피어오르며 붉은 혀를 날름거리던 불길이 잦아들었다. 가마솥에 뜸이 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숯불을 아궁이 앞으로 끌어냈다. 숯은 발갛게 불이 붙어 투명할 지경이었다. 제 몸의 속까지 드러낸 체 시위어가는 숯을 볼 때마나 그는 뜬금없이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그는 숯불을 동그랗게 모두어 그 위에 검게 그을은 스테인리스 밥주발을 얹었다. 짠 된장내가 부엌 그득히 퍼졌다. 지난겨울 내내 어머니는 강된장에만 밥을 먹었다. 그가 기억하는 한 겨울 동안 그의 집에서 강된장이 떨어진 적이 없었다. 강된장은 일종의 양념처럼 긴 겨우내내 밥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매일 물을 조금 더 붓고 된장을 풀어 다시 끓여낸 강된장은 봄이 다가올 즈음이면 아무리 솜씨 좋은 사람도 솜씨만으로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맛이 났다. 모든 기억을 다 잃어버린 뒤에도 어머니의 몸은 강된장의 그 맛만은 잊어버릴 수 없는 듯했다. 어쩌면 어머니는 온 식구가 밥상 앞에 둘러앉아 강된장에 꽁보리밥을 비벼 먹던 그 시간을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삼십 년 전, 어머니가 맨 처음으로 잃은 기억은 바로 그였다. 욕정처럼 온몸에 그득 고인 세상에 대한 그리움을 어쩌지 못해 밤봇짐을 몇 번이나 쌌던 그를, 읍내를 목전에 둔 채 강 건너 휘황한 불빛을 훔쳐보며 애꿎은 담배만 몇 대 축내고 새벽이슬 축축이 젖은 신작로를 되짚어 돌아왔던 그를, 홀로 남은 어미를 끝내 버리지 못한 그를, 어머니는 가장 먼저 잊어버렸다. 늦은 밤 요의를 느낀 그가 마당에서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내고 돌아섰을 때 기척도 없이 뒤에 서 있던 어머니가 불안한 눈동자로 사방을 휘 둘러보며 그의 손을 끄집었던 그날 밤을 그는 아직도 선연히 기억한다. 호롱불도 켜지 않아 달빛 한 점 스며들지 않은 어둔 방 안에서 그이 손등을 어루만지며 어머니는 말했다.
밥은…… 묵었냐? 쪼깨 지둘려라. 쪼깨만. 그만헌 시간은 있지야?
엄니. 왜 그요? 먼 소리요?
그의 목청이 터무니없이 높았던 것인지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그이 입을 틀어막았다. 칠순의 나이를 믿을 수 없는 다부진 힘이었다.
암만 산중이래도 이런 밤중에는 소리가 십 리를 간단다. 아랫말에 순사가 와 있는디 야가 시방 잽헤 가먼 어쩔라고.
뭔가 심상치 않은 기색에 그는 꿀 먹은 벙어리로 앉아 있었고, 어머니는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식은 보리밥 한 덩이를 내왔다. 봄이 다가올 무렵이라 그때도 찬이라고는 강된장에 묵은 김치뿐이었다. 밥상 앞에 묵묵히 앉아 있는 그의 등을 자꾸만 어루만지며 어머니는 눈물을 찍어냈다.
어쩌끄나. 묵을 것이고는 요것빼기다. 어쩌끄나, 내 새끼.
어머니는 그날 쌀 두어 되와 곶감, 계란 등속을 책보에 싸 기어이 등에 묶어주며 어둔 산길로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날 이후 걸핏하면 어머니는 여수 14연대를 따라 입산한 큰형이나 작은형으로 착각하곤 했다.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그때 겨우 서른줄에 들어섰던 자기 미래의 암담한 따위보다 그는 어머니가 가장 먼저 잃은 기억이 하필이면 가장 오래 어머니의 곁을 지킨 자신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참담이라기보다 분노에 가까웠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숙어들었지만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손길이, 그 손끝의 다정함이, 그가 아니라 고작 열여덟, 열다섯에 집을 떠난 큰형이거나 작은형을 향한 것임을 느끼는 순간마다 눈코입은 말할 것도 없고 몸에 뚫린 온갖 구멍으로 찬바람이 스며들어 뼛속까지 시리는 것은, 오래도록 어쩌지 못했다.
두어 해 전부터 밥을 찾지 않게 된 어머니는 오늘도 밥 몇 숟가락을 겨우 받아먹고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마루 끝에 나와 앉았다. 산중턱을 휩쓰는 북풍이 처마 밑에 긴 고드름을 맺거나 뚝뚝 낙숫물 듣는 소리가 춘정을 돋우거나 사시사철 어머니는 마루 끝에 나앉아 신작로를 보았다. 마루 깊숙이 스며든 봄햇살에 눈이 부신지 갸르스름 눈을 뜨고 먼 신작로를 바라보는 반쯤 졸고 있는 듯도 했다. 여자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부연 먼지때가 켜켜이 앉은 마룻장은 새치처럼 탁한 회색빛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연 이틀 봄비가 내려 마당 한구석에 내던져놓은 고추모종이 햇볕에 말라가고 있었지만 그는 도무지 일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자라등처럼 딱딱해진 늙은네의 가슴으로도 봄바람은 스며드는 모양이었다. 그는 양반다리를 하고 어머니 곁에 앉았다. 햇볕이 노곤노곤, 그의 늙은 몸뚱아리를 간지럽혔다. 여인의 손길 한 번 닿은 적 없는 순결한, 제 안으로 욕망을 삼키고 이제 서 서푼어치의 욕망마저 잃어버린, 순결하다하여 두고 볼 것도 없는, 그저 어쩔 수 없는 세월을 견뎌온, 고목처럼 볼품없는 몸이었다. 살갑게 어루만지는 햇살에 그는 무심히 제 몸을 내맡겼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이 문득 끊기고 나면 제법 폭이 넓은 계곡이었다. 너나할 것 없이 나무를 때던 시절에는 집 마루에 앉으면 계곡의 물거품처럼 보일 듯 했다. 언제부턴지 산에 나무가 늘고 이제 계곡은 언덕바지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그곳은 마치 길이 끊겨 다시는 갈 수 없는 곳처럼 보였다. 두어 장 건너 한 번씩은 다니러가는 곳인데도 마을은 멀기만 했고, 계곡에 삼켜진 길은 아무런 욕망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몸의 욕망, 혹은 알 수 없는 무엇에 대한 욕망이 아직도 그를 사로잡고 있던 시절에는 제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불덩이 같은 것을 삭이지 못해 노망든 어머니를 남겨둔 채 저 길을 달려가곤 했었다.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간들 30여 호 남짓의 작은 마을, 제 안의 욕망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친구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러나 간간이 얼굴을 보고 자란 비슷한 연배의 집을 찾아들어 막걸리 몇 사발로 급한 불길을 추스르고, 반가울 것 없는 손님 시중에 짜증이 역력한 친구 아내에게나 슬금슬금 능구렁이 혓바닥 같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자신에 화들짝 놀라, 내려올 때보다 더한, 뭐라 말할 수 없는 꿉꿉하고 서글픈 심정으로 왔던 길을 밟아 되돌아오는 것뿐이었다. 돌아오는 길, 그는 술이 아니라 아낙의 등에 업힌 어린것의 젖비린내 혹은, 빗자국 선명한 곱게 쓸린 마당이나 반들반들 윤이 나는 검은 마루 같은 것에 취해 길바닥의 질경이보다 나을 것 없는 제 인생을 짓밟듯 달빛을 밟았다. 때로 울기도 했을런가. 그러나 그런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마을을 그렇게 오가는 동안 그이 한 생을 산중턱 외딴집에 붙든 어머니나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게 한 가난, 자신의 볼품없는 삶을 아홉 자식에게 똑같이 남겨준 채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제 꿈을 향해 달려가버린 형들, 미련한 이곳에 남겨 두고 제 삶에 붙들린 누이들도 그가 그 길에 흩뿌린 시간과 땀방울처럼 아득해졌다. 원망도 미움도 그리움도 죄 시간과 더불어 흘러가버린 것이다. 그의 평생은 이 집과 마을을 오가는 길에 오롯이 순정하게 고여 있었다. 마음을 길바닥에 점점이 떨궈놓은 채 그는 허깨비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바람이나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였다.
한때는 젊은 그나 나무꾼들이 바삐 오가던 길에 이제는 잡초만 무성했다. 늘 그 길을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면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는 산중으로 접어들 지경이었다. 그 길에 작은 점만 한 무엇이 느릿느릿 집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그는 길을 보고 있으면서도 오래도록 눈치채지 못했다. 숨을 거두기 직전의 동물이나 내뱉을 만한 가쁜 숨소리가 가까워진 후에야 그는 초점을 모았다. 상수리숲에 가려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누군가 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그의 집을 찾는 것은 면사무소 사회과 직원들뿐이었다. 생활보호대상자 나라에서 무상으로 배급하는 쌀자루를 짊어지고 산중턱 외딴집을 찾은 그들은 냉수 한 사발을 들이키고는 휭하니 산을 내려갔다. 산중턱, 다 쓰러져가는 귀신 나올 것 같은 집에 발조차 딛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백 살을 바라보는 노망든 할망구와 벌써 환갑을 지난, 세상과 섞여본 일 없는 늙다리 아들이라니, 기이하기도 했을 것이다. 시키지도 않았건만 걸레를 들고 온 집을 헤집어놓은 착한 친구도 없지 않았다. 그 친구는 언제가 제 아내를 데리고 와 이불까지 죄 빨아놓고, 김치며 나물이며 부엌을 그득 채워놓기도 했다.
근처의 큰 바위에 이불을 널며 아낙은 물었다.
할아버지, 평생 여그서 살았담서요? 외롭지 않으셔요?
일곱 살 때부터 그이 옆에 있었던 것은 어머니뿐이었다. 다섯 살 차이 나는 막내형이 있었지만, 형은 홀연히 집을 떠났다가 돌아와 잠시 머물렀고, 그럴 때도 집에 있는 시간보다는 마을에 내려가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어머니가 밭일을 하면 어린 그는 밭 가장자리에서 꼬불거리는 벌레와 놀았고, 어머니가 밥을 하면 치맛자락을 붙들고 아궁이 속을 들여다보았으며, 몸이 여물기 시작하면서는 어머니와 함께 일을 했다. 그리고 늙은 뒤로는 구가 일을 하는 동안 노망든 어머니가 밭 가장자리에 멍하니 앉아 그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늘 곁에 있었고, 외롭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젊은날 그는 무엇을 찾아 밤길을 내달리곤 했던 것일까. 어둔 강둑에 앉아 읍내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아낙이 빨래를 너는 내내 기억해 내려 애썼지만 별 다른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정하고 따스한 주황색 불빛의 느낌만이 손에 잡히도록 생생할 뿐이었다. 대답 없는 그를 바라보는, 어머니와 함께 마루에 나앉은 그를 바라보는 아낙의 눈이 촉촉이 젖어들었고, 그것은 그가 평생 본 중에서 가장 기이한 것이었다.
그가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던 늙은내, 노망든 어머니의 오줌내를 어찌한 것인지 아낙이 빨아놓고 간 이불에서는 이상한 향기가 났다. 가을볕에 바삭바삭하게 마른 이불은 평소와 달리 사각거렸고, 몸을 뒤챌 때마다 낯선 향기를 피워올렸다. 며칠 밤 그는 잠을 설쳤다.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린 오줌이 영역표시라도 됐던 것인지 다시 자기 냄새가 밸 때까지 이불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낮선 냄새를 끌고 몇 차례 집을 찾았던 그들은 어느 순간 뚝 발길을 끊었다. 근무지를 옮긴 것인지, 자비를 베풀어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구원의 손을 내밀어도 감사히 그 손을 잡지 않는 그에게 오만정이 떨어진 것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그들이 잠시 휘저었던 그와 어머니의 삶은 오래된 일상으로 편안히 복귀했다.
숨소리는 잦아들었다. 커졌다 하면서 점점 가까워졌고, 상수리숲을 통과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뜻밖에 하우댁이었다. 뜻밖일 것은 없었다. 하위라는 마을에서 이곳으로 시집왔다는 하우댁은 그가 어린시절 옆집에 살던, 그러니까 유일한 이웃이었다. 하우댁의 집은 진작 허물어져 기둥이며 문짝은 그의 아궁이 속에서 한줌의 재가 되었고, 집터는 텃밭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여든쯤 되었을 하우댁은 집 바고 가까이까지 와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그제야 고무신을 찾아 신었다. 하우댁의 겨드랑이 밑에 손을 집어넣고 힘을 주어 일으켰을 때 물컹한 살집이 느껴졌다. 앙상한 뼈만 남은 어머니에게는 오래도록 느껴본 적 없는 이상한 감촉이었다. 그건 살이라기보다 생명의 감촉인 듯했다. 탄력이 없긴 했으나 손에 감겨드는 살의 느낌에 그는 왠지 눈시울이 뜨끈거렸다.
하우댁이 마루에 엉덩이를 걸칠 때까지 어머니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시선은 여전히 먼 신작로를 향해 있었다.
인지 산송장이 뒤부렀그마이. 그때게는 날 붙들고 좋아서 어쩔 중 모르등만. 그거이 폴세 한 십 년 됐능가? 우리 큰아 갔을 땐께.
그때만 해도 정정했던 하우댁이 산길에 모습을 드러내자 어머니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달려나갔다. 이미 말을 잃었던 어머니는 하우댁을 끌어안고 눈물을 한바탕 쏟고 나더니 햇살 환한 마루를 두고 기어이 어두침침한 방으로 손을 끄집었다. 하우댁이 갈 때까지 어머니는 하염없이 하우댁의 얼굴과 머리와 등을 쓸어내렸다.
하이고 성님. 그래도 나는 안 잊어부렀소? 고깟놈의 정이 뭐라고이.
하우댁은 어머니가 자신을 알아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어머니는 큰형이나 둘째형을 만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무렵 어머니는 누군가 나타나기만 하면 맨발로 뛰쳐나가 안방으로 데려왔다. 어머니에게 손 잡혀 안방으로 끌려온 사람 중에는 마을에 다니러갔던 그도 있고, 약초꾼도 있고, 나물 캐러온 타지 아낙네도 있었다. 그렇게라도 세상을 향해 열려 있던 어머니의 마음이 완전히 닫히게 된 게 언제인지는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느 겨울을 지나고 난 후 어머니는 더 이상 맨발로 달려가지 않았다.
하우댁이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았다. 손등의 살집만큼이나 두툼한 눈물이 두어 방울 뚝 떨어졌다.
성님, 암만해도 이것이 마지막인성 불르요. 그래 인사라도 할라고 왔소.
지난번과 달리 하우댁의 눈물은 이내 그쳤다. 십 년의 세월에 모안의 수분을 죄 증발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두어 방울의 눈물이 마지막 수분이기라도 한 것처럼. 시간이 지났는데도 하우댁은 여전히 숨을 헐떢이고 있었다.
위디가 아프신게라?
하우댁은 눈물 떨어진 살진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모리제. 이래놓고도 자네 어무이맨치 백 년을 채울랑가 모리제만 올 봄을 못 넘길 것 같그마. 그냥 그럴 것맨치여.
힘드실 텐디 멀라고 오셨어라.
글씨 말이여. 인자 다시는 못 오겄네. 아침밥 묵고 바고 나섰는디도 시방잉마. 폴세 점심때가 다 돼가제이?
하우댁이 마루에 걸린 시계를 보았지만 시계는 아홉시에서 멈춰 있었다. 언제 멈춘 것인지 모르겠으나 해 뜨면 일어나 아침 먹고 해지면 자리에 눕는 생활이라 굳이 시계를 볼 이유도 없었다. 달력조차 보지 않은 지 오래였다. 날이 풀리고 개구리가 뛰어다니면 곡식을 심었고, 그것이 쑥쑥 자라 땡볕에 열매가 익으면 따 먹었으며, 날이 추우면 군불을 지피고 방에 들앉았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궁벽한 산촌, 그중에서도 마을과 동떨어진 외딴집에서 하늘과 바람과 태양과 비와 안개와 더불어. 어머니와 함께 세상을 향해 열린 한 줄기 신작로를 바라보며.
가쁜 숨소리가 차츰 잦아들더니 하우댁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긍께 그때게 마을로 내려갔어야 하는 것이여. 그랬으먼 험헌 일도 다 비켜갔을랑가 모리제.
그가 두어 살 무렵 아랫마을 최씨 집에서 그의 아버지를 머슴으로 데려가려 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사냥 솜씨를 높이 사서 열이나 되는 식구를 다 먹여주겠다는 꿈같은 조건을 내걸었는데도 아버지는 기어이 마다한 모양이었다. 얼마 뒤 아버지는 멧돼지에 받혀 세상을 떠났다. 느그 압씨가 씰데없는 고집을 부리등만 기언치 목심을 잃었다고, 어머니는 두고두고 원망이 많았다. 날짐승을 잡아 생계를 연명했던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제비들이 안방에까지 집을 지어도 그것들을 내쫓지 않았다. 제비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한밤중까지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렸다. 다 살라고 태어난 목심 아니냐. 느그 앱씨가 고로코롬 일찌그니 시상을 뜬 것도 이녘 손에 죽은 목심들의 원이 맺혀서 그란 것이여. 개미 새끼 한나라도 그냥 "B아뿔지 말그라이. 그래야 내 새끼는 복받고 오래오래 살제. 그 복을 스스로 다 받아 어머니는 백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명천지에 자석새끼꺼정 종놈으로 맹글 수 없다고 자네 아부지가 일어지하에 짤라뿐 모양인디. 성님이 나를 붙잡고 종놈이든 뭣이든 굶게 죽이는 것보담은 안 낫으냐고, 울메불메 하능 것이 눈에 선하그만은, 자석들 종 안 맹글하다가 겔국은 산사람 맹글어서 다 죽인 꼴이 되부렀으니 자네 아부지, 저승서도 편틀 안 헐 것이여.
그때 그는 다섯 살이었다. 그날 그와 막내누이를 제외한 가족들은 모두 남의 집 가을걷이에 품을 팔려갔다가 해가 저문 뒤에야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는 품에서 식은 고추전 서너 장을 꺼냈고 형은 막걸리 한 통을 호기롭게 마당에 쿵 내려놓았다. 큰형이 그 술을 막 사발에 따르려 했을 때 소리도 없이 군복을 입은 청년 몇이 어깨에 긴 총을 맨 채 마당으로 들어섰다. 큰형과 속닥이며 무슨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들은 다시 산으로 돌아갔고, 잠시 후 백 명도 넘어 보이는 군인들이 집으로 몰려왔다. 큰형과 어머니는 닭을 잡는다, 마당에 가마솥을 내건다 부산을 떨었다. 가마솥에 물 끓는 소리, 닭 우는 소리, 군인들의 웃음소리,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누이들이 쫑쫑 달리던 소리, 달그락거리며 부딪는 총소리. 그는 괜히 흥이 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마당을 뛰어나녔다. 그날 큰형과 작은형은 군인들 틈에 끼여 무슨 이야긴가를 열심히 주고받았고, 누이들과 어머니는 종종거리며 전을 지져 날랐으며, 어린 그도 밤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밥을 먹은 그들은 어머니에게 두 끼 밥값으로 적지 않은 돈다발을 안기고 떠났다. 그 행렬의 마지막에 큰형과 작은형도 끼여 있었다. 세상일을 잘 알지 못했던 그의 가족들은 큰형과 작은형이 무슨 좋은 구경이라도 가는 줄 아는 양 웃으며 손짓해 보냈다. 그것이 큰형과 작은형을 본 마지막이었고, 외딴집이 세상의 중심처럼 활기찼던 유일한 날이었다. 형님들이 왜 산사람들을 따라갔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산사람을 따라간 두 형이나 세상으로 날아가버린 막내형이나 어쩌면 날이 새도록 읍내의 따스한 불빛을 바라보던 젊은날의 그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모른다고 막연하게 짐작할 뿐이었다.
성님들 제사는 어짜고 있는가?
아부지 제삿날 항꾼에 모시고 있구마요.
노망들기 전까지 어머니는 두 형의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가 제삿밥이라고 먹게 해주자고 하면 어머니는 불덩이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 불덩이가 어머니의 몸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니다 끝내 머릿속을 새까맣게 태워버린 것이다. 노망든 어머니가 이십 년 넘게 붙들고 있던 집 떠난 자식들의 기억조차 이제는 까맣게 태워졌기를 그는 간절히 바랐다.
막둥이성은?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거그 제사도 지내줘야제. 테레비를 보믄 지 이름 석자도 모리는 사램도 부모헹제 잘만 찾아 쌓대. 요로코롬 소식이 깜깜헌 것은 필시 죽었다는 뜻이며. 서른 넘어 집 나간 사램이 동네를 몰라서 못 찾아 오겄능가 머시 맺힌 것이 있다고 역부로 안 찾아오겄능가. 배운 것도 읎고 가진 것 읎이 승질만 고약헌 놈이 승질 부리다 고약헌 일이라도 당했지맹.
철든 후로 걸핏하면 집을 나가 바람처럼 세상을 떠돌던 막내형과 연락이 끊긴 것은 어머니가 정신을 놓기 몇 년 전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랫마을에 내려가 청년들과 노름을 하던 형은 그 무렵 걸핏하면 노름단속을 나오던 공무원들에게 걸려 한바탕 싸움을 하고는 집을 나갔다. 나라서 나한테 해준 것이 멋이 있가니 노름꺼정 허라마라 허냐고 대들었던 형은 즈그 허는 짓거리는 생각도 않고 꺼떡허먼 나라 핑계부텀 댄 것봉께 역시 뿔갱이 피는 못 속인갑다고 받아친 한 공무원의 머리통을 돌멩이로 내리치고는 내뺀 것이었다. 삼 년이 지나도 사 년이 지나도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동네 누구 집으로 잘 있다는 편지 한 장 보낼 법도 하건만 일체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삼십 몇 년이 흘렀다. 그러나 그는 막내형이 예전처럼 얼큰히 술에 취한 재 비틀거리며 지금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았다. 찌든 담배냄새와 술냄새, 그리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바깥세상의 공기가 섞인 기묘한 막내형의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맴도는 듯했다.
태양이 벌써 집 바로 위를 지나고 있었다. 두어 시쯤 된 듯했다. 골이 좁은 이곳에는 느지막이 해가 떠서 일찌감치 해가 졌다. 한 뼘 하늘에서 비추는 짧은 햇빛으로도 사람이 살고 나무가 살고 온갖 산짐승들에 그 볕에 기대의 살아가고 있었다. 마루를 비춘 햇살도 짧아지기 시작했다. 하루해는 짧아도 세월은 길었다. 그날이 그날 같은 세월이 벌써 육십 년, 살았달 것도 없는 인생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어려웠던가. 휘영청 달빛 아래 꿈틀거리며 읍내로 이어진 신작로가 젊은날에는 그를 손짓해 부르는 듯도 하였지만 언젠가부터 그저 굽이진 갈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밤마다 죄책감에 베갯잇을 적시게 하던 욕정도 점차 뜸해지더니 다시 찾지 않은 지 오래였다. 숲도 계곡도 때로는 땡볕에 마르고 폭우에 젖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편하기로 하자면야 낡고 외딴집일망정 집을 지키고 살아온 그가 형제자매들 중 개중 편했으리라. 어머니는 곁에 있는 그 때문에 운 적은 없어도 누이들과 형들 때문에 노망들기 전까지 날이면 날마다 옷고름을 적시고 살았다.
하마 그때가 원젤랑가. 성님이랑 용허다는 무당을 찾아갔제. 멋이라고 입을 떼도 안 했는디 방에 들어선 당장 무당이 글드라고. 다 살아 있어. 두 놈은 북쪽에 있고 한 놈은 서울에 있구마. 원젠가는 다 돌아올 것잉께 두 발 쭉 뻗고 자드라고이. 성님은 그 말을 참말로 믿었서야. 안즉도 그 무당 말을 믿고 있을 것잉마. 그랑께 저라고 안 죽고 있는 거이여. 자석 새끼들 지달리니라고.
처음에는 그도 그런 줄 알았다. 하우댁의 말대로 기다림이 원怨이 되어 어머니의 발목을 붙들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십여 년 전부터 어머니는 기다림마저 버린 듯 했다. 그를 형들로 착각하여 어루만지지도 않았고 집에 찾아든 손님을 형들인 양 반기지도 않았다. 그리움도 원망도 모두 잊고 어머니의 머릿속은 백지처럼 하얗게 비었다.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했던 먹을 것에 대한 탐도, 배설의 본능도 어머니는 잊었다. 그런 어머니의 목숨줄을 질기게 붙들고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그는 때로 궁금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그것은 하나의 습관이리라. 먹고 싸는 본능마저 사라진 후에조차 버릴 수 없는, 기다림이라는, 평생의 서러운 습관, 노망든 어머니의 삼십 년은 기억을 쌓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잃어가는 시간이었다. 먹고 자는 싸는 몸의 습관을 모두 잊은 어머니는 기다림이라는, 마음의 습관마저 모두 버린 어느 날,비로소 이승의 문턱을 넘어 한 생 빌어 입은 고단한 육신을 편히 누일 수 있을 터였다.
끊임없이 주절거리는 하우댁의 말이 바람처럼 귓가를 스쳐 사라졌다. 하우댁의 젊어 별명은 벙어리였다. 어쩌다 그가 마을에 내려가면 자기 집에 데려가 기어이 따뜻한 밥을 한 끼 지어 먹이고는, 성님은 잘 계시제, 라는 한 마디 말조차 끝내지 못하여 성님은, 하고 말끝을 사리던, 아들 연배의 그를 보고도 내외를 하며 수줍어하던, 머리에 희끗한 새치가 생기도록 새댁 같던, 고운 사람이었다.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는 늙은 하우댁이 그는 노망든 어미보다 더 낯설었다.
앞마당에서 햇살이 반 넘게 빠져나간 후에야 하우댁은 굼뜨게 엉덩이를 일으켰다. 불어난 몸집 때문에 숨이 차 그렇지 걷는 것은 아직 정정해 보였다. 그러니 여기까지 와볼 생각도 했으리라.
성님. 잘 계시씨요. 성님이나 나나 빨리 가야 쓸 것인디…… 펭상을 살믄서 멋 하나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등만은 죽는 것도 맘대로 안 돼요이. 인자 저 세상에나 가서 보겄소. 성님. 원제가 될랑가는 몰라도 잘 계시씨요이.
하우댁은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쳤고, 어머니의 시선은 제 것이 아닌 양 여전히 먼 신작로에 던져져 있었다. 인자 가실라냐는 인사도 없이 그는 하우댁이 길에 우뚝 서 계곡을 굽어보았다. 이틀 연이어 내린 봄비 탓에 제법 실한 물이 계곡을 감돌아 흐르고 있었다. 흰 속살을 드러낸 채 부서지는 달빛에 밤 미역 감던 젊은 어느 한때로 하우댁은 잠시 돌아간 듯했다. 아랫마을 계곡은 10여 년 전부터 거의 말랐지만 집 옆 계곡은 산에 나무가 들어차면서 외려 물이 불었다. 형들과 누이들이 미역 감던 너럭바위 옆의 소도 여전히 시퍼렇게 깊었다. 불 지핀 아랫목처럼 따끈따끈 데워진 너럭바위 위에서 소의 물이 밴 듯 입술이 퍼렇게 변한 아홉 남매가 빨래처럼 몸을 말리곤 했었다. 모두가 아직 이 집을 떠나지 않았던 시절에는. 아침나절 햇살을 콩 볶듯 튀겨냈을 너럭바위는 오후의 시든 햇살을 삼키며 검은, 제 본래의 색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지난 시절의 기억이 잠시 젊은 하우댁을 불러낸 것일까.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돌린 채 두어 번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 하우댁은 분명 수줍음 많던 저 젊은날의 그녀였다. 하우댁은 젊은 그의 마음인 양 산길을 따라 무성히 돋아난 질경이를 밟아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길보다 훨씬 힘들 터였다. 하우댁은 상수리숲을 돌아 사라졌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었지만 아침나절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산골의 밤은 빨리도 찾아올 것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저녁밥을 지어야 했다. 그는 해가 뜨면 일어나 밥을 짓고 밥을 먹고 곡식을 심고 거두고 해가 서산에 걸리면 밥을 짓고 밥을 먹고 그리고 잠을 잤다. 어머니가 노망든 이후 그의 삼십 년은 하루 같이 그러했다. 그전이라고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시간을 보냈으나 그의 시간을 압축하면 고작 몇 줄에 불과할 것이다. 먹고 자고 농사를 짓는 것 외에 그는 다른 삶을 알지 못했다. 읍내의 주황색 불빛 속으로 끝내 발을 딛지 못한 것은 홀로 남은 어머니가 뒷덜미를 당긴 탓이 아니었다. 강나루에서 끝나는 신작로까지가 어머니의 품이며 그의 세계였던 것이다. 다름 삶을 기웃거렸던 형들은 죽고, 외딴집에 머문 그만 살아남았다. 다행일 것도 불행일 것도 없었다. 집 앞 상수리숲이 큰 바람을 껴안고 요동칠 때 질경이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죽은 듯 바람을 피했고, 키 큰 포플러가 환희에 들떠 온몸으로 햇살을 튕켜낼 때 민들레는 한줌의 햇살로 그 빛을 닮은 샛노란 꽃을 피워냈다. 길바닥의 질경이도, 키 큰 주목도. 아름드리 느티나무도 꼭 저만큼의 바람과 햇볕과 비를 끌어안고 태어나 죽는 것이다. 어머니와 반평생을 마루에 나앉아 그가 본 것은 세상이 아니라 그런 것이었다.
긴 세월을 견뎌온 낡은 집에 제 키보다 큰 긴 그림자를 앞마당에 드리웠다. 골 굵은 주름마다 세상의 그늘을 죄 끌어안은 듯 어두운, 그래 더 이상의 어둠을 끌어안을 수 없을 것 같은 어머니의 얼굴에도 그림자는 어김없이 덮여 있었다. 미동조차 없이 그늘과 하나가 된 어머니는 집을 버티는 낡은 기둥 같기도 하였다. 살랑살랑 노곤하던 봄바람도 그늘을 품어 제법 선뜩하였다. 담요라도 걸쳐주려고 어머니를 향해 다가가던 그는 너무 어두운 탓이었는지, 아니면 그이 소망이 빚어낸 환상이었는지, 가면처럼 굳어 있던 어머니의 얼굴이 기이하게 움직이며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았다. 얼굴 전면을 뒤덮은 주름 때문에 명확하지 않았으나 그것은 웃음인 것이 분명했다. 어머니가 그를 향해 마지막으로 웃어 보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거렸다. 어머니는 웃음을 아주 빨리 잊어버렸던 것이다. 말보다 먼저.
내 새끼, 그래 한 시상 재미났는가?
그의 귀에 와 닿은 것은 분명 어머니의 음성이었는데, 순간 놀랄 시간도 없이 묵은 기억 하나가 어두운 심해에서 전기뱀장어처럼 하얀 불빛을 반짝이면 의식의 표면으로 꿈틀꿈틀 솟아나왔다.
어매, 나가 왜 세상에 나왔는중 안가?
바삭바삭, 경쾌한 소리가 좋아 멍석에 깔린 콩대 위를 팔짝팔짝 뛰어다니던 그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명성 한켠에서 콩대를 두드리는 중이었다. 낭자한 머리에 허옇게 먼지를 뒤집어쓴 어머니는 일손을 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왜 나왔는디?
어매 뱃속에 있는디 되게 심심허잖애. 시상에 나가먼 먼 재밌는 일 있능가 글고 얼릉 나와부렀제.
아직 젊었던 어머니는 땡볕에 까맣게 그을긴 했으나 지금과 달리 윤기 흐르는 얼굴 가득 웃음을 피워올리며 물었다.
내 새끼, 그래 시상에 나와봉께 재미난가?
이.
그는 자글자글 타오르는 한여름 태양처럼 숨이 넘어갈 듯 웃어젖히며 땀에 젖은 채 마른 콩대 위를 팔짝팔짝 뛰었던 것이다. 그래, 한 세상 재미났는가, 하고 어머니는 물었다. 혹은 그의 마음이 물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궁이 속의 불길에 홀린 듯 한 세상이 훨훨 날았으니, 재미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본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가면 같은 얼굴이었고, 좀 전의 기이한 미소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담요 한 장을 어머니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얇은 담요조차 이겨낼까 싶게 어머니의 어깨는 앙상했다. 그림자는 시시각각 짙어지는데 그는 밥할 생각도 잊고 어머니 곁에 다시 앉았다. 노망든 어머니가 하루 빨리 가기를 바란 적도 없었고, 오래 살기를 바란 적도 없었다. 해가 뜨면 새로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듯 곁에 있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왔을 뿐이다. 어머니는 어머니였고 세상이었으며 유일한 동무였다.
영원처럼 느리게 그러나 쏜살같이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 아랫마을부터 기어올라온 어둠이 어머니와 그를 집어삼키고 산 정상을 향해 달려갔다. 낡아 부스러질 듯한 두 개의 기둥처럼 어머니와 그는 세월을 버티고 있었다. 아직 달은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후면 손톱 끝만 한 그믐달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