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묘는 우리나라 선사시대에 속하는 청동기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돌무덤으로 상석(上石) 밑 부분을 돌로 괴어 받치고 있어서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지석묘는 전 세계에 7만 여기가 있으며 한반도에는 4만 여기가 보고되고 있다.
한반도에 지석묘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땅위 지상에 4면을 단단하고 넓은 돌로 막아 상자형 묘실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상석을 올린 탁자형 모양의 북방식과 땅속 지하에 상자형 묘실을 만들어 그 위에 상석을 놓고 돌을 괴는 바둑판형 모양의 남방식이 있다.
남방식은 다시 지석이 있는 기반식(基盤式)과 지석이 없는 무지석식(無支石式)으로 나누어지는데 무지석식은 남방식처럼 지하에 묘실은 만들었으나 돌을 괴지 않고 묘실위에 상석(뚜껑)을 바로 올리는 돌연변이형 지석묘이다.
지석묘는 제주도를 포함하여 전국에 분포하나 한반도에서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곳은 호남지방(湖南地方)이며 이중 절반이상인 7~8000기가 전라남도에 있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해남군내의 지석묘는 88개 군에 830여기로 확인되었다.
산이면, 마산면, 화산면, 현산면, 송지면 등 5개 지역 일대에 주로 분포되어 있으며 몇 기는 기타 지역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가장 많이 발견된 곳은 무려 53기가 한곳에 군집을 이루고 있는 화산면 방축리 고인돌이다.
해남군내에서 발견된 지석묘군은 주로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바둑판 형식의 남방식으로 일열 내지 이열을 이루며 그 방향은 일정치 않은데 지역 특성에 맞는 형식을 취하다보니 다른 지역과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개석식을 선호한 듯하다.
지석묘는 그 수량이 많아서 다른 문화재에 비해 소홀히 다뤄지며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전국 각지에 흩어져 각기 다른 특징을 간직하고 있기에 중요시 되어야 한다.
특히 마산면에 산재되어 있는 지석묘는 조상의 얼이 담긴 소중한 유산이기에 그 어떤 문화재보다 가치가 높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토끼 잡으려고 돌창 들고 뛰어 다녔던 시절을 상상해보면 그 가치의 소중함이 새삼 일깨워진다.
마산면에 현재 분포되어 있는 지석묘로는 안정리, 외호리, 산막리, 학의리, 장성리, 고암리, 맹진리, 북창리이며 북창리에서 외호리로 가는 곳에 동서 2열로 20여기의 지석묘가 200m에 걸쳐 산재해 있으나 대부분 측정이 불가능하며 일부는 도로개석으로 인해 이동되었다.
또한 화내에서 학의리로 가는 도로에서 연구리로 갈라지는 노하리 삼거리 동쪽에 동서방향의 지석묘 14기가 터만 남아 있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 외호지석묘군 (外湖支石墓群, 청동기시대)
외호리에서 남동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화내리~맹진리간 도로 좌측 축사 뒤에 2기의 지석묘가 자리하고 있다. 군집 방향은 북동~남서로 1열을 이루며 지석은 확인되지 않는다.
지석묘의 규모는 270×240×40㎝로 상석의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다.
■ 산막 제1 지석묘군 (支石墓群, 청동기시대)
산막마을 입구 버스정류장 맞은편 500여년의 수령을 가진 노송과 함께 15기의 지석묘가 위치한다. 원형의 군집상태를 이루고 있으며 모든 상석이 지면과 밀착하여 지석이 보이지 않는다. 청동기시대의 유물로 특이한 점은 1기의 상석 윗면에 폭 9㎝의 정교한 원형 구멍이 패여 있다는 점과 다른 1기에서는 상석 중앙부에 반달형의 구멍 2개가 마주보고 있어 동물의 발굽과 같은 형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상석의 규모는 400×210×70㎝이다. 설화에 의하면 옛날 어떤 장군이 산막리 뒷산인 무진봉에서 말을 타고 뛰어내려 생긴 말발굽 자국이라고 전하며 주민들은 이곳을 “독배기”라 부른다.
■ 산막 제2 지석묘군 (支石墓群, 청동기시대)
산막마을 회관 앞에 위치한 유자나무 밭 가운데에 3기의 지석묘가 민묘와 함께 산재해 있다. 상석의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며 모두 지석이 확인된다. 상석의 가장 큰 규모는 240×200×160㎝이다. 장축방향은 동~서이며 4개의 지석이 확인된다.
■ 학의 지석묘군
마을 서편 김재의씨 밭과 안산김씨 선산에 20기의 지석묘가 등고선과 나란한 동-서 방향으로 군집을 이루고 있다.
지석묘는 지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혼재되어 있다. 이중 1 기는 사석이 훼손되어 하부구조(석실)가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데 규모는 75*76*189cm이며 현재 파괴되어 상석의 일부만이 석벽 위에 놓여 있는데 이곳에서 석검 등 석기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 더 많은 지석묘들이 있었다고 하나 밭을 개간하면서 많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 고암지석묘군(姑岩支石墓群)
고암 마을 마산 농협 창고 뒤쪽으로 조금 떨어진 숲속에 8기의 지석묘가 있다. 동서방향으로 8기가 1열을 이루고 있고 고암에서 원항마을로 넘어가는 도로 왼쪽 언덕에 북동, 남서방향으로 15기가 분포한다.
■ 월산 지석묘군(청동기시대)
■ 북창 지석묘군(청동기시대)
북창리 서쪽 개인소유 양곡보관창고 뒤에 북창680-5에 북동-남서 방향의 지석묘 2기가 위치하고 있다. 북창마을에서 외호마을로 가는 곳에 동서 2열로 20여기의 지석묘가 200m에 걸쳐 산재해 있으나 대부분 측정이 불가능하며 일부는 도로개석으로 인해 이동되었다.
■ 맹진 지석묘군(청동기시대)
맹진리 산 80-3번지에 고인돌 7기가 있다. 이 지역은 오랜 옛날부터 큰 부족이 살았다고 추측된다.
■ 안정지석묘군
안정마을 큰방죽저수지에서 연구리로 가는 도로우측 야산에 동서방향의 11기와 구마산중학교 옆 북으로 200m 지점인 화내와 연구리간 도로우측 논에 동서방향으로 8기의 지석묘군이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