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China, 중국집, 화교, 뙈놈, 사대주의, 중공군, 인해전술, 싸구려 제품 등으로 연상되는 나라. 바로 이웃에 있으며 마음이 편치 않은 나라. 일년에 중국을 찾는 한국인이 백만이 넘고, 한국을 찾는 중국인이 백만을 넘는 현실에서 중국여행을 다녀온 것이 뭐 별거라고 여행기를 쓰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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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글을 읽다보면 다른 일반적인 패키지여행이나 수학여행 등과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읽다 보면 좀 딱딱한 부분도, 좀 웃기는 부분도, 어쩌면 답답한 부분도 보일 것이다.
나의 이번 여행은 중국인과 중국 문화를 좀 더 잘 알기 위한 여행이었다.
일정은 2월 21일 인천에서 위동해운의 배 뉴골든브리지호를 타고 중국 산동성 청도항 도착하면 곧바로 우리나라 속담에도 자주 등장하는 태산으로 이동하여 태산과 대묘를 구경하고 공자님의 고향인 곡부로 가서 공자 관련 유적을 살피고 산동성의 성도인 제남에서 산동성 박물관으로 가서 구경하고 청도로 되돌아와 귀국할 예정 이었다.
뭐 특별하지도 않은 여행코스이지만 비용이 훨씬 저렴하고 편리한 패키지여행을 채택하지 않고 훨씬 많이 들고 고생스러운 배낭여행을 선택했냐면, 패키지여행은 너무 쉽고 코스별로 배정된 시간이 너무 짧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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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성 山東省 '루[鲁]'라고도 부르며, 성도는 지난[济南]이다. 중국 황허강의 하류, 타이항산 동쪽의 황해와 보하이해[渤海]의 연안에 있으며, 해안선 길이는 3000여㎞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제나라와 노나라의 영토였고,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후 제북·임치·등의 군(郡)이 설치되었으며, 청나라 때 산둥성이 설치되었다. |
면적 15만여㎢, 행정구역은 지난·칭다오[青岛]·웨이하이·옌타이·타이안·짜오좡 등 17개 지급시(地級市)와 31개 현급시(县級市), 60개 현(县)으로 이루어져 있다. 40~50만 년 전에 이위안원인[沂源猿人]이 살았으며, 룽산문화[龙山文化]를 이룬 곳으로, 인류문화가 일찍부터 꽃피웠다. 인물도 많이 배출되었는데, 공자(孔子)가 취푸에서 태어났고, 묵자는 텅저우, 맹자는 쩌우청, 손자(孙子)는 후이민 출신, 서예가 왕희지는 린이 출신이다. |
여행 첫날 2012.2.21
출발 2일전 위동해운에 전화로 청도행 배표와 선상비자를 신청했더니 출발 전날 인천항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해 배 출항시각이 늦춰져서 오후 4시30분까지 인천항 제2여객선 부두까지 도착하라는 문자가 왔었다. 남춘천역에서 12시에 전철을 타고 상봉역까지, 상봉역에서 7호선으로 온수, 다시 1호선을 타고 인천역에 도착하니 3시가 조금 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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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역앞 기념물 |
동인천역에 내려야 되는데 실수로 인천역까지 오는데 요금이 기껏 2900원 박에 안된다. 남춘천에서 상봉까지 2500원인데, 그럼 상봉에서 인천까지 400원이라는 말인지..*^0^*..
실수로 인천역까지 오기를 잘했다.
역을 나서자 보이는 것이 증기기관차 모형의 석조물이고 바로 길 건너편이 유명한 인천 차이나타운이었다. 차이나타운을 잠깐 구경하고는 무려 2000원짜리 짜장면을 먹었다. 중국집 여사장의 말로는 수도권에서 전철을 공짜로 타고온 노인들을 위해 현금을 낼 경우 2000원만 받는다고 한다. 23번 버스를 타고 제2 여객선 부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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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입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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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타운 풍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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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타운 풍경 |
내가 본 중국, 중국인 1
1994년도에 처음 중국 위해와 연대, 청도에 갔을 때 본 중국인의 모습은 마치 한국인이 10일 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고 씻지도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일부 농민공(시골에서 올라와 밑바닥 생활을 하는 노동자)들을 빼고는 하루를 꼬박 새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불과 10여분만에 도착한 여객선부두의 시설은 많이 좋아졌지만 곳곳에 쌓인 보따리 상인의 짐보따리와 출항을 앞둔 시간이라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모습은 18년전이나 별다른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카드로 배삯을 결제하고 출국장으로 들어서서 면세점이 보이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어가서 집사람이 부탁한 설화수 화장품을 찾아보았더니, 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면세점인데도 설화수 제품은 보이지 않고 비슷한 이름의 제품(짝퉁?)만 보인다. 내가 필 담배로 빨간 포장의 던힐을 찾았더니 미화 17$, 국산 담배인 디스도 17$, 그래서인지 담배를 사는 모든 사람들이 국산담배는 찾지 않고, 외국산 담배만 사고 있었다. 하긴 나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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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여객선부두 입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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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 대합실 앞, 보따리 상인들이 보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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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합실 풍경 |
내가 본 중국, 중국인 2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낱말 꽌시(關係 关系): 규정상 안 되는 일도 꽌시가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잘못하면 매우 위험하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지는 법
잠시 뒤 버스를 타고 1분정도 가서 골든브리지호에 올라탔다. 27,000톤 규모의 여객 화물 겸용선이어서인지 예전에 타 보았던 6,700톤급에 비해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배안에 에스컬레이터도 설치되었고, 로비는 최소한 2급 관광호텔 수준은 되어보였다. 2층 침대로 구성된 3등 선실의 아래층 침대가 내 자리여서 찾아가 보니 어느 새인가 위층에는 중국인 보따리 상인이 내복 차림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배낭을 그냥 맨 체 배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볼거리나 중국 사람들과 놀만한 곳이 없는가하고 찾아 돌아다녔다. 예전에 탔던 배는 규모는 좀 작아도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 재미있었는데.. 이제는 장기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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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뒤편의 휴게시설, 엔진소리가 무척 시끄러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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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의 측면과 인천항 부두의 저녁풍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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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중국장기, 한국과는 룰이 다르다. |
배 후미의 모습, 붉은 물체는 구명선 |
내가 본 중국, 중국인 3
알고 보면 매우 무서운 말 메이꽌시(没關係 没关系): 흔히 ‘괜찮다. 상관없다. 문제 없다. 염려 없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말이지만, 바로 옆에서 누가 죽어도 나와 꽌시가 없는 사람이라면 경찰에 신고조차 안하며 쓰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장기 두는 것을 한참 보다가 저녁식사를 판다고 하여 식당에 갔더니 너무 비싸서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말았다.
저녁 8시에 배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서 갑판으로 나가보니 오색찬란한 불꽃들이 밤하늘은 밝게 수놓고 있었다. 날씨가 좋은 계절이라면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멋진 추억이 될듯하다.
TV를 보다가 11시가 넘어 객실로 가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배의 진동이 심해 자주 깨어났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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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666 |
배 레스트랑의 메뉴와 가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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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선을 쳐놓고도 넘어가는 사람에게는 여직원이 열어준다 |
내가 본 중국, 중국인 4
Made in China 싸구려와 최고급의 극심한 양극화된 물건들
한국에 유학 온 중국학생이 “서울 지하철에서 파는 싸구려 물건은 중국제라서 안 산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분명 중국제 싸구려는 저질에 불량품이 많다. 하지만 얇은 비단에 양면에 각기 다른 모양의 수를 놓은 것이나 수십억원이 넘는 옥제품 등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기도 한다.
여행 둘쨋날 2012.2.22
아침에 일어나 어슬렁거리다가 컵라면과 크래커 몇 조각과 커피한잔으로 끼니를 때웠다.
출국 전에 미리 중국비자(수수료 포함 45,000원)를 신청하지 않고 선상비자(인민폐 190元=35,340원)를 받을 예정이라 카운터에 이야기했더니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란다. 배에서 내려 청도항 세관(해관 海關이라고 함)에서 기다리며 발급받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24시간내로 거주 예정지 관할 공안파출소에 신고를 해야 된다고 한다.
간단한 검사를 받고 청도항을 벗어나 청도역 방향으로 걷다보니 공안 파출소에 가서 신고를 하렸더니 자기네 관할이 아니라고 한다. 물어물어 관할 파출서로를 갔더니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몰라 쩔쩔매다가 내가 묵을 예정인 빈관(여관)에 전화를 걸어 뭐라고 하더니 빈관에서 신고를 하면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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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따오 역(청도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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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따오역앞에서 지도와 신문파는 노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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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을 경유하는 열차. 16량이나 되었다. |
결과적으로 허탕을 치고 칭따오역까지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도중에 있는 사설 매표소에서 태산행 기차표를 구입했는데 5元을 수수료로 지불을 했다. 우리나라의 1980년대처럼 칭따오 역앞에는 관광지도가 없었고 대신 지도와 신문을 파는 노인들이 많이 보였다.
X레이 검색대가 설치된 대합실을 지나 승강장으로 가보니 무슨 기차가 이렇게 긴지 정신없이 내자리가 있는 칸까지 뛰었다. 청도에서 제남까지 무려 5시간 동안 차창을 유심히 봤지만 저멀리에도 산이라고는 보이지를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 넓은 밭과 집, 포플러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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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내의 청소용걸레+온수통+양동이+쓰레기봉투 |
어린이 키 기준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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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을 경유하는 열차의 딱딱한 의자칸, |
내가 본 중국, 중국인 5 중국의 열차표 열차의 종류: 초고속열차-이니셜 D, 직달열차-Z, 특쾌열차-T, 쾌속열차-K, 내부열차-N, 보통열차-이니셜 없음 좌석등급: 부드러운 침대軟臥, 딱딱한 침대硬臥, 부드러운 의자軟座, 딱딱한 의자硬座 ①출발지, ②열차종류와 번호, ③도착지, ④출발시각, ⑤객실좌석, ⑥요금, ⑦에어컨 딱딱한 의자, ⑧당일열차만 이용, ⑨이름 기록 칸, 내 이름은 중국 컴퓨터로는 입력을 못시킴 ⑩신분증(여권) 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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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 泰山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성스러운 산 중국의 오악(五岳)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며, 예부터 가장 성스럽게 여겼던 산이다. 역대 제왕들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봉선의식을 거행했다. 기원전 219년 진나라 시황제(始皇帝)를 시작으로 한나라 무제(武帝)를 포함 많은 제왕들이 이곳에서 봉선의식을 치렀다. 한나라 무제는 5번, 청나라 건륭제는 11번이나 봉선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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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外村에서 바라본 태산 |
신성시하기는 일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타이산에 한번 오를 때마다 10년씩 젊어진다고 누구나 타이산 등정을 평생의 숙원으로 삼을 정도여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산 정상까지 난 7,412개나 되는 돌계단은 발길에 닳고 닳아 반질반질하다.
신성시되다 보니 타이산에는 각종 종교 사원과 사당, 누각들이 들어섰는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다이먀오다.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올렸던 곳으로, 티엔황디엔(天皇殿)은 북경 자금성(紫禁城)의 타이허디엔(太和殿), 취푸(曲阜) 공자묘 안의 다청디엔(大成殿)과 함께 중국 3대 전각으로 꼽히는 곳이다. 1009년 송나라 때 처음 건축되었으며 높이 22m, 너비 49m의 크고 화려한 전각이다. 현재의 건물은 17세기에 재건한 것이지만 송나라 때의 거대한 벽화는 그대로 남아 있다.
산 정상에는 비샤위안쥔(碧霞元君)이라는 여신을 모신 비샤시(碧霞祀)라는 사당이 있다. 이외에도 타이산에는 이티엔먼(一天門), 중티엔먼(中天門), 난티엔먼(南天門), 다이쭝팡(岱宗坊), 훙먼궁(紅門宮), 완셴러우(萬仙樓) 등의 많은 명소가 있다.
산 곳곳의 암벽과 수백 개의 비석에 새겨진 글자와 경문이나 시문도 타이산의 명물이다. 수천 년에 걸쳐 다양한 서체로 새겨진 글자들은 하나하나가 보기 드문 명필인데다 그 안의 다채로운 의미를 곱씹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다.
봉선 [封禪]
중국의 제왕(帝王)이 천지를 제사지낸 의례로 최초로 봉선한 것은 진시황제였는데 BC 219년 태산의 산정에서 하늘을 제사지내고, 양부라는 작은 동산에서 땅을 제사지냈다.
원래는 불로장생을 기원한 의식이었으나 한무제 때부터 대규모 정치적인 제사가 되었다.
봉(封)이란 옥으로 만든 판에 원문(願文)을 적어, 돌로 만든 상자에 봉하여 천신(天神)에게 비는 일이었고, 선(禪)이란 토단(土壇)을 만들어 지신(地神)에게 비는 일이었다
여행 세쨋날 2012.2.23 전날 저녁에 태산 역에 내리다가 삐끼 아주머니가 1박에 50元 이라는 말에 혹해 따라갔더니 자가용 기사에게 인계를 하여 자가용을 타고 한참 가더니 비교적 깨끗한 빈관에서 세운다. 요금을 물어보니 100元, 한푼도 못 깍아준다기에 다른 곳으로 옮기니 거기서는 80元, 더 깍으려니 공조(에어컨)를 못 틀어주는 대신 70元 내란다. OK를 하고 깍은 10元을 자가용 기사에게 주고 씻고 자려는데, 엑~ 알고보니 보온을 에어컨으로 하는 줄 몰랐기에 밤새 떨면서 잤다.
아침에 계란탕을 넣은 국수와 호떡 1개를 9元에 사먹고 주위를 돌아보니 내가 묵은 지역이 태산으로 오르는 중요 입구 중 한 곳인 천외촌 앞 숙박업소단지였다.
중국인처럼 무단횡단도 해보고 구경도 하다가 매표소로 향했는데 한마디로 웅장한 모습이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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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에서 첫날 묵은 방 추워서 혼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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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가 1m가 넘는 향을 사서 태산까지 올라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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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와 호떡. 추운데도 식당에 난로를 안피웠다 |
내가 본 중국, 중국인 6 중국은 대부분의 시설들이 우리나라에 비해 크고 웅장하였다. 그러나 연탄은 지름 12cm 정도로 우리나라 것보다 훨씬 적다. 또 기와집에 용마루가 없는 건물이 많으며 처마도 거의 없거나 아주 짧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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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주변 경치를 살피다 매표소로 향하다가 화장실에 들려 소변을 보다가 소변기 위에 붙은 문구를 보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간단히 번역을 해보면 소변기 앞쪽으로 한걸음 걷는 것은, 문명을 크게 발달시키는 일이다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다가 생각지도 못한 횡재를 만났다. 내 머리칼을 본 창구 여직원이 60살이 넘었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 할인받는다고 하며 신분증을 보여 달란다. 아직 생일이 안 되었기에 혹시나 하며 제시했더니, 편도 버스비와 보험료를 포함한 정상가 160元 짜리 대신 95元 짜리 입장권을 준다. 땡 잡았다. 90년대에는 중국 관광지와 명승고적의 입장료가 중국인과 외국인은 차이가 많았다. 만리장성은 중국인 10元, 외국인 30元 이었고, 천단은 중국인 1元, 외국인은 무려 157元일 정도로 극심한 바가지를 씌웠는데 이제는 외국인과 중국인 요금이 같을 뿐 아니라 할인도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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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주 중의 하나, 용 조각이 매우 인상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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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 입구의 모습, 열주 넘어 태산이 보인다. |
소형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꼬불꼬불 산길을 달려 중천문에서 내렸다. 여기서부터 남천문까지는 길이 험해서 케이블카를 운행하는데 예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던 터라 계단을 따라 오르기로 하였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 무릎 관절이 안 좋은 내가 험하기 유명한 태산을 걸어서 오르려는 것은 별 이유가 아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가면 태산의 경치와 명승을 제대로 못보고, 편도만 케이블카를 탄다면 계단을 내려갈 때 보다는 올라가는 것이 다리에 부담을 덜 주기 때문이다. 또, 젊은 사람들이 3시간에 오른다면 나는 4시간에 오르면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계단을 오르기 전에 산불 감시하는 사람에게 담배를 피울 곳을 물어보니 건물 뒤에서 숨어서 피우란다. 참고로 태산 전역이 금연구역이다. 하지만 골초인 나는 모르는척하고 중국인들이 피우는 장소만 만나면 한 대씩 피워 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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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천문까지 다니는 소형버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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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천문 일대의 상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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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지붕, 기와집에 용마루와 처마가 거의 없다. |
내가 본 중국, 중국인 7
‘중국인을 돼지우리에 넣으면 돼지들이 더럽다고 우리를 뛰쳐나간다’는 악의 섞인 이야기는 중국인을 비하하려고 일본인이 지어냈다고 한다. 또, 중국 화장실이 얼마나 더러운지 중국을 간 한국인, 특히 여자들은 깨끗한 화장실만 보면 용변이 안 마려워도 일을 보고나오는 화장실 병에 걸린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의 거리와 화장실은 매우 깨끗해졌다. 거리는 한국이 더 지저분하게 보일 정도로..
남천문을 향한 첫머리부터 계단인데 생각보다는 경사가 완만하였다. 조금 걷다보니 평탄한 길도 나오고.. 길가 곳곳의 나무에 건강기원 등을 적은 빨간 리본이 즐비하게 걸려있다.
평일날 오전인데도 벌써 걸어 내려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아마 태산의 일출을 보려고 전날 저녁에 오른 사람인 듯한데 그날 날씨가 뿌옇게 흐려서 일출을 못 본듯하다. 하기야 태산일출은 3대가 공을 세워야 볼 수 있다던가..
기념품 가게에는 다양한 물건이 많았지만 생각 밖으로 많이 팔리는 것이 5~10元짜리 지팡이였다. 별 생각 없이 걷다보니 나이 든 사람만이 아니고 젊은이와 간혹 어린 청소년도 지팡이를 짚은 것이 보였다.
태산을 오르며 경치를 볼 때 나도 몰래 ‘멋있다’는 감탄사를 5~6번 정도 말한 것 같다. 하지만 설악산을 갈 때도 그 정도 이상 감탄 한 것을 본다면 2월말의 태산 경치는 10월달 단풍이 덮인 설악산보다는 못한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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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문을 향한 길, 첫머리부터 계단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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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보이는 평지, 빨간 리본이 인상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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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의 기념품 가게, 출처 blog.naver.com/yamapi0719/30121590448 |
내가 본 중국, 중국인 8
청도에서 기차를 타고 오며 창밖을 계속 내다보며 오던 중 뭔가가 눈에 설어 다시금 유심히 보았더니 드넓은 밭들의 경계를 이루는 밭두렁이나 밭둑길이 보이지를 않았다. 분명 밭과 밭 사이의 경계로 보이는, 넓고 좁은 길들은 자주 보았지만 우리나라처럼 밭보다 몇 십 센티 이상 높은 밭둑은 볼 수가 없었다.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며 걷는데, 앞쪽에서 내려오던 중국인 커플이 커다란 바위가 지붕의 처마처럼 튀어나온 곳에서 재미있게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그 바위를 헤라클레스처럼 두손으로 들어 올리는 자세로 찍으라’고 조언을 했더니 사진을 찍고 나서 확인하며 킬킬대며 웃는다. 나도 함께 웃다가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한국인이라고 말하고 헤어지는데 그들이 들고 왔던 지팡이를 ‘앞으로는 더 험하니 도움이 될 것이다’며 내게 주었다. 결과적으로 그지팡이가 무척 도움이 되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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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건륭제 글씨 앞에서 |
가도 가도 보이는 것은 계단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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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의 풍경. 출처 전과 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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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때마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 한 번 구르면 주차장까지 단번에 갈듯하다 |
오르다가 잠깐 쉬는 틈에 노파가 포함된 중국인 가족이 보여 노파에게 연세를 물으니 75살이며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어 왔단다. 이 가족은 내가 옥황정 구경을 마치고 남천문에 도착했을 때 또 만났었다.
그 다음에 쉴 때는 남자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경사 50도가 넘는 계단을 오르는 것을 보고 나이를 물어보니 4살이란다. 고추를 덜렁거리며(중국에서 남자아이는 고추를 내놓고 다니게 된 바지를 가끔 보였다) 걷다가 남천문을 100여미터 남겨두고는 엄마와 아빠에게 번갈아 업혀 올라갔지만 참 기특해 보였다.
남천문 200m 전에 벽하사로 가는 길이 나를 유혹했지만 잘 모르기에 가파른 남천문 길을 계속 올랐다. 알고 보니 그 길이 쉽고 빠른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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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또 오르고 경사도 50% 이상 계단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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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글씨는 볼거리 겸 휴식에 도움이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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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진기로는 멋진 장면을 못찍어서.. 출처 http://www.slrclub.com/bbs/vx2.php?id=user_essay&no=33953&nsk=1.1331559176.d7d23a7a0a19a4e062a19485db81f804 |
태산 등정에서 가장 험한 구간이 십팔반에서 남천문까지 800여m 구간인데, 고도 차이가 무려 400m라고 한다. 이 짧은 구간의 계단 숫자가 무려 1633개라고 한다. 안 믿기면 나중에 갈 경우 직접 세어 보시기 바란다. 만약 세다가 숫자를 헷갈린다면, 미안하지만 내려가서 다시 세어야지 별 수가 있나요?
남천문을 지나면 상가가 나오고 그 다음에는 하늘 길이라는 천도가 나타난다. 그 높은 산길에 거의 2차선 도로 만큼 넓은 길을 어떻게 인력만으로 고아를 하고 건물을 지었는지 마냥 신기하다. 특히 오르는 도중에 100㎏ 정도 되는 돌을 인부 6명이 목도로 지어 오르는 것을 본 터이라 더욱 그 노고가 느껴진다. 남천문 일대 상가의 식당과 기념품점의 가격이 비싼 것도 어느 정도 수긍이 되었다.
조금 걷자 벽하사가 나왔다. 벽하사 아래쪽에 향을 피우는 곳이 보여 가보았더니 향을 태우는 곳이 마치 용광로처럼 거센 불길을 내뿜고 있었다. 경치가 좋을 듯하여 주변을 둘러보지만 날씨가 안 도와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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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문이 보이면 고생 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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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문 안쪽에 조성된 상가, 여관, 식당 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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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황상제의 딸 벽하원군을 모신 벽하사 경내 |
티끌모아 태산?
우리나라 속담에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다. 그 속담이 가능할까?
누가 계산한 것이 있었다. 티끌의 부피를 먼지 하나 즉 0.0000001㎥로 하여, 태산의 부피, 압력, 중력, 압축 등을 종합하여 9,856,854,860,871,816,000,000의 티끌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도 태산에서 510g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계산하지 못했다. 왜 그럴까요?
태산의 정상에 오르면 서해바다가 보인다고 한 옛사람도 있었지만 거리상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아마 그사람은 산자락에 걸린 구름을 바다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기저기를 살펴보니 곳곳의 바위에 황금빛, 붉고, 검은 한자를 새겨놓은 것이 멋져 보이기보다는 난잡해 보일 정도이다.
인상적인 것이 무자비(無字碑)이다. 한무제가 봉선을 하려고 옥황정에 올랐을 때 감회를 남기기 위해 큰 비석을 준비하였지만 정작 풍광에 압도되어 아무런 글도 쓸 수 없어 텅 빈 비석만 남겼다고 하는 것이다. 그 유명한 태산 정상에는 옥황상제를 모시는 옥황정이 세워져있고, 그 앞 향을 태우는 향로 주변 쇠사슬에는 수를 헤기 어려울 정도의 자물통 들이 걸려있었다. 나오는 길에 중국 돈 5元짜리 지폐 뒷면에 그려진 오악독존(五嶽獨尊) 글자가 새겨진 바위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렸더니 사람들이 너무 많이 줄을 서있기에 그냥 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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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 명소 중 하나인 무자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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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 정상에 설치된 옥황정. 출처 전과 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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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황정 내부, 열쇠장사 돈 벌겠다. |
내가 본 중국, 중국인 9 중국의 화폐는 우리나라처럼 동전과 지폐로 화폐는 1펀(分), 2펀, 5펀, 1쟈오(角), 2쟈오, 5쟈오, 1元, 2元, 5元, 10元, 20元, 50元, 100元짜리가 있고, 동전은 1쟈오(角), 2쟈오, 5쟈오, 1元짜리가 있다. 100펀=10쟈오=1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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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코스는 남천문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중천문으로 가서 그곳에서 일천문까지 걸어가기로 하였다. 편도 요금은 80元이지만 그렇게 힘들게 걸어 온 길을 불과 10분 정도에 손쉽게 내려간다.
중천문부터 일천문까지 걸어내려가는데, 오전에 걸은 계단보다는 훨씬 수월하지만 80㎏ 이상이거나 무릎이 안 좋은 사람에게는 무리가 심하다. 본래 이런 사람들에게는 계단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힘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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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황정 옆 전파송신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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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봉(?) 정상에 세워진 빈관(여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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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하사에서 향을 태우는 장면 |
내가 본 중국, 중국인 10 중국인의 허풍은 예부터 너무 심하다. 백발 삼천장(흰머리카락 길이가 9㎞), 삼천갑자 동방삭 처럼.. 옆의 사진은 하산 길 통로 위에 걸쳐 쓰러진 나무인데 400년이 되었다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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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문까지 가는 길은 사진만 올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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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관에 모셔진 옥청원시천존신위 |
호천각 출입문 석벽 틈사이에서 자라는 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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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새겨진 점입가경 |
도관 입구 양쪽에 사천왕처럼 서 계신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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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모궁 내부 단청, 아무래도 벽지 같다. |
일천문쪽 매표소가 있는 만선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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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문 주변 석사자 |
일천문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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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외촌의 가로수(?) 2월에 빨간 꽃이 피어있기에 가서 보았더니 조화를 공사용 끈으로.. |
공간이 어정쩡하게 비었네..*^0^*..
중국 돈(人民幣 렌민삐) 1위앤 元의 가치는 2012년 2월 현재 한국 돈 177원 정도이지만 살 때는 190원, 팔 때는 169원 정도 하네요. 현지에서 계산할 때는 쉽게 1元을 한국 돈 200원으로 계산하는 것이 빠르더군요.
첫댓글 짱구박사님이 올리신 파일이 잘안열려서 제가 다시작업했어요!
앉아서 중국여행하게 해주신 짱구박사님 감솨~~~~~!!
어제는 분명히 사진이 떴었는데.......이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