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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 〈그리스〉 〈록키호러쇼〉 〈셜록홈즈〉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하면서 개성 강한 배우로, 인디밴드 보컬로 활약해온 송용진씨가 ‘1인 뮤지컬’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09년 선보인 컬트 뮤지컬〈치어걸을 찾아서〉에 이어 ‘송용진의 이상한 뮤지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내놓은 〈노래 불러주는 남자〉. 그는 이 뮤지컬의 연출・음악감독・극작・작사・연기까지 1인 5역을 맡았다.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사랑 노래를 부른다는 내용의 모노 뮤지컬이다. 여느 로맨틱 뮤지컬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레퍼토리지만,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배우 송용진만의 B급 영화 같은, 기존에 없던 새롭고 독특한 무대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송용진의 이상한 뮤지컬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었던 〈치어걸을 찾아서〉에서도 연출・음악・연기를 모두 소화했던 그는 이듬해 대학로로 진출해 앙코르 공연을 할 정도로 ‘의외의 성공’을 거두면서 새로운 창작 뮤지컬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을 얻었다. 그가 만드는 ‘이상한 뮤지컬’은 그의 말마따나 딱 그의 취향을 보여준다. 그는 14년간 뮤지컬을 해오면서 4~5년 전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창작 뮤지컬이 많아졌다지만, 대부분 비슷비슷한 공연들이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소재로 따온 로맨틱 뮤지컬만 많았지 정작 순수 창작물은 많지 않았거든요. ‘남들 다 하는 것 말고 나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공연을 해보면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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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록 뮤지컬이 없었어요. 뮤지컬 배우 10년, 록 음악도 10년을 했으니까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제작비 50만원을 들여 홍대 클럽 무대에 〈치어걸을 찾아서〉를 올렸다. 공연 첫날 웃다가 뒤로 넘어진 관객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제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걸 관객들도 웃고 즐기는 것을 보면서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보통 뮤지컬 제작을 하는 사람은 자본부터 생각하는데, 다양한 콘텐츠를 가지고 모험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만드는 ‘이상한 뮤지컬 시리즈’는 적은 비용으로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실험하고, 경험을 쌓으면서 발전시켜나가려 합니다. 저의 이 도전이 창작자 중심으로 시장구조를 바꾸는 데 작으나마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의 어릴 적 꿈은 로커였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밴드활동을 하며 꿈을 키워왔고, 대학에 간 이유 역시 음악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가수가 되거나 음악을 할 수 있는 길이 대학에 가서 강변가요제나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빠른 길이었죠.”
공대에 들어가 음악 동아리 활동을 하던 그는 서울예전 실용음악과에 다시 입학했다. 그가 뮤지컬에 입문한 것은 홍대 앞에서 그의 록 공연을 보던 한 뮤지컬 연출자가 출연 제안을 하면서였다. 그는 1999년 뮤지컬 〈록햄릿〉에 캐스팅돼 뮤지컬 무대에 처음 섰다.
“긴 머리에 허스키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라며 오디션 제의를 받았어요. 당시는 뮤지컬 배우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주목을 많이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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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역 등을 맡으면서 계속 뮤지컬 무대에 서왔다. 꾸준히 활동했지만 개런티를 떼인 적도 있고 같이 활동하던 밴드 멤버가 등을 돌리는 등 심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도 있었다.
“20대 중반엔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었어요. 밥을 굶기도 하고, 전기가 다 끊긴 지하 연습실에 누워 사흘 동안 생각만 하기도 했어요. ‘활동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요. 그런데 그만두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틈나는 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생계유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어요.”
그때 경험은 지금도 힘들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그는 최근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서 첫 주연을 맡아 촬영을 마쳤다. 멋진 게이로 나오는 그는 “트랜스젠더(헤드윅〉)부터 바이섹슈얼(〈록키호러쇼〉), 게이(〈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까지 성소수자 역할은 골고루 다한 셈”이라며 웃었다. 6년간 공연해온 〈헤드윅〉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 영화 데뷔작에서 또 다시 성소수자 역할을 맡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그런 고민을 날릴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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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니아인 그는 영화를 직접 만들겠다는 욕심도 드러냈다.
“이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것도 ‘나중에 내 영화를 만들 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10년 동안 뮤지컬 배우를 한 후 직접 뮤지컬을 만든 것처럼 배우로 활동하면서 영화를 배우자는 의도였죠.”
‘멋진 게이’ 역을 맡아 한겨울에 얇은 옷 하나만 걸친 채 밤샘 촬영을 하느라 고되기도 했지만 “영화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았다”며 “DSRL로 찍는 단편부터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영화 〈원스〉처럼 음악이 기반인 영화나 뮤지컬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인디레이블의 음반 제작자이기도 한 그의 꿈은 제작사 ‘음악창작단 해적’을 ‘문화 창작단’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전에는 예술 장르의 경계가 뚜렷했는데 이제는 그 경계가 무색해요. 다 표현 수단인 것이죠. 앤디 워홀처럼 다양한 장르에서 즐겁게 일하고 싶어요. 지금은 음악창작단이지만, 앞으로는 음악・문화・창작・공연・퍼포먼스 등 예술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독특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공간으로 키워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