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충돌 방지 스티커
가슴을 연다
심연이다
보이지 않는 속을 더듬어 도달했다
여러 마리 새가 죽어 있었다
새파란 하늘에 머리를 찧고 자유로운 날개가 떨어졌다
가벼운 날개를 담장 아래 묻고 좋은 곳으로 가라며
나뭇가지를 꽂아 숨을 불어 넣는다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믿음의 세계
한 사람을 따라갔다
그 사람만 아는 장소에 그녀만 아는 행복을 묻었다
어쩌면 공포
끝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지빠귀 숨구멍에 드나드는 개미
부지런히 구전되는 이야기를 물어 나른다
순진한 짓이 눈을 찔렀다
새의 영혼 결핍의 눈꺼풀을 뜬다
사랑한다는 말은 막말이 되기도 했다
해 지는 끄트머리 고열에 시달리는 사람
가슴팍
새의 무덤이 있었다
파김치
팔 다친 엄마 대신 쪽파를 버무린다
살아서 대야 밖으로 튀어 나가는 놈들 잡아넣고
쓰윽-썩 버무릴수록 풀이 죽는다
어쩔 수 없는 섞임
칼날같이 날 선 눈치들이 엉키며 휘말려
한 족속이 되어간다
무리를 이루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는 것이라 하자
밥 한번 먹자는 빈말이 오가고
그날을 기다리며 친밀한 관계를 저울질한다
똥이 무서워 피하는 게 아니라는 항변
답답함과 분통은 일맥상통할 뿐
지는 자가 현명한 자라고 하자
팍팍 좀 섞어봐, 엄마 손맛을 따라가지 못할 뿐
무리에 속하려 할수록 풀이 죽는다
서로 얽혀 익어봐 드디어
둥글어지는 탄성이력
어떤 맛일지 모를 일
아직 드센 요놈의 파 뿌리
한 사발 멸치액젓을 덧뿌린다
뭉친다
꾹꾹 눌러 김치통을 채운다
외압이 있었을 뿐
꼼짝없이 서로는 우리다
통조림
원형 몸통을 잡고 따주세요'첫'소리가 나면 살아있다는 뜻인 줄 아세요캄캄한 밤에 열어주세요아무도 없는 해변에서찰방찰방 달빛을 거닐며 길을 내주세요여는 순간 몇만 볼트에 감전될 수도 있지만 그래서머리카락이 주뼛 일어서는 기이한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알려줘요어딘가에 있을 미소로 시작하는 단어의 첫음절침대를 정돈하고불을 환하게 밝히고 기다릴게요번역하는 노래 대신 번식하는 당신 노래를 들려주세요내 방에 앉아 시집을 넘기며탁 비명을 지르는 인질을 확인해요너무 빼곡한 비명이 속수무책 나를 뒤적이네요지나가세요여기서 깡통을 밀어내는 힘이 없다는 거짓을 엿보는 무고한 습관 같은 거발치에는 어둠이 어둠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비켜서네요머리에 손을 얹고 손잡이를 찾아주세요‘첫’에 열광하는 첫사랑 같은 첫눈이 드문드문첫머리를 펼칠 때창을 열어주세요눈이 내려요
탁,
좌뇌가 발달한 사람
짝이 다른 젓가락을 꺼내 밥을 먹는다
구두 왼쪽과 오른쪽을 바꿔 신었다
원피스 앞과 뒤를 거꾸로 입었다
겉과 안을 뒤집어 이불은 덮는다
곧잘 짝짝이다
모자람을 창의적으로 몰아간다
잘못된 일이 함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좋은 일 있을 거야 좋은 꿈 꿀 거야 다짐하다
죽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포용력
우뇌가 발달한 사람
타인의 절망으로 잘 우는 사람
짝짝인 젓가락을 들어 나를 바꾸어 놓았다
오늘은 행복하기, 오늘은 웃기, 오늘은 맑음
둘이라도 사람은 외롭다는 변명을 수습하며
몇 차례 소나기 지나간 휴일 오후
부정의 힘을 긍정의 힘을 헷갈려
때로는 잘 있다는 안부를 놓고
괜찮아 좋아질 거야
좋은 쪽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그럴듯하게
따뜻한 슬픔을 좌뇌 방향으로 옮긴다
우는 법을 잊어버린 날
그 날 새벽 코끝에 갯냄새가 났어. 방광 안에 바다가 출렁이고 파도는 방파제를 넘지 못했지. 그 어두운 바다, 바람 불고 세월 가고 떠밀리는 삶이 출렁이고 흔들리고 부딪치고 내가 지치고 내 울음 막혀 갈 곳이 없었어. 파도치는 일. 숨 쉬는 일보다 쉽잖아 잊을 리 없잖아. 그래, 갯물을 흘려보내자. 엄마를 부르자. 나, 쉬 마려! 뻑뻑해진 고집 누르며 샤워물 도르륵 흘리며 쉬~ 울컥울컥 야속한 고집 달래도 비워지지 않아.
오줌싸개 어린 시절 키 쓰고 소금 얻던 기억, 키위에 탁탁 몽둥이 내려치는 소리 귀청을 울려도 비워지지가 않아. 파도는 여전히 방파제를 넘을 수 없었어.
병원에 갔었지. 앳된 여의사가 이것저것 검사를 하더니 “결혼은 하셨죠, 아이는 있으시죠, 저는 이럴 때 자궁을 들어내라고 권하고 싶네요”.
바람 소리 들렸어. 병목을 지나는 허한 바람소리. 세상의 행복한 기억, 키를 내리치는 몽둥이 소리. 이불 위에 지도는 그려지지 않았어.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삼켜버린 울음 두 눈까지 차올랐지. 그래도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어. 손등에 푸른 힘줄 튀어나오도록 움켜쥔 낡아빠진 잿빛 고집처럼 떨어지지 않았어.
달이 이울고 바다는 썰물이 되었지. 드디어 그 울음 떨어지는 날,
우는 법을 잊어 버렸어.
잊어 버렸어.
스커트 자락은 더 이상 상쾌하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