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해외직구
해외직구 시장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지금까지는 일부 젊은층이 의류, 신발 등을 구입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관세가 낮아지고 인터넷 서비스 환경이 개선되는 데다 배송시스템까지 발달하면서 급성장하고 있다. “저러다 말겠지”라며 호언장담하던 수입유통사들이 점점 소비자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것만 봐도 충분한 역할은 하고 있다. 달라지는 해외직구 트렌드를 살펴봤다.
해외직구(직접구매) 방식은 크게 직접구매, 구매대행, 배송대행으로 구분된다. 직접구매란 아마존, 이베이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한 물건을 UPS, 페덱스 등 배송업체를 통해 받는 방식이다. 그러나 직접구매방식은 물건 선택부터 배송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은 대신 배송비용이 비싸다는 것이 단점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해외직구가 일부 마니아층의 구매방식에 머물렀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다. 사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가 많지 않았을뿐더러, 외국어 일색의 쇼핑몰에서 물건을 찾아야 한다는 점도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낯선 환경이었다. 사이트에서 판매되는 물건 값은 국내보다 싸지만 관세와 배송비를 더한 최종 가격과 값 차이가 크지 않은 것도 시장이 확대되지 못한 이유다.
배송대행, 해외직구 시장 중심축
구매대행과 배송대행은 해외직구의 이런 단점을 보완해 생겨간 서비스다. 구매대행이 업체가 대신 물건을 구매해줘 한국 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라면 배송대행은 소비자가 물건을 선택해 결제하고 배송만 현지 업체에게 맡기는 방식이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해외직구 시장은 전문업체가 물건을 대량 확보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구매대행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해 본 사람들이 늘고, 구매 노하우가 공개되면서 해외직구 시장의 중심은 구매대행에서 배송대행으로 바뀌고 있다. 구매대행은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찾아 결제까지 대행해주기 때문에 배송비 외에 물건 값의 10% 정도를 수수료로 받는다. 또 물건을 고를 수 있는 범위도 제한적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와서는 결제대행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일대일 구매대행’으로 불리는 결제대행은 소비자가 특정 물건 구입을 전문 업체에 직접 의뢰하는 것으로 이때 업체는 물건 값을 대신 결제해주고 나중에 소비자에게 받는다. 박병일 몰테일 팀장은 “일부 해외 쇼핑몰은 여전히 한국에서 발급된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보니 현지 업체가 대신 결제해주는 결제대행 서비스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존, 이베이 등 해외 온라인 쇼핑몰들이 가격을 대폭 낮춰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면서 해외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과 국내 구입가 사이 가격 차이가 커지는 것도 수요 증가의 이유다. 특히 블랙프라이데이, 박싱데이(크리스마스 다음날 선물(Box)을 주고받는 영연방국가 명절)와 같은 할인시즌에는 정상가의 70~80%선까지 가격이 떨어지면서 배송이 최대 1주일가량 늦어지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직구족들이 가장 많이 구입하는 품목은 무엇일까. 지난해 8월 대한상공회의소가 해외직구 유경험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중복응답)에 따르면 의류가 41.5%로 가장 많이 차지했고 구두, 액세서리 등 패션잡화(40.8%)와 건강식품(34.5%), 유아용품·의류(29.3%), 가방·지갑(28%), 화장품(26.8%), 식품(14%), 전자제품(11%)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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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송대행업체 오마이집의 미국 델라웨어주 물류센터. / 사진 : 오마이집
해외직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입되는 품목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구입한 TV, 노트북, 디지털카메라에 대해 1년간 무상보증해주기로 결정하면서 최근 삼성 LED(발광다이오드) TV를 미국에서 구입해 국내로 들여오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카누, 카약, 고가 산악자전거 등 레저용품도 최근 수요가 급증한 품목이다. 한 배송대행업체 관계자는 최근 경비행기와 고급 요트 구매대행을 요청받았다. 이 업체 관계자는 “판매가만 1억2000만원으로 통관 시 국내 법 기준에 적합한지 등을 검사받아야 하는데도 희소성이 있는 데다 국내보다 훨씬 싸다는 생각에 고객이 구입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배송대행업체 몰테일은 최근 5000만원대 캠핑카를 구매대행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몰테일 미국, 독일 지사에서 물건을 배송해주는 방식으로 애프터서비스와 사후관리까지 책임진다. 독일 타버트비발디 제품인 이 캠핑카의 국내 유통가는 5000만원 후반대다. 역경매 방식으로 진행해 몰테일은 이 제품을 2000만원 후반대 내지는 3000만원 초반대 수준에서 소비자에게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 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3D프린터와 국내 시판되지 않은 아마존 킨들, 구글 넥서스 등 태블릿PC도 최근 해외직구 방식으로 국내에 들어오고 있다. 한 배송대행업체 관계자는 “곳곳에 와이파이존이 구축된 데다 태더링 방식으로 스마트폰과 연결해 사용할 수 있어, 해외 제품을 국내로 들여와 사용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가산동 모 IT기업에 근무하는 정성지씨는 결혼 혼수용품을 아예 해외직구 방식으로 마련한 케이스다. 그녀가 구입한 품목은 전기인버터부터 수저, 접시, 조리도구, 냄비 등 주방에서 쓰이는 물건 일체다. 정씨는 “배송비, 통관비를 합쳐도 국내보다 최소 30% 이상은 가격이 싸다”면 “국내에는 명품으로 알려진 식기류도 해외쇼핑몰에서는 그다지 비싸게 팔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쇼핑몰, 국내 카드 결제 속속 허용
해외직구 시장의 성장은 독과점 수입구조를 깬다는 점에서 우리 수입유통 산업의 대변화라고 할 수 있다. 가구DIY(자체 제작) 동호회에서 활동해온 김모씨는 2년 전 가구 제작에 필요한 기기를 1500만원에 구입했다. 이 제품의 국내 유통가는 2배인 3000만원 선. 절반값에 물건을 구입한 김씨가 인터넷 동호회 카페에서 구매대행을 시작하자, 수입업체는 독점공급권을 내세우며 반발했다. 결국 김씨는 독일 본사에 연락해 병행수입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 이 때문에 김씨는 이 기계를 국내에서 내다팔아 연 2억~3억원 정도의 부수익을 올리고 있다. 김씨의 사례는 병행수입으로 가격은 물론 독과점 유통구조가 얼마든지 허물어질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해외직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 해외 유명 쇼핑몰들이 한국 신용카드 결제를 속속 허용하고 있으며 미국, 유럽에 법인을 둔 배송대행업체와 손잡고 할인행사를 벌이고 있는 것도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최근에는 아예 한국어로 된 홈페이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늘어났다. 아울러 의류, 신발 일색이던 것에서 소파 등 가구와 대형 가전을 들여오는 수요가 늘면서 해상운송을 통한 직구도 점차 늘어날 조짐이다. 배송대행기업 오마이집에 따르면 가로 71㎝, 세로 17.5㎝, 높이 44㎝ 소파 3개를 항공기 특송(이코노미 기준)으로 배송 받을 경우 운임이 501달러지만 배로는 215달러에 들여올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아마존이 한국진출을 검토하고 있어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기업 아마존은 현재 연내 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만 알려졌을 뿐 한국 진출 시 어떤 사업을 벌일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다. 그만큼 세계 유통공룡의 말 한마디는 국내 유통시장을 혼란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파급력을 갖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 해외직구 열풍으로 한국소비자들이 아마존 배송 시스템을 많이 이용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을 것”이라면서 “이미 이베이도 옥션의 대주주로 있으면서 한국 온라인 유통산업을 경험했기 때문에 글로벌 대형 온라인 유통기업들의 한국 진출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들 글로벌 유통기업이 한국에 진출하면 우리 유통산업에 끼칠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해서는 해석이 제각각이다. 우정균 세븐존 대표는 “아마존은 원래 마진율을 1% 미만으로 낮춰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해왔다”면서 “미국과 같은 가격 수준을 책정할 수는 없겠지만, 국내 유통되는 가격보다는 상당히 저렴하게 물건을 공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 대표는 그러면서 “저가 전략을 펼 경우 국내 온라인 유통사들은 상당히 고전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제조업체들도 마진율 감소를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우리 유통산업의 특성상 고전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박병일 몰테일 팀장은 “월마트, 까르푸 등 대형 유통기업이 번번이 실패하고 철수할 정도로 우리나라 유통시장은 외국기업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면서 “한국 내 제품 소싱(구매방식)을 어떻게 하느냐가 진출 성패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직구는 직접 물건을 보고 고를 수 없다는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차재헌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해외직구에 열광하는 소비층은 가격에 민감한 중산층, 젊은 세대이며, 고소득자, 중장년층에게까지 확산되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고소득자, 중장년층은 인터넷을 활용한 쇼핑에 익숙하지 않는 데다 무엇보다 물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구매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차 애널리스트의 분석이다. 배송 지연과 애프터서비스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국내 구매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약점으로 지적받는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해외구매대행 소비자 상담건수는 지난해 10월 말 현재 669건으로 2011년(608건) 한해 건수를 넘어섰다. 이 중 피해구제 접수건수는 30건이며 가장 많은 것은 ‘배송비 부당청구’(35.0%), ‘제품하자’(19.7%), ‘배송 지연 또는 미배송’(16.2%) 순이었다. 김현윤 한국소비자원 팀장은 “피해가 접수돼 구제받는 경우는 대부분 국내 본사를 둔 구매대행업체이며, 배송대행 등을 담당하는 해외 전자상거래 기업들은 문제가 발생할 시 국내법으로 이를 처벌한 근거가 없다”며 소비자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또 김 팀장은 “턱없이 물건 값이 싸거나 영어표현이 조잡한 경우, 신용카드보다 현금결제를 강요한다든지, 홈페이지에 연락처가 이메일로만 표기돼 있다면 가급적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