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씨가 DMZ(비무장지대) 수색중대 초소장으로 근무한 곳은 화천 북방 백암산 일대. 금강산에서 발원하는 북한강이 금성천이라는 지류와 만나는 지점이다. 백암산 일대의 산야는 6·25 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의 하나. 한씨는 “그때 내가 백암산에서 근무하지 않았다면 ‘총탄이 비 오듯 한다’ ‘포탄에 벗겨진 대머리산’이라는 표현은 문학 속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 작사가 한명희 |
“막사 주변의 빈터에 호박이나 야채를 심을 양으로 조금만 삽질을 하면 여기저기서 뼈가 나오고 해골이 나왔습니다. 또 땔감을 위해 나무를 톱질하면 간간이 톱날이 망가지면서 파편이 나왔습니다. 순찰 때 돌아보는 계곡과 능선에는 군데군데 썩어빠진 파이버며 탄피 조각이며 녹슨 철모 등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노신사는 잠시 회상에 잠겼다 다시 말을 이었다.
“어느 날 소대장인 나는 정찰을 나섰다가 능선에서 개머리판은 거의 썩어가고 총열만 생생한 카빈총 한 자루를 주웠습니다. 깨끗이 손질하여 옆에 두었지요. 그리고 무료할 때 곧잘 그 주인공에 대해서 가없는 공상을 이어가곤 했지요. ‘6·25 전쟁 당시 M-1 소총이 아닌 카빈소총의 주인공이면 물론 소대장에 계급은 소위겠지. 그렇다면 영락없이 나 같은 20대 한창 나이의 초급장교로 산화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먼 고향의 아내는? 그리운 초동 친구는? 애틋한 애인은? 인자하신 양친은? 장래의 진로와 인생 설계는?’ 이런 상상을 하곤 했죠. 사회에 나와서도 불과 몇 년 전 목격한 수많은 주검들로 인해 죽음의 문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장 선생이 가사를 써달라고 재촉했을 때에 나는 DMZ의 정념을 글로 옮겼지요.”
6·25 때 월남한 장일남 역시 전쟁의 상흔(傷痕)을 누구보다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장일남은 ‘비목’ 가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슬픈 곡을 붙였다. ‘비목 작곡가 장일남’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한명희씨는 “장일남 선생은 천부적인 음악성과 기질을 겸비한 보기 드문 예인(藝人)이었다”고 회고한다. 사람은 가도 ‘비목’은 영원하다. (2006.10.)
(글: 주간조선 조성관 차장대우 maple@chosun.com)
첫댓글 비목이면 어떻고 패목이면 어떻습니까 노랫말이 좋으면 되는걸 ㅎㅎㅎ 이 노래를 좋아하니 하는말이였습니다 ㅎㅎㅎ
우리네 아픈 전쟁 상흔은 다른나라 이야기 인양 이젠 잊혀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