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구] ‘강남초등학교가 있는 원조 강남’ 상도동을 걷다
서울 강남초등학교와 강남중학교는 강남구에 없어
영등포와 인근 지역, 조선총독부 시절 개발된 원조 강남 그 개발의 흔적을 찾아 상도동을 걷다
한때 농경 국가였던 우리나라는 공업 국가가 되며 도시화를 겪었다. 도시화는 옛것을 그냥 허물고 새것을 급히 세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것이 도시에는 많다. 한때는 소중한 보금자리나 일터였던 곳이, 혹은 피와 땀이 담긴 곳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묻히거나 버려졌다. <도시탐구>는 언젠가 누군가는 그리워하고 궁금해할 지금은 사라지거나 희미해진
그 흔적들을 답사하고 기록해 나갈 예정이다. -편집자주-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서울 강남초등학교.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서울 강남초등학교와 강남중학교는 어디에 있을까. 강남이라는 지명 때문에 강남구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학교들은 모두 동작구에 있다.
강남초등학교는 1941년에 상도동에서 ‘강남 심상소학교(江南 尋常小學校)’로 개교했다.
이후 강남국민학교로, 그리고 지금의 강남초등학교로 이어졌다. 강남중학교는 1959년에 대방동에서 개교했다.
이들 학교에 강남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지역이 원래 강남으로 여겨졌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 기원은 일본 식민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의 서울 강남중학교.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최초로 개발된 강남은 어디일까
일본의 조선총독부는 1936년의 행정구역 개정을 통해 경기도 시흥군의 영등포를 서울로 편입했다.
당시 영등포는 경인선 철도 개통 후 많은 공장이 들어서며 물류와 공업 중심지로 발전하는 지역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영등포역을 기준으로 서쪽은 공업지역으로, 동쪽은 주거 지역으로 개발했다.
이때부터 서울은 한강 남쪽으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주거 지역은 한강을 따라 대방동과 흑석동, 그리고 상도동이 개발되었다. 대방동에는 군사시설과 군인과 가족들을 위한
주거시설이 들어섰고, 흑석동에는 교외 주거단지가 개발되었다. 상도동은 흑석동 개발의 연장선에서 택지 개발이 이루어졌다.
해방 후에도 이곳은 식민지 시절에 이뤄진 개발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방동은 오래도록 군 관련 시설이 도시 개발에 영향을 주었고, 흑석동과 상도동은 여전히 조선총독부가 그어 놓은 구획 위에 집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이들 지역은 해방 후 한동안 강남으로 불렸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해왔다.
적어도 1980년대 초반까지는 그렇게 생각해왔다고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은 그의 책에서 설명한다.
김시덕은 <갈등도시>에서 1980년대에 나온 <한국의 발견:서울>이라는 책을 인용한다.
"강남 지역에서는 알토란 같은 영등포"라든지 "영등포는 강남 지역의 핵심"이라는 표현을 인용하며 1980년대 초반까지는
영등포 지역이 원조 강남이었음을 설명한다. 여기에는 주거 지역인 대방동, 흑석동, 그리고 상도동도 포함된다.
1943년에 만든 '상도부유지안내도'와 구글맵의 같은 지역 비교. 자세히 보면 당시의 구획과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왼쪽 지도 상단의 작은 원 안이 강남초등학교이고, 아래의 큰 타원이 숭실대학교다.
(출처: 김시덕의 저서 '갈등도시'에 수록된 '상도부유지안내도'와 구글맵 캡처
원조 강남 상도동을 걷다
조선총독부는 늘어나는 재경성 일본인들과 중상류층 조선인들을 위해 1930년대부터 한강 남쪽에서 택지 개발을 한다.
그중 상도동 택지 개발의 흔적을 <상도 부유지 안내도>라는 1943년에 제작된 지도에서 엿볼 수 있다.
김시덕의 <갈등도시>에 사진으로 실려있다.
이 지도에 나온 지역은 서울 지하철 7호선 숭실대입구역에서 상도역, 그리고 상도터널 인근까지로 지금의 상도1동 대부분을 포함한다. 지도에 택지로 표시된 지역은 지금도 주택과 건물이 들어섰고, 지도에서 택지 외곽에 산으로 표시된 지역은 거의
아파트 단지로 변해 있었다.
기자가 지도를 보며 걸으며 신기하게 느낀 점은 1943년에 만든 지도에 나온 택지 구획과 2021년 지금의 구획이 거의 같다는 점이었다. 주택으로 표시된 지점은 지금도 주택이었고, 골목길 모양도 거의 같았다.
심지어 아래 사진 속 작은 네거리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도로섬은 1943년의 지도에서도 같은 지점에 같은 모양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상동동의 한 주택가 네거리의 도로섬. 1943년의 지도에도 같은 모습의 도로섬이 나와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그리고 학교 용지와 공원 용지도 1943년과 지금을 비교하니 같은 곳에 자리했다.
이 같은 현상을 김시덕은 <서울선언>과 <갈등도시>에서 ‘행정의 연속성’이라고 표현했다. 조선총독부 시절 세운 계획을
대한민국 정부가 이어받아 수행하는 것을 그렇게 표현했다. 김시덕은 경인 수로 준설과 청계천 복개도 같은 맥락으로 보았다.
지도에 나온 학교는 ‘강남공립국민학교’였다. 지금 그 자리에는 ‘서울 강남초등학교’가 있다. 지도가 만들어진 1943년에 이미
강남초등학교는 ‘강남’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자리한 서울 강남초등학교.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상도동 서울 강남초등학교 근처의 어린이놀이터. 이곳은 1943년에 만든 지도에도 공원 용지로 표시되어 있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지도를 보면 학교 근처에 공원 용지가 표시되어 있는데 실제 그곳에는 어린이공원이 있었다.
1943년에 만든 지도에 공원 용지로 나온 곳이 지금도 공원이었다. 하지만 사연이 많았다.
“여기에 공원을 만들기 전에는 집들이 있었어요. 그 집들을 다 허물고 만든 공원이잖아요.”
공원에서 만난 강남초등학교 학부형의 말이다.
자료에 의하면 이곳은 오래전부터 공원으로 지정된 곳이지만 무허가 건물들이 난립해서 오래도록 미시설 공원으로
있었다고 한다. 2015년에 무허가 건물에 대한 보상과 철거가 이뤄지고, 2019년 6월에 어린이공원이 준공되었다고.
지도에 나온 다른 두 곳의 공원 용지 모두 방문해 보았다. 어느 교회 옆에 있는 어린이공원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지도에서 둥그런 구역으로 표시된 것처럼 오래된 주택들과 새로 짓는 다가구 주택들이 공원을 둥그렇게 둘러섰다.
상도동의 한 공원 용지에 들어선 주택.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그런데 다른 한 곳의 공원 용지는 집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골목은 좁고 구불구불하고, 낡고 작은 집들로 가득 찼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들도 있었다.
“거기 공원 용지 맞아요. 거기 집들은 모두 무허가주택이고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구청에 물어보세요.”
근처 부동산 사무실에서 들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집들이 들어찬 공원 용지를 볼 때 어느 주민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날 쳐다보던 게 기억났다. 오래전 그곳에서 벌어졌을 일들도 상상할 수 있었다.
주택가에 있는 공원 용지는 아마도 집 없는 사람들이 살기에 안성맞춤 아니었을까. 하지만 공원 용지였으니
땅 주인은 나라였을 것이고,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없었을 테니 건축물은 무허가였을 것이다.
도시 개발 관련 문헌들을 보면 서울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집 없는 사람들은 집을 지을 수 있는 빈 땅에는 모두 집을 지었다.
하천 옆은 물론 산기슭까지. 그런 면에서 공원 용지에 집을 지은 사람은 그나마 운이 좋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
무허가주택들이 다 헐린 마당에 아직도 남아 있으니 말이다.
공원 용지처럼 조선총독부 시절에 만든 택지 개발 계획의 영향을 아직도 받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시탐구>의 화두가 하나 더 생겼다.
숭실대학교 근처에 있는 강남아파트 전경. 1972년에 준공되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숭실대학교 근처에 있는 강남아파트. 1층과 2층에는 가게가 있고,. 1972년에 준공되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선발주자 강남은 후발주자 강남에 그 이름을 물려주고
“여기가 강남이었대요. 오래전에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나 봐요.”
숭실대입구역 근처 ‘강남아파트’ 1층에 자리한 가게 사장의 말이다. 1972년에 준공된 이 아파트 이름에도 ‘강남’이 붙었다.
강남초등학교나 강남중학교처럼.
공립학교 이름에는 으레 지명이나 그 지역을 상징하는 단어가 들어간다.
이 지역 학교에 강남이 들어간 점에서 이 지역이 학교가 세워진 당시에는 강남으로 불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강남이라는 지명을 이 지역보다 더 동쪽에다 붙인다. 그 지역 아닌 곳을 강남으로 부르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한강의 남쪽을 의미하던 보통 명사 강남이 이제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다양한 상징성을 지닌 고유명사로 자리 잡고
있다. 한강의 드넓은 남쪽 지역에서 오직 그곳만이 강남이라는 지명을 독점할 자격이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