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게르(이동식 집) 이야기
인간의 의식주는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 영향이 절대적이다. 몽골과 같은 유목사회에서 생계의 기본수단은 목축이며, 목축은 자연환경의 영향을 그 어느 경제형태보다도 많이 받기 때문에 유목민들의 의식주는 그 내용이나 형태에서 이동적인 모축경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거주에서 그런 사실이 뚜렸이 나타나고 있다. 원래 고대 몽골에는 고정된 가옥과 분해해서 운반할 수 있는 텐트식 가옥의 두 가지 형태가 있었으나 지금은 텐트식 가옥 한 종뿐이다. 그런데 이 가옥형식도 역사 발전에 따라 그 면모를 달리해 왔다.
몽골제국 이전에는 적으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수백 가구가 서로 어울려 사는 쿠리엔트 텐트 가옥이었으나, 제국 이후에는 방어의 필요성이 없어진데다가 목축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분산 거주하는 아일식 텐트 가옥(보통 2-5가옥)이 성행하기 시작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일식의 경우 가장 오른쪽 게르는 연장자의 것이고 가장 왼쪽 게르는 창고 등으로 쓰인다. 칸이 거주하는 오르도(게르의 높임말)의 오른쪽으로는 누구도 지나갈 수 없다. 겨울이나 봄에는 매서운 북서풍이 불기 때문에 문은 항상 남쪽으로 낸다.
게르의 재료는 나무와 펠트인데, ‘게르의 뼈대’라고 하는 나무재료는 둥근 천장과 천장의 서까래, 벽, 문틀 등에 쓰인다. 천장은 느릎나무 같은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 서까래와 연결시키고, 벽은 주로 버드나무를 엇갈리게 엮어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신축성을 갖고 있어서 계절에 따라 게르 전체의 높이와 너비를 조절한다. 게르의 외벽은 보통 5-6짝의 펠트로 덮는데 여름에는 한 겹으로, 겨울에는 두 겹으로 한다. 펠트가 드리운 문을 출입할 때에는 문의 오른쪽을 들어 올리고 출입한다.
게르에는 엄격한 내부질서가 있다. 게르를 지을 때에는 맨 먼저 화로를 설치한다.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고 가신제(家神祭)를 떠맡게 될 막내아들을 ‘화로를 지키는 아들’, 즉 ‘가계를 지키는 아들’이라고 부른다. 게르 안의 북서쪽은 신성한 장소로서 거기에 불단(佛壇)이나 우상을 모시며, 출입문에서 왼쪽은 남자 자리이고 오른 쪽은 여자 자리이다. 가재도구의 배치 역시 이 원칙에 따른다. 남자 자리에는 마구나 무기 등을, 여자 자리에는 조리 기구나 유제품 제조도구 등을 놓는다. 손님은 활과 화살 등 무기류를 휴대하고 게르 안에 들어갈 수 없다.
게르 입구에 빨간 천 조각이 장식되어 있으면 출산을 의미하고, 한낮에도 천창이 덮여있으면 상사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이러한 경우에는 출입을 삼가야 한다. 뒷간은 숲이 무성한 곳이나 움푹한 곳을 택하며 배설물은 개가 처리한다. 뒷간 간다는 말을 몽골어로 남자는 ‘말보러 간다.’ 여자는 ‘말 젓 짜러 간다.’ 라고 표현한다.
게르는 몽골인들의 우주관을 집약하고 있다. 임산부가 진통을 시작하면 긴 실 한 타래를 화로 부근에서 기둥에 감아 천창 밖으로 내어 묶는다. 이것은 인간의 생명은 하늘이 내려준다는 신앙에 바탕 한 관습이다. 게르의 나무 기둥은 우주목(宇宙木, The tree of life)으로서 샤먼이나 영혼이 그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게르를 해시계로도 이용한다.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닿는 것을 보고 시간을 헤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