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죽은 일은 죽은 자들에 두고 너는 나를 좇으라
18.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19.한 서기관이 나
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20.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마8:18-22)
성경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인간의 육체가 사는 조건들을 말씀하시기 위
해서 쓰인 것이 아니에요. 세상에서의 삶의 것들을 말한 것 같지만, 그것을 들어 말씀함으로써 영
적인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 알아야 하는 것은 영적인 것으로서 그 영
적인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이는 삶에 조건들로 비유하고, 예표로, 또는 상징으
로 들어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것을 깨닫고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창8:22에 인류를 홍수로 멸하신 후 방주에서 내린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추울 때도 있고 더울 때도 있고 덥지도 춥지도 않을 때도 있고, 밤과 낮이 있는 이런 자연 조화처
럼, 바로 인간 삶에도 갈등이 있고 고통이 있고 좋은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고 울 때가 있고 웃
을 때가 있는 수고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에
덴에서 쫓겨나 땅에서 살게 된 인간 앞에는 이제, 가시와 엉겅퀴와 싸우며 수고하여 살게 된 그것
이 땅에 있을 동안, 인간이 존재하는 동안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않는 것과 같게 되었다는 것을, 이 같은 자연의 이치, 그 조화와 연결하여 깨달아 볼 수 있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살기 위한 이 같은 수고로움 속에서 안식하기를 원하고 평안함을 그리
워하는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롬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말한 대로 농사하는 농부와 같이 일하시는, 하나님의
죄인을 구원하시는 뜻과 과정을 계절로도 깨달아 알 수가 있게 하셨습니다. 봄은 씨앗을 심고 싹이
나서 자라고, 여름은 열매를 내어 곡식으로 키우고, 가을은 잘 여문 알곡을 걷어 타작하여 창고에
들이고, 이로써 한 해의 농사를 늦가을까지 다 마무리하고 추운 겨울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자기 농사를 부지런히 잘한 사람은 겨울을 맞을 채비를 다 하였으므로 눈보라 치는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는 관계 없습니다. 추운 바람이 새 들어오지 않게 문틈을 다 막아주고 집을 따뜻이 하여, 한
해 동안 열심히 수고하여 거둔 양식을 먹으며 편히 쉬는 것입니다. 따뜻한 집에서 안식하는 것입니
다. 그래서 바깥 겨울, 혹한기는 환난의 때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로 알곡을 거두시기 위해 농사하신 하나님께서도, 이같이 먼저 하늘의 알곡을 거두시고 난 후, 이 세
상이 환난의 때를 맞는다는 것을 이 계절의 때로 계시하여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을 환난
을 만나기 전에 예수님께서 자기의 사람, 성영님으로 한몸 된 자기의 신부들을 데리러 공중으로 오실
것입니다. 이제 성영님이 신부들을 데리고 올라간 뒤, 이제 세상에서는 사단의 시대가 되었으므로, 땅에
남은 모든 사람들은 혹독한 바깥 겨울을 그대로 맞게 되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렇
기에 예수님께서 신부를 데리러 다시 오시는 것은 환난의 때라고, 7년 환난을 겪고 있을 때라고 말한다
거나 환난을 지나고 난 뒤라고 말하는 것은 다 백 프로 거짓말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성영님께서 레마로
보내신 여기 말씀 앞에서 신부로서 예수님 맞을 준비, 속사람이 예수님으로 장성케 되는 일에 게을리하
지 말고, 깨어서 믿음의 준비를 열심히 다하여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바깥 겨울 추위가 얼마나
혹독한지 직접 체감하는 것이니 잘 알지 않습니까? 모르겠으면 영하 10도 정도 되는 날 밤에, 하룻밤만
이라도 한번 자기 옷 그대로 바깥에서 있어 보세요. 아니 영하 5도 정도도 괜찮겠습니다. 아마 추위에
견디지 못해 얼어 죽지 않을까요? 정말 그 추위와 같은 지옥의 고통을 영원히 겪어야 한다면, 어찌 겪을
수 있을지 여러분이 참으로 지각이 서고 영적 감각이 있기를 너무나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으
신 만물은 아무 뜻 없이 지으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깨달아 볼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교훈이고
경고이고 거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한 그 말이 너무나 아멘이고, 공감하는 겁니다. 여러분도 아멘입니까?
그래서 저는 추수 찬송 부르는 것이 참 즐겁고 행복하고 좋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말씀 중이지만
우리 306장하고 308장을 한번 불러 볼까요? 가사가 얼마나 마음이 행복하고 좋은지 여러분도 다 그렇
게 믿고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사를 잘 이해하시면서 한번 불러보겠습니다.
1. 감사하는 성도여 추수 찬송 부르세 추운 겨울 오기 전 염려 없이 거뒀네
아버지가 우리게 일용 양식 주시니 우리 함께 모여서 감사 찬송 부르세
2. 이 세상은 하나님 열매 얻기 위한 밭 좋은 곡식 있는데 가라지가 있도다
두 가지 다 자라서 열매 맺게 되나니 그 열매로 알곡과 가라지 구분하네
3. 예수님이 오셔서 알곡 거둬들인 후 밭에 있는 나쁜 것 모두 소멸 하실 때
가라지는 골라서 영영한 불에 넣고 늦은 열매 모아서 거두어 들이시네
4. 우리의 왕 예수님 우리 다시 데리러 오실 때엔 맞으리 그때 영광 뵈옵고
모든 성도 영원히 하늘 집에 이르러 천군 천사 어울려 추수 찬송 부르리 아멘
1.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 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알곡 거둘 농부의 손 낫을 들고 거두네 기회 지나가기 전에 추수 일꾼 됩시다
2. 추수할 것 많은 때에 일꾼 심히 적으니 아버지여 추수 일꾼 많이 보내 주소서
추수 때가 되었으니 알곡인가 그대는 기회 지나가기 전에 추수 일꾼 됩시다
3. 하나님의 밭에 있어 알곡 열매 되었나 추수할 때 알곡으로 하늘 창고 들란가
추수 때가 되었으니 알곡인가 그대는 기회 지나가기 전에 추수 일꾼 됩시다
4. 거둬들인 모든 알곡 천국 창고 들인 후 아버지의 베푼 잔치 알곡 잔치 되겠네
추수 때가 되었으니 알곡인가 그대는 기회 지나가기 전에 추수 일꾼 됩시다 아멘
어떻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분명히 천국 창고에 들인 알곡이 되었습니까? 찬송가 가사가 자기
믿음이 되었을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여러분이 믿음을 바로 하는데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에 대해서 참고로 말씀을 드리
고 다음으로 가겠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하나님께서 저주를 받으리니 하셨는데 어디에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까? 땅입니다. 아담이 불순종한 것은 땅이 저주 받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
래서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이것은 사단 아래 살게 된 인간의 영적 고통과 삶의 수고로움이 있
을 것을 의미하는 것임, 그래서 안식하기를 사모하게 하심) 그 땅에서 수고하여야만 소산을 얻게 되
었고, 즉 인간 자아가 죽고 영으로 사는 훈련을 받아야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소산이라는 것은
육체가 사는 것을 얻는다는 말이지만, 영이 사는 양식(생명)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다음
하나님께 계시에 따른 제사가 아니라 자기 자아를 따른 제사를 하여 실패하고, 동생을 돌로 쳐 죽이
고 사단을 주인으로 한 가인은 자신이 저주받는 것이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저주가 들어왔습니다.
땅도 저주받고 사람 자기도 저주받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영도 혼도 육체도, 저주
를 받은 것이 되어서 전인이 저주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땅에서 저주를 받은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창4:12에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주지 아니할 것
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가인은 사단의 소유가 되었으므로 영
영, 영이 사는 양식을 얻을 수 없는 자가 되었고 유리하는 영혼, 즉 영원히 보호받지 못하는 영혼
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사람이 변하는 계절처럼 고통이 있고 고난이 있고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고, 웃는 일도
우는 일도 있고 끝없이 고민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러나 그 같은 수고와 고생 가운데 좋은
계절에 알곡을 거두는 기쁨이 있게 하시듯이, 바로 영이 가진 소원, 안식을 갈망하고 생명을 구하
여 사모하는 그 소원대로, 영이 가져야 할 하나님의 생명과 안식을 마침내 얻게 하신다는 것을 가
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믿음은 계절을 맞는 세상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살
것인지, 아니면 계절이 없는, 계절을 초월한 영적인 것,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영광된 천국을 구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성서는 영의 양식을 주는 것에 목적이 있고 영적 생활을 하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고, 영적인 권위를 갖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영은 계절이 없는 것이니 계절
을 초월한 영원한 세계, 변하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의 세계에 대하여서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도 그런 계절을 초월한 것, 영적인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할
것, 얻고자 해야 하는 것 바로 영적인 것임을 말씀한 것이란 말입니다. 인간은 세상의 것을 얻고자
예수님께 접근하여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이 얻고자 하는 것과는 관계없는
영적인 말씀을 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 하늘의 것을 주려고 오신 것임을 분명히 해주셨습니다. 본
문 19에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했습니다. 여기서 서기관은 율법을 연구하는 학자라기
보다는 공회에서 회의 내용이나 공문서 같은 것을 기록하는 서기관에 해당하는 사람에 더 가깝습니
다. 이 서기관이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예수님 좇겠다고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
을 따르는 것은 곧 예수님을 믿는 것임을 계속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러면 이 서기관이 예수님을 좇
으리이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선생님을 좇겠다고 나왔으니, 아니, 오늘날에 우리 형편으로 봐서
는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나오면 그것이 얼마나 귀하게 보입니까? 그러니까 비위가 좀 틀려
도 믿음을 좀 갖게 하려고 그냥 비위 맞추는 거잖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좇겠다고 나온 서기관에
게 예수님께서 "그래! 너 참 잘 선택했다, 네가 복 있는 자다, 그러면 나를 따르라"하고 반갑게 맞
아 주셔야 맞는 일일 텐데,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오라 따라오지 말라가
아니라 뭐라 하셨습니까? 생뚱맞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신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나는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이니 네가 나
따라오면 너 먹여 살릴 힘없다'하시는 말씀이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땅의 것을 위해 묻는 사람에게 그에 맞는 답변을 해주신 것이 아니라, 하늘
의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말은 인간의 귀로 듣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귀와
영의 눈이 성영님으로 열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 같은 하나님의 영적인 뜻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는 것을 사람들이 자꾸 인간의 귀로 들으려고 하니, 뭔가 이해도 안 되고 자기와 맞지
않다고 부딪히고, 속에서 불만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단이다, 삼단이다, 비판해대는 것
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것은 계절이 없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래서 영적인 사람은 즉, 성영님으로
믿는 영의 사람은, 그런 계절을 맞는 것들에서 초월이 된 것을 말합니다. 세상 것들, 남이 하는 것
내가 못하니까 기분이 좌우되고, 사람 때문에 기분이 좌우되고 하는 것은, 그것은 아직 계절을 맞
고 있는 수고하고 땀 흘리는 그 육의 장소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예요. 그것은 예수님 믿지 않
는 육의 사람의 것입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성경 전체 말씀 안에서 영적인 하나님의 뜻
을 깨달을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는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목적으로 하고 자신을 깨
끗이 내려놓고 성영님을 의지하여 마음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2:1-8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
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같
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
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
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 계명을 받
아서 네게 가장 귀한 것으로 간직하여 하나님의 지혜에 귀 기울이라. 끝없이 하나님을 알려는 지식
을 구하고, 하나님을 아는 일에 네가 아주 명철한 자가 되어라. 그것이 너의 간절함이 되어라. 광부
가 금이나 은을 얻기 위해 그것이 어디 있는지, 어디쯤 있는지 보이진 않지만, 반드시 얻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땅속을 채굴해 나갈 때, 그 일이 쉬운 것이 아니라 힘들고 고달프고 지치지만, 그러나
보석을 얻을 때의 그 기쁨과 행복을 생각하며 인내로서 힘을 다해,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채굴
해 기어코 얻어 내는 것처럼, 네가 그같이 찾으면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과 경
험의 관계가 이뤄질 것이니 그 수고를 아끼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말 가장 귀한 보배를 찾는 것처
럼 그렇게 찾는 자에게 하나님 자신을 알게 하고, 하나님 자신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
만 하나님은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고, 방패가 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나라
와 그 의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셨던 것 아니겠습니까? 이같이 하나님을 알기에 마음을
다하는 자에게는 성영님께서 지혜가 되어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영적인 말씀을 깨달아
세상을 초월한 믿음의 권세와 능력이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하
신 예수님의 이 말씀을 어떻게 들었습니까? 이 말씀을 인간의 귀로 들으면 '미물인 짐승도 거처가
있는데 그래서 다 잠잘 곳이 있고 비바람 피할 곳이 있는데, 예수님은 집도 없고 잠잘 곳도 없고,
몸 하나 어디다 의지할 데가 없다는 말인가?'하고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곧 예수님에 대해 측은지
심이 들고, 마음이 괜히 쓸쓸해지는 것 같게 되는 것이지요. 또 한편으로는 예수님은 능치 못하심
이 없다고 하시면서 '아니, 자기 신세도 해결 못해서 처량 맞게 집 없는 사람처럼 그러시는가?'하
고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제가 영적인 말씀을 전하는 것도,
인간의 귀로 들으면 뭔가 이해가 안 되고 불만이 일어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하신 것은 미물과 같은 짐승
도 제 거처가 있어 들고 나는데, 예수님은 어디에 거할 곳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거할 곳이 없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육신(사람)이 되어 메시아 언약을 가진 자기 백성에게 오셨는데, 그 백성
이 메시아(예수님)를 영접해 들이는 자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메시아 언약을 가진 자기 백성에게
왔는데 정작 그 언약을 가진 자기 백성이 영접해 맞이하는 자가 없더라 말입니다.
예수님 그분이 누구인지 예수님이 전파하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면서
도, 그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구주이심을 인정하여 맞아 영접해 들이는 자가 없다. 하나님이 사람
이 되어 오신 그분을 자기의 구주로, 자기의 하나님으로 영접해 들이는 자가 없다는 것을 그같이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미물과 같은 짐승은 제 거처가 어디인지
를 알거늘, 사람은 제 거처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제 거처가 돼야 할 예수님께서 오셨음에도 무지한
자들이 되어 맞아들이지 않으므로, 예수님 자신도 어디 거처할 곳이 없더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 서기관이 선생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한 것은, 이 서기관이 예수님께서 많은 병
자를 고치신 것을 보았어요. 또 예수님에 대하여 소문도 들었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가 권세
있고, 서기관들의 가르침과는 뭔가 다른 겁니다. 많은 무리가 따라다니는 것을 보니 보통 분은 아
닌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 이분이 우리가 그동안 기다려온 메시아! 우리를 구원하여 영생을
주러 오신 메시아!' 그분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맞아들임으로써, 세상 것 다 버리고라도 예수님을
따르려고 좇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보통 분이 아닌 이 선생을 자기가 따르면, 지금 서기관
생활하는 것보다 더 나은 어떤 명예나 지위나 부귀를 얻겠다 싶은 계산이 딱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구주로 보인 것이 아니라 자기 형편이 펼 수 있는 기회, 자기가
이 선생을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아부하여 섬기면 출셋길이 열릴 것 같은 충동적인 생각이 들어와
서, 그래서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하고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의
관계를 이런 자기 사정 때문에 맺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과 관계없는 시험에 들려 있는 것입
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예수님 하고는 왠지 안 될 것 같고, 그리고 예수님은 죄 때문에 오셨다고
하니 자기 사정하고 어울리지 않는 분이라 여겨, 가까이할 수 없는 당신이 되어서 멀리 제쳐놓고
그저 하나님만 찾는 겁니다. 오직 "하나님 나에게 복 주세요"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주님은 구주라
는 것을 믿기는 하는데 행색이 그렇긴 해도 구주로 믿으면 구원은 받는 것이니까, 그래서 구주로는
분명히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행색이 너무 가난해 보이니 그 주님 따른다고 하면 왠지
자기도 가난해질 것 같고, 가난해져야 할 것 같은 계산이 서니, 그래서 예수님은 구주로 믿는 것으
로만 하고 이제 뒤로 제쳐놓고 하나님만 찾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구약에서 축복을 많이 말씀
하셨기 때문에, 복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생각에 "하나님 나 복 주세요"하고 그 하나님만 찾는
것입니다. 구원받는 것도 좋으니까 아멘이고, 나 잘되게 해주시는 복은 더 좋으니까 아멘이니, 나
잘되게 해주시고 하나님 영광 받으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관계로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과 절대로 관계 없습니다. 구원 없습니다.
요5:25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는 죽은 자가 누구입니까?
목숨이 죽은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영적으로 죽은 것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 그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지금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지금,
곧 이때에 너희 앞에 구주로 와서, 하나님의 아들로 와서 지금 말씀하는 이때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 듣고 믿어지면 산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고 그것이 믿어지면 산다는 말입니
다. 그래서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참진리의 말씀이 들리고 참이라는 것이 깨달아지고,
그러므로 영혼의 기쁨이 샘솟아 올라오고 아멘의 복창이 영혼에서 올라오면, 그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산 자입니다. 그런데 오늘 서기관은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은 것이 아니라, 육신의 것을
더욱 나은 것으로 거머쥘 기회를 주실 분으로만 보았습니다.
여우는 굴이 제집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거늘 그러셨지요? 여우는 흙이 제집입니다. 그래서 흙 속
에 굴이 여우의 제집입니다. 공중에 새도 거처가 있다고 하셨지요? 그러니까 공중의 새도 지가 거처
하는 곳이 제집니다. 제집이라고 하는 것은 본 곳이라는 말입니다. 본 곳! 그곳에서 왔고 생이 다하
면 다시 본 곳으로 간다. 가는 그곳이 제집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제집이 하늘이 될 수도
있고, 어디도 될 수 있을까요? 땅도 될 수 있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고 땅은 지옥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늘이 제집이 되려면 예수님이 우리의 거할 처소가 되어야 합니다. 육체에서 떠
나면 영원한 제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의 거할 처소, 여러분의
거할 처소가 돼야 하는 것, 여러분 아멘입니까? 그것이 사람의 본 일이요, 사람의 길입니다. 이것
을 여러분이 들으면서도 마음에 감각이 없다면, 깨닫는 것으로 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흙이 제집인
여우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서기관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나를 네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 아니면 너는 흙이 거처요 제집
인 짐승과 똑같다. 너희가 내게로 와서 나를 영접하여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계절을 맞는 땅
의 것들을 구하기 위해 나를 따르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을 제 거처로 삼고,
흙이 제집인 이 짐승들과 똑같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같이 말씀한 것은 아니
지만, 말씀의 의도는 이와 같다는 것을 성영님으로 깨달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머리로
는 도무지 예수님의 이 말씀의 뜻을 깨달아 알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깨달아 알게 된 레마를 여러
분에게 전해드릴 때 여러분이 아멘의 감동으로 듣고 받을 수 있는 것 또한 성영님으로 되는 것이라
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저에게 계신 성영님과 성영님의 레마를 여러분이 듣고 받음으로
써, 진정한 믿음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속에 세상을 붙잡고 있으면 그것은 마귀를 스스
로 붙잡는 것이 되어서 절대로 예수님이 그 안에 계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 안을 거처로 삼
으실 수가 없어요.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그곳에다 예수님 자신, 즉 머리를 두실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아십시오.
그다음 21에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했습니다. 여기는 제자 중에 하나라고 했으니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는 말입니다. 사실 오늘날 믿는
다는 것이 다 이 제자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제가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
으니 반드시 따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예수님 따르기 전에 먼저 제가 깨끗이 정리해야 할 일들이 있습
니다. 내 부친이 돌아가면 자식의 도리가 있으니 장례도 치르고 그밖에 걸리는 것 없이 해놓고 그
뒤에 예수님을 전심으로 따르겠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일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
다. 세상사에 관심이 많고, 인간의 전통을 중시하고, 사람과의 유대 관계를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입니다.
지금 이 제자가 생각하고 있는, 이 제자가 하겠다고 하는 일은 다 죽은 것이요, 죽은 일이라는 말
입니다. 새겨듣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믿음을 가지려면 부모에게 자식의 도리조차도 무시하
라는 말로 들려질 수도 있어서 오해도 되겠습니다만, 왜 오해로 들립니까? 육의 귀로 듣기 때문입
니다. 육의 귀로 들으면 다 오해가 되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가 있냐? 아니 그러면 사람들
하고 함께 살지 말고 저 산속에 가서 혼자 살아야지, 이런 가당치도 않은 말이 어디 있냐?'하고 강
하게 반응하고 부정합니다. 육은 하나님과 원수이니 원수로 맞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으로 행하는 자들의 그 행실이나 행위들은 다 죽은 것에서 나온 것들이니, 네가 산 자면 그곳에
있지 않아야 하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그곳에 함께하는 것은 너도 죽은 자이기 때문이지 않느냐
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죽은 자들로'하는 것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을 말하
는 것이요, 또 '저희 죽은 자'를 하는 것은 그들 중에서 죽은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믿는다고 해도 제가 볼 땐 다 이와 같은 죽은 자들로 있습니다. 이 말씀 앞에 계신 이
들 중에서도 지금 죽은 자들의 일에 마음 쓰고 있는 이들도 있으니, 저의 이 말씀이 마음에 걸림이
되면, 지금 듣는 즉시 온전히 깨끗하게 하든지, 그럴 수 없으면 여기 말씀 앞에 있지 않아야 할 것
입니다. 여기 말씀 앞에 있다가 해를 당하여 피차 불편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그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 따라야 할 것이란 말입니다. 왜입니까? 이 말씀 앞에서 안 된다면 그도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 말 앞에 "그래도 때가 되면 언젠가 되지 않겠냐?""기다
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그러면 너무 율법적이지 않느냐?""믿지 않는 그들을 믿게 하려면 그것도
사랑을 베푸는 일이지 않겠냐?" 또 이런 생각 할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성격
문제라면 그것은 교회가 기다릴 수는 있습니다. 성격 문제라면! 그러나 죽은 자의 일은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 귀신을 섬길 것이냐 하는 것이 걸린 것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
습니다. 교회가 그런 것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말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일백 년을 넘고도 수십 년이 더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이 들어온 지 말입니다. 이제는
나이로 보면 늙은 때인데, 어찌 지금 그것이 용납될 것으로 생각합니까? 죽은 자의 일은 하나님을
섬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서 나온 일로 귀신을 섬기는 것이니, 그런 것은 듣거나 알았
으면 무엇보다도 먼저 즉시 회개해야 하지, 그렇게 끌려다니는 것 아닙니다. 성영님께서 저에게는
그런 것을 기다리라 하신 적 없습니다. 성경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두 주인 섬길 수 없다는
것, 아셨습니까?
여러분, 죽은 자들의 장례라는 것은 제사도 마찬가지예요. 그야말로 영적으로 죽어있는 그 죽음에
서 나온 행위들입니다. 그 의식으로 행하는 것들이 어두움의 영이 끄는 대로 끌려서 행하는 의식들
이라는 말입니다. 끄는 대로 끌려가는 것은 그가 죽음의 영에 지배받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런데 믿는다는 사람들이 그 죽은 자들의 일에 마음을 쓰고 함께하는 것이면, 그도 죽은 자의 영에
지배받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일입니다. 죽음을 슬퍼하며 죽은 그 시신 앞에서 하는 모든 절차 행
위가 부모에게 하는 것도 부모를 위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부모가 죽으면 영정이라는 곳에 부모
사진을 놓으니 그 사진 앞에서 부모에게 절한다는 생각으로 절하는데, 그것은 사람 심리를 이용한
귀신에 속는 것으로서, 부모에게 절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어떻게 그것이 부모에게 절하는 것
입니까? 여러분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지금 부모에게 절하는 것이 되겠는가 말입
니다. 부모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죽으면, 그렇게 그 영혼이 떠돌다가 죽은 날 밥상 차려놓으면 와서 밥 먹고, 향 피워
놓고, 절하면 그 절을 받는다고 했습니까? 귀신이 되어 오는 것이 아니라, 떠도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이미 하나님이 정하신 곳에 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요 향을
피우는 것은 귀신을 오라고 부르는 행위요, 그러니 사진에 절하면 그곳에 누가 붙어 절을 받겠습니
까? 귀신에게 절하는 겁니다. 귀신에게! 귀신이 부모를 내세워서 인간 심리를 이용하여 큰 절을 받
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례는 귀신 문화예요. 그렇기에 여러분이 정말 이런 분별의 지각이 있어 태도
를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 섬기겠으면 살아있을 때 섬겨요. 맛을 알 때, 감정이 있
을 때, 좋은 것을 알고 기뻐할 때 섬기란 말입니다. 효도하고 싶으면 살아있을 때 하란 말입니다.
진정한 효도는 만일 믿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잘 믿고 구원받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죽
은 뒤에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제사상이라고 하여 떡 벌어지게 차려놓은 그것이 효도입니까? 단지
귀신을 섬기는 일일 뿐입니다. 죽은 자들의 장례나 제사는 다 귀신을 따르는 것이요, 귀신을 섬기
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이 하는 것은 죽은 자(귀신)에게 하는 것이니, 네가 나를 따르려
면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산 자의 길을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죽은 자들의 일에 관심이 많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다시 말하면, 전통을 중시하여 그 전통을 따
라 죽은 짓을 하게 되면, 그것은 악한 영들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되어서 믿음을 잡혀먹히고 지배
받아 버리기 때문에, 그러므로 네가 나를 따르려면 단호히 끊고 나를 따르라 하는 것입니다. 정말
오늘날 말입니다. 죽은 자들의 그 일에 도리를 한답시고, 또는 어쩔 수 없다고, 또는 그것이 하나
님의 사랑을 보이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쫓아다니면서, 거기에다 자기 마음 드리고 몸 드리면서 죽
은 자의 시중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 사람치고 영적인 믿음의 능력을 갖춘
사람은 제가 한 번도 본 일이 없습니다. 신앙 정신이 똑바른 사람 한 사람도 본 일이 없어요. 그들
속을 지배하고 있던 귀신에 오히려 붙들려서 그 죽은 자들의 몸에 있던 병 귀신이 자기 몸으로 들
어가 병들어서 고통받는가 하면, 영적으로는 혼미하게 되는 것에 붙들려서, 사실은 지금 영적 상태
들을 내다보면 여기에 다 걸려서 혼미함에 붙들려 있습니다. 어떤 것이 믿음인지 어떤 것이 믿음의
일이 아닌지 분별력도 없고, 지혜 없는 혼란을 겪는 그런 모습들을 보는 것입니다. 속 능력, 예수
님과 같이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제사상에 절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라는 것을 듣고도 사람이 두려워서 또는 체면 때문에 절함으로써 아주 귀신에 잡혀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
다. 죽은 자들의 일에 전통이라며 중시 여기고 마음을 쓰고 있으면 믿음의 기회는 잃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과 함께 어울려 죽은 일에 마음 쓰면서 교감하고 몸으로 그 일을 돕고 자기의 할 일인 것
처럼 행하는 것이면, 너도 죽은 자이지 않겠느냐 하신 물음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나를 따르겠느
냐? 죽은 세상을 따르겠느냐?' 둘 중의 하나이지 중간은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도 좋고 믿음도 좋
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는 없는 것으로 분명히 선을 그으셨습니다. 세상도 좋고 믿음도 좋다고
하는 것은, 귀신도 좋고 하나님도 좋다고 하는 것이니, 하나님은 절대로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서기관과 제자, 두 사람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 앞에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따르
긴 따라야 하겠는데,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죽은 자들도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 입니까? 사람들의 전
통과 유전을 중히 여겨 거기에 마음을 쏟고 쫓아다니진 않습니까? 마15:8,9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
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
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에 여러분은 뭐라고 답하십니까? '마
음은 내게서 멀도다'하신 말씀에 여러분 자신은 무엇이라 답하시겠습니까?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
다 하셨는데 여러분은 어떤가 말입니다. 진짜 예수님을 믿는 것이면, 진짜 믿음이면 인간의 전통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인간의 교훈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는 것이면 왜 그렇게 인간
유전에 매달리고 교훈에 매달립니까? 예수님은 깨끗이 옮겨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깨끗이 돌아서라
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따르겠다고 했으면, 날 따르든지 죽은 자들을 따르든지 이쪽이든지 저쪽이
든지 하나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는 곳이니 지나가는 동안에 좀 고난을 겪더라도 후
에 올 영광을 바라보며 나를 따를 것인지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문화 그 죽은 것들을 좇으며 마음을 거기에 두고, 입술로만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믿음을
분명히 하지 않고, 꼭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것과 같이 하면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한다고 말씀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주셨다고 하니까, 자기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하니까, 그렇게까지 자
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자기 입장을 아시고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
다. 그렇게 착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달래가면서 '나 예수 좀 믿어주라, 나 좀 제
발 좀 믿어줘, 제발 부탁이니 믿어줘 좀!'하러 오신 줄로 착각하는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의 일은, 말씀 그대로 죽은 자에게 하는 것이요, 그 배후에 죽음의 영, 악한 영에 순종하
는 것이요, 섬기는 것으로서 죽은 자의 종입니다.
그리고 눅12:15에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
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넉넉하기 위하여 일생 그것을 쫓다가 생명을 잃으면 자기에게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한 번 목숨 잃어버리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꿀 수가 있
겠느냐"고 하셨습니다(마16:26). 사람의 죽은 일에, 두 주인 섬길 수 없는 일에 끌려다니고 쫓아다
니다가 목숨 잃으면 지옥으로 떨어지니, 그 죽은 자들의 일로 네 목숨을 구할 수 있겠느냐 말입니
다. 그 어떤 것도 목숨과 바꿀 것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히13:5에 돈을 사랑치 말
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고 했습니다. 히13:9에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고 했습니
다. 우리의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지 음식으로 할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굳게 하고 영적인 것을 세
워나가는 데 마음을 쓰라고 했습니다.
딤전6:8-10에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
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져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
라 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되는 것으로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
아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딤전6:17에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
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했습니다. 구약성경의 다니엘서는 이스라엘
과 연관된 역사와 함께 세상 끝날에 있을 일들에 관한 예언서입니다. 요한계시록과 연결된 것으로,
그 책 맨 마지막 장인 12장에 보면 성경의 비밀이 열린 시대인, 종말의 때가 되면 '많은 사람이 연
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
닫지 못하되'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했습니다.
그러면 악한 자가 누구입니까? 교회 밖에 사람들만을 악한 자 안에 처한 자라고 한다 했습니까? 아
닙니다. 바로 오늘 서기관과 같은 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것이 곧 자기 것을 이루고
싶은 것에 초점을 두었으므로 악한 자요, 이런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육
의 것만 만족이 있으면 되지, 천국이니 지옥이니 그다지 감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만 좇는 현세주의자인 사두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는 다니지만, 구주로는 관계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또한, 악한 자는 이 제자처럼 죽은 자의 일을 중시하고, 마음을
두고 끌려다니는 자를 말합니다. 악한 자는 깨닫지 못한다고 했으니, 그러면 이 같은 말씀을 다 듣
고도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다면 그가 악한 자이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이 같은 말
씀을 듣고도 감각이 없다면, 그가 심성이 착해서 사람들에게 칭찬받는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를 악
한 자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 있는 자는 깨닫는다 하셨으니 이는 또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흠 없고 깨끗한 자가 되
기 위해 스스로 연단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있어 가난해야 한다면
가난한 것을 택할 것이고, 세상 명예나 부귀를 다 버려야 한다면 버리고, 고난이 있어도 그 길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라면, 차라리 잠시 받는 고난을 택하는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
금 여러분은 어느 길입니까? 예수님을 따를 것이냐, 귀신을 따를 것이냐, 분명한 태도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도와주신 성영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제 3 장 죽은 일은 죽은 자들에 두고 너는 나를 좇으라.p67-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