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안녕하세요,
전지연님.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는 어떤일을 하는 곳이며 현재 그 곳에서 하시고 계신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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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는 민속유물(민속 관련 시청각, 디지털 영상자료 포함)의 구입, 수집, 보존 및 관리를 하는
부서로 저는 현재 이곳에서 서화(書畵) 유물의 보존처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서화는 글씨나 그림을 감상하고 보관할수
있도록 두루마리, 족자, 병풍, 액자, 책, 첩, 매트 등 다양한 형식으로 꾸며지는데(장황粧䌙) 이런 다양한 형태의 서화 유물
들이 여러 요인(빛, 산소, 수분, 열 등에 의한 광분해, 산화반응, 가수분해, 열분해, 곰팡이나 해충의 생물학적인 공격,
인간의 부주의한 취급 등)에 의해 손상을 입어 훼손이 되었을 때, 저와 같은 보존전문가는 손상된 유물을 고쳐주는
의사라고 비유될수 있습니다.
Q. 이번에 공개된 <안동권씨족도>는 지속적인 관리가 되지 않고,
생성연도도 오래되어 훼손이 상당히 심했을 것 같습니다. 보존처리 과정은 어떠했나요?
A <안동권씨족도>는 비단 바탕에 묵서가 된 두루마리 형태(세로 61.3㎝, 가로 219.8㎝)로, 화견(畵絹)은 부스러질
정도로 열화가 진행된 상태였으며, ‘족도’ 앞부분은 없어지고 상단부는 배접지만 남아 있었습니다. 철저한 사전 조사와
분석을 통해 2011년에서 2012년까지 2년간의 보존처리 및 복원 과정을 거쳐 <안동권씨족도>가 원래의 원형으로 복원
될수 있었는데요. 보존처리 과정에서 ‘족도’ 상하 양변의 좁은 자주색 비단띠 변아(邊兒)를 발견함으로써 족도의
제작시기를 15세기로 추정하고, 회장 부착 두루마리 형태의 장황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물임을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두루마리에 부착되는 부속품은 동시대 유사 유물의 장황을 연구 분석하여 상횡목(上橫木, 두루마리 상축),
하횡목(下橫木, 두루마리 하축)의 마기〔莫只, 두루마리 하축 축두〕, 대자(帶子, 두루마리 끈), 첨자(籤子,
두루마리 꽂이)를 복원하였습니다. 이번 보존처리를 통해 밝혀낸 15세기 ‘족도’의 제작 기법은 추후 다른 유사 유물의
보존처리와 다양한 연구 활동 등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3DC74850B58A1332)
▲ <처리 전>
![](https://t1.daumcdn.net/cfile/cafe/130D444D50B58A2E24)
▲ <보존처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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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리 후/ 이미지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Q. '족도' 보존처리과정에서 사용된 인공 열화견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고 들었는데요
개발까지의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A <안동권씨족도>는 화면의 결손부가 많고 열화도 심하게 진행된 상태였기 때문에 결손부 보강이 필수적이었습니다.
결손부 보강은 손상된 부분을 채워 보강해 주는 과정으로서 유물과 가장 유사한 재질의 재료를 사용하게 되는데
서본의 씨실․날실의 간격과 두께를 맞추어 유사한 화견을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유물의 조직은 직조를 통해 가능하나, 새로이 직조된 비단의 강도가 약화된 유물 원본과 같을 수는 없었습니다.
‘족도’의 보존처리를 위해서는 유물과 유사한 열화 비단이 필요했고, 이를 계기로 국립민속박물관 보존과학실 오준석
학예사는 서화 보존처리에 사용할 생견의 자외선 인공 열화견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우리 관에서는 섬유보존에
사용되는 정련견의 자외선 열화견 적용은 시도되고 있었지만 이번 족도의 보존처리를 계기로 생견의 자외선 열화 연구에
착수하게 된것입니다. 2008~2010년에 걸쳐 자외선 인공 열화견(생견 열화)의 개발과 더불어 견본 서화 유물의 보존
처리에의 적용 가능성 평가를 함께 진행하며 자외선(UV) 인공 열화견을 개발하는 데에 성공하고 이를 특허 출원
하였습니다. 이후 수차례의 적용 실험 끝에 안정성을 확인한후 <안동권씨족도>의 보존처리에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Q. ‘인공 열화견’이 개발되기 이전까진 어떤 방식으로 보존처리가 이루어졌는지요?
이전의 방식과 ‘인공 열화견’은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 한말씀 부탁 드립니다.
A 자외선 열화견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안동권씨족도>와 같은 생견 직물로 된
서화 유물의 보존처리를 위해 진행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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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권씨족도』의 보강용 화견을 열화시킬 자외선 램프 선택 (UV-A와 UV-C 실험)(좌)
서본 보강용 화견의 열화 시간 선택(UV-C 320시간 열화 적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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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아회장용 견 자외선 인공 열화 적용(좌: 열화 전 → 우: 열화 후)>
<상․하회장용 견 자외선 인공 열화 적용(좌: 열화 전 → 우: 열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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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열화견의 서본 결손부 보강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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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열화견의 중앙좌회장 결손부 보강 적용(좌), 인공열화견의 하회장 결손부 보강 적용(우)
이미지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당시 국내에는 열화견 제작 기술이 없어 소수만이 비공식적으로 일본에서 전자선(γ-선이라는 방사선) 열화견을 주문
하여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우리 관에서는 일본의 전자선 열화견이 고가(高價)일 뿐 아니라 수입해서 사용하는 데에도
제약이 있으며, 원하는 때에 원하는 사양(직물 종류, 열화 정도, 색상 등)의 열화 직물을 구할수 없다는 단점과 함께 전
자선이 가지고 있는 친수성에 대한 문제와 자연적으로 열화된 화견과 표면적으로 상이하다는 문제를 인식하였습니다.
이에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면서 열화된 유물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며, 필요한 시기에 원하는 사양을 만족시킬수
있는 자외선 인공 열화견을 개발하게 된 것입니다.
Q.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족보’와 『안동권씨족도』는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나요?
또한 ‘족도’가 가진 학술•문화재적 가치는 얼마나 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A 족도는 주로 자신의 친가, 외가의 가계 배경을 한눈에 살필수 있도록 한 장의 장지나 두루마리 형태로 제작된 것으로
15-16세기까지 널리 작성되었습니다. 조선초기에는 종래의 족도를 보다 종적, 횡적으로 소급하거나 확대 추심하여
계보화 함으로써 <안동권씨성화보>와 같은 15세기 족보가 발간되었습니다. 이에 족도는 족보 이전의 가계기록, 또는
족보의 초기적인 형태로서 일찍이 주목을 받아 왔습니다. 이런 점에서 <안동권씨족도(1454-1456 추정)>는
<해주오씨족도(1401년)>와 더불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족보인 <안동권씨성화보(1476년)> 이전에 작성되었다는
점에 족보 발달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역사자료입니다. <안동권씨족도>에 기재된 인물 분석 등 문헌학적 관점에서
연구하신 국립민속박물관 최순권 학예연구관에 의하면, <안동권씨족도>의 학술적 가치와 의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안동권씨족도>에 기재된 인물 분석 등 문헌학적 관점에서 연구하신 국립민속박물관 최순권 학예연구관에 의하면
<안동권씨족도>의 학술적 가치와 의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로, <안동권씨족도>는 비단 바탕에 권여온의 자녀
자손들 관계를 붉은색 계선으로 표시한 두루마리 형태로, 여기에 현덕왕후 및 단종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역사
자료로서 주목할만합니다. 특히 조선초기 왕의 혈통을 밝히기 위해 팔고조도를 작성하였다는 점에서, 단종의 혈통을
밝히기 위한 단종의 외증외가(外曾外家) 족도로 추정됩니다. 물론 현존하는 최고의 『해주오씨족도』가 있지만 이것은
사적으로 한장의 장지에다 해주오씨를 중심으로 팔고조에 해당하는 일부 가문의 가계를 그려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안동권씨족도>는 장황 형태나 규모면에서 15세기 중반 적개공신교서나 상대계회도와 같은 양식이라는 점에서도
국가 차원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로는 출생 순으로 자녀를 기재하고, 외손도 본손과 같이 편찬 당시까지 대를 이어서 전부 기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초기 족도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족도’는 조선초기 가계기록과 다르게 자 여로만
기재하되, 적서(嫡庶)를 구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분사 및 생활사 자료로 주목됩니다. 적서 구분은 조선후기 족보
기재 방식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선원록>등 왕실보첩에만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런 면에서 <안동권씨족도>는
왕실과 관련된 족도이기 때문에 자녀간 적서를 구분하는 기재방식이 채택된 것으로 보입니다.
세 번째로, <안동권씨족도>에는 단종과 현덕왕후가 사육신 사건으로 연루되어 폐위되었기 때문에, 이들 위치에 강제로
떼어낸 부첨 흔적이 있다는 점에서 정치사 및 친족사 자료로 주목됩니다. 특히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조선시대에
유일한 안동권씨 출신의 왕비임에도 불구하고, <안동권씨성화보>에는 이들 외가의 내용이 모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과 관련된 외가 친척들이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어 대부분 죽거나 유배를 당해 기록이 소략한데 이 ‘족도’의 수록
내용을 통해서 조선초기 외척 가문의 가족 구성 및 친족의 범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 <안동권씨족도>의 가계기록을 통해서 조선초기 안동권씨 내 동성혼 및 명문가의 중첩적인 혼인 양상을 살
펴볼수 있다는 점에 주목됩니다. 조선초기까지 동성혼이 성행하였는데, <안동권씨족도> 원본에서 총 14사례의
동성혼 및 5대에 걸친 동성혼 사례가 나타납니다. 반면에 17세기 초반에 작성되었을 추록 부분에는 단지 2사례의
동성혼 사례가 나타나, 이 ‘족도’ 안에서도 동성혼 양상의 변화를 살펴볼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족보발달사에 한 획을 긋는 조선초기의 고문서로서, 1456년 사육신 사건과 연계된 현덕왕후와 단종 관련
가계기록이라는 점에서, 조선초기 정치사, 사회사, 생활사를 종합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1차 사료로 평가됩니다.
더구나 최고(最古)의 회장 부착 조선초기 두루마리 장황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어서 서화 보존, 복원의 지침서가
된다는 점에서, 이 ‘족도’가 가지는 문화재적 가치도 매우 크다고 할수 있습니다.
Q. 향후 ‘인공 열화견’의 활용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또한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자외선 인공 열화견은 향후 관내에서 보존처리 분야에 계속 활용될 것입니다.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추후 좀 더 확장된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이 시스템에 관한 연구 개발은 우리 관 보존실 오준석 학예사를 주축으로 진행될 계획에 있습니다.
각각의 유물은 재질, 열화정도 등 상이한 부분이 많아 원하는 때에 원하는 사양(직물 종류, 열화 정도, 수량 등)의
직물을 그때그때 제작하여 사용하는 것이 보존처리에 더 적합하기 때문에 대량생산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미 보존 관련 학회에 자외선 인공 열화견 제작에 관한 내용이 상세하게 발표되었기 때문에 같은 분야에 있는
연구자들이 이 기술을 활용하여 보존처리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Q. ‘인공 열화견’ 개발 등 우리 문화재를 위한 이와 같은 노력이 국가브랜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우리 관이 개발한 자외선 인공 열화견은 서화 보존처리 분야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일본의 수입에 의존하던 보존처리에서 자체 제작으로 훼손된 유물을 보존 처리하여 후대에 전할 수 있다는 것은 보존
처리된 유물 하나만을 보더라도 국가브랜드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외선 인공 열화견의
개발에 관한 연구 내용이 해외로 나간다면 해외의 많은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족도’. 이를 통해 조상들의 생활 모습 일부분을 파악한다는 것도
놀랍지만, 부셔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훼손이 심했던 ‘족도’를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만들어낸 우리의 복원기술
또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앞으로 이러한 기술을 더욱 개발하고 발전시켜, 아름답고 훌륭했던 우리 조상들의
역사가 지금보다 더 많이 우리에게 보여졌으면 합니다. 우리의 임무는 조상들의 모습을 다음 세대에게 온전한 모습으
로 물려주는 것! 대한민국의 역사여~ 영~원~하~라~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orea_brand&logNo=10153061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