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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놀자. 미천골 자연휴양림 참관기>
점성술사처럼 비가 왔다
양영숙 시인
첫째 날
-밤에도 꽃은 피고 있었다
여름의 중심인 칠월의 첫째 토요일.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꿈꿔왔던 시원한 물소리와 새 울음소리 모든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눈앞에 어른거리는 길을 따라 몸은 벌써 산길을 돌고 있었다.
오전 11시 《시와소금》사무실에서 합류한 일행은 강원도 양양 미천골을 향해 출발을 서둘렀다.
동홍천요금소를 지나 서울양양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새로운 산들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고속도로 대부분은 강원도의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가로지르며 공중에 떠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수많은 차량들로 일부구간이 한동안 정체가 빚어지기도 했지만 오랜만의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우리 일행을 더욱 신나게 했다. 쉴새 없이 이어지는 산과 계곡, 터널과 다리는 강원도의 우람한 어깨를 과장 없이 보여주었다.
우리가 지나온 고속도로에는 거의 30여개가 넘는 터널들이 있는데 특히 연장 11Km의 인제터널은 국내 터널 중에서 터널길이가 가장 길다고 한다. 세계에서도 11번째로 긴 도로터널이라고 하니 그 위용 또한 대단하다. 최신 첨단공법으로 시공되어선지 터널 내부가 어둑하고 침침한 터널들이 아니었다. 기존 터널보다 넓고 높았으며 LED조명을 장치해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 터널 군데군데 화려한 색색의 조명과 안내음성 그리고 톡톡 튀는 음악으로 재미까지 더해 백두대간의 줄기까지 흔들어 놓는 듯 했다.
우리 일행은 산중턱의 새롭게 단장된 내린천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하기로 했다. 휴게소의 경관은 좋았으나 한꺼번에 몰려든 차량으로 무척 어수선했다. 길고 긴 공사기간을 거친 서울양양고속도로의 탄생 배경을 알려주는 홍보관을 둘러본 후 휴게소 옥상으로 갔다. 우리는 백두대간의 절경을 뒤로하며 추억의 한 컷을 눌렀다. 그리고 다시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군데군데 차량 서행으로 지루하긴 했지만 다행히 목적지까지 도착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전날 개통한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이용했기에 1시간 조금 지나 미천골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존의 교통여건과 비교하면 거의 1시간 30분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미천골로 가는 길은 방태산, 점봉산, 설악산 자락을 지나야 했다. 산길을 넘어가는 외로운 여행자의 발길을 생각하니 마음 한곳이 아릿해졌다. 큰 키의 나무들과 어두운 계곡을 돌고 돌아 차안이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푸른 숲 냄새가 코를 찔렀다. 미천골 계곡은 꽃무늬 편지 속에서 뛰어나오듯 우리 가슴에 와락 안겼다. 그곳은 화장기 없는 자연그대로 오지의 얼굴이었다. 작고 넓은 계곡과 물길들이 끝없이 뿌리를 뻗어가고 있었다. 우뚝 솟은 소나무들의 푸른 어깨와 늠름한 다리, 키 작은 활엽수의 손짓들은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았다. 말로만 들었던 미천골의 자연을 눈앞에서 생생이 보고 있으니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천골 이야기는 계곡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림원지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유명한 사찰로 알려진 선림원은 많은 승려와 도반들로 가득했는데 이들에게 먹일 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을 때 생긴 쌀뜬물이 계곡 아래로 허옇게 이어지면서 미천골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야영장 울창한 그늘 아래 친 텐트를 바라보며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고조되었을 때, 병풍처럼 둘러진 산 아래 나무생각이라는 펜션이 나타났다. 이 곳은 강원도라는 곳을 다시 상기시키듯 아직도 긴 넝쿨을 늘어뜨린 장미꽃과 색색의 각종 야생화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보라색 야생수국이 인상적이었다. 펜션은 휴양림 안쪽으로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어 아름답고 깨끗하며 아주 조용했다. 각 방문마다 그 방에서 지내게 될, 미리 준비한 명단을 붙이고 짐을 풀었다. 펜션 앞의 깊은 계곡은 심한 가뭄으로 무릎높이의 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계곡에《시와소금》현수막을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에서 오신 강영환 선생님과 시인들 그리고 충청도에서 오신 구재기 선생님 부부가 도착했다. 일행들은 오랜만의 해후를 감싸 안듯 서로 얼싸안고 인사를 나누었다. 꽃나무 생각 같은 ‘나무생각’에서 2박 3일 동안 같이 할 일행들은 서울, 부산, 대구, 충남 서천, 용인, 여주, 하남, 춘천 등지에서 모인 인원은 23명이었고 이번 여행의 전체 진행은 한성희 시인이 애써 주기로 했다.
내가 묵게 될 방은 복층으로 되어 있었고 다섯 명이 한 방 한 식구가 되었다. 멀리서 달려온 전국 각지의 시인들, 2박 3일의 쉼을 위하여 미천골은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시와소금 2017년 ‘시야 놀자’ 행사 첫날의 저녁은 양양 남대천로에 가면 제비집이 많은 식당에서 시작되었다. 사라져가는 처마의 기억을 잔물결처럼 떠오르게 하는 그곳, 문득 “제비에게 세를 주다”라는 손택수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새 울음소리를 염치없이 받아쓰고’ 있는 내게 날개를 출렁이며 날아다니는 제비, 허공에는 오래된 고요가 감돌았다.
우리 일행들은 그곳에서 강원도 특유의 투가리와 은어튀김으로 허기의 배를 채웠다. 처음 먹어 본 투가리의 매운탕 맛은 모두들 낯설지 않고 오래된 입맛처럼 자연스러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가에 보라색 깃털의 자귀나무가 활짝 웃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온 일행들은 첫날 행사의 일정준비에 들어갔다. 첫 번째 행사는 ‘시에 대한 난상토론’이었다.
서범석 시인의 사회로 시에 대한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난상토론의 주제는 첫째 ‘나에게 있어 시는 무엇이며, 나는 왜 시를 쓰는가?’ 였고, 두 번째 주제는 ‘이 시대 시가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였다. 시를 쓴지 오래된 원로 시인이나 신진시인이나 시가 자신에게 있어 무엇인가 꺼내어보고 창작 배경을 나누며 열띤 토론과 진지한 시간이었다.
“시는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시에 대해 집중하여야만 시가 다가온다.”는 등 여러 의견과 질문이 오고 갔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나는 순진하게도 글을 쓰면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깊이 잠을 못자고 꿈속에서도 시가 때론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도 시는 나에게 행복과 고통을 함께 줄 것이다.
낯선 곳에서의 첫째 날 밤, 어둠이 깊어지는 신호음인양 굵은 빗소리가 들렸다. 투둑 투둑 커브를 돌며 들어온 미천골 물길의 배후에는 가뭄으로 갈망하던 빗방울의 멋진 근육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색색의 꽃잎과 푸른 이파리에 밤새도록 물방울 같은 이야기를 모으는 야생화들, 우리들은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다 깊은 침묵 속으로 하나둘 들어갔다. 숨을 멈출 수 없듯 끊어버릴 수 없는 문학의 길을 나선 동행들, 평소에는 조심성이 있어 가까워지기 어려워도 한방에서 같이 자고 나면 벽 하나가 허물어 졌다.
둘째 날
- 수만 갈래의 물방울이 넘실거렸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이른 아침, 불안스런 마음이 앞섰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이번 행사가 잘 진행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우중의 날씨였다. 아침식사를 하기 위하여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불바라기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피아노 소리가 물살처럼 미천골 능선을 넘고 있었다. 우리들은 옹기종기 빗소리를 찬거리로 삼아 된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둘째 날의 일정 중에는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고 물놀이를 할 예정이었으나 계속되는 비로 계곡물이 불어나 행사를 취소하였다. 하지만 계획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여행의 여유로움을 갖게 하였다. 일행들끼리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하나를 놓치면 하나를 얻는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가는 듯 진지했다.
양양에서 서쪽으로 20km, 한계령에서 동남쪽으로 7.5km가면 오색약수터에서 둘째 날 점심을 먹었다. 다량의 철분을 함유하여 물 좋기로 유명한 약수터 근처의 한식당이었다. 그곳에서 오색약수로 지은 밥과 강원도 덕장에서 말린 황태구이를 곁들인 오색약수 정식을 먹었다. 나는 점심을 맛있게 먹은 후 설악산의 마지막 정상을 오르는 기분으로 차의 뒷자리에 끼여 한계령 정상에 올랐다.
나와 한차에 동승한 김진광 시인과 이사철 시인은 강원도 토박이 시인이다. 두 분의 구수한 입담은 일상생활 부터 구불구불 강원도의 전설로 이어져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한계령에 우리 일행보다 먼저 도착한 낮은 구름, 멀리 능선으로는 검은 바위가 자신의 알몸을 고스란히 내 보인 채 빛나고 있었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봉우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눈동자 안으로 들어왔다. 능선을 내려서는 바람의 운율에 맞춰 빗소리가 퉁소 소리처럼 들렸다. 지난 시절 하나의 노래가 떠올랐다. 내 아들이 어릴 적 신기하게도 잘 불렀던 ‘양희은의 한계령’이 생각났다.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숙소로 가는 계곡길, 펜션에서 가까운 곳 한편에 고즈넉이 자리한 통일신라시대 흥각선사가 세운 옛 절터 선림원지를 둘러보았다. 옛날에는 구령룡 고개가 백두대간을 넘기에 수월하여 가객들이 많이 거쳐 갔던 절이다. 그 당시 꽤나 큰 사찰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 규모가 전혀 보이지 않고 탑과 주춧돌만 덩그러니 보였다. 곳곳에 절집 기초석과 텅 빈 절터만 남아있었고 보물로 지정된 석등과 부도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림원지를 둘러싸고 있는 돌담 틈으로 솟아난 이름 모를 풀들, 사라진 절은 과거 속에서 새어나오는 아픈 신음소리 같았다.
비가 계속되는 둘째 날 오후 우리들은 불바라기 약수터를 산책하기로 했다. 휴양림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걷기에 좋은 조봉 등산로가 있고 계곡을 따라가면 들어가면 오롯이 미천골의 정취에 든 정자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정자를 보면 무작정 들어가 쉬고 싶은 충동이 들곤 한다.
정연희 시인과 정자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시선을 거두어가는 무엇 하나, 날렵하고 천진난만한 흰 빛을 가진 동물이 나타났다. 검은 눈에 하얀 그가 쏜살같이 산 속 깊이 달려가자 하나의 그림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풍경 같았다. 작품 속의 안과 밖, 그는 멀찍이 가만히 멈춰 있었다. 액자 속에 꼼짝없이 서 있는 것처럼, 무작정 예고도 없이 나타난 그는 내가 처음 보는 하얀 담비였다. 그리곤 그림을 지우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동안 무성한 수풀 속을 쳐다보며 귀한 만남의 우연한 친구 담비를 찾았다.
한여름 강원도 옥수수 알갱이 같은 빗방울과 산과 계곡을 울리는 온갖 소리들을 휴대폰에 저장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순간 풍경들을 찍다보니 약수터를 올라간 일행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비가 내리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온몸으로 비에 흠뻑 젖어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움직이는 수종식물 같았다.
산책을 마친 오후, 비 오는 날 당신은 보물을 찾아보셨나요.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운을 바라며 보물찾기가 시작되었다. “여러분의 행운은 가깝고 찾기 쉬운 곳에 숨겨두었습니다”라는 조태명 진행자의 말소리에 우리들은 화분을 들추고 빈틈을 뒤졌다. 하지만 얄미운 찾은 자의 탄성과 못 찾은 자의 불만 섞인 발걸음, 한 장씩 행운의 번호가 적힌 종이를 손에 들고 숫자에 맞춰 선물을 받을 때는 누구나 동심으로 돌아갔다. 누구에게나 선물을 받는 입장에서는 기쁜 일이고 주는 사람에게도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둘째 날의 저녁 식사는 ‘나무생각’ 펜션에서 정성껏 사모님과 주인장이 준비했다. 사모님의 깔끔하고 정갈한 산수국 같은 산중음식과 바비큐 구이. 미천골에서 태어나 그곳에 정착하고 미천골을 무지하게 사랑하는 그 부부의 손맛과 정성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다시 없을 것 같은 비 오는 산중의 저녁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한성희 시인의 진행으로 ‘자작시 낭독’을 가졌다. 여전히 어린아이의 마음과 맑은 목소리로 낭독을 하신 이화주 선생님의 동시 한 편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어둠이
커다란 어둠이
꽃들을 재웠다고
큰소리치지만
꽃들은
자는 척
향기로 이야기 나누는 걸
어둠은
고건 모르지요.
―이화주「고건 모르지요」전문
서로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시인들 눈가에는 졸음 반 불빛 반의 반짝임이 들어있었다. 아직도 소녀의 감성을 지닌 노혜봉 시인, 수줍은 듯 미소를 짓는 소년 같은 조성림 시인, 시의 열정이 넘치는 박명숙 시인 등 마음과 목소리를 가다듬어 미리 준비한 시를 풀어냈다. 편지의 봉인을 풀듯 천천히 조심스럽게 자작시를 낭독했다. 창밖으로 비는 계속 이어졌고 우리들의 노래도 술잔도 시의 세계를 음미하며 이어졌다.
끝으로 《시와소금》임동윤 주간님이 시와소금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소금 같은 시를 위해 무명시인 발굴 등 중심이 아닌 주변을 눈여겨 볼 것이라는 말씀을 귀담아 들었다.
구재기 선생님이 다른 일정 때문에 하루 먼저 자리를 떠나셨다. 바닥을 흐르던 빗물들이 인삿말을 전하는 듯 반짝거렸다.
삼일 째
-점성술사처럼 비가 왔다
새벽비는 잠 속으로 들어와 큰 소리로 내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어서 일어나란 말야. ” 떠나온 집을 향해 어서 돌아가라고, 별자리 따라 날아가는 새들의 날갯짓처럼 사막을 헤매는 여행자의 별자리처럼 빗소리는 나의 귓전에서 날아다녔다. 곧이어 박해림 부주간님이 공식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일찍 출발 한다는 연락을 하셨다.
무섭게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도로가 유실 되어 혹시나 돌아가지 못할까 모두들 불안한 마음으로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가방을 챙기고 문을 열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커다란 미천골의 위엄, 계곡물은 순식간에 무섭게 불어나 격렬하게 부딪쳤다. 계곡의 수위는 시와소금 현수막 턱밑까지 차올랐다.
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흙탕물을 뒤집어 쓰고 맹렬하게 흰 거품을 토해냈다. 물폭탄이란 이런 것일까, 나는 꿈을 꾸는 듯 처음 겪는 불안이 신기하기만 했다. 물이 불어나 수거하지 못한 현수막이 우리 일행들을 안타까이 바라보는 듯 했다. 이렇게 미천골을 떠나가는 우리들은 불안한 이별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양양에서 춘천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부랴부랴 일행들을 소집하고 산 아래 불바라기 식당으로 대피소 아닌 마지막 날 아침식사를 청했다.
아침식사를 하면서도 한쪽에는 비를 걱정하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일행들은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서로의 안전과 조심을 걱정하며 부산과 용인 등으로 각자 떠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남은 일행들도 곧바로 춘천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구름은 산봉우리를 덮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 일행들은 무사히 춘천이 바라다 보이는 구봉산카페 야외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실 수 있었다. 도망치듯 빠져나온 미천골과는 달리 춘천은 햇볕이 내리쬐고 후덥지근하였다. 불과 몇 시간 동안에 겪은 일들이 꿈인지 생시인지 불분명 한 착각이 들었다. 만약 그때 우리에게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그날은 점성술사처럼 비가 내렸다.
너는 새가 아니고 의자야
새를 위해 비워 둔 자리야
어디로 가지 말고 그곳에서
돌아올 새를 기다려야 해
지친 날개를 쉬어갈 수 있게
몸을 납작하게 엎드리고
-강영환 시인 「의자가 된 새」 일부
올해는 유난히 가뭄이 심한 해였다. 마천골 비의 변주곡은 타들어가는 갈증의 숨구멍이었다. 내가 지금껏 만난 제일 시원시원한 여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진한 그리움이 되는 사람처럼 미천골은 평생 가슴속에 잊지 못할 기억 속 마그마가 되었다.
나는 세상에 숨죽이고 지쳐 갈 때마다 그 자리에 앉아 쉼을, 시야! 놀자의 비와 바람과 새소리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언제나 자리를 비우고 있을 미천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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