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 고사포에 친구가 펜션을 하고 있어 어제 고창 여행을 마치고 친구의 펜션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늘 만나는 친구였지만, 묵었던 이야기를 나눈 적은 오랜만이었다. 좋은 시간이었다. 아침에 마실길 2코스가 시작되는 송포항까지 바래다 주었다. 송포항은 변산해수욕장의 남쪽 끝부분에 있는 작은 항구이다. 변산해수욕장은 여름에는 피서지로 봄, 가을, 겨울에는 한적한 데이트 장소로 전라북도에서 최고의 명소 였다.
지금은 많이 썰렁해 있었다. 모래사장 주위에 수많았던 상가들이 관광지 재정비로 철수했고, 해수욕장의 모래가 쓸려나가 점점 바다가 깊어지고 있단다. 이 쓸려간 모래를 채우기 위해 다른데서 실어온 모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여기서 새만금 방조제가 3키로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 모래 쓸려가는 현상이 방조제를 막고 나서부터 생겼다 한다. 자연현상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부안군에서는 해마다 여름 해수욕 시즌 전에 모래를 채우는 데, 이 일도 만만치 않은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어야겠다.
동행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친구의 인사를 뒤로 하고 바닷가 산길로 올라섰다. 변산 마실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계곡을 넘어가는 길에 아치형의 다리와 출렁다리가 곳곳에 새로 세워져있었다.
변산 마실길의 특징은 해안길과 산길을 연결하여 조성되었는데 산길은 주로 해안근무초소를 연결했던 길이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교통호와 개인호와 철조망이 있고, 간간히 야간경계초소도 있었다.
우리 젊은 시절에는 전투경찰들의 근무지였는데 지금은 육군에서 맡아하고 있었다. 시설관리만 하고 있었을 뿐이지 실제 병력은 없었다.
한 시간 쯤 지나서 고사포 해수욕장 솔 숲길을 지난다. 멀리 불루펜션 지붕이 보인다. 흐린 하늘에 색깔이 선명하다. 세 개의 뾰쭉 지붕 중에 맨 오른쪽에 내가 잤던 방이다. 다시 산길에 올랐다. 앞에 보이는 섬이 하섬, 보름과 초하루 물이 많이 빠질때만 길이 드러나는 섬이다.
열 한시반 이다. 아침에 선식으로 간단하게 때워서 벌써 허기가 지고, 지쳐갔다. 격포에 가야 요기를 할 데가 있을 것인데 아득하다. 모처럼 포장도로를 따라간다. 대형펜션 아래 마을이 있고, 마을 앞으로 들판이 전개되는 마을 풍경이다.
마실길을 내려 해안가로 걸었다. 여기는 바위가 붉어 적벽강이라 불리는 곳이다.
삼국지에서 조조군대가 오, 촉 연합군대에 대패하는 곳이 적벽강이라는 곳이다. 거기에서 이름을 따왔다는데 심정적으로 내키지 않는 명소의 이름이다. 여기는 강이 아니고 바닷가이고 실제로 적벽대전이 벌어졌던 곳은 이렇게 아름답지도 않다고 한다. 해안가 돌출부를 돌아서 가려다 다시 올랐다. 그때 물이 들어오고 있었고, 위에 있는 당집을 보고 싶었다.
수성당은 서해바다를 다스리는 개양할머니에게 제를 드리는 곳이다.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흘 날에 풍어와 무사고를 비는 곳이다. 이 곳은 선사시대부터 제사를 지냈던 유물이 나왔던 곳이다.
격포에 한시 도착해서 우선 식당을 찾았다. 처음 들어간 식당이 횟집이었는데 메뉴가 마땅치 않아 전복죽을 시켰다. 내가 시켰지만 별로 였다. 죽은 죽일 따름이었다. 음식 값은 비쌌고 충분히 요기가 되지 못했다. 채석강을 둘러보고 낮잠을 잘만한 장소를 찾았다.
정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밋밋했고, 마루가 있고 지붕이 있는 휴게실 바닥에 짐을 풀고 머리를 뉘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얼굴은 수건으로 감고 옷은 두 겹으로 입고 잠을 청했다. 바람이 세게 불때마다 정신이 나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꿈속을 왔다 갔다 했으니 잠에 들기는 들었던 가보다. 한 삼신분 정도 누워있다 일어나니 몸이 가뿐했다. 혼자서 도보여행을 하는 여행자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느긋함이었다.
격포항에서 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다음 연결되는 길이 보이질 않았다. 한참 격포항을 두리번거리다가 해넘이 공원 한 구석에 궁항 넘어가는 길을 찾아냈다. 숨이 가슴에 차오를 정도의 산길을 올라서니. 널찍한 임도가 나왔다. 나무그늘이 터널을 이뤄 시원했고, 걷기에 아주 좋은 신나는 숲길이었다.
불멸 이순신 드라마 세트장이 있었다. 전라 좌수영을 복원하여 만든 것이다. 그 드라마를 방영했던 때가 15년 전이다. 여기저기 헤어지고 무너진 곳이 많았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흐른 것이다. 궁항을 지나 상록해수욕장, 그리고 청소년 해양 수련원을 지나 오늘 최종 목적지인 모항에 도착했다. 나는 변산의 이 근방을 지날 때마다 서귀포 해안가를 걷는 기분에 빠지곤 했다. 앞에 있는 섬이나 수많은 호텔, 콘도 그리고 수려한 바닷가 경관 들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다시 불루펜션으로 돌아왔다.
해양 청소년 수련원
모항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