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장 부영심입니다.
근무지 선생님들의 원고를 작성하시면서 참고하시라고 예시문을 올립니다.
그동안 받은 궁금하신 부분들을 다음과 같이 알려드립니다.
질문 1 : 제주어로 원고를 작성해도 될까요?
답 : 네. 가능합니다. 선생님들이 작성하기 편하신대로 표준어 혹은 제주어로 작성하셔도 됩니다.
질문 2 : 글자수를 맞추려니까 힘듭니다.
답 : 글자수에 구애받지 말고 말하고 싶은 내용을 담고 보내주시면 됩니다.
질문 3 : 주제를 한가지로 혹은 두가지만으로도 가능가요?
답 : 가능합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제주에 관련된 주제를 선택해주시길 바랍니다.
예시문으로 보내드리는 글은 차후 편집회의를 거쳐 정정될 초안임을 알려드립니다.
▣ 표준어로 작성한 예시
조천읍 북촌리는 4`3기간 중 하나의 사건으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입은 마을입니다. 1948년 12월 19일(음) 군용 트럭이 당시 대대본부가 주둔하고 있던 함덕리로 이동 중 트럭에 타고 있던 군인 2명이 이 마을 근처 도로에서 무장대의 습격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이에 토벌대는 도로에 접한 북촌을 무장대 지원마을로 여겨, 가옥을 불태우고 마을 사람들을 초등학교에 모이게 한 이후, 남녀노소 상관없이 30~40명씩 인근 밭으로 끌고 가 총살하는 끔직한 일을 저지릅니다. 이틀에 걸쳐 마을 주민 450여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4`3 당시 토벌대의 무차별 학살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마을입니다.
● 너븐숭이기념관과 애기무덤 앞에서
‘너븐숭이’란 말이 궁금하시죠? ‘너븐숭이’는 바위암반이 봉긋하면서 넓게 펼쳐진 장소를 말합니다. 지질용어는 아니지만 옛날부터 마을 어르신들이 이곳을 ‘너븐숭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너럭바위와 비슷한가?’이렇게 이해하셔도 됩니다. 이곳에 서보니 바로 앞에 바다가 보이시죠. 이처럼 북촌은 바닷가 마을입니다. 해안마을이라고도 하는데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거나, 물질을 하는 해녀들이 많은 마을입니다.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기도 합니다. ‘너븐숭이’는 밭일이나 물질하러 갔다 오다 잠깐 쉬어가던 쉼터이기도 해서 마을 어르신들에게는 친근한 장소 중 한 곳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 ‘너븐숭이 4`3기념관’이 개관된 시기는 2009년 3월 31일입니다. 근처에 있는 옴팡밭은 4`3 당시 학살 터였고, ‘애기무덤’은 희생된 아이들이 묻혀 있는 곳으로 기념관 주변은 4`3의 아픔이 여전히 남아 있기도 한 장소입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기념관 주변에 있는 ‘애기무덤’과‘ 옴팡밭’을 보겠습니다. 먼저 ‘애기무덤’으로 장소를 옮기겠습니다.
●애기무덤
앞에 보이는 ‘애기무덤’은 20여기 정도 인 데요 그 중 7~8여기는 북촌 대학살 당시 희생된 아이들의 무덤입니다. 어른들의 시신은 마을 공동묘지나 가족 공동묘지로 옮겨졌지만 아이들의 시신은 이곳에 묻혀 있습니다. 원래 애기무덤이 있었던 장소이기도해서 이곳에 그대로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지역의 경우 아이의 무덤은 어른처럼 봉분을 높이 쌓지 않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 흔적을 찾기가 힘든 게 보통 인데요, 이곳은 아이의 무덤이지만 돌로 무덤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70여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도 그 모습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제주에서는 무덤 주변을 돌로 쌓은 ‘산담’이 있습니다. 무덤도 돌아가신 분의 집으로 생각하고
집의 울타리처럼 쌓아 둔 형태입니다. 무덤은 대부분 마을과 떨어진 들판이나 오름에 있는데요 방목하는 말이나 소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산담으로 경계를 만들었다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애기무덤’은 비록 아이의 무덤이지만 어른들처럼 돌로 무덤 주변을 표시해 준 경우로 작은 봉분이지만 비나 바람으로부터 보호를 받아 지금도 우리가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희생터였던 옴팡밧이 ‘순이삼촌 문학비 공원’으로 탄생하다.
제주어 ‘옴팡지다’는 ‘움푹지다’란 뜻으로, ‘옴팡밧’은 ‘움푹들어간 밭’을 말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서 계신 곳 에서 바로 확인 할 수 있는데요, 앞에 보이는 도로에 비해 이곳 지형이 낮은 곳이란 걸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죠? 이곳은 4`3 당시 마을 사람들의 희생터였고, 현재는 『순이삼촌』 문학비 공원으로 2007년도에 조성되었습니다. 『순이삼촌』 은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의 중편소설입니다. 1978년 발표된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최초로 4`3을 다룬 작품입니다. 당시만 해도 4`3에 대해서는 말해서도 기억해서도 안 되는 금기의 단어였습니다. 여기서 잠깐 작가 현기영에 대해 소개하고 싶은데요, 그는 제주출신으로 1941년생입니다. 대학 재학 중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합니다. 본격적으로 작가로 활동하게 되자 제주 출신으로 어떤 주제보다 4`3을 다룬 작품을 먼저 써야겠다 생각했을 때 떠오른 게 대학시절 하숙집 친구였습니다. 북촌이 고향인 그를 통해 이미 북촌리 4`3을 끔찍하게 들었던 기억으로, 북촌의 마을 삼촌들을 찾아뵙고 4`3때 잿더미로 변한 마을과 수 백명이 학살당한 이야기들을 듣고 탄생한 작품이 바로 ‘순이삼촌’입니다. 여기 뉘여져 있는 비석들은 당시 옴팡밭에서 희생된 마을 사람들의 시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비석 위에 쓰여진 글자들은 소설 ‘순이삼촌’의 내용입니다. 천천히 읽어보시면서 순이 삼촌의 아픔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제주의 마을이면 어느 곳이나 4`3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 해안마을이면서도 피해규모가 가장 컸던 북촌의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제주사람들은 4`3에 대한 기억을 말살하라고 강요당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큰 슬픔이었습니다. ‘제주인들은 43의 정신과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기억하려는 노력으로 정부로부터 2003년 ‘4`3 진상보고서’와 대통령의 사과를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어떤 역사가의 말이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찾은 이곳 제주에서 아름다운 경관을 맘껏 즐기시고, 한편으론 그곳에 담겨 있는 제주 사람들의 옹골진 삶의 흔적과 4`3의 아픔을 함께 기억하시길 바라며 해설을 마치겠습니다.
▣ 제주어로 작성한 예시문
*본론 예시문
♤추사체가 뭐우꽈?
귀양다리 김정희선생이 제주 섬에서 추사체를 맹글엇댄 허는디 여러분들은 알암수과?
귀양 온 선생이 버친 환경 소곱에서 노력행으네 맹근 독특한 서체 추사체.
선생이 제주 섬에 냉긴 현판 두 개가 이신디예 ‘의문당(疑問堂)’허곡 ‘은광연세(恩光衍歲)’우다. 한자가 어떵 맹글어저신고 허멍 끝어시 의문 가정 풀당보난 한자는 모냥을 본떵 맹근 문자로 상형에 잇덴 헌 걸 알게 되수다게. 경허영 한자가 곱닥헌건 문자에 이신 것이 아니랑 그림에 잇댄헌 사실을 알앙 문자의 곱닥험광 그림의 곱닥험을 현판 소곱에 담아내기 시작허엿댄 헙디다. 만덕할망 자손신디 써줫댄 허는 은광연세를 보민 알 수 이서마씸. 은광연세에서 은(恩)을 보민 글을 써신지 그림을 그려신지 긴가민가허지 않으꽈? 선생은 은광연세에서 만덕할망이 제주 사름들헌티 베푼 은혜를 표현허젠 헌거 닮아마씸. 정조 때 제주 섬이 엄청난 숭년이 들언에 도민들이 굶엉 죽게 되어 나수다게. 그때에 만덕할망이 재산을 몬짝 내 노안 육지서 ᄊᆞᆯ을 상 와네 제주 사름들을 기근에서 벗어나게 햇댄마씸. 그 소식 들은 정조가 만덕할망신디 소원이 무싱거고 물어본 셍이라마씸. 게난 할망은 제주 섬에서 나강 궁궐귀경을 ᄒᆞ고정 허댄 ᄀᆞ랏댄마씸.
겐디 그 말이 얼마나 모소운 말인지 알암수광? 그 고리에 제주 섬은 인조 때 부터 왕명으로 출륙금지령이 내려졍 이서나서 마씸게. 경헌 상황에서 정조는 왕명을 어기지 안허영 만덕할망을 한양으로 부를 방법을 대맹이 썽 ᄎᆞᆽ아신디 바로 벼슬을 내리는 거엿댄마씸. 경허영 만덕할망신디 의녀반수를 내려줭 한양으로 불럿댄마씸게. 한양에 강으네 정조를 만나신디예 왕은 만덕할망신디 또시 소원을 물어보난 이번엔 금강산에 가고정 허댄 고랏댄마씸. 정조는 그 소원도 들어줜에 만덕할망은 금강산을 구경허엿댄 헙디다. 현판엔 ᄌᆞᆨ은 글씨로 왕의 특별한 은혜를 입고 금강산을 갓당오게 되엇젠 설명해수다. 은광연세를 그냥 문자로만 써부러시민 왕의 은혜로 금강산에 댕겨왓댄 ᄒᆞᆫ걸로만 될건디예 김정희선생은 은광연세에서 은(恩)이랜헌 글자를 썽으네 제주 섬 상황허곡 만덕할망이 제주 섬에 베푼 은혜를 표현헌거 담지안으꽈? 은(恩)의 글을 보민 네모난디 안에 사람이 이신거 추룩 보이지 안햄수과? 네모는 출륙금지령이 내려진 제주 섬이곡 사람추룩 보이는 대(大)는 슝년 들엉 살아보젠 발버둥치는 사름추룩 보이지 안햄수강? 그 밑에 심(心)은 하간 재산을 다 내어놩 제주사름덜을 구헌 만덕할망 모습을 그대로 그린거 추룩 보이지 안햄수과? 아맹 생각해봐도예 선생은 은광연세랜 쓴 현판 속에 이녁 생각을 그림 고튼 글로 썽으네 곶고 싶엇던거 닮아마씸.
만덕할망이 제주에 베푼 은혜로운 빛이 온 세상에 너르게 퍼저시민 ᄒᆞ는 모슴이 이제꼬지 우리안티 전해지는거 닮수다. 은광연세에 들어 이신 선생이 쓴 독특한 서체는 한자의 곱닥험이 문자에 있지 안행 그림에 이신 사실을 깨달앙 그것을 현판 글씨에 담아낸거 담수다. 선생의 글을 보민 그림 ᄀᆞ트다는 말을 ᄒᆞ는디 그말이 추사체를 ᄀᆞ리키는거 ᄀᆞᇀ으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