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웅 기자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파주화재사건 장애남매 희생자 박지훈군 장례식'에서 박 군의 어머니가 헌화를 하던 중 영정 앞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다.
“엄마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건강하게 태어나라.”
경기 파주 장애남매 화재사건으로 중태에 빠졌다가 46일 만에 사망한 뇌병변 1급 장애아 박모(11)군의 어머니 김모(44)씨가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영정 앞에는 평소 박군이 아꼈던 자동차 장난감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46일간 사투 벌이던 장애아동의 죽음
15일 서울대병원과 광화문광장에서는 박군의 발인과 장례식이 잇따라 열렸다. 박군은 지난 10월 29일 집안에서 발생한 화재로 유독가스를 마신 뒤 누나(13)와 함께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그러다 지난 13일 오전 9시34분께 뇌와 장기 손상에 따른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의 누나는 그보다 36일 일찍 세상을 떠났다.
박군은 유독가스를 마신 뒤 줄곧 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왔다. 입원 당시부터 뇌파가 반응하지 않아 지난달 의사로부터 뇌사판정을 받았지만 가족들은 박군이 회복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박군은 뇌병변 장애 1급으로 혼자서는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다. 언어장애도 갖고 있어 자신의 생각을 표현조차 못했다. 누나는 아픈 동생을 위해 특수학교를 함께 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돌봤다.
동생이 옷에 용변을 볼 때마다 누나는 일터에 나간 부모를 대신해 옷을 갈아입히고 닦아주고 빨래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동생에게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도 항상 동생부터 챙겼고, 동생의 수업이 늦게 끝나는 날에는 기다렸다가 꼭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보다 돈독했던 남매는 10월 발생한 화재로 함께 의식을 잃었다. 화재 당시 아버지(46)씨는 중소 제조업체에서 야간 근무중이었으며 어머니도 일용직 노동을 마치고 월세방을 구하러 외출한 상황이었다.
박씨 부부는 자신들이 일할 동안 박군을 돌봐줄 사람을 지원받고자 정부가 시행하는 장애인활동보조 지원 서비스를 신청하려 했으나 장애등급재판정 등 복잡한 절차와 재판정 결과에 따라 복지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통지를 받고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화재 직전에는 장애아동돌봄서비스를 신청했지만 파주지역에 지원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무작정 대기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다 화재가 발생했고 남매는 목숨을 잃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조리하다 화재가 발생했으며 누나가 남동생을 돌보다 함께 중태에 빠진 것으로 보고 있다.
ⓒ양지웅 기자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파주화재사건 장애남매 희생자 박지훈군 장례식'에서 박 군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부 인근에서 파주화재사건 장애남매 희생자 박지훈 군의 장례행렬이 장례식이 열리는 광화문으로 행진하고 있다.
"생전 그렇게 힘들게 살더니, 장례식 마저도 쉽지 않구나"
생전 복지제도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박군은 장례식마저도 힘들고 더디게 치러야만 했다. 장례식을 주관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이날 오전 발인이 열렸던 서울대병원 장례식에서 보건복지부를 거쳐 광화문광장까지 행진을 했다.
그러나 경복궁에 다다를 무렵, 경찰이 “허가가 나지 않는 길로 행진을 한다”며 제지하면서 20여분간 승강이를 벌였다. 또 광화문광장에서도 경찰이 “사전에 신고하지 않았다”며 시신이 안치된 관과 운구차가 광화문광장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차단하면서 장례식은 30여분 간 지연됐다.
장례식에 참가한 100여 시민들은 “살아서도 정부로부터 외면 받았던 박군이 죽어서도 외면받는다”며 서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은 “생전 힘든 삶을 살았던 박군이 죽어서도 한발 떼는 게 이렇게 어려울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사람이 사는 곳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는지 답답하고, 미안하다. 제도를 때려 부수고 싶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박홍구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서울지부장도 “박군을 잘 보내려고 이렇게 모였는데, 왜 막으려고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양지웅 기자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부 인근에서 파주화재사건 장애남매 희생자 박지훈군의 장례행렬을 경찰이 막아서자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박 군의 영정을 보여주며 길을 열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등 정부의 장애인 복지정책을 규탄하고 활동지원 24시간․장애아동 돌봄서비스 보장, 발달 장애인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네가 죽은 것은 네 부모 탓이 아니다”며 “세상이 돌봐야할 일을 네 누나가 돌보다 죽었다. 너를 죽인 것은 이기적인 어른이고 잘못된 복지정책”이라고 일갈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 잘 살다 가도 아까운 시간에 박군은 11살 나이에 참혹하게 세상을 떠나야만 했다”며 “이명박 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장애인들의 환경을 고려한 복지제도를 했다면, 박군이 숨막혀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올해 장애인 활동보조인이 없는 상태에서 장애인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중증 근육 장애인 허모(30)씨가 활동보조인이 없는 상황에서 호흡기가 떨어져 사망했다. 지난 10월에도 장애 여성 김모(34)씨가 활동보조인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화재를 피하지 못하고 숨졌다.
ⓒ양지웅 기자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파주화재사건 장애남매 희생자 박지훈군 장례식'에서 박 군의 어머니가 국화 대신 장난감을 영정 앞에 올리고 있다.
ⓒ양지웅 기자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파주화재사건 장애남매 희생자 박지훈군 장례식'에서 장애인들이 헌화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파주화재사건 장애남매 희생자 박지훈군 장례식'에 많은 장애인들이 참석해 박 군을 추모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부 앞에서 열린 '파주화재사건 장애남매 희생자 박지훈 군 노제'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양지웅 기자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부 인근에서 파주화재사건 장애남매 희생자 박지훈군의 장례행렬을 경찰이 막아서자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박 군의 영정을 보여주며 길을 열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파주화재사건 장애남매 희생자 박지훈군 장례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파주화재사건 장애남매 희생자 박지훈군 장례식'이 열린 가운데 유족들이 운구차에서 박 군의 관을 내리려 하자 경찰이 막고 있다.
ⓒ양지웅 기자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파주화재사건 장애남매 희생자 박지훈군 장례식'에서 박 군의 영정 옆에서 오열하는 어머니 뒤로 경찰들이 운구차에서 관이 내리는 것을 막고 있다.
ⓒ양지웅 기자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파주화재사건 장애남매 희생자 박지훈군 발인'에서 장례행렬이 박 군의 영정을 앞 세운 채 노제가 열리는 보건복지부 앞으로 향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파주화재사건 장애남매 희생자 박지훈군 장례식'에서 한 참가자가 경찰이 운구차에서 박 군의 관을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