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벨 ' 님이 주신 표지입니다. 크리스탈이랑 세훈이랑 이렇게 보니까 분위기가 되게 비슷하군요...둘 다 시크한 게 맨인더박스랑 너무 잘 어울리는 표지예요ㅠㅠㅠㅠㅠㅠ 아니 분명 내가 썼을 땐 저 문구가 저렇게 멋지지 않았는데....역시 표지빨은 대단하다...! 너무 예쁜 표지예요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정말 정말 잘 쓸게요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 DO_직목 ' 님이 주신 표지입니다! 당신은 진짜 대박이예요...ㅠㅠㅠㅠㅠㅠ 로고봐...세상에 나 이런 로고 필요한지는 어떻게 알아서...맨인더 박스에서 제가 원했던 색깔이 갈색느낌나는 분위기였는데 그게 정말 잘 들어가있어서 너무 감사했어요ㅠㅠㅠㅠㅠ 두고두고 잘쓸게요 사랑해요 로고의 신ㅠㅠㅠㅠㅠㅠ
EXO- December, 2014
2년 전 일이었다.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소녀 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지 고작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제대로 된 아침밥도 못 먹고, 방 한 켠에 쭈그려 앉아 무서울 만큼 몰려오는 우울증을 애써 견디고 있었다. 그럼에도 하나뿐인 동생은 언니가 이렇게 바보처럼 집에만 박혀 있으니, 멀쩡한 나라도 돈을 벌어야겠다며 밖을 나섰었다. 사실 그때는 소름 끼칠 만큼 냉정한 동생이 무서워 어떠한 말도 걸지 못했었다. 그 당시에 난, 동생에게 말도 못 걸 만큼 잔혹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동생이 나가고 집 안에는 딱 죽지 않을 만큼의 고독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견디기 힘들었다. 사람 냄새가 진동하던 집에, 나 혼자 남아있다는 건 잔인하도록 두려운 공포였다.
" 안에 애들 있을 거야, 열어. "
" 알겠습니다. "
순간이었다. 고통스러운 굉음과 함께 날 얽매이던 침묵이 한순간에 끊어져버린 건. 놀란 마음에 외투를 입는다는 것도 까먹은 채로 밖으로 나가니, 처음 보는 낯선 남자들 여섯 명 정도가 꽤나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난, 하나뿐인 동생이 무서워 말을 못 걸 정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낯선 남자들은 손이 닿는 방향대로 미친 듯이 우리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정리할 수 없이 복잡해진 머릿속은 이렇다 할 결론을 내려주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처참하게 고장 나고 있는 내 심장이었다.
" ○○○. "
" 누, 누구세요. "
" 부모님이 생전에 살아계실 때 빚을 좀 가지고 있었던 거 알고 계셨나 모르겠네. "
" ……. "
" 그렇게 많지는 않아, 사 천. "
" ……네? "
" 거기다 이자까지 사 천, 합쳐서 팔 천. "
" ……그, 그. "
" 골치가 좀 아프겠네. "
" ……. "
" 갑자기 빚이 생겨서. "
처음으로 알았다. 부모님이 우리 몰래 빚을 가지고 있었다는 건. 딱 그 순간까지만 해도 그랬다. 엄마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시야는 흐릿했고, 미래는 참담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원망, 배신감은 죽었다 깨도 들지 않았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검은 양복에 남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 온 집안에 가구들을 풍비박산 내곤 했었다. 늘 유현이가 이른 아침에 학교나 일을 나가면, 우울증에 시달린 난 하루 종일 혼자서 집을 지키곤 했었다. 그 때문에 남자들을 보는 건 오로지 나뿐이었다.
사실 그렇게 정신없이 망가지는 상황에서도 죽었다 깨도 유현이에게까지 아픔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상황은 그런 내 마음을 잘 알기라도 하는 건지, 유현이와 단둘이 집에 있을 때 남자들이 우리 집에 찾아오거나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우울증이라는 이름으로 집에 혼자 있을 때, 이 방대한 양의 빚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을 수도 없이 했다. 답은 하나였다. 지금 내가 이렇게 방에만 틀어박혀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 아, 돈을 언제 갚을 거냐고 돈을! "
" 제가 내일부터 일자리 알아볼게요, 죄송합…… "
" 이게 진짜, 지 엄마랑 똑같은 소리하고 있어! 그 부모에 그 자식새끼들이지, 그게 어딜가. "
"……. "
" 안 그래? "
"……. "
" 니 동생은 왜 얼굴 코빼기도 안 비춰, 왜 매일 너 혼자만 있냐고! "
" 유현이는 건드리지 마세요, 제발 부탁드릴게요……갚을게요, 갚을게요. "
" ……이 년 이거 말 웃기게 한다? 내가 너 건드렸어? 이렇게 건드렸냐고, 응? 건드렸냐고 내가! "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 본 기분이었다. 딱, 죽고 싶은 느낌이 이런 걸까 싶었다. 험상궂은 얼굴을 한 남자가 기분 나쁘게 내 어깨를 두어 번 건드리며 뒷걸음질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그게 단순한 협박용인 줄 알았다. 애타게 시려오는 가슴에 처절하게 떨려오는 손끝을 말아 쥐었다. 반사적으로 내 몸이 점점 뒤로 움직였다. 계속해서 내 어깨를 건드리던 남자가 이번엔 좀 세게 내 팔뚝 부근을 밀쳤다. 맥아리 없이 풀린 다리는 날 깔보듯 위에서 내려보는 남자의 시선과 정확히 마주쳤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딱, 죽고 싶은 느낌이 이런 걸까 싶었다. 숨죽이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남자가 내 어깨에 걸쳐있던 가디건을 거칠게 벗겨내기 시작했다. 애석한 고통의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마저도 흉악한 손아귀에 가려져 제대로 나올 수 없었다.
처음으로 엄마를 원망했었다. 엄마가 진 빚에 내가 왜 이런 일까지 당해야 하는 건가 했다. 거친 남자의 호흡이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했다. 길을 못 찾고 내 몸 구석구석을 더듬대는 모습에 참담하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이, 내가, 그리고 지금 이 엿 같은 상황이.
" 너 지금 내 고객한테 뭐하냐. "
" ……. "
" 넌 오세훈한테 고객을 그딴 식으로 응대하라고 배웠나 보지? "
" 아, 형 그게 아니라요……. "
" 안 꺼져, 미친 새끼야? "
"……. "
" 아, 꺼지라고 시발 진짜. "
" ……그, 세훈이 형한테는. "
" 오세훈한테 확 꼰지르기 전에 꺼지라고 개새끼야, 진짜. "
그건 정확히, 2년 전 일이었다. 박찬열이라는 남자를 만난 것도, 암담한 현실에서 나를 꺼내 준 희망을 만난 것도.
보글보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춤추고 있는 면발들의 향연이다. 딱 적당한 온도에 불을 끄고 세상에서 제일 초라한 라면 하나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걸음을 옮겼다. 밖이 어느 정도 추웠나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안타깝게 벌게진 양쪽 볼이었다. 뿌연 연기가 앞사람의 얼굴을 매정하게 가렸다. 그 얼굴에 연신 쓴맛에 입맛을 다셨다. 아무것도 모르고 내가 끓여준 라면만 맛있게 먹는 남자에도 오로지 내 앞은 다른 사람의 얼굴로만 가득했다.
" 근데요, 박찬열씨……아까 그 남자 누구예요? "
" 누구? "
" 아까 영상통화했던 그 남자요. "
" 아, 있어. 나보다 나이는 어린데 능력은 좋은 놈. "
" 혹시……같은 일 하는 사람이예요? "
" 저기요. 저도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다 나왔어요. 제가 뭐 같은 일 하는 사람밖에 모르는 줄 알아요? "
" 아니, 혹시나 했죠 혹시나. 아, 무섭게 왜 화를 내요. "
" 네가 가만 보면 사람 빡치게 하는데 뭐가 있어. "
" 그럼 정확히 뭐하는 사람이예요? "
" ……. "
" ……왜요? "
" 관심있어? "
" 네? 아, 무슨 아니거든요? "
" 남자한테 관심 가질 시간에 돈이나 갚을 생각을 해. "
" ……최대한 노력 중이거든요. "
" 최대한 노력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빨리 돈을 갚을까 생각이라도 해 봐. "
장난 반 진심 반이 섞인 말이었다. 쌓여가는 죄책감에 양손끝을 말아 쥐고 살짝 주먹에 힘을 줬다. 지금은 내가 끓여주는 라면을 얻어먹고 있는 한심한 남자지만, 현실은 바뀔 수 없었다. 남자는 사채업자였다. 우리 집에 빚을 받으러 온 사채업자. 알고 있다. 남자가 날 봐주고 있다는 것. 아마도 저의 직장에서 직책이 꽤나 높은 사람인 건가 싶었지만, 그것도 곧 내가 상관할 문제는 아니었다. 냉담한 현실은 그대로였다. 남자는 사채업자고, 난 부모님이 빚진 돈을 갚아야만 하는 빚쟁이었다.
" 재개발 들어가면 뭐 어떻게 되는 거냐? "
" 모르겠어요……오늘 아주머니말 들어보니까 정말 시위라도 할 것 같던데. "
" 거 뭐, 시위하면 들어주기나 한대? "
" 설마 그러겠어요, 대기업이. "
" 그럼 이제 백수되는 거야? "
" 네? "
" 그럼 돈은 언제 갚냐? "
" ……주방 일은 언제든지 구할 수 있어요. "
" 언제까지 설거지만 죽어라 할 건데, 그거가지고 갚을 수나 있냐? "
" ……. "
" 하, 골때리네 진짜. "
익숙하게 제 양복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는 모습에 반사적으로 미간 사이가 좁혀졌다. 안 그래도 좁은 집인데 놈이 담배까지 피운다면 제대로 숨쉬기도 힘들 게 뻔했다. 미세하게 떨려오는 눈을 애써 아래로 깔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럼에도 어쩔 수는 없었다. 박찬열은 늘 밥을 먹고 1분도 안 돼서 담배를 피어야 하는 지독한 습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자주 보다 보니, 굳이 알 필요 없는 습관도 파악하게 되는 게 미치고도 답답할 노릇이었다. 자욱하게 퍼져오는 폭넓은 담배 연기에 안타까운 기침이 터져 나왔다. 그렇다고 놈이 내 건강 따위를 신경 쓸 위인은 아니었다. 날 걱정하려고 이곳까지 친히 행차하신 건 아니니까.
"
" 네가 심리학과 나왔다고 했나? "
" 아, 휴학했지만……맞아요. "
" 그럼 뭐 정신과 상담 이런 것도 잘 알겠네? "
" 정신과는 약물치료가 필요한 케이스고, 심리치료는 약물치료보단 환자의 상태에 따라…… "
" 그래서 같은 거냐고, 안 같은 거냐고. "
"……아예 같지는 않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
" 너 어렸을 때 여동생이 좀 많이 아프다고 하지 않았나. "
" 네, 선천적으로 천식이 많이 심해서 어렸을 때는 주로 간호하느라 저도 병원에만 있었죠. "
" 그럼 됐네, 일자리 구했네. "
" 네? "
" 어차피 무직이잖아 이제. "
" 무직이요? 아닌데요? "
" 아, 어차피 무직이잖아 이제. 따박따박 말대답. "
저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 코앞까지 뻗어 기분 나쁜 삿대질을 하는 박찬열이었다. 이게 무슨 말대답이냐 이 말이었다. 난 아직 무직도 아니고, 무직이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럼에도 자신이 한 말에 꽤나 만족한 듯, 능청스럽게도 고개까지 두어 번 끄덕이는 모습에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웃기지도 않는 구만.
쓸데없는 반항을 하고 싶어 입꼬리를 아래로 쭉 내리고 떫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곳에 내가 뭘 확신하고 가냐 이 말이었다. 뭐, 빛 하나 없이 암담한 인생이라면 그러고도 남았겠지만……아직 먹을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 상태가 좀 심한 애가 하나 있거든, 근데 아무리 돈을 쳐발라도 소용이 없단 말이지. "
" ……. "
" 내 생각에 걔는 전문의 말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 필요한 거 같거든. 아, 왜 의사들이 그 애 나이 또래가 없더라고, 다 마흔 살은 넘는 아저씨들 뿐이지. "
" 왜요? 상태가 많이 심각해요? "
" 내일 당장 주방 일 끊고 내가 말해준 곳으로 한 번 가 봐. "
" 아, 어떻게 그래요. 안 그래도 요즘 재개발 문제 때문에 난린데. "
" 아, 어차피 이제 짤릴 마당에 뭐가 걸려서 못 그만 둬, "
" 글쎄 아직 무직 아니라니까요? "
" 네가 일하는 곳에 두 배는 받을 거다. "
" 네? "
" 돈을 갚아야 할 거 아니야, 이 여자야. "
제 검지에 힘을 주고, 굳건하게 정면을 주시하고 있던 내 이마를 사정없이 밀어버리는 박찬열이다. 오뚝이가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난 엿 같은데 넘어뜨리는 사람은 좋아 보이는 이 기분. 이게 무슨 막무가내일까 싶었다. 1년이나 넘게 다니던 가게를 하루아침에 그만두라니. 더군다나 가게 주변에 나처럼 젊은 사람은 오로지 나 하나였다. 나라도 없으면 상인들은 무슨 패기로 배려 없는 독재자들에게 덤비나 이 뜻이었다. 그럴 수는 없다는 듯, 강하게 내 입장을 표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꼼짝 못하게 하는 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남자였다. 돈, 돈이 문제였다. 그 지독한 돈, 더러운 돈. 돈을 갚으라는 한 마디는 분명하게 나를 죄인으로 만들고 있었다.
느릿하게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참담한 숨을 내뱉었다. 이맘때쯤 되면, 늘 자기 한탄과 현실 직시의 시간이 다가오곤 했었다. 돈을 두 배로 준다는데 망설일 게 뭐가 있겠냐. 지금 내 사정에. 더군다나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박찬열은 꽤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뭐, 갑자기 돈을 받아야한다는 이유로 날 해외로 데려간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겠지, 하는 이상한 생각도 잠깐 머릿속을 스친 건 비밀이다.
" 알겠어요, 내일 한번 가볼게요. 어디 병원인데요? 근데 나 진짜 대학 졸업도 안 한 휴학생이라 아무 것도 못해요. "
"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건 아닌 것 같거든, 외적으로 아픈 건 아니야. "
" ……알겠어요, 가서 말동무라도 해볼게요. 어디 병원인데요? 많이 멀어요? "
" 병원 아닌데, 자택인데. "
" 네? "
" 자택이라고, 자택. "
" 직접 집으로 가라고요?
" 존나 땡큐 아니야? 매일 주방에서 설거지만 하다가 집이라는데? "
" ……아니, 부잣집이예요? "
" 뭐, 딱히. "
" 그럼 집으로 사람을 불러요? 많이 아픈 사람이예요? "
" 아, 아니라고 시발. 귀가 쳐막혔나. "
" ……어떻게 아는 사람인데요? "
" 하, 참 사람 빡치게 하는데 뭐 있어. "
세상에서 제일 띄꺼운 표정과 함께 오만상을 다 찌푸리며 제 목덜미를 긁어대는 박찬열이었다. 아니, 내가 비정상이냐고. 졸업도 안 한 휴학생이 자택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하라고? 아니, 그 치료가 전문적인 치료라기 보단 일종의 말동무겠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집 주소만 달랑 놓고 간 곳을 바보같이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게 이상한 것 아니냐고.
그럼에도 박찬열은 아주 날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로 취급해 버린 건지, 제 귀만 쑤셔대며 낯 뜨거운 하품까지 하는 거였다. 얼씨구, 아예 내 말을 깡그리 무시할 참인지 발끝에 있던 코트까지 챙기는 모습에 기가 찬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빚쟁이 신세라 할 말 없는 건 맞지만 지금 내 월급에 두 배나 주는 곳을 무슨 의도로 소개해준 건지가 궁금했다. 단지 그게 궁금했을 뿐이었다. 누가 나보고 일자리를 줘서 끊임없이 질문하냐 이거였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굽히고 있던 다리를 펴고 일어나니 자연스럽게 내 고개도 안타까울 만큼 뒤로 사정없이 꺾였다. 젠장, 키는 또 왜 이렇게 크냐.
" 아, 왜 두 배씩이나 주는 곳을 소개시켜주냐니까요? "
" 아, 뭐가. "
" 두 배라면서요, 두 배. "
" 뭐 더 바래? 너 진짜 생긴 거 그렇게 안 생겨서 존나 바라는 새끼였구나, 너. "
" 아, 이 사람이 진짜 그게 아니라……왜 굳이 필요없는 호의를 베푸냐구요. "
" 뭐가 필요가 없어, 너 돈 안 갚아? 내가 매일 장난만 치고 독촉은 안 하니까 내 본분을 잊었냐? 나 네 돈 받으러 오는 사람이야. 나도 내 일은 하고 살아야지. 안 그래도 일 제대로 못한다고 뒤지게 혼났단 말이야 며칠 전에. "
" ……혼났다구요? 박찬열씨도 일 제대로 못하면 상사한테 혼나요? "
" 니가 봐도 내가 맞을 것 같이는 안 생겼지. "
" 맞았어요? "
" 아, 존나 시발. 그게 아니라. "
" 맞았다구요? "
뱉지 못할 말을 뱉은 듯 연신 자욱한 한숨을 내쉬며 머쓱한 표정을 짓는 박찬열이다. 그 모습에 멀쩡했던 가슴께가 이리저리 요동치기 시작했다. 늘 나보다 강해 보이고, 높아 보였던 사람이 맞기까지 했다니. 그것도 일을 제대로 못 해서. 만약 남자가 말하는 그 일에 내가 지고 있는 빚도 포함되어 있는 거라면, 그건 내가 가해자가 되는 일이기도 했다. 제때제때 돈을 갚지 못하고 매번 남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나니까. 이렇게 말하면 남자가 그냥 평범한 사람 같은데, 사실 남자는 평범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처음부터 남자가 우리 집에 빚 문제에 있어 이렇게 호의를 베풀었던 건 아니었다. 나로서도 세상의 빛과 단절되었던 삶을 살았던 적은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에는 이렇게 변하기 전의 남자도 있었다. 벌써 2년 전 일이다. 물론 알고 있다. 남자는 날 어떻게든 이 빚덩이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 한다는걸. 처음으로 내 끝을 본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 별 다른 뜻은 없는데, 그냥……. "
" ……. "
" 돈 빨리 갚으라고. "
" ……. "
" 내가 너한테 할 수 있는 게 독촉밖에 없는데, 또 그건 못 하겠잖냐. "
" ……. "
" 돈이나 빨리 갚으라고. "
" 박찬열씨. "
" 그리고 할 수 있을 거야, 네가 하도 별 일을 다 해서 이건 힘든 것도 아닐 거다. "
" 박찬열씨. "
" 아. 왜. "
" 다치지 마요. "
" ……. "
" 박찬열씨가 제 희망인데, 다치면 어떡해요. "
희망, 그게 박찬열이라는 남자를 표현할 유일한 말이었다. 틀린 건 하나도 없었다. 남자는 내게 희망이었다. 삭막하고 건조함만이 가득했던 미래에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게 동정의 의미던, 가식적인 행동이던 상관없었다. 빛이 있는 곳으로 끌어내 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날 생각해주는 그 자체도 남자는 내게 희망이었다. 남자가 다치면 나도 다치는 거였다. 박찬열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적어도 남자를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 희망, 말은 좋네. "
" ……. "
" 그거 알아둬, ○○○. "
" ……네. "
" 난 언제까지 그쪽 희망이 아니야. 현실은 현실이고. "
"……. "
" 넌 그냥 빨리 돈 갚을 생각해, 그게 너 할 일이야. "
' 여기 어딘데……. '
배려 없이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자니 불규칙적으로 새어 나오는 호흡에 마른 갈증이 일어섰다. 근처에 편의점이라도 있으면 참 좋으련만, 이놈의 동네는 어떻게 된 건지 그 흔한 편의점 하나 보이지 않는 거였다. 이렇게 구석진 곳에서 사람이 산다 생각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혹시 상태가 진짜 심각해서 일종의 방치를 해놓는 건 아닌가 했다. 그런 거라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우선 돈을 둘째 치고, 살아남는 게 중요하니까.
조금 버거웠던 골목길을 올라 반사적으로 몸을 왼쪽으로 돌렸다. 이곳에서 제일 끝에 있는……찾았다. 앞서 보였던 정감 나는 분위기와는 달리 혼자 동떨어진 하얀색 집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아니 꼭 그런 느낌 같지 않느냐. 잡초들만 가득한 정원에 정말 예쁜 하얀색 바람꽃 하나가 딱 핀 그런 느낌. 조금 긴장되는 심장을 애써 억누르고 제 검지를 들어 초인종을 눌렀다.
분명히 이 주소가 맞는데 왜 아무도 날 반겨주지 않느냐 이 말이었다. 혹시나 싶어 한 번더 초인종을 눌렀다. 달라질 건 없었다. 칼바람이 조금 더 날카롭게 바뀌었다는 것 밖에는. 괜한 오기가 들어 연속 세 번을 눌렀다. 젠장, 해보자 이건가. 또 한번,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한번, 정말 마지막으로 한번, 또 진짜로 한…….
"……. "
" ……아. "
" ……누구세요. "
" 네? "
" 누구시냐고요. "
" 아, 저 오늘부터 여기서 일하기로한……. "
" 의사예요? "
" 아, 의사는 아니예요! "
" 왠일로 의사를 안 구했대. "
" 네? "
" 들어오지 마세요. "
" 저기요. "
" 우리 오빠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의사를 안 구했나 싶기도 한데, 어쨌든 지금 집에 있는 건 저니까 제 허락이 있어야 들어오는 거 아니예요? "
" ……죄송한데 오늘부터 여기서 일하라고 해서 온 거거든요? "
" 언니 제가 방금 잘랐어요, 됐죠? "
" 저기요! "
" 아, 만지지 말라구요! "
" ……. "
" 아, 미안해요. 과자는 제가 다 주울게요. "
" 진짜 싫어, 더 싫어. "
" ……. "
" 오세훈 존나 최악이야, 어떻게 이런 사람을 데리고 와? "
앙칼진 그 목소리에 골이 울릴 지경이었다. 최악인 걸로 따지면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박찬열에 통보에 온 곳인데 이렇게 이유도 모르고 최악 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더군다나 새로운 직장에서 첫 일이 다름 아닌 '고딩이 떨어뜨린 과자 치우기' 라는 사실도. 머릿속이 징징 울려댔다. 독이 묻은 활이 한가운데를 정확히 과녁 한 것 같았다. 초라하고 더러워도 뭐 어쩌겠냐. 난 이 집에 일하러 온 사람인데. 그것도 두 배라는데. 더러워도 참는 거다, 지저분해도 참는 거다.
손끝에 자잘한 흙들이 질척거렸다. 그 느낌은 꽤나 많이 불쾌했지만, 애써 입꼬리를 당기고 무릎을 펴 여자를 바라봤다. 괴물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아래 위로 훑는 그 시선이 개 같기 그지없었다. 지가 무슨 공주라도 되냐 이 말이었다.
" 죄송한데 저는 오늘부터 여기서 일 하기로 해서요. "
" ……. "
" 우선 환자라도 만나고 가야할 것 같은데요. "
"……하, 뭐야. "
" 환자 안에 있어요? "
" 아니 대체 무슨 이야기를 듣고 이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제대로 알고나 오세요 언니. "
" 네? "
" 환자 안에 있냐고 했어요? 우리 오빠랑 확실히 말 해보기는 한 거예요? "
" ……어떤 여자애가 있는데 정신적으로 조금 심각한 상태라고. "
"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
" ……어떤 여자애. "
" ……. "
번쩍하고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내 입에서 '어떤 여자애' 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기가 찬 듯한 헛웃음을 뱉으며 나를 쏘아보는 여자아이의 얼굴에 이상한 촉이 감돌기 시작했다. 멍해진 정신이 공중 위로 피어올랐다. 이렇다 할 상황 정리가 되지 않았다. 어떤 여자애, 분명 어떤 여자애라고 했다. 젊은 환자. 여자아이.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태. 젊은 여자아이.
반사적으로 제 손을 입가로 가져다 댔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은 아무리 봐도 젊은 여자아이였기 때문이었다. 놀란 가슴에 심장이 두서없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무슨 실수를 저지른 건가 싶었다. 정말로 그 환자가 이 여자아이라면, 난 지금 환자한테 개 같은 첫인상을 심어준 셈이었다.
" 아, 오세훈 진짜 존나 싫어! 어떻게 이런 여자를 데려와! "
" ……저기요, 방금 그건 제가 실수한 게 맞는데. "
" 말 걸지 마, 한 번만 더 말 걸면 오세훈한테 전화해서 언니가 나 때렸다고 다 이를 거니까! "
" 뭐? 야, 이게 어따 대고 반말이야. 내가 너보다 언닌 거 뻔히 알면서 어따 대고 반말이야? "
" 그래서 내가 야라고 했어? 언니라고 하면서 반말했잖아! "
" 그러니까 언제부터 봤다고 반말이냐고! "
" 아, 진짜 짜증나! "
" 야, 나도 짜증나! 너만 짜증나? "
" 그러니까 나도 방금 짜증난다고 했잖아! "
" 아……. "
저릿한 신음이 튀어나왔다. 누군가가 내 팔목을 잡고 제 쪽으로 무참하게 돌려세웠기 때문이었다. 오만상을 찌푸린 채 신경질적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였다. 그 시선이 너무 익숙해서 멀쩡하게 자리 잡고 있던 속눈썹이 비참하게 떨려왔다.
" 너 뭔데 내 동생한테 소리 쳐. "
" ……. "
"……. "
" 아, 오세훈! 내가 이제 아무도 구하지 말라고 했잖아, 왜 내 말은 안 들어? "
" 오수정, 오빠가 너 친구야? 자꾸 오세훈이라고 할래? "
" ……야, 너 지금 내 편 안 들어주고 이 여자 편 들어주는 거야? "
" 들어가기나 해, 오빠가 얘기할테니까. "
사정없이 내 볼을 때리던 칼바람이 두서 없이 내 머리칼을 흩날렸다. 건조해진 목 울대에 마른 침이 넘어갔다. 지독하리만큼 익숙한 음성이었다. 이런 식의 만남이라면 더 그랬다. 우연일까, 오한이 들었다. 그 잘난 우연일까, 아님 악연일까. 내 팔뚝을 잡은 채로 미간 사이를 좁힌 모습이 무서울만큼 낯설지 않았다. 내 팔목을 잡고 있던 손에 느릿하게 힘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남자도 나를 알아 본 모양이었다. 남자는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궁금했다. 우연, 아님 악연. 그것도 아니면, 그냥 어쩌다 자주 만나는 여자.
" 박찬열이 소개해준 사람이 그쪽인가보네. "
"……. "
" 악연인가. "
" 네? "
" 아님, "
살짝 올라간 입꼬리에 온 신경이 몰렸다. 괴상한 숨이 튀어나올까 양 입술을 앙다물고 호흡을 들이마셨다. 지독할 만큼 낯선 우연이다. 사실 더 정확히 말하면 질긴 악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 여동생과 단둘이 집에 있는 꼴을 보고, 내가 일하는 곳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렸으며, 지금은 내 고용인이 된 이 남자는 내게 악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남자도 그건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나를 악연이라고 정의하는 말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참, 쓸데없는 의미 부여 했구나. 돈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를 판인데, 뭐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우연을 들먹이면서 드라마를 썼는지 허한 공허함이 들었다.
적막하고 초라했던 인생에 작은 단비라도 내리기를 원했나 보다. 살짝 뒷걸음질 치고 남자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끊어진 말꼬리를 잇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는 듯했다. 뒤이어 남자가 살짝 조소를 흘렸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잡고 있던 팔목을 한번 더 제 쪽으로 끌어당겨 나와 가까이 눈을 마주한 남자에 행동에 반사적으로 침이 넘어갔다.
" 뭐, 뭐 하는 거예요? "
" 아님, "
" ……. "
" 그쪽이랑 나랑 인연인가. "
인연데스네 ㅋㅋㅋㅋㅋ 마지막 세훈이 사진 표정 넘나...사랑스럽다....헤헿
세훈아 너 뭐야ㅋㅋㅋㅋㅋ
박찬열 오세훈 다 너무 좋다ㅜㅠㅠㅠ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그려짐ㅜㅠㅠ
네! 그렇습니다! 인연입니다!
당연히인연이지♥요 수정이는무슨병일까궁금데쓰네
수정이 귀엽다 ㅋㅋㅋㅋ 짜증나!! 나도 짜증나!!! ㅋㅋㅋㅋㅋ둘이 귀엽다 ㅌㅋㅋㅋ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4.05 01:25
인연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근데 찬열이...참 따스한 사람이네요ㅠㅠㅠㅠ 여리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에 분위기 급 반전ㅋㅋㅋㅋㅋㅋㅋ 오세훈 사진 굉장히 능글맞아 보이네욬ㅋㅋㅋㅋㅋ
마지막에 분위기 급 반전ㅋㅋㅋㅋㅋㅋㅋ 오세훈 사진 굉장히 능글맞아 보이네욬ㅋㅋㅋㅋㅋ
오세훈 능글쟁이ㅋㅋㅋㅋ 수정이랑 여주랑 짜증나! 거릴때 넘나 귀여웠다...
아ㅜㅜㅜ마지막개좋다..
마지막에 반전!!!
흐어어어~~뭐야뭐야ㅡㅡ
인연이에요!!!!워후!!!!
인연이야 헹 우리가 얼마나 많이 마주쳤는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