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하왕국의 부나비들
그해 여름 광화문의 M신문사.
삼십 도를 웃도는 여름의 폭염. 실내가 냉방은 되어 있다지만 창넘어 남산을 가리고 있는 빌딩들의 숲이 마치 빛바랜 풍경화를 연상케 하고 있어 여름의 찐득한 날씨만큼이나 스트레스가 쌓이는 그런 날씨다.
고금을 통틀어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든 폭력이 없었다는 기록은 없다. 더구나 삶의 구조가 전문화되고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주야장철 눈코뜰새 없이 바쁜 직업 중의 하나가 기자가 아닌가 싶다. 그 중에도 사회부 기자가.
병든 병아리들 마냥 꾸벅대는 모습들이 엊저녁 잠을 설친 취재 탓과 식사 후의 식곤증이 한꺼번에 몰려 온 탓이리라.
어느새 오후 세시, 기사 건은 마무리되었지만 비상대기 말단 기자가 감내할 짜증이란 말해 무엇하랴. 한 두 시간 후면 교대다. 고교 동창에다 군 동기와의 술 약속시간이 마냥 지루하게 기다려지는데 이놈의 여름 코오러스라니-
꾸벅꾸벅 졸고 있던 반질반질한 대머리의 사회부장이 그 보기 좋은 머리로 책상에 헤딩을 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느닷없이 울린 전화 벨. 하나 이 전화벨이 달콤했어야 할 나의 스케줄을 깡그리 망가뜨리는 악마의 울림였으리라고는 도시 꿈조차 꾸지 못했었다.
이 전화벨이 앞으로 내가 겪어야 할 시련과 서글픈 운명의 재회가 기다렸고 두 번 다시는 저 잠재의식 속에서 꺼내고 싶지 않았던 악몽같은 추억이 날 정신병자로 만들고야 만다.
“쨔샤 메하고 있는 기네. 쇠주 값 준비해가서리 기리로 오라우야. 음... 기리니끼니 신사동 K아파트 A동 지하니끼니 한 30분쯤 걸릴 끼야. 음 음... 할 말은 거에서 하자 우야.“
난데없는 호출명령.
최 모라는 탤런트가 반장을 맡아 인기를 끌었던 한 수사 극의 조언을 담당했던 T서의 형사반장의 전화였다.
기자 초년생으로 경찰 출입을 맡으면서 어떤 연줄로 알게된 선배로 얼굴이 마주치는 횟수가 늘면서 동생처럼 후견인처럼 보살핌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만년 적자인 기자 초년생의 월급을 가지고 제대로 술 한 잔 대접한 기억도 거의 없는데 기사가 될만한 거리가 있으면 끔찍이도 챙겨줌으로 신빙치고는 센스가 있다는 소리를 듣는 게 요즘이었다.
아무튼 부랴부랴 신사동의 K아파트에 도착했을 땐 이미 경찰의 철통같은 포위망이 펼쳐져 있었고 현장 급습이 초읽기에 돌입한 상태였다.
“선배님 무슨 소탕입니까?“
“이 아이래 정신이 있네? 없네?“
나를 향한 관심의 표시였고 정보에 소흘이 한 질타였다. 주위에 사람이 있든 없든 한 번의 질문에 두 번의 구사리지만 이상하게도 짜증스럽게 들리지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명 ‘불법 카바레 기습작전‘으로 아파트는 이내 벌집 쑤셔놓은 것 같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주민과 경찰, 취재진들이 한데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며 댄스홀로 몰려가는 장면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였다.
한 가정의 주거를 위한 보금자리가 쾌락을 위한 밀실로 개조돼 휘황스런 싸이카 조명아래 나체쇼를 연출하다 일시에 급습한 경찰과 취재진의 폭죽 같은 후레쉬의 조명에 놀라 우왕거리는 모습이 마치 또 한 폭의 지옥도를 연출하고 있었다. 더구나 향흥에 젖어 있다 미처 옷을 추스르지 못한 반라의 부류와 아예 벗어 던진 베드족은 쥐구멍을 찾아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머리를 숨기기에 바빴고 급기야 밀실이 개방되면서 경찰은 물론이고 취재진들조차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왜냐면 저 옛날 시황제가 쾌락을 위해 건립했다는 아방궁을 모방한 외제 호화 가구며 장식품들이 눈을 어지럽혀서가 아니라 꽤 얼굴이 알려진 여고생이 누가 보든 말든 원초적 본능에 의한 정사에 몰입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찰이 떼어놓아서야 겨우 본능만을 억제 할 뿐 환각에서는 깨어나지 못했다.
지난해 미스코리아 선발 본선에는 올랐지만 등수에는 들지 못했던 0양. 그러나 모 방송국의 PD에 청순한 이미지를 높이 사 신세대 탤런트로의 주가가 급부상하고 있는 차세대 스타가 한낮 밀실에서 원초적 정사에 몰입해 있으리라고는 그 누가 상상이나 했던 일인가. 더구나 그 대상이 이미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N그룹의 총수의 장남이라는 데야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사건도 보통의 사건이 아니었다. 김회장으로 통하는 이 중년인은 탁월한 경영론과 해박한 지식, 아울러 외국의 바이어를 다루는 데는 가히 천재성을 가지고 있어 N그룹의 차기 총수로 이미 낙점이 되어 있는 신세대 재벌 2세의 선두 주자 격인 인재로 주목받고 있는 인물인데 한낮에 자신의 딸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학생과 베드팅을 즐기고 있는 데야 그 어떠한 말로도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암암리에 떠돌던 연예인의 매춘설이 그 실체를 드러내는 시발점이 되었고 김회장과 0양은 타락의 대명사로까지 명명돼 시리즈까지 파생, 오래도록 세인들의 말장난에 빠지지 않는 메뉴가 되었다. 물론 당사자들은 사회적으로 매장이 되었고 외국으로 도피하고 만다. 그러나 이렇게 되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지난 다음의 일이고 현실에서는 연예인 학생이 매춘을 하였다는 데에 수사가 집중돼 연예계 전반에 걸쳐 폭넓은 조사가 시작되었고 연예계의 대부격인 D여사가 그동안 연예계와 재계 사이에서 뚜쟁이 노릇을 한 사실이 밝혀지고 이에 가담했던 연예인과 D여사의 보디가드겸 똘마니 역을 담당했던 X파 행동대원들이 줄줄이 잡혀가면서 사건은 일단락이 된다.
사실 나는 이때 기사를 메일로 전송하고 외국의 귀빈 방한에 대한 취재로 곧바로 공항으로 향해야 했는데 이 사건을 취재한데 대한 뼈저린 회의에 사로잡히고 만다. 왜 하필이면 그 여자가 그 현장에 있어야 했는가.
한 마디로 이 사건을 정리하던 내 감정은 ‘씨팔 좆같은 세상’이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온갖 입바른 소리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거드름을 떨던 인물들이 원초적 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똥치의 모습을 그대로 까놓았으면서도 일말의 부끄러움도 갖지 않는다는 데에 구역질이 난다는 것이다. 차라리 삶의 수단으로 몸을 파는 창부들이 오히려 인간적인 면에서 동정이 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날 비밀 댄스홀의 주고객은 유한마담들로 중소기업을 운영하거나 부동산 투기로 재미를 본 복부인이었고 재벌 및 고위층의 애완용 2호 부인들이 젊음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불나방처럼 모여든 것이었다. 또 몇 명은 갓 이십에 접어든 듯한 아가씨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외국인 바이어들을 애인으로 둔 현지처로 바이어가 고국으로 떠나면 젊음의 갈증을 채우기 위해 모여드는 또 한 부류의 부나비였다. 어쨌거나 자신의 몸뚱이를 어떻게 굴리든 누가 뭐라 할까만은 왜 그 상대들이 자신의 딸자식 같은 어린 청소년이냐는 것이다.
이들은 혹 어린 딸자식을 아방궁을 모사한 곳으로 불러들여 저 진시황이 했던 회춘의식을 모방한 것은 아닐까? 왜냐면 이들의 상대는 거의가 스무살 안팎의 게스트들이었고 개중엔 0양 같은 학생의 신분이거나 학교를 휴학한 가출 청소년이 주된 신분이라는데 그 지탄의 골이 깊은 것이다.
“아저씨... 제... 사진하고 이름... 신문에 나면 엄마 아빠에게 맞아...죽어요.“
교내 불량서클에 가입했다가 몸을 팔게 되는 추락으로의 길에서 허우적이는 한 여고생의 목마른 절규가 겨울철 삭풍처럼 귓가를 스친다.
이 여고생의 절규가 단순한 한 여고생 개인의 절규일까? 또 이 여고생이 이렇게 된 것이 그녀의 단순한 무분별한 판단 미스인가. 그것은 아니라는데 씁쓸한 서글픔을 감출 수 없다.
먼저 이들을 유혹한 대상이 누구였는가. 아니 유혹을 당했더라도 그 대상은 우리 기성세대였으며 우리 기성세대가 내 자식들을 타이르듯이 이들을 품기보다는 타이름과 설득이 있었다면 때늦은 이런 절규도 탈선이며 매춘이 과연 지금처럼 어둠의 그늘에서 서식하고 있을 것인가 말이다. 더구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이 안고 있는 병폐, 즉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교육이 아니라 출세를 목표로 공부를 시키는 급박함이, 인성이야 어찌돼도 좋다는 식의 과잉된 교육열의가 어린 학생들로 하여금 사춘기의 호기심과 열망의 꿈을 억제시키고 젊음의 탈출구마저 봉쇄시키는 결론을 낳고 보니 자연 이들의 탈출구가 탈선이라는 데에 오히려 이상할 게 없다고 본다.
더구나 우리의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핵가족화 되면서 개인적인 에고이스트가 그대로 가정에까지 반영돼 급속도로 늘어나는 이혼율이 결손가정을 생성했고 결손가정의 자녀들로 하여금 탈선의 동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공식을 쉬이 산출 할 수 있고 그런 대물림이 0양과 같은 류의 파행에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의 수위가 염려의 단계를 넘어선 것이다.
아무튼 각설하고 나는 이들로부터 내가 기획하던 기사에 대한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것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철학이 없이 말초신경이 원하는 데로 몸을 맡긴 부류들로 행동에 대한 정당성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내 굴비 엮이듯 경찰서로 압송이 되었고 관례처럼 내 기사가 신문 사회면에 사진기자의 보충 사진자료와 함께 기사화 되리라.
나는 공항으로 향했고 닥쳐올 고뇌와 함께 취재 파일에 나의 치부 하나가 기록되어 갔다.
-돈이 더럽고 치사하다 하지만 돈이란 오늘날 뿐 아니라 먼 고금의 시대에도 그 위력은 치사함과 굴욕의 위에서 군림하고 있다. 사람의 정절을 매매하는 단계를 넘어 그 혼마저 굴복시키는 돈의 위력은 그 끝이 어디일까? 정절과 신념을 생명 이상으로 여기던 우리의 선조들은 오늘을 본다면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머잖은 시대에 정절이란 단어는 아마도 사전 자체에서 사라질는지도 모른다. 아마 구시대의 유물 내지는 전설로 이어질 날도 머지 않을 것 같다.버젓한 중산층의 주부가 아르바이트라는 구실로 몸을 팔고 있음이 공공연한 사실이고 돈을 위해서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너도나도 몸을 파는 세상이고 보니 과연 성서의 소돔과 고모라는 오늘을 예견한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내 치부를 기록하면서 먼 후일 우리의 후손들이 이 기록을 본다면 어떤 평을 할 것인지가 무척 두렵게도 느껴진다.
평시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다. 한데 좀 어제는 과한 편이어서 약간의 취기가 있는 그대로 출근을 하였고 습관처럼 헤드 카피를 훑어보다 갑자기 피가 얼어붙는 전율에 몸서리를 치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오 마이 갓!“
내가 뱉은 한 마디 신음이었다.
내 나이 서른. 사회에 햇병아리 말단기자. 나름대로 서른이 되도록 어느 누가 역고와 애환이 없을까만 난 한 여인으로 인해 가슴이 멍이 든 채 온통 생 자체를 가슴앓이로 점철되어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나도 모르게 내 기사의 보충 사진 속에 파렴치한 여인으로 등장해 있었을 때 그 황당함과 당혹함을 어찌 필설로 열거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무작정 경찰서로 달렸다. 왜 달려가야 하는지를 모르면서 달려가지 않으면 금방 이라도 하늘이 두 쪽 날 것 같은 강박감이 사고력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예의 형사반장이 무슨 냄새를 맡았길래 허우적거리냐고 나무라서야 겨우 내 실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반장님께 약주 한 잔 대접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이 아이레 메가 켕기는 게 있긴 있구만. 뜸들이지 말구 날레 말 해 보라우야 머시긴지 알아야 약주든 탁주든 마실게 아이가.”
“실은 기획기사에 미비한 인터뷰를 부탁드리려고 하는데....”
“뉘기? 내? 어라 ... 이 아이레 아편쟁이 가이내를 알고 있다는기 아이가?”
반장은 내가 내미는 사진을 보더니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고 슬며시 손목을 이끈다.
인근 식당에 자리를 잡자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고향 문중의 손녀 뻘 되는 후뱁니다”
“메야? 그 삼류 광대가.... 그게 참말이네?”
“어려운 줄 알지만 반장님께 안 되는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반장은 이내 심각한 표정이 되었고 무엇인가를 골몰히 생각하는 눈치더니 한 사발 약주를 들이키고 고소를 띄운다. 물론 나의 어거지나 다름없는 이러한 부탁이 들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적어도 공개된 사건에서 누군 봐주고 누군 안 봐준다는 것이 상식적으로도 납득되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난 우습게도 이 자리에서 어거지라도 쓰지 않으면 가슴이 폭발할 것 같은 압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 마디로 안 되갔어. 이미 니기가 문짝에 도배를 하고 서리 빼달라믄 어쩌갔네. 기리구 상습범인디.”
사람 마음은 참으로 간사한 것일까? 반장이 날 생각하는 만큼 부탁만 하면 금방 풀어 줄 것이란 기대가 무너지면서 반장에 대한 야릇한 배신감 같은 것을 느꼈고 가슴이 끝없이 무너져 내리면서 난 비로소 이성을 제자리에 돌 놓을 수 있었다. 아울러 지금까지 내 행동에 대한 무분별하고 사리 없는 말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그 실책을 깨달았다.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이니끼니 너무 낙심은 하지 말라우야. 이기자가 협조만 해 준다면 내레 보증을 서가서리 한 삼 개 월 쯤 요양원에 갔다오믄 되는 방법이 있지 암.”
반장의 말을 요약하면 반장 개인과 나와의 옵션이었다. 물론 그 대가는 그녀의 형을 최소화 하는 것이었고 나는 반장이 제공하는 정보를 추적, 단서 및 증거를 공유하는 것이었다. 바꿔 말해 반장의 정보원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다소 꺼림직 하긴 했으나 정보와 자료를 폭넓게 얻을 수 있다는 면에선 구미가 당기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분한 반장의 음모(?)가 개입돼 있었고 본격적인 여난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