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역동선생 시
일수장집우일수형극악
노도형극방래백발
장타백발자선근래도
계묘지춘절 현암
[해석]
역동선생의 시를 적다
한 손에 막대기 잡고 또 한 손에 가시나무 쥐고서
늙음이 오는 길에 가시나무로 막고 오는 백발을
막대기로 치렸더니 백발이 절로 먼저 알고서 빠른 길로 왔다네
고려 후기 우탁(禹倬, 1262~1342) 의 시조를 한역으로 옮긴 것을 써 놓은 것이다.
[감상]
한역을 하면서 한문 문법이나 문장이 좀 어색하다. 우리말 어순처럼 한문을 써 놓아서 한문을 좀 읽을 줄 아는 이에게는 문장이 많이 어색하게 다가온다.
어느 누군들 늙지 않으리오. 내 나이 사십 중반이라지만 나이 먹어감이 왜 느껴지지 않으리오. 젊은 청춘들이야 세월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랴. 하물며 고등학생 이하의 청소년들이라면 세월이 더디 간다고 하소연을 할 테지. 그러나 걱정들 마시오. 세월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똑같은 속도로 가고 있으니. 그저 느끼는 이의 마음에 와 닿는 속도가 다를 뿐이지.
늙어 가는 길에 뾰족한 가시나무를 두고서 막아 보고자 한다. 백발이 다가 오려니 막대기로 후려 쳐서라도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싶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선 한 얼굴에서 새치도 많이 보이고 주름도 몇 가닥인지 셀 수 없을 때에 화들짝 놀랄까, 아니면 탄식을 할까. 언제 나도 이렇게 늙었는지 피식 웃을 때 아직은 몸이 성해서 다행이리라. 무릎이 아프고 연골이 다 닳아서 움직일 때마다 고통의 신음이 새어 나온다면, 허리가 휘어 곧게 펼 수 없는 날이 이르르면, 눈 앞이 뿌옇게 흐릿할 때, 몸에 칼을 대고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할 날이 온다면, 그 때는 정말 내 늙음을 탄식하며 막대기로라도 백발을 치고 싶으리라.
내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먹고 싶은 것 먹으러 가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날이 오기 전에 어서 서둘러 난 뭘 하고 싶은가, 뭘 해야 할까 생각을 해 본다. 사랑하는 이를 찾거나 사랑할 만한 일을 찾거나 행복을 나눌 이를 찾거나,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거나 해야겠지. 행복을 같이 누릴 사랑하는 이의 늙음을 보고서 같이 늙어감에 후회도 탄식도 없이 서로 마주 보며 미소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라.
우탁 선생은 늙어 가는 모습이 싫었는 게 아니라 같이 늙어 가 줄 사람이 곁에 없었던 걸까. 나의 늙음에 흐뭇한 미소와 따뜻한 눈빛으로 인정해 주고 토닥여 주는 이가 없었을까. 젊은 청춘과 청년의 때로 돌아가 본들 무엇을 하고 싶으며, 무엇을 하려는 걸까. 인생이 행복을 찾아 누린다면 그깟 청춘쯤이야 무슨 대수이랴. 사랑하는 이를 만나 함께 사랑하며 세월을 뚫고 간다면 늙는 것도 괜찮으리라. 그 사이 사이 찾아오는 가난과 시름과 실패와 좌절, 고통과 슬픔, 고난과 역경은 손님 같으리라. 또 그 사이 사이 기쁨과 환희도, 성공과 행운도 찾아오지 않을까.
늙어가는 길에 가시나무로 막고 오는 백발을 막대기로 후려 치더라고 저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온다는데 어찌 인생이 무슨 수를 더 써 보겠는가. 내 늙음이 나만 홀로 받는 죗값 같은 것이랴. 우리 인생이 똑같이 누려야 할 인생의 한 부분 아니겠나. 다만 아프지 말길, 내 어머니와 아버지도 아프지 마시길. 내 사랑하는 이들이 아프지 않고 늙어 가길 간절히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나의 늙음에 당당하고 감사하며 살고 싶어지는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