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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룻2:1]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이삭 줍는 룻]
친족 - 여기서 이 말은 원문상 흔히 '케티브(모음 부호를 붙이기 이전의 원문 그대로의 자음) 독법'(讀法)을 따라 '메우다'로 읽는데, 그 뜻은 '잘 알고 있는(자)', '가까운(자)'라는 의미를 지닌다(시 55:13;88:8,18). 여기서는 특별히 기업 무를 의무를 가진 '혈족 관계'(kinship)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확실치는 않지만 유대 전승에 의하면,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조카라 한다(Keil, Cassel).
유력한 자 - 이 말은 히브리어로 '이쉬 깁보르 하일'인데, '깁보르'는 주로 '용사'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수 1:14;10:2;삼상 2:4). 그리고 '하일'은 '재산이 많은 사람'을 의미하기도 하며(신 33:11), '재물'을 의미하기도 한다(사 8:4). 뿐만 아니라 '현숙하거나 능력있는 사람'에게도 사용되었다(3:11). 따라서 본절에서 보아스(Boaz)를 유력한 자라고 칭한 것은 재물이 많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존경을 받으며, 그 지방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임을 보여 준다. 이런 의미에서 영역본들은 각각 '유력한 자산가'(a mighty man of wealth, KJV),'명망있는 유지'(a man of standing, NIV)등으로 번역했다.
보아스(Boaz) - 히브리 어근상 그 이름의 뜻이 분명치 않다. 따라서 (1)혹자는 '벤 아즈'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아 '힘센(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Cassel). (2)혹자는 '바아즈'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며, 그 뜻은 곧 '민첩한(활동가)'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Keil). (3)그리고 혹자는 이 말의 어근을 산스크리트어(Sanskrit, 梵語)의 '부안티'(bhuvanti)에서 찾아, 그 뜻을 '복된(자)'로 보기도 한다(Raabe).
성 경: [룻2:2]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이삭 줍는 룻]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 동서 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추수기가 되면 가난한 자들은 추수를 한 밭에 나가 떨어진 이삭을 주워 생계를 유지했다. 특별히 히브리 사회에서 모세 율법은 이러한 자들을 위해 밭이나 포도원, 그리고 감람원에서 추수하는 자들로 하여금 밭의 가장 자리에 있는 농작물의 일부를 남겨놓도록 규정하고 있다(레19:9,10;23:22;신 24:19). 룻은 이러한 율법의 혜택과 관습을 좇아 자신과 시어머니의 양식을 구하기 위해 밭으로 나갔다.
뉘게 은혜를 입으면...이삭을 줍겠나이다 - 모세 율법은 분명 가난한 자의 생계를 보장키 위해 추수 후에 그 떨어진 이삭을 줍는 자들의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을 규정하고 있다(레 19:9,10;23:22;신 24:19). 그러나 백성들은 그 규정을 무시했다. 즉 여호수아 사후(死後)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안정과 번영을 누리게 되자, 오히려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소견대로 사리 사욕을 취하는 사사 시대의 타락상을 연출했다. 따라서 당시 가난한 자들은 율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밭주인의 냉대와 멸시를 받기 일수였고 심지어 이삭 줍는 일을 금지당하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모압 여인 룻(Ruth)으로서는 모압에 대한 이스라엘의 좋지 못한 감정을 고려할 때, 결코 이삭 줍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룻의 이 말은 이방인으로서의 당할지도 모를 온갖 어려움과 냉대를 감수하고, 또한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하루종일 허기를 참아가며 일해야 할 육체적인 고통을 기꺼히 감수하고 '내가 누군가의 눈에서 호의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in whose eyes I shall find favor) 그를 좇아 열심히 이삭을 줍겠다는 결의를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 속에는 시어머니에 대한 룻의 지극한 효성이 구체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이로써 룻은 신실한 신앙을 소유한 여인일 뿐 아니라(1:16,17), 홀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현숙한 여인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여인으로 부각된다.
성 경: [룻2:3]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이삭 줍는 룻]
베는 자를 따라...이삭을 줍는데 - 후대의 유대 랍비들은 '이삭 줍기'에 대해 나름대로의 규정을 정했다. 그중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즉 '만일 추수하는 자가 보리나 밀 등을 벨 때 한 줄기나 두 줄기를 놓쳐버리면 그것은 이삭 줍는 자의 몫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세 줄기 이상 베지 않았다면 그것은 주인에게 다시금 돌려져야 했다'(Pulpit Commentary).
우연히...이르렀더라 - 룻이 이삭을 줍기 위해 보아스의 밭으로 갔을 때, 그녀는 당시 그 밭의 주인에 대해서나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나 분명코 이것은 룻의 입장에서는 우연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편에서는 그녀를 위해 미리 준비하신 기회였다(Gillis Gerleman). 따라서 본서의 저자가 본절에서이 말을 한 것은 앞으로 발생되는 일이 인간의 계획과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성 경: [룻2:4]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보아스와 룻의 조우(遭遇)]
본절은 보아스와 그의 일꾼들간에 인사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구약 시대에 히브리인들이 나누었던 인사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이웃의 안부를 물을 때(삼하 8:10;11:7;왕하 4:26) 혹은 사람을 만났을 때(왕하 5:21)나 헤어질 때(삼상1:17) '샬롬'이라는 인사말을 나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평강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의미가 축약된 인사로서, 히브리인들에게는 가장 보편적인 인사법이다. 그리고 이같은 인사말과 더불어 그들은 서로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었다(창27:26;출 18:7;삼상 20:41). (2)존경과 충성을 표시하는 인사로서 땅에 엎드려 절하는 방식(창 50:18;삼하 9:6;14:4;왕하 4:37;대하 20:18)과 무릎을 꿇어 절하는 방식(창42:6)이 있었다. 그런데 본절의 인사법은 이러한 관습적인 것과 퍽 다르다는 인상을준다. 즉 보아스는 자기 일꾼들에게 매우 자상하게 인사했으며, 일꾼들도 그에게 매우 친밀한 말로 화답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보아스의 평소 신앙 인격을 잘 증명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성 경: [룻2:5]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보아스와 룻의 조우(遭遇)]
사환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아르'는 '젊은 사람', '심부름꾼','시종'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아르'는 '노예'나 '종'을 의미하는 '에베드'와는 매우 다르다. 즉, '나아르'는 대체로 독립된 가정을 가지며, '에베드', 즉 '종'들을 관장하는 사람을 일컬을 때도 사용된다(삼하 9:9,10). 본절에서 사용된 '나아르'도 추수하는 일꾼들을 관장하는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아(6절), 단순한 종이나 사환이 아니라 보아스의 가사를 책임맡은 감독관과 같은 사람일 것이다.
이는 뉘 소녀냐 - 사실 룻은 그동안 유력한 엘리멜렉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유복하게 생활해 왔기 때문에, 여느 이삭 줍는 가난한 여인네와는 다른 고상한 기품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룻은 훌륭한 신앙과 고매한 덕성을 지닌 현숙한 여인으로서 그 단정한 몸가짐으로 다소곳하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금방 보아스의 눈에 띄인것 같다.
성 경: [룻2:6]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보아스와 룻의 조우(遭遇)]
이는...모압 소녀인데 - 주인의 질문에 즉각 응하여 룻을 소개하는 사환의 대답을 볼 때, 그리고 룻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보아스가 한 말(11절)을 볼 때 당시 베들레헴 성내에서는 룻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진 것 같다. 더욱이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룻은 여호와를 향한 신앙과 시모(媤母)에 대한 지극한 효성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인정받고 있었던 것 같다.
성 경: [룻2:7]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보아스와 룻의 조우(遭遇)]
잠시 집에서 쉰 외에 - 커버데일(Coverdale) 역에서는 본절을 '잠간 동안 집에 가곤 했던 것 외에'라고 하여 '집'이란 말이 성읍에 있는 나오미의 주택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본문에 사용된 '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아트'(*)는 '집'이란 뜻 말고도 '임시적인 오두막', '장막', '움막'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룻이 점심 식사를 밭에서 한 것으로 보아(14절), 그녀가 쉰 곳은 성읍에 있는 집이 아니라 더위를 피하기 위해 임시로 지은 장막이나 오두막이었을 것이다(JamesMorison). 아무튼 본절에서 저자가 이러한 표현을 쓴 것은 그녀가 어디에서 쉬었느냐 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룻이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성 경: [룻2:8]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룻을 선대하는 보아스]
내 딸아 들으라 - 이 한 마디 말 가운데서 우리는 보아스의 따뜻한 인간미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그는 룻을 단순히 값싼 동정심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룻이 수치심이나 굴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매우 친밀한 말로 이야기를 건넸던 것이다. 한편 '내 딸아'(빗티)라고 부르는 관습은 비단 자기 딸 뿐 아니라, 지체 높은 어른이 젊은 여인에게 이야기를 건넬 때나 충고를 할 때도 흔히 사용된다.
여기서...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 '나의 소녀들'이란 추수하는 자들의 바로 뒤를 따르면서 그 베어 놓은 줄기를 단으로 묶는 여인네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아마도 보아스는 어떤 특정한 위치를 룻에게 지정해 주면서 그 권리를 인정해 준 것 같은데, 바로 단 묶는 여인들 틈에서 마음껏 이삭을 줍도록 했던 것 같다.
성 경: [룻2:9]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룻을 선대하는 보아스]
소년들의 길어 온 것 -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물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그 지방에서는 우물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 발전되었다. 따라서 들로 일을 하러 갈때에는 성읍 우물에서 하루 종일 마실 물을 길어가야 했다. 그런데 들에 일을 하러 나오는 룻의 입장에서 볼 때 하루 종일 마실 물을 가져오는 것은 용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소년들이 성읍까지 가서 애써 길어온 물을 마신다는 것은 이삭 줍는 자의 처지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보아스는 룻에게 자기 소년들이 힘들게 길어 온 물을 마실 수 있는 특권을 주었던 것이다. 한편 혹자는 이때 소년들이 물을 길어 왔던 우물을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 중 마시기를 원했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삼하 23:14,15)과 동일시 하기도 한다(A.C.Hervey, Dean Stanley)
성 경: [룻2:10]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룻을 선대하는 보아스]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 전신을 땅에 엎드려 절하는 행동은 원래 하나님 앞에서(수 7:6;삿 13:20), 혹은 왕 앞에서(삼하 14:4,22) 취하던 자세였다. 그러나 단순히 아주 깊은 겸손을 표시하기 위해 그러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여기서 룻은 외모만을 보고 판단하지 않는 보아스의 사려 깊은 인격에 대해 심심한 존경의 뜻을 표함과 아울러 이방인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자각하여 깊은 겸손을 표했던 것이다.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 전통적으로 히브리인들은 이방인들을 천하게 여겼다. 이같은 관습은 율법의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시켰던데서 연유되었다(신 7:3). 그러나 본질적으로 율법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 간의 결혼을 금지시킨 것은 종족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함이 아니라, 종교적인 순수성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즉 이방인과의 결혼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기 때문에'(왕상 11:1,2) 금지된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은 이 정신을 오해하여 나중에는 자기 동족인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 당한 후 앗수르인과 혼혈되자 그들(사마리아 사람들)과도 상종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튼 여기서 룻도 아마 이러한 점을 의식하고서, 자신이 히브리인들이 천하게 여기는 이방 여인이라는 사실을 말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성 경: [룻2:11]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룻을 선대하는 보아스]
본절에 나타난 바, 우리는 존경받는 유력한 인물 보아스의 대답을 통해 룻의 두 가지 뛰어난 품성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이란 말을 통해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시모(媤母)를 극진히 받들어 섬기는 룻의 '효성'(孝誠)을 발견할 수 있다. 둘째,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란 말을 통해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향한 순수하고도 충직한 룻의 '신앙'(信仰)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결국 룻이 복을 받아 머지 않아 보아스(Boaz)의 아내가 되고, 후일 성군 다윗(David)의 증조모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1차적으로는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 때문이었지만, 나아가 룻의 고결한 품성도 그 요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 경: [룻2:12]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룻을 선대하는 보아스]
여호와께서...보응하시기를 원하며 - 일찍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일가 친척, 본토를 버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곧 "나는...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는 말을 연상케하는 보아스의 축복이다. 실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온 이 이방 여인에게 보아스의 이 말은 큰 위로의 말이 되었을 것이다(13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 이 명칭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에 언약을 맺은 사실과 깊은 연관이 있다. 즉 여기서 보아스가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셔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고, 율법을 통해 언약 백성으로 삼으신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이시다(출 6:2;19:3;20:1-26).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 이 표현은 출 19:4과 신 32:11의 말씀을 연상시킨다. 즉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 주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행위가 마치 어미 독수리가 그 넓고 강한 날개로 새끼를 안전하게 인도하고 보호해 주는 것과 같은 행위로 묘사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서 보아스가 룻에게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은 룻이 언약의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음으로써, 그녀가 자비로우시며 긍휼이 풍성하신 그 크신 하나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로 인도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시 91:4). 보아스의 이 말은 앞에서 룻이 자신을 가리켜 '이방 여인'으로 말한 것(10절)에 대한 위로의 말이기도 하다.
성 경: [룻2:13]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룻을 선대하는 보아스]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 - 룻은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란 말과 같이 자신에게는 최대의 비하와 겸손으로써, 그리고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란 말같이 보아스에게는 최고의 존경과 감사로써 자신이 받은 큰 위로와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 즉 모압 땅을 떠나온 이래로, 이처럼 따뜻한 인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룻은 그 무엇보다도 이방 여인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맞이해 주는 보아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 어떤 호의보다도 더욱 큰 힘과 위로 및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성 경: [룻2:14]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룻을 선대하는 보아스]
초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메츠'는 포도주에서 난 '초'(민 6:3)를 의미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빵과 함께 식사할 때 양념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근동 지방에서는 갈증을 푸는 음료로 이것을 사용하고 있다(Goslinga).
볶은 곡식 - 이것은 아직 덜 여문 밀을 모닥불등에 살짝 볶은 것으로(레 2:14), 아직도 근동 지방에서는 빵에 곁들여 사용되거나 빵대신 주식으로 애용되기도 한다.
성 경: [룻2:15]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룻을 선대하는 보아스]
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 여기서 '곡식 단 사이'(between the sheaves)란 말은 분명 곡식 단들을 세워 놓은 바깥과는 구별되는 말로서, 곧 곡식 줄기를 한웅큼씩 모아들인 소녀들이 크게 단(sheaf)으로 묶는 지점일 것이다(J.Morison). 따라서 그곳은 그 묶는 과정에서 자연히 곡식 이삭들이 주변에 많이 널려지는 곳이었다. 따라서 만일 여기서 룻이 이삭을 줍는다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충분한 양을 쉽게 모아들일 수 있었다.
성 경: [룻2:16]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룻을 선대하는 보아스]
뽑아 버려서 - 이 말을 좀더 정확히 옮기면 '떼어 내어서'가 된다. 즉 단을 묶을 때 그 단에서 흘린 것처럼 떼어 내어 룻으로 하여금 그 곡식을 줍게 하라는 의미이다. 특히 보아스의 이 말 속에는 룻이 곡식을 주울 때, 동정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세심한 배려가 깃들어 있다. 아무튼 일하는 소년들에게 내린 보아스의 이 지시는 분명 가난한 자에 대한 동정이나 긍휼의 정도를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분명 보아스는 이방 여인 룻의 효성과 신앙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 같고, 그로 인해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II,p.480).
성 경: [룻2:17]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나오미에게 고하는 룻]
그 주운 것을 떠니 - 아마도 룻은 그 주운 보리 이삭을 편편한 바닥이나 또는 멍석 위에 올려 놓은 후 적당한 막대기나 돌로서 두들겨 떨었을 것이다.
한 에바 - '에바'(Ephah)는 구약 시대 부피의 단위로서 대략 23ℓ즉 약 12되 정도의 분량이다. 이처럼 룻이 하루 동안 23ℓ 정도의 이삭을 주웠다는 것은 보아스가 그녀에게 보여 준 호의가 어느 정도였는가를 잘 설명해 준다. 즉 보아스는 룻에게 점심 식사를 줄 때, 그녀가 먹고 남을 만큼 풍족히 제공했을 뿐 아니라(14절), 곡식 단을 묶을때 조금씩 흘리도록 함으로써 그녀가 풍성히 거둘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16절). 그러므로 룻은 이러한 보아스의 호의 때문에 넘치는 수확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성 경: [룻2:18]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나오미에게 고하는 룻]
보이고...드리매 - 이 한 구절 속에 시모에 대한 룻의 효성이 함축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즉 룻은 자신을 보내놓고 걱정하시는 시모를 위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하루동안 한 일을 죄다 보여 드렸을 뿐 아니라, 또한 대접받은 음식을 자기만 배불리 먹은것으로 끝나지 않고(14절) 집에 홀로 있는 시모를 생각하여 정성껏 남겨 가지고 돌아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룻의 행동은 끝까지 시모를 공경하며 따르겠다고 약속한 것(1:16,17)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긴 것이라 볼 수 있다.
성 경: [룻2:19]
주제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주제2: [나오미에게 고하는 룻]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 연속되는 나오미의 질문 속에서 나오미의 궁금증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즉 나오미의 생각에 여인이 하루 동안 보리 이삭을 한 에바 정도 줍는다는 것도 예사 일이 아닐뿐더러, 준비해 가지 않은 점심을 먹고 남겨 가져온다는 것도 누구의 호의를 입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오미는 젊은 과부인 룻의 신변이 염려되어 그녀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을 알고 싶어 했던 것이다. 분명 오늘 룻에게 어떤 일이 생겼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고, 그 일의 자초 지종을 듣고 또한 알기 원했던 것이다. 이에 룻은 시모의 궁금증을 풀어 드리기 위해 그날 일어났던 일의 자초 지종을 예의 그 자상함으로 이
야기 했을 것이다.
성 경: [룻2:20]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 여기서 '생존한 자'란 나오미와 룻을 가리키며, '사망한 자'란 모압 땅에서 죽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말한다. 그런데 본절에는 한 가지의 문제가 내포되어있다. 즉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를 베푼 '그가' 곧 누구인가 하는 문제이다. (1)혹자는 본절의 주어 '그'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Keil, Goslinga). 이러한주장은 사람이 '사망한 자'에게까지 은혜를 베풀 수 없기 때문이라는 추론에 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영역 성경 중 NIV와 Living Bible에서도 본 구절의 주어를 구체적으로 '하나님'으로 밝히고 있다. (2)그러나 혹자는 본절의 주어를 문장 그 자체에서 보여주는 대로 '보아스'로 주장한다(Matthew Henry, A.C.Hervey). 이 주장을 따라 본절을 해석해 보면, 나오미는 보아스가 그녀의 남편과 아들들이 살아있을 때에도 자신의 가정에 호의를 베풀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지금 살아 있는 자신들에게 베풀고 있는 보아스의 호의를 그때의 상황과 연결시켜 말했다는 의미가 된다. 결론적으로 무엇보다여기서 보아스가 룻에게 호의(好意)를 베풀었다는 소식을 접한 나오미가 보아스의 호의를 칭송하면서 그 호의를 강조하고자 이 말을 사용했다고 볼 때, 본절의 주어는 '보아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기업을 무를 자 - 이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고엘'은 '되찾다', '무르다', '구속하다'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의 고엘 제도'는 하나님께로부터 할당받은 기업을 영구히 보존하고, 혈족을 유지하며, 그리고 부당한 피해를 당했을 경우 이를 보상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에서 생겨났다. 따라서 고엘(Goel)이 된 자는 '고엘의 의무'를 감당해야 했는데, 그것은 곧 (1)가난한 혈족의 땅을 도로 사주어야 했고(레 25:25,26), (2)부당한 피해를 당한 친족을 위해 복수할 책임을 져야 했으며(민 35:12,19,21), (3)그 친족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대(代)를 이어주어야 함은 물론, 심지어 그 친족의 죄값을 대신 받기까지 했다(민 5:8). 그리고 '고엘의 자격'으로서는 (1)혈연적 관계에 있을 것(신 25:5-7), (2)자원해야 할 것(3:13),(3)그리고 고엘로서의 능력을 구비할 것 등을 들 수 있다(레 25:25 주석 참조).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베들레헴성에서 유력한 자(2:1)이며, 친족에게 호의를 베풀 줄 아는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정의 고엘로서 가장 합당하였다<레 25:8-55 강해, 근족의 의무>
성 경: [룻2:21]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 보아스의 큰 호의에 룻 또한 감격하여 시모 나오미에게보아스가 자신에게 베푼 호의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자세히 말해준다.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 여기서는 보리 추수만을 의미하지 않고, 곧바로 이어지는 밀 추수 때까지를 의미한다(23절).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나 - 여기서 '소년들'(네아림)은 비록 남성형으로 표기되었지만 엄밀히 '소녀들'과 구분하고자 그리 사용된 것은 아니다. 다만 룻으로 하여금 벼 베는 소년들 뒤를 따라가며 단을 묶는 소녀들 틈에서 추수기가 다 끝날 때까지 부담없이 이삭을 주우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8,22,23절).
성 경: [룻2:22]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 나오미의 이 말 속에는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정의 '고엘'이 될 자격이 있다는 확신이 내포되어 있다. 즉 앞절에서(21절) 룻이 보아스의 말(8절)을 나오미에게 전해 줄 때,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기 친족의 고엘이 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했고, 따라서 룻에게 다른 사람의 밭으로가서 보아스 외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을 삼가하라고 충고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룻이 다른 사람의 밭에서 이삭을 주우려다 자칫 거칠게 다루어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 경: [룻2:23]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 팔레스틴 지방에서 보리는 밀보다 먼저 익어서 대개 태양력으로 4월 중순경에 거둬들인다. 그리고 약 2주일 후에 밀 추수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이 기간 동안 내내 룻의 겸손하고 근면한 품행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것이고, 보아스는 이러한 룻의 행동을 계속해서 지켜볼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본절은 보아스와 룻의 관계가 점차로 무르익어 가서 마침내 결혼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Morison, Cassel).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 이 짧은 한 마디의 말은 곧 시모(媤母)에 대한 룻의 변함없는 효성을 암시해 준다. 즉 18절에서 보여지듯, 그 근면하고 순결한 성품으로 하루 일을 마친 다음 그날의 좋은 것들로 시모를 봉양하고, 아울러 시모에게 하루의 일과를 자상하게 이야기하는 등 물심 양면으로 시모를 편하게 받들어 모시는 룻의 한결같은 모습이 이 짧은 한 구절 속에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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