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손요법 이동현
[1927년 출생한 이동현 선생은 1955년부터 70년까지 육군사관학교와 한국외국어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이후 한국지압연구회와 한국수기(手氣)협회 초대 회장을 지냈고, 74년부터 90년까지 홍콩 한국수기치료원 원장과 홍콩 국제기공학회 대표를 겸했다. 90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현재 한국기공연합회 회장이자 한국약손연구회 대표로 있다. 그동안 펴낸 저서로는 ‘지압요법’과 ‘건강기공’, ‘생활기공’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노어 번역작가로도 명성을 쌓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정음사)로 1970년 국제펜클럽이 주는 한국번역문학상을 수상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외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지하생활자의 수기’ ‘닥터 지바고’ 등 수많은 노어 문학작품을 번역했다. 명망 있는 대학교수에서 약손 연구로 인생을 전환한 사연이 궁금했다.] -교수직을 버리고 약손요법에 매달리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문학작품을 번역하다 문득 회의가 들었습니다. 작품의 무대인 그 나라(구소련)를 직접 가보지 못하고 풍토도 모르면서 무슨 번역을 하나 싶었지요. 당시는 소련이 공산국가로 우리나라와 국교를 맺지 않은 상태라 마음이 있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로 교수직까지 그만두신 건가요. “저도 이북이 고향이지만, 1950년대 말 혈혈단신 월남해 혼자 사는 아는 형님이 중풍에 걸렸어요. 한의사가 초기 치료를 했는데 후속 치료가 제대로 안 돼 반신불수가 된 몸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아픈 몸을 끌고 달리 갈 데가 없었지요. 그 분이 보따리에서 조그만 침통을 꺼내 저한테 주며 여기저기 침을 놓으라고 일러주는데, 처음엔 무서웠습니다. 그래도 치료가 급하니 시키는 대로 했어요. 며칠 침을 놓으니 몸이 조금씩 풀리는데 신기했습니다. 한편으론 뭐가 뭔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침을 놓으니까 답답하고 궁금증도 일었어요.” 이때부터 침구와 관련한 책을 사서 섭렵하다 일본 서적까지 구해 읽게 됐고, 그 과정에서 일본의 지압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약손요법까지 이어지는 씨앗이 됐다. “지압을 알고 나자, 손으로 아픈 곳(혈자리)을 주물러 나을 수 있다면 굳이 침을 찌를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재미를 붙였습니다.” -홍콩으로 건너가신 건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한때 지압장이로 꽤 이름을 날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우리나라에 지압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 부산에서도 환자가 올라오고 지압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국제펜클럽 상금으로 광화문에 사무실까지 냈지요. 그런데 일본 지압은 철학도 없고 깊이도 없이 단순히 손으로 누른다는 의미에 불과했습니다. 우리 몸의 기를 돌려준다는 좀더 깊은 의미가 있어야 할 것 같아 ‘수기(手氣)’로 명칭을 바꾸고, 수기사와 관련한 법을 만들기 위해 국회 입법을 추진했지요. 그런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불발로 그쳤습니다. 그때가 수기협회 초대 회장으로 있을 때인데 운신도 어렵고 해서 직업전환을 잘못한 게 아닌가 회의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에게서 지압을 배우고 홍콩으로 건너간 제자가 고위인사를 치료하는 등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손님이 몰려오니 혼자 감당할 수 없어 저를 초청했습니다. 그때 가서 16년간이나 눌러 있게 됐지요. 그 기간 동안 지압, 마사지, 반사요법 등 손으로 할 수 있는 세계 각국의 맨손요법을 섭렵하고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기공 공부도 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환자를 만지기도 했는데 동서양인을 통틀어 아마 수만명에 달할 겁니다.” -맨손요법과 다른 약손요법은 어떻게 나오게 됐습니까. “십수년을 해외로 떠돌며 세계 각국, 각 민족 고유의 다양한 맨손요법을 섭렵하고 연구하고 실천해봤습니다. 그때 가장 안타까운 점이 왜 우리에겐 맨손요법다운 맨손요법의 전통이 없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남의 것을 전전한 끝에 얻은 결론이 바로 우리 약손입니다. 다른 나라 어떤 것보다도 보배로운 맨손요법, 약손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흔히 일반인에게 알려져 있는 맨손요법인 지압, 안마, 추나요법과 약손요법이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손얹기 유형의 요법을 제외한다면 다른 맨손요법의 수법은 활발한 움직임의 연속이 특징입니다. 현란한 손 기술과 테크닉이 발달해 있지요. 그에 비해 약손 쓰기의 특징은 기공의 형식과 방법을 원용해 단순하며 고요함 속에 절제된 움직임이 있을 뿐입니다. 또 약손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기가 교류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약손 쓰기는 다른 맨손요법의 모든 유용한 수법들을 포용하되 그것을 전래의 약손의 모습으로 단순화한 것입니다. 손의 움직임을 극도로 절제하면서 시종일관 고요함을 지켜나가는 것, 이것이 약손요법과 여타 맨손요법과의 수법상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약손요법이 질병을 다스리거나 치유하는 힘이 있다면 새로운 형식의 대체의학이 될 수도 있을까요. “저는 대체의학이나 대체요법이란 말을 싫어합니다. 그건 의학에서 나온 말입니다. 21세기 맨손요법이 살아나려면 의사 흉내를 내서는 안 됩니다. 의학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 약손정신입니다. 일본에선 간호사를 간호부(看護婦)라 하는데, 지켜보고 보살피는 지어미란 의미입니다. 이 단어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참으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드는데,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게 바로 의사와 간호부입니다. 그런데 점점 간호부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옛날엔 어머니가 간호부 역할을 했습니다. 의사가 아닌 아마추어가 고통받는 사람을 보살펴주고 도와주어야 하는데, 이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약손요법입니다.” 이씨는 우리 겨레와 민족의 유산인 약손이 태권도 이상으로 세계적인 것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未病(발병 이전 단계) 치료, 병후 기운회복에 효과 만점 어릴 적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배를 쓸어주는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아스라한 잠 속으로 빠져들던 기억. “엄마 손은 약손∼, ○○○배는 똥배∼.” 마냥 신통하게만 느껴졌던,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삶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그때 그 약손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한국 전래의 약손정신을 바탕으로 건강기공과 맨손 경락이론을 결합한 ‘약손요법’이 그것이다. 스포츠마사지, 추나요법, 경락마사지, 아로마테라피를 이용한 마사지 등 각종 맨손 치유법이 ‘최첨단’을 내세우며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요즘이다. 관련서적들도 ‘건강서적’이란 문패를 달고 서둘러 팔려나간다. 이런 가운데 완전히 잊혀진 것으로 알았던, ‘된장냄새 나고 촌스런’ 약손이 새로이 조명받고 있다. 한국 전래의 약손정신을 바탕으로 건강기공의 원리와 방식, 맨손 경락이론을 결합하여 ‘사랑 나눔’이라는 형식으로 체계화한 이동현(76) 선생의 약손요법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약손연구회 대표인 그는 침술을 시작으로 40년이 넘는 세월을 각종 맨손요법과 기공 등 건강관련 연구에 바쳤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약손을 체계적 이론으로 정립해 책으로 내놓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약손을 되살리고 보급하는 일에 여생을 바치겠다는 사명감이 낳은 결과가 저서 ‘기와 사랑의 약손요법’(정신세계사)이다. 오랜 시간 끈질긴 노력으로 되살려낸 이씨의 약손요법은 지난해 6월 서울시에 의해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로 선정돼 시비 보조금을 받는 결실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원광대 동양학대학원과 선문대·경기대 등에 정규 강좌가 개설되고, 각종 문화센터를 비롯해 간호사, 호스피스 모임 등 각계각처에서 크고 작은 규모의 강좌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그동안 이씨가 길러낸 정예 제자만도 100여명에 이른다. “제게서 약손요법을 익힌 사람들은 주부, 교사, 교수, 사업가, 직장인, 사회복지사, 간호사 등 다양합니다. 이들이 뜻을 모아 양로원 등 우리 사회의 어려운 곳을 찾아다니며 사랑을 나누는 약손 자원봉사를 활발히 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전통을 이어온 약손이 본래의 정신을 간직한 채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나 현대인의 고달픈 몸과 삭막한 마음을 포근히 보듬어주는 참다운 사랑 나눔의 풍속으로 굳건히 뿌리내리길 바란다는 이씨. 그가 말하는 약손요법의 실체를 요약, 정리했다. 맨손으로 하는 다양한 유형의 맨손요법들은 어떤 손(혹은 마음)으로, 어떻게 어디를 손보느냐가 기본 명제다. 약손요법은 약손정신을 바탕으로, 기공의 원리와 방식을 원용해서, 맨손 경락이론에 따라 손을 쓰는 체계화된 한국식 맨손 건강요법이다. 약손정신은 ‘엄마 손은 약손’이란 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맨손치료는 원래 사랑하는 가족이나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덜어주려는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런 마음은 인간이 지니는 본능적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 중에서도 가장 크고 깊은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다. 맨손요법을 행하는 데 있어 치료받는 사람을 감싸주려는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마음은 손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고, 치료를 받는 사람의 마음에도 사랑과 친밀감을 불러일으켜 더없이 편안한 상태로 이끈다. 이러한 마음의 상호작용은 ‘사랑’이라는 정신 에너지가 일으키는 기의 현상이다. 다시 말해 사랑의 기운이 상호교차하는 가운데 치료받는 사람의 심신을 안정시켜 몸 안에 기력을 북돋워주는 것이다. 약손정신이란 바로 ‘사랑 나눔’과 ‘보살핌’이다. 여기에는 어떤 테크닉도 끼여들지 않아야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연본능적 손쓰기에 따라 덮어주고, 감싸주고, 잡아주는 것이 약손정신의 단적 구현이다. “약물이나 기구를 사용하는 경우와 달리 맨손 치유법에서는 어떤 마음으로 손을 쓰느냐가 치유효과를 나타내는 결정적 요소입니다.아무런 의학지식도 기술도 없는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들 손이 약손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순수한 사랑과 정성만으로 본능에 따라 자연스럽게 손을 썼기 때문입니다. 어떤 지식이나 손재주를 익히기 전 바로 모성적 사랑과 정성, 자연과 본능에 순응하는 겸허한 마음가짐과 같은 약손정신을 본받는 일이 약손요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덮고 감싸주고 잡아주는 ‘약손정신’ 맨손 치유법을 포함한 인간의 본능적 조절행위를 자연의 이치에 따라 완벽한 건강요법으로 다듬어낸 것이 동양의 양생법이다. 이를 오늘의 시대에 부합하도록 과학적 이론으로 재정리한 것이 기공이다. 그 원리0와 방식을 약손에 적용하면 된다. 기공 수련의 3대 원칙은 긴장이완과 고요함, 자연스러움이다. 육체와 정신의 긴장이완이 수련의 출발점이다. 다음으로 몸과 마음, 호흡은 물론이고 동작까지 모든 것이 고요하고 조용하게 가라앉아 있어야 한다. 자연스러움은 자세와 동작, 호흡과 정신집중에 이르기까지 기공 전체에 해당하는 원칙이다. 기공에서는 모든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울 수 있느냐가 그 성과를 좌우한다. 약손을 주는 사람은 기공의 동공(動功, 일정한 동작을 하면서 호흡조절과 정신집중을 병행하는 공법) 요령에 따라 긴장을 이완하고 호흡을 고르면서 천천히 가볍게, 조용히 부드럽게 몸을 움직이고 손을 놀리는 동시에 정신을 집중하여 약손을 받는 사람의 반응을 감지한다. 이때 약손을 주는 사람은 이미 정해진 격식을 따르기보다 그때그때 감지되는 상태, 즉 받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거의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손을 놀린다. 이것은 기공에서 말하는 자발동공(自發動功)의 경지와 흡사하다. 한편 약손을 받는 사람은 기공의 정공(靜功, 일정한 자세를 취한 채 동작 없이 호흡조절과 정신집중만 병행하는 공법) 요령에 따라 온몸의 긴장을 이완하고 조용히 호흡을 고르면서 약손을 주는 사람의 손길에 따라 움직이는 자기 몸 안의 기 흐름에 정신을 집중한다. 이렇게 정과 동, 음과 양이 한데 어울려 조화를 이루면 두 사람 사이에는 마음의 교류, 기의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양쪽이 모두 무아의 경지에 도달한다. 바로 기공 수련의 도달점이라는 입정(入靜)의 상태다. 약손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둘이 함께하는 ‘사랑의 명상’이자 ‘약손 기공’이 약손요법의 방법이다. 약손을 주는 사람이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온몸의 긴장이완과 호흡조절, 정신집중 상태를 유지하되, 약손 쓰기를 하는 동안 호흡은 한결같이 고르고 잔잔하고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점이다. 무리하게 힘을 쓰느라 숨결이 거칠어지거나 들이쉰 숨을 멈추면 안 된다. ‘압력을 가할 때는 숨을 내쉬고, 압력을 늦출 때는 숨을 들이쉰다’가 호흡조절의 원칙이다. 이것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양쪽 모두에 해당되는 원칙이다. 처음부터 원칙에 너무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연습하다 보면 자연스레 약손 쓰기 동작과 호흡이 어우러지게 된다. 맨손 경락이론도 결합 약손요법은 기공 방식을 채용함과 동시에 기혈(氣血)의 통로인 경락(經絡)을 직접 손보는 것으로 기혈의 흐름을 조절한다. 원래 경락은 정신을 집중해 맨손으로 몸을 짚어보거나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보는 등 본능적 조절행위를 통해 발견된 것이다. 그러나 손 대신 침을 사용하면서 침 치료에 적합한 방향으로 그 이론이 정리됨으로써 치료점인 혈자리(경혈)만 중시되는 바람에 경락 줄기는 실체가 없는 관념적인 선 정도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혈자리가 아닌 맨손 치료에 응용할 수 있도록 경락을 보다 단순하게 정리해야 했는데, 이런 과정에서 새롭게 구체화한 것이 ‘맨손 경락이론’이다. 경락이란 기혈을 온몸 구석구석까지 공급하는 계통(줄기)이기 때문에 어느 한 줄기에 장애가 생겨 기혈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면 그 줄기가 담당하는 신체 부위나 내장에도 병이 생긴다. 경락에 나타나는 이상은 기혈의 흐름을 방해하는 장애 현상이므로 그것을 발견하여 해소하면 기혈의 흐름이 다시 원활해져 병도 자연히 낫는다. 다시 말해 경락을 살펴서 판단하는 일이 진단이고, 경락을 손보아 병적 이상을 해소하는 일이 곧 치료다. 약손요법은 경락이론을 응용함으로써 맨손요법의 기본 문제인 ‘어디를’ 손볼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됐다. 경락 계통에는 몸통과 팔다리에 세로로 뻗은 간선 격인 경(經) 줄기들과 거기서 갈라져 나와 경 사이를 연결하는 낙(絡) 줄기들이 있으며, 그보다 더 가느다란 줄기가 그물처럼 온몸에 고루 분포돼 있다. 그러나 경락 손보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장육부와 연계돼 있는 12개의 경 줄기다. 이 12경이 내장을 포함한 몸 전체를 12부분으로 나눠 맡아서 기혈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경 줄기는 경피와 경근, 경맥으로 이뤄져 있다. 경피의 본래 실체는 바로 피부, 다시 말해 표피와 진피, 피하조직이다. 그러나 피부는 인체의 표면 전체에 대한 포괄적 명칭인 데 비해 경피는 12경 줄기와 연관된 체표 부분, 다시 말해 12경피를 일컫는다. 경근의 실체는 인체의 근육과 힘줄이지만, 몸이 움직일 때 함께 따라서 움직이는 여러 개의 근육을 하나의 줄기로 보았다. 경맥은 고서에 따르면 ‘근육 사이에 뻗어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손끝으로 근육을 누를 때 근육 갈피 사이에 오목하게 느껴지는 홈이나 골 같은 것을 경맥이라 했다. “종래의 경락도는 침구 경락도라 할 수 있는데, 침구 경락도는 혈자리와 함께 경맥만 가느다란 선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약손 쓰기는 경피와 경근, 경맥 모두를 동시에 손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십수년간 수만명의 몸을 직접 만져보고 살펴본 결과를 토대로 12경 줄기를 포함한 ‘맨손 경락도’를 새로운 방식으로 체계화했습니다. 비침요법에 알맞은 경락이론을 개발한 것인데, 이는 경락 역사상 획기적인 것입니다.” 이씨는 맨손 경락도를 포함한 맨손 경락이론에 대해 구체적이고 자세한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기 위해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기존의 경락이론에 따르면 경피나 경근과 달리 경맥은 그 지선이 몸통 속까지 뻗어 있어 몸의 표면(경락)과 몸 속(내장)을 직접 연결한다고 되어 있다. 경맥을 통하지 않고는 경피도 경근도 신체 내부와 연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경맥의 주된 기능은 신체 내외부의 변화나 자극을 양방으로 전달하는 구실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약손요법도 내장의 기능을 조절해야 할 경우 경맥을 정확히 짚어 적절히 자극을 가하는 수법을 사용한다. 약손 쓰기는 ‘손얹기’에서 출발 주위 사람이 고통을 호소할 때 흔히 아픈 곳에 손을 얹고 조심스레 덮어주거나 감싸주거나 잡아주면서 상대의 반응을 살핀다. 이처럼 약손 쓰기는 아마추어리즘을 담은 ‘손얹기’에서 출발한다. 다음은 어루만지듯 쓸어주면서(‘쓸어주기’) 약손을 받는 사람의 반응을 살핀다. 받는 사람이 기분 좋게 받아들이면 약손 쓰기는 지그시 누르는 느낌의 ‘짚어주기’로 진행한다. 받는 사람이 좀더 동적인 자극을 원할 때는 ‘쓸어주기’와 ‘주물러주기’를 병행한다. 약손이란 본질상 여성적이고 정적인 음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약손 쓰기에서는 음의 형식인 손얹기와 짚어주기가 중심이 된다. 그러나 음에는 양의 협조가 있어야 하므로 때로는 동적인 양의 형식, 즉 쓸어주기와 주물러주기를 배합해야 하며, 음과 양을 겸비한‘움직여주기’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약손 쓰기는 손얹기, 쓸어주기, 짚어주기, 주물러주기 등 네 가지 형식에 각각 ‘덮어주기형’ 수법과 ‘잡아주기형’ 수법이 더해져 완성된다. 약손요법으로 받는 사람의 몸을 살피고 손보려면 약손 쓰기의 각 형식과 수법들을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적절히 바꿔가며 연속적으로 손을 써야 한다. “지압, 추나, 마사지를 포함해 무릇 맨손요법이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것을 막론하고 모두가 인간의 본능적 신체조절 행위에서 비롯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본능 행위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반드시 효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여러 가지 맨손요법 가운데 일정한 증상에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유용한 수법만을 망라한 포괄적 요법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맨손요법이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약손요법입니다.” 약손 쓰기의 효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심신의 안정과 깊은 휴식 2) 통증 해소와 같은 약손 본연의 본능적 효과와 몸 안에 기가 잘 흐를 수 있는 내부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심신의 균형과 조화, 그리고 유연성을 가져오는 기공적 효과 3) 기혈의 통로인 경락을 직접 손보아 기혈의 흐름을 조절함으로써 내장 기능을 조절하고 질병 치유를 가능케 하는 경락 효과가 그것이다. 약손 쓰기 형식에 따른 구체적 효과는 다음과 같다. 손얹기는 원래 아픔을 가라앉히는 본능적 치료행위이므로 진통·진정작용이 있다. 나아가 아픔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긴장을 이완시킨다. 또 침체된 생리기능을 촉진시켜 쇠약한 몸이 활력을 되찾도록 한다. 쓸어주기는 손얹기와 손 모양과 같고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는 점도 같기 때문에 그 효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그러나 손얹기와 달리 계속해서 손을 움직이기 때문에 기의 교류라든가 심신의 안정효과에선 손얹기보다 떨어진다. 대신 침체된 생리기능을 촉진시켜 활력을 되찾게 하는 점은 손얹기보다 효과가 앞선다고 할 수 있다. 짚어주기는 지그시 누른 상태를 잠시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손얹기와 함께 정적인 음의 형식에 속한다. 진통·진정작용 등 효과 면에서 손얹기와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짚어주기 특유의 효과는 우선 기혈 소통을 들 수 있다. 약손을 받는 사람의 몸을 지그시 누르면 피부와 뼈 사이 모든 조직, 즉 피하·근육·근막·혈관·신경 등이 모두 압박받게 된다. 배를 짚으면 뱃속의 내장도 압력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짚어주기는 혈액을 비롯한 모든 체액을 물리적 힘으로 이동시킨다는 의미다. 체액 또는 기혈의 순환장애가 모든 병의 원인이란 점에서 보면 이와 같은 짚어주기의 효과야말로 절대적이다. 경락의 이상 살피는 짚어보기 다음으로 경락 살피기 효과를 들 수 있다. 경락의 이상은 바라보고 만져보고 움직여보는 방법으로 살피는데 거기서 중심이 되는 것이 짚어보기다. 경 줄기를 직접 짚어 살피지 않고 기혈 소통의 장애 현상을 정확히 알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주물러주기는 생리기능의 침체, 신경마비나 저림, 근육(경근)의 위축 또는 이완, 피부(경피)의 부종이나 냉증 등 음의 증상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또 경맥과 경혈에 대한 자극으로 경 줄기 전체의 기혈을 발동시킴으로써 내장의 기능을 조절하는 효과가 있다. 한편 근육의 경직과 피하의 응어리를 풀어줘, 신체의 유연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약손쓰기의 수칙 약손 쓰기를 행할 때 기본은 ‘사랑의 마음으로 손을 쓴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 가지 수칙이 있다. 첫째, 마음으로 손을 쓰고 몸으로 손을 쓴다. 똑같은 손놀림이 마음가짐 여하에 따라 인술이 될 수도 있고 장난질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손끝의 능란한 기술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몸으로 손을 쓴다는 것은 몸놀림이 손쓰기를 이끌어나간다는 의미다. 손은 몸통이라는 줄기에서 뻗어나간 가지로 손이 움직이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여야 하고, 손이 멈추기 전에 몸이 먼저 멈춰야 한다. 그러므로 잔잔한 호흡과 함께 유연하게 몸을 놀려 그때그때 손쓰기에 적합한 자세부터 잡아나가면 손은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된다. 둘째, 받는 사람의 아픈 몸이 해달라는 대로 해준다. 약손 쓰기의 요체는 아픈 몸의 본능적 요구를 얼마나 충족시켜주느냐에 있다. 일방적 손쓰기로 불안감이나 불쾌감을 주어서는 안 되며 편안하고 기분 좋게, 쾌적함을 느끼도록 손을 써야 한다. 셋째, 몸과 마음의 유연성을 회복 목표로 삼는다. 건강 상태를 헤아리는 가장 간단하고 정확한 척도는 신체의 유연성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몸이 유연할수록 그만큼 젊고 건강한 것이고 유연하지 못할수록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몸이 유연하면 마음도 유연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약손 쓰기 행위 또는 동작의 일차적 목표는 받는 사람의 몸과 마음의 유연성을 회복시켜 최상의 상태로 높여주는 데 있다. 이것이 약손 쓰기의 최종 목표이기도 하다. 약손요법의 효능 약손요법의 중요한 효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미병(未病)을 고친다. 미병이란 병적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조만간 병이 나타나려는 준비단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무슨 병이건 어느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준비기간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면 몸을 만져봐서 인절미처럼 말랑말랑하고 뭉친 것이 없으면 건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근육의 경직이나 위축, 멍울이나 응어리 등이 일정 부위에 알게 모르게 나타나는 증상이 있으면 이것이 곧 미병의 실체다. 이러한 조짐들은 현대의학의 진찰로 잡아낼 수 없다. 미병의 조짐들은 모두 기혈순환의 장애 현상이므로 그대로 두면 언젠가 발병하게 되지만 그것을 해소하면 사라진다. 약손요법은 자각증상이 나타나기 이전에 병의 조짐을 발견하여 미리 손을 써서 미병을 고칠 수 있다. 둘째, 병원 치료 후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상태에서 기운회복을 돕는다. 질병 치료가 끝나면 면역력과 기력이 많이 떨어진다. 젊고 건강한 사람의 경우 자연회복 능력이 있고 원상회복이 빠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연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다. 그 상태로 시간이 가면 또 다른 병이 오기 쉬운데 이를 방지하고 빠르게 기운회복을 하는 데 약손요법이 도움이 된다. 이외에도 병 아닌 병인 일상의 아픔을 해소하는 효능이 있다. 어쩐지 늘 몸이 개운하지 않고 불편하다거나 머리가 무겁고 아픈 증상, 목이 뻣뻣하고 어깨가 굳어서 불편한 경우, 허리가 뻐근하고 다리가 당기는 증상, 무릎이 시큰거리고 명치가 아프거나 혹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은 일상에서 많은 사람이 호소한다. 이러한 각종 자각증상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발견하여 손보는 것으로 아픔과 불편함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또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 스트레스를 이기게 하고, 각종 성인병이나 만성병에 시달려 심신이 쇠약해진 병자의 면역력을 키워 질병을 다스릴 수 있게 한다. 이상과 같은 약손요법의 효과를 현대적 용어로 기술 한다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긴장이완과 정신 안정 2) 혈액순환 및 체액 이동 촉진 3) 자율신경 조절 4) 내장 기능 조절 및 강화 5) 각종 통증 해소 6) 신체 불균형(불량 자세) 교정 7) 근육과 관절 운동 향상 등. 이동현씨는 “약손요법은 교묘한 손재주나 특별한 수법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배우고 익히기 쉽다”고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압이나 안마와 달리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체력이 약한 사람이라도 약손요법을 쓸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덧붙인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최근 ‘터치(혹은 접촉)요법’이란 이름으로 맨손요법을 현대의학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열을 올리고 있다. 그 결과 스웨덴과 캐나다의 신경병리학자가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물이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실리면서 터치요법의 과학성이 입증되기도 했다. 또 미국 마이애미 의대 피부접촉(터치)연구센터는 “아기의 신체를 직접 자극하면 소화와 배설이 촉진되고 순환기와 호흡기의 기능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접촉요법의 과학성이 다양하게 검증되고 있음을 되짚어볼 때 “21세기 인류에게 가장 필요하고 가치 있는 정신이 바로 약손정신이자 약손요법”이라는 이씨의 말은 한층 현실감 있게 와닿는다. 약손요법의 기본 - ‘배 주무르기’ 생명력의 원천인 배 주무르면 전신 건강 강화 배는 우리 몸의 중심으로 부모한테 물려받은 선천적인 기가 깃들인 곳이자, 후천의 기와 혈이 생성되고 축적되는 탱크 같은 곳이다. 12개 경줄기가 모두 배에 뿌리박고 온몸에 기혈을 공급하고 있는 만큼 배야말로 생명력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기공법이 있지만 모두 배의 단련에 중점을 두고 수련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배 주무르기는 약손 쓰기 요령에 따라 신중하게 진행한다. 정지 상태인 손얹기로 시작하여 짚어주기, 주물러주기로 넘어갔다가 다시 정지 상태로 돌아와서 끝나는데, 그 과정에서 압력의 심도와 강도, 멈추기의 장단과 속도에 급격한 변화가 있어서는 안된다. 위에서 아래로 조금씩 자리를 옮기면서, 또는 배꼽을 중심으로 시계바늘 방향으로 조금씩 자리를 옮기면서 천천히 짚어준 후 양 손바닥으로 배 전체를 주무르는데, 동작이 마치 강물 흐르듯 느릿느릿 한결같이 이어져야 한다. 주무르기 시간은 한 차례 10분 정도면 적당하다. 식사 직후나 식전 시간은 피해야 한다. 배 주무르기는 소화불량, 변비증, 가스가 차거나 헛배 부른 증세, 비만증 등에 빠른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지속적으로 하면 전신의 건강이 강화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1. 배에 손얹기 오른손바닥을 윗배에 얹되 손끝은 명치에 가게 하고, 손뿌리는 배꼽을 덮은 채 두세 번 호흡으로 숨결을 고르면서 정신통일을 한다. 2. 양손 겹쳐 짚기 왼손바닥을 오른손 위에 겹쳐서 무게를 조금 실어준 후, 오른손을 아래로 미끄러뜨려 아랫배를 덮은 채 숨결을 고른다. 왼손은 잠시 윗배에 그대로 머물게 한다. 3. 윗배의 심구(心區)·위구(胃區)·비구(脾區) 살피기 왼손바닥을 다시 오른손에 겹치고 무게를 조금 실어준 후, 오른손을 빼내서 윗배로 가져가 손끝으로 명치 아래 심구를 몇 차례 가볍게 짚어준다. 다시 아래로 배꼽까지 내려오면서 위구와 비구를 살핀다. 이때 왼손은 아랫배를 덮은 채 그대로 머물게 한다. 4. 간·담구(膽區)와 심포(心包)·삼초구(三焦區) 살피기 왼손은 아랫배 위에 그대로 두고 오른손으로 오른쪽 간과 담구를 살피는데 손끝을 갈비뼈 밑으로 조금 밀어넣듯이 한다. 다음에는 같은 요령으로 왼쪽 심포와 삼초구도 살핀다. 5. 왼쪽 폐·대장구 살피기 왼손을 당겨 아랫배 오른쪽을 덮어준 뒤, 오른손으로 왼쪽 폐와 대장구를 살피는데 갈비뼈 끝에서부터 엉덩이뼈 앞가장자리를 따라 아래로 손끝을 옮기면서 천천히 짚어주기를 반복한다. 6. 아랫배의 신장·방광구와 소장구 살피기 왼손을 위로 밀어올려 윗배를 덮어주고서, 오른손으로 두덩뼈 위에서부터 배꼽 아래까지를 오르내리면서 아랫배의 신장과 방광구, 소장구를 살핀다. 7. 오른쪽 폐·대장구 살피기 오른손을 밀어올려 윗배 왼쪽을 덮어주고서, 왼손 끝으로 오른쪽 폐와 대장구를 살핀다. 8. 배 곧은근 짚어주기 양손 엄지머리를 명치 아래 좌우 갈비뼈 가장자리에 나란히 세우고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두덩뼈 좌우까지 배 곧은근을 짚어 내려온다. 이때 양손 끝 엄지의 사이는 5∼8㎝ 가량 벌어지게 된다. 9. 허리 감싸죄기 양손 끝을 좌우로 미끄러뜨려 허리 아래로 돌리고서, 양손바닥으로 배 전체를 감싸죈다. 죄기를 늦췄다가 한 번 더 죄어준다. 10. 배꼽 둘레 짚어주기 손바닥은 배를 감싼 채 양손 엄지를 세워 배꼽 좌우 4∼5㎝ 되는 곳을, 그 다음은 배꼽에서 10시 반과 4시 방향으로 4∼5㎝ 되는 곳을, 마지막으로 배꼽에서 7시 반과 1시 반 방향으로 4∼5㎝ 되는 곳을 각각 두세 번씩 짚어준다. 11. 뱃살 주물러주기 엄지를 벌린 손 모양으로 양손바닥을 배에 밀착시킨 채 뱃살을 크게 움켜잡듯이 하면서 잰 걸음마 방식으로 배 전체를 골고루 주물러준다. 받는 이의 반응에 따라 움켜잡는 강도를 조절하면서 천천히 3∼10분간 계속한다. 12. 배꼽 덮어주기 왼손바닥으로 배꼽을 덮고 그 위에 오른손바닥을 포개 잠시 가벼운 압력을 지속하는 것으로 배 주무르기를 끝낸다. <출처 : 신동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