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난, 혼자가 아니야
이향숙
“따르릉 ~~”
식탁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서준이는 옆에 놓여있던 휴대전화가 울리기 무섭게 통화를 합니다.
“진우야, 잠깐만 기다려. 금방 나갈게.”
“서준아, 밥 먹다 말고 어딜 가니? 그렇게 조금 먹고 나가면 배고플 텐데 더 먹고 가야지.”
서준이는 엄마의 잔소리도 듣는 둥 마는 둥 방으로 들어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엄마, 진우랑 경민이랑 학교운동장에서 축구하고 올게요.”
“저런, 밥도 다 먹지도 않고 쯧쯧. 오늘 성당 가는 것 잊지 마라. 늦으면 안돼.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네네.”
너무 급한 나머지 엄마가 조용조용 닫으라는 현관문이 꽝 닫히고 아래층 위층 울리는 소리가 크게 나도 서준이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토요일 태권도장에 못 가서 아쉽지만, 영어학원도 쉬고 논술학원에도 가지 않아 기분이 좋습니다.
학교운동장에는 서준이랑 새 학년 같은 반이 된 절친 진우와 지난 3월에 전학 온 경민이가 벌써 와 공을 차고 있었습니다.
진우는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살며 유치원도 학교도 같이 다닌 오랜 친구입니다. 선생님 말씀도 잘듣고 공부도 잘하는 진우는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모범생입니다. 나는 진우와 친구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경민이는 두 달 전 3학년 올라갈 때 다른 곳에서 이사 오면서 전학 온 친구입니다. 현재 제 짝꿍이기도 하지요. 전학을 와서 그런지 말이 없는 조용한 친구입니다. 나는 그런 경민이가 신경이 쓰여 진우와 놀 때마다 같이 놀자고 합니다.
“야, 장진우! 우리랑 축구 같이 할래?”
옆 반 개구쟁이 세호가 다른 친구들 두 명과 축구공을 들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진우는 작년에 세호랑 같은 반이었습니다.
세호는 목소리가 커서 떠드는 소리가 우리 반까지 들리고 쉬는 시간에는 복도를 휘젖고 뛰어다니면서 장난을 치거나 지나가는 친구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하여 모르는 친구들이 없습니다. 몸집도 커서 5학년 형이라고 해도 모두 믿을 거예요.
진우와 나는 눈이 서로 마주쳤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키지 않았지만 그리 나쁘지도 않을 것 같았습니다. 셋이서 노는 것보다 여럿이 경기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진우가 내 마음을 읽은 듯 말했습니다.
“ 좋아. 서로 세 명씩 똑같으니 편을 갈라 경기를 하자.”
우리는 운동장 동쪽 편, 세호네는 서쪽 편을 골대로 정하고 경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경민이가 골키퍼를 하고 진우와 나는 공격과 수비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실력이 서로 비슷했는지 한참 동안 경기를 했으나 점수가 나지 않았습니다.
세호는 공을 빼앗길 때마다 씩씩거리며 화를 냈습니다. 나도 승부 욕이 생겨 어떻게든 이기고 싶었습니다.
“아얏!”
내가 공을 뺏는 과정에서 햇빛에 눈이 부셔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다 세호와 부딪혔고 그 충격으로 세호가 넘어졌습니다
덥다고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뛰던 세호 무릎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이 자식이......”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려 다가가는 순간 세호는 갑자기 내 멱살을 잡고 다리를 거는 바람에 나는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세호의 큰 주먹이 내 얼굴로 날아왔습니다. 순간 번쩍하고 불빛이 보이더니 코피가 주르륵 흘렀습니다.
나도 화가 나서 세호의 멱살을 잡았고 운동장 바닥을 엎치락 뒤치락 거리며 뒹굴었습니다.
진우를 비롯한 경민이, 다른 친구 두 명은 말리지도 않고 이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너희들 왜 이러는 거야? 운동경기는 신사적으로 해야지 비겁하게 싸우고 있니? 너희들 싸우는 것 지금 학교 CCTV에 다 찍히고 있을 걸? 나중에 선생님이 아시면 혼날 거야. 그만 싸우고 일어나 빨리~”
논술학원에 같이 다니는 지안이가 그네를 타고 있다가 달려와서 소리쳤습니다.
‘선생님’이라는 소리에 나와 세호는 온 몸이 굳어져 순간 싸움을 멈췄습니다.
그제야 진우와 경민이가 나를 일으켜 세우고 세호도 다른 아이들에게 이끌려 일어났습니다.
친구들이 옷을 털어줄 때 마다 흙먼지가 하얗게 퍼졌습니다.
“서준아, 그만 집에 가자. 조금 있다가 성당 가야 해.”
진우가 내 옷의 먼지를 털어주면서 말했습니다.
“안가! 그리고 이제 너하고 절교야!”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엄마는 마침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지 집에 아무도 없어 다행입니다.
목욕탕에서 부지런히 씻고 거울을 보았습니다.
다행히 코피는 멈추었고, 젖은 머리를 말린 후 새 옷을 입었더니 감쪽같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에 들어와 책상 앞에 앉으니 갑자기 눈물이 나왔습니다. 코피 난 것이 억울한 것은 아닙니다. 세호를 다치게 한 것이 고의가 아니었는데 싸운 것도 더더욱 아닙니다. 덩치 큰 세호와 싸우고 있는데 더구나 땅바닥에 깔려서 힘이 빠져 있을 때마다 말리지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은 진우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허전하고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나서 눈물이 자꾸 흘렀습니다.
“서준아, 아직도 성당 안갔어? 얼른 가야지. 늦는다.”
엄마가 장바구니를 들고 현관으로 들어왔습니다.
나는 성당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싸운 것이 잘못해서가 아닙니다. 그곳에서 진우도 지안이도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요.
성당에 같이 가자고 전화하던 진우에게서 아직까지 전화가 오지 않은 것을 보니 혼자 간 것이 분명합니다. 절교하자고 했지만 정말 전화도 안하는 것이 괘씸하기만 합니다.
키가 작고 마른 지안이는 글을 참 잘씁니다. 성당에 나오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같은 반이 아니어서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 보진 않았지만 뒤로 묶은 머리카락 앞머리가 흘러내리면 새하얗고 예쁜 손가락으로 넘길 때 마다 자꾸 눈길이 가고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흉한 꼴을 보여 주었으니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갈 준비가 안된 거야?”
엄마가 방문을 열었고 나는 급히 방을 나왔습니다. 성당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에게 얼굴을 보여 주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볼까 봐 성당을 향해 막 뛰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미사가 시작되고 있었지만 성당 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나는 성당 밖에 놓인 의자에 앉았습니다.
집으로 돌아 갈 수도 없고 이 얼굴로 다른 친구를 만나러 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망설이는 동안 미사가 끝났는지 아이들이 성당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서준 베드로형! 왜 성당에 안 들어왔어?”
1학년 촐랑이 도현이가 큰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밖으로 나오던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서준 베드로, 성당 왔었구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안이가 어느새 다가와 내 팔을 꽉 잡았습니다. 말도 하지 않던 나에게 와서 팔을 잡다니 그것도 작은 두 손으로 힘주어 잡아주다니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그러나 싫지는 않았습니다. 멋쩍게 서 있기 어색했는데 말 걸어주는 지안이가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서준아 미안해. 아까 나도 정신이 없었어. 내가 작년 운동회 때 우리 반 대표로 계주했었잖아. 그때 뒤따라 오던 애한테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무릎도 다치고 깁스하고 오랫동안 고생을 했었어. 피를 보니 그때 생각이 나서 무서웠어. 너도 기억나지? 진짜진짜 미안해.”
진우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잡았습니다.
나도 어렴풋이 그때 기억이 났습니다.
나는 서운하고 속상했던 마음이 갑자기 사라지고 할머니가 주셨던 박하사탕을 먹었을 때 처럼 가슴이 화해졌습니다.
“내일 세호한테 같이 갈래? 나 세호네 집 알아. 나랑 같은 반이잖아. 세호는 개구쟁이지만 알고 보면 마음은 아주 착해. 서로 화해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거야.”
지안이가 내 눈을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부끄러워 말도 못 건넸던 지안이와 벌써 많이 친해진 것 같았습니다. 오른손은 진우의 손이, 왼팔은 지안이가 잡고 있어서 움직일 수 없었지만 마음은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성당 정원에 서 있는 성모마리아님이 다정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미사는 드리지 못했지만 그래도 오늘 성당에는 정말 잘 온 것 같습니다. 끝.
- 등단연도: 1999년 동양일보 동화부문 신인문학상
2004년 아동문학평론사 동화부문 신인문학상
- 작 품: 화장실 거울이야기 외 다수
첫댓글 이향숙 테레사님.
이곳에서 이렇게 귀한 동화작품을 맛볼수 있어 행복합니다.
아동문학평론가도 되셨으님 참으로 값진 인생을 사십니다.
역시 .....보통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충북여성문학 시절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