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
틱낫한 스님 저
*열다섯
자유
P. 158 ~ P. 160
🌱강 건너 참자유에 이르는 지혜인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은
더이상 마음애 아무런 걸림이 없으며
🌱성취의 대상이 별개로 존재하며 취할
수 있는 자아 개체라는 관념을 제거하면
장애는 사라집니다.
무언가를 쫓는 한 수행에는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장애물은 ‘바라나(avarana)'입니다.
마음의 장애물은 ’시타바라나(cittavarana)'입니다.
거의 모든 장애는 우리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괴로움은 우리 안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바깥의 누군가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면,
다시 말해서 우리가 괴롭고 슬프고 화가
난다면 그것은 우리 마음속의 장애
때문이지,
환경 때문이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장애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지식이라는 장애이고,
다른 하나는 번뇌라는 장애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장애로
간주되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버리는 법을 배워야만 진리를 향한
탐구에서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재 보유한 지식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는다면 개방성을 잃게 되어
더 심오한 진리를 접할 수 없습니다.
🌱지식이 어떻게 장애가 되어 진실을
놓치게 만드는지 보여주기 위해 부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린 아들을 남겨둔
채 사업차 집을 비웠던 상인입니다.
상인이 없는 동안 도적떼가 마을을
습격해 집에 불을 지르고 아들을
잡아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상인은 아들을 찾기 위해
온갖 곳을 헤매고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에 타 무너진 집터에서
새카맣게 탄 어린 남자아이의 시신이
한 구 나왔습니다.
상인은 이것이 자기 아들의 시신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가슴을 치며
아들을 무방비 상태로 방치했던 자신을
탓했습니다.
상인은 전통에 따라 화장을 했습니다.
장례를 치른 뒤에는 특별히 주문해 만든
비단 주머니에 유골을 담아서 식사를
하든,
잠을 자든,
일을 하든 항상 이 주머니를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밤 아들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깬 상인은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슬픔과 회한에 겨워 울고
신음했습니다.
바로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실 상인의 아름다운 아들은 운좋게
도적떼에게서 탈출해 마을로 돌아오는
길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아들은 새로 지은 집의 문을 두드리며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유골 주머니를 가슴에 소중히 품고 울던
상인이 화를 내며 소리쳤습니다.
“누구요?”
그러자 어린 소년이 답했습니다.
“저에요, 아빠. 문 열어주세요!
아빠, 문 열어줘요!”
그러나 상인은 아들이 이미 죽었다는
확신이 너무 강했던 나머지 웬 어린놈이
슬픔에 빠진 자신을 괴롭히려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상인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절망한 소년은 떠나고
말았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이 수행의 인연공덕으로
보리사 뜨락에 아이들 웃음이 가득하기를
이 수행의 인연공덕으로
아침에 한 사람을 기쁘게하고
저녁에 한 사람의 슬픔을 거두어 줄 수 있기를
이 수행의 인연공덕으로
세세생생 부처님법 만난 은혜 갚고 살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연아 합장정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