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킥킥 아웃
전창수 지음
나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뭐가 그리 분주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부다. 가정이 있고, 딸이 있다. 물론, 직장까지 있다. 평소에는 딸을 등교시키느라, 밥 차리느라 분주했을 터인데, 오늘은 달랐다. 토요일이다. 출근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임이 있다. 무슨 모임이냐면, 그냥 되는대로 모임이다. 그날그날에 따라 주제가 달라지는 모임이다. 어떤 날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어떤 날은 그냥 신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또 다른 날은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며, 어떤 날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수다만 떨다 오기도 한다. 보통은 혼자 가지만, 때로 가족을 초청하기도 한다. 아이만 데려갈 때도 있고, 남편이 같이 갈 때도 있다. 물론, 그런 날은 특별한 날이 된다.
매일 토요일 아침에 혼자 갈 때마다 남편의 양해를 구해야 하고, 딸에게도 잘 설명해줘야 한다. 이 인간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삐지곤 한다. 남편도 딸도 그렇다. 남편에게 같이 가자고 할 때는 반드시 딸도 같이 간다. 아직은 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만 데려가려면 굳이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날은 잘 갔다 오라며 남편은 혼자 신났다.
오늘은 남편이 신나는 날이다. 나의 여섯 살 배기 딸은 엄마를 좋아라, 하며 따라 나선다. 오늘은 아이를 데리고 모임에 참석하는 날이다. 그리고 아이들끼리 노는 걸 도와주는 날이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우리는 엄마들끼리 많이 머리를 맞댄다. 머리를 맞댄 끝에 찾아낸 해결책이라곤 아이들끼리 노는 걸 그냥 지켜보다가 필요하면 뭔가 해주기. 어쩌면, 그게 가장 지금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임 장소는 매주 달라진다. 주로, 한명씩 돌아가면서 집을 장소로 내주지만, 때로는 카페가 되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체육관을 대여하기도 한다. 오늘은 아이들을 위해 마음껏 뛰놀라고 넓은 체육관을 대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아이들이 놀 기구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러고 보니, 아이들한테 뭐하고 놀 건지를 물어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미쳤다. 왜, 이런 기본적인 것을 잊어버렸을까. 자책했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급한 대로 딸에게 물었다.
“주영아, 오늘 친구들하고 같이 놀 건데, 뭐 했으면 좋겠어?”
“수건돌리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주영이가 대답했다.
“수건돌리기 할 줄 알아?“
“할 줄 알아. 재밌어.”
나는 주머니를 뒤져 보았다. 마침, 꽃무늬로 장식된 손수건이 하나 있었다. 꼭 손수건이 아니어도, 체육관에 수건은 비치되어 있을 테니, 걱정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도 수건돌리기를 하고 싶어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일단 수건돌리기를 해 보자고 제안할 터였다. 다른 아이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나서 무엇을 할지 결정하면 될 터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내버려 둘 예정이다.
체육관에 도착했다. 체육관에서는 신발을 갈아 신고 들어가야 했으므로, 나와 주영이는 발에 맞는 실내화로 갈아 신고 신발은 신발장에 넣어두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몇몇의 엄마들이 나와 있었다
“아, 주영엄마. 일찍 왔네요.”
“아, 다른 분들은요?”
“뭐, 아직 시간이 안 되었으니”
“오겠죠. 그것보다 애들은 벌써 신났네요.”
“어, 그렇네요. 주영이도…”
가서 놀아, 라고 하는 말도 튀어나오기 전에 주영이는 벌써 다른 아이들이 뛰어노는 데 합류했다. 아이들은 체육관을 여기저기 휘저으며 방방 뛰어 다니고 있었다. 술래잡기를 하는 듯도 했고, 누가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를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
“애들은 역시…”
“주영엄마, 오늘은 그냥 애들끼리 저리 놀게 하고 우리끼리 앉아서 얘기나 하다 가는 게 좋겠어요.”
“하하, 그렇네요. 어, 그런데 이분은?”
“아, 참 주영엄마 처음 보시죠? 이분은 공연하시는 분이예요. 오늘 시간이 나서 한번 와보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데려왔어요. 다른 엄마들한테는 미리 말씀드렸는데, 주영엄마한테만 말씀 못 드렸네요. 오늘도 공연이 있는데, 시간 날 때마다 여기 모임 참석하고 싶다네요.”
“아이가 있나요?”
“어, 저기 있네요. 신났네. 영호라고.”
수건돌리기 하자는 말은 미처 꺼내지도 못했다. 이어서 다른 엄마들도 속속 도착했다. 다른 아이들도 애들이 뛰어노는 걸 보더니, 거기에 합류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엄마들도 정신없긴 마찬가지. 그냥, 애들 뛰어노는 걸 보다가 내가 있는 곳으로 합류했다.
“저러다 다칠라.”
선영 엄마처럼 걱정하는 엄마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그냥 지켜보기만 하다가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남편 이야기, 애들 이야기, 그리고 시어머니 이야기. 온갖 이야기들이 다 나왔지만, 역시 그 중 탑은 아이들 교육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이들을 1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매번 뛰어놀게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나왔다. 토요일마다 아이를 남편한테 맡기고 오는 것도 좋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필요한 나이인 거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반대했다.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는 것도 필요하다고, 가끔은 우리들도 자유를 누리는 것이 좋다고 했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뉘었지만, 교육적 측면에서는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나의 의견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오전 시간이 훌쩍 갔다. 이제, 점심 시간이 다 되어가므로 각자의 집으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불렀다.
“주영아, 이제 가야 할 시간이야. 어서 와라.”
“어, 벌써? 아앙, 더 놀고 싶은데.”
“이제 가서 밥 먹어야지. 다음번에 또 오자.”
“아앙, 다음번에 또 언제?”
“한 달 후에?”
“언제 기다려, 아앙…”
“오늘따라 왜 이래?”
“꼭 가야 돼?”
다른 엄마들과 아이들은 이미 체육관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럼, 가야 돼지. 다른 아이들은 벌써 가고 있는데?”
“아앗, 벌써 다 갔어, 나만 두고, 아앙. 정말!”
나는 주영이를 달래며 이제 그만 가자며, 신발장으로 향했다.
“어, 신발이 어디 갔지?”
그때까지 나처럼 애들을 불러 모으느라 진땀을 뺀 경화 엄마가 나를 보았다.
“어, 신발 없어요?”
“이거 내꺼 아닌데?”
나는 신발장을 다시 뒤져 보았다. 경호엄마의 신발과 그 신발 외에는 남아 있는 게 없었다.
“아, 이거. 오늘 처음 온 그 영호엄마인가? 그분꺼 같은데?”
“아, 이런. 처음 오셔서 헷갈리셨나 보네요. 어쩌지? 그 신발 월요일에 신고 가야 하는데.”
“아, 잠깐, 화영엄마가 연락처 알 거에요. 화영엄마가 데리고 왔으니까.”
나는 경호엄마가 화영엄마한테 전화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조금 후, 경호엄마는 내게 영호엄마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영호엄마 되시죠?”
“아, 맞아요. 누구시죠?”
“저, 오늘 모임에서 뵈었던 주영엄마라고 하는데요.”
“아, 기억나요. 웬일이세요?”
“저, 혹시 신발 맞게 신고 가셨나요? 저랑 신발이 바뀐 거 같은데.”
“아, 혹시 이거 주영엄마 신발? 아, 제가 정신없이 나오다 보니, 신발을 바꿔 신은 것도 몰랐네요. 제가 가고 싶은데, 지금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가지를 못하는데, 혹시 급하신 거면 이리로 오실 수 있나요?”
“아, 제가 가죠. 그 신발 월요일에 신어야 되거든요. 공연장이 어디예요?”
나는 주영이랑 영호엄마가 알려준 공연장으로 갔다. 가면서, 주영이가 웃으면서 물었다.
“엄마, 신발 없어졌어?”
“응. 지금 찾으러 가는 중이야.”
“밥 먹으러 집으로 간다매.”
“신발부터 찾고 먹으러 가자.”
“킥킥킥”
“뭐가 그렇게 웃겨?”
“아니, 그냥.”
주영이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공연장입구에서 영호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여기서 어떻게 가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가자 공연장 무대가 보였다. 그리고 앞으로 관객석이 보였다. 주영이와 내가 멀뚱히 서 있자, 영호엄마가 말했다.
“아참, 잠깐만 여기 있으세요. 신발 곧 갖고 나올께요.”
“신발, 신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러자, 영호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공연장에서는 다른 신발을 신거든요. 금방 올께요.”
영호엄마가 무대의 뒤쪽으로 사라졌다. 1분쯤 지났을까. 공연이 벌써 시작되려 하는지, 관객석에 사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영호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서 나는 그냥 기다렸다.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 것이 느껴졌다. 주영이는 옆에서 계속 킥킥대고 있고,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참 난감했다.
관객석에 사람들의 거의 찰 때 즈음, 영호엄마가 나타났다. 그런데, 신발이 없다. 나는 또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데, 영호엄마는 나를 첫 손님으로 소개했다.
“저희 공연에 참석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의 첫 손님이자, 이 무대를 같이 꾸며주실 주영이와 주영엄마입니다.”
나는 다짜고짜, 나를 이 무대에 올린 영호엄마에게 화를 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 상황을 즐거워해야 할지 난처했다. 하지만, 옆에서 주영이는 계속 킥킥대고 있었다. 그러자, 이 모든 걸 주영이도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화를 내려는 마음이 사라졌다. 주영이도 이 상황을 즐기고 있구나. 그래, 주영이가 언제 그렇게 웃어보겠느냐며 나는 이 무대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주영이는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너무 신났고, 나는 끝나고 내 신발을 돌려받았고, 공연에 참석해줘서 고맙다며 사례비와 추가로 내 신발과 똑같은 신발 하나를 더 선물 받았다. 그러면서, 미리 연락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게 누구의 계획이냐고 물었더니, 아이들 의견이었다고 한다. 주영이도 포함되느냐고 물었더니, 주영이가 가장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고 한다.
“애들은 계획이 다 있었군요…”
“네, 그렇죠. 어른들을 놀리는 게 재밌나 봐요? 그래도 지나치게 선을 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을 보면 참 기특하기도 해요.”
“선이요?”
“네, 주영이가 그러더라구요. 엄마가 마음이 이상해지지 않게 해 달라구요.”
“아, 그런 말도 했었군요.”
“네, 참 똑똑한 아이를 두셨어요. 그리고 오늘 공연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공연하시는 거면, 종종 보러 올께요.”
“네, 그래 주시면 저도 감사하지요. 저 다음 주에 모임 참석해도 되지요?”
“물론이죠. 그럼, 다음 주에 뵐께요.”
“네, 안녕히 가세요.”
“주영아, 가자!”
신나게 웃고 있던 주영이가 나를 따라왔다. 집에 왔는데, 남편이 TV를 보고 있었다.
“오늘 늦었네? 재밌었어?”
“밥은?”
“기다렸지. 내가 밥도 다 차려놨어.”
“어라? 이 인간이 웬일이야?”
“웬일은? 주영아, 재밌었어?”
주영이가 또 킥킥댔다.
“뭐야 이거? 혹시 당신도 알고 있었어?”
“제대로 먹혔나 보네.”
주영이는 여전히 킥킥대고 있었다.
“아니, 내가 뭘 알어.”
그러면서 남편도 히죽거렸다.
“그래, 나 계속 놀려먹어라. 그렇게 좋으면.”
주영이의 킥킥대는 소리는 계속 들리고, 남편도 계속 히죽거렸다. 남편과 딸의 사이가 언제부터 저렇게 좋았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씩씩거리면서, 남편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주영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그런 나를 보면서 연신 깔깔대고 있었다. 뭐, 그렇지. 딸이 웃으면 좋지 뭐. 나의 하루는 그렇게 즐거운 듯, 서러운 듯 가고 있었다.